락앤락 vs 삼광글라스 “죽여야 산다”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4.08.20 14:3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환경호르몬 검출 공방…밀폐용기 1위 바뀔 수도

국내 밀폐용기 시장의 양대 산맥인 락앤락과 삼광글라스가 또다시 제품 유해성 문제를 놓고 맞붙었다. 2012년 유리를 소재로 한 삼광글라스가 플라스틱을 소재로 쓰는 락앤락을 허위·과장 광고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 락앤락이 환경호르몬의 일종인 비스페놀A가 검출되지 않는 ‘트라이탄’이라는 소재를 사용한 플라스틱 밀폐용기 ‘비스프리’ 제품군에 ‘100% 환경호르몬 프리’와 같이 환경호르몬이 전혀 없다는 식의 광고를 해왔다는 것이다. 이후 양측의 공방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삼광글라스가 제소한 건에 대해 “(비스프리 제품에서) 비스페놀A가 검출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락앤락이) 객관성 있는 근거 없이 모든 환경호르몬이 없는 것처럼 사실과 다르거나 지나치게 부풀려 광고했다”며 위법성을 인정해 경고 조치를 내렸다. 이로써 사태가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삼광글라스는 다시 ‘공정위 제소’ 카드를 집어 들었다. 지난 8월12일 삼광글라스 측 관계자는 “공정위 경고 조치 이후에도 락앤락이 여전히 자사 온라인 쇼핑몰에서 ‘비스프리’ 제품에 ‘굿바이 환경호르몬’ ‘환경호르몬이 없어’ 등의 문구를 사용하고 있다”며 “락앤락이 계속 그런 광고 문구를 사용한다면 공정위에 다시 제소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8월15일 대형 할인마트에 밀폐용기업체인 락앤락과 삼광글라스 제품이 나란히 놓여 있다. 오른쪽 사진은 논란이 되고 있는 락앤락 비스프리 제품 광고. ⓒ 시사저널 이종현
공정위의 경고 조치를 두고 양측의 해석은 첨예하게 갈렸다. 삼광글라스는 2012년 락앤락을 공정위에 제소하면서 미국 민간 시험기관인 서티캠(Certichem)에 의뢰해 얻은 “락앤락 비스프리 제품에 대한 환경호르몬 검출 시험 결과 자외선에 노출되면 환경호르몬의 일종인 에스트로겐 활성화 물질이 검출됐다”는 시험 결과를 근거로 제시했다. 비스페놀A가 아닌 다른 종류의 환경호르몬이 검출되기 때문에 ‘환경호르몬이 없다’는 락앤락의 광고가 잘못됐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였다. 삼광글라스 측은 공정위가 서티캠의 시험 결과를 일부 반영해 조치를 내렸다고 보고 있다. 삼광글라스 측 관계자는 “공정위의 조치는 결국 비스프리 제품이 모든 환경호르몬으로부터 안전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게다가 공정위 조치에 대해 락앤락은 바로 이의신청을 제기했다가 최근 취하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자사 제품이) 환경호르몬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점을 입증할 방법이 없으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락앤락은 공정위의 경고 조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다. 락앤락 측은 ‘100% 환경호르몬 프리’와 같은 광고 문구에 문제가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공정위의 조치가 비스프리 제품에서 환경호르몬이 검출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락앤락의 한 관계자는 “환경호르몬이 없다는 식의 비스프리 광고를 안 한 지 2년이 넘는다. 게다가 공정위의 경고 조치는 트라이탄이라는 소재에서 환경호르몬이 나온다는 것을 인정한 게 아니라 광고 문구의 과장성 여부에 대해서만 판단을 했을 뿐이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처음엔 공정위가 삼광글라스 측이 제시한 서티캠의 근거 자료를 인정한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공정위에 이의신청을 했지만 ‘그렇지 않다’는 답변을 받아 바로 취하했다”고 밝혔다.

트라이탄 소재를 사용한 플라스틱 제품의 환경호르몬 검출 문제를 두고 공방이 거세다. 해외에서도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트라이탄 제조사인 이스트만케미컬은 2012년 1월 미국 민간 조사기관인 서티캠과 서티캠의 CEO가 지분을 다량 보유하고 있는 플라스티퓨어(PlastiPure)에 대해 ‘자신의 고객사를 상대로 잘못된 정보를 알리고 있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해 지금까지도 법적 분쟁이 진행 중이다. 플라스티퓨어는 플라스틱의 환경호르몬과 관련된 기술 컨설팅과 인증서 발행을 주요 사업으로 삼고 있는데, 자사의 인증을 받지 않은 이스트만케미컬의 원료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왔다.

미국에서 환경호르몬 검출 논문 발표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미국에서 “락앤락 비스프리 제품 등 비스페놀A가 없는 플라스틱 제품에 아무런 자극을 주지 않아도 환경호르몬이 검출된다”는 내용을 담은 논문이 발표되기도 했다. 지난 5월 28일 미국의 저명한 학술지 ‘Environmental Health’에 게재된 논문인 “Estrogenic chemicals often leach from BPA-free plastic products that are replacements for BPA-containing polycarbonate products(에스트로겐 화학물질은 BPA 함유 폴리카보네이트 제품의 대체품인 BPA-프리 플라스틱 제품에서 자주 침출된다)’에 따르면 락앤락 비스프리 제품 등 비스페놀A(BPA)가 없는 플라스틱 제품에서 태양광 자외선 등 외부 자극이 주어졌을 경우나 아무런 자극이 없을 경우 모두 에스트로겐 활성화 물질이 검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논문은 이러한 실험 결과를 종합해 “(논문의) 위험 평가 조사는 비스페놀A 프리 제품이 심각한 수준의 에스트로겐 활성 성분을 가진 화학물질을 침출시켰음을 보여준다. 즉, 비스페놀A 프리가 환경호르몬 프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적시했다. 이 논문은 미국 국립보건원과 미국 국립환경보건과학연구소의 보조금을 지원받아 작성된 것이며 연구에 사용한 대부분의 데이터 역시 미국 국립보건원 또는 미국 국립과학재단으로부터 입수한 것으로 돼 있다. 

이에 대해 락앤락 측은 ‘논문 저자의 경력을 살펴볼 때 신빙성을 담보할 수 없는 논문’이라고 반론을 제기했다. 락앤락의 한 관계자는 “해당 논문의 저자 3명 모두의 메일 주소가 서티캠으로 되어 있는 데다, 저자 중 한 명은 서티캠 대표의 아내이기도 하다. 트라이탄 소재 제조사인 이스트만과 소송 중인 서티캠 출신들이 작성한 논문이라서 어떤 의도로 작성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논문 결과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이미 이스트만은 환경호르몬 안전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동물실험을 거쳤다. 하지만 이 논문은 동물실험보다 한 단계 낮은 세포실험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결과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환경호르몬 없는 플라스틱이란 없다”

국내에서 경쟁사와의 분쟁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데다 해외에서도 관련 소송이 진행 중이라 락앤락은 환경호르몬 논란에서 한동안 벗어나기 어려울 전망이다. 환경호르몬이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 또한 곤혹스러운 대목이다.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직업환경의학전문의)은 “플라스틱 제품 소재에는 굉장히 많은 환경호르몬이 들어가 있어 환경호르몬으로부터 자유로운 플라스틱 제품이란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임 소장은 “아직 유해성 여부가 검증되지 않은 환경호르몬이 무수히 많기 때문에 식약처 규제 대상에 포함되는 환경호르몬(비스페놀A 등)만 검출되지 않으면 안전하다는 식의 인식은 위험하다”며 “외국에서는 점차 환경호르몬 용출 기준값 자체를 없애고 아예 쓰지 않도록 하는 추세지만 한국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준일 락앤락 회장 ⓒ 락앤락 제공
락앤락에 악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공정위의 경고 조치뿐만 아니라 올 상반기 내내 저조한 실적을 이어가면서 국내 밀폐용기업계 1위 아성에도 금이 갔다.

락앤락은 지난 8월8일 올해 2분기 실적을 공시했다. 이에 따르면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부진한 실적이 이어졌다. 락앤락의 2분기 매출액은 102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3.53% 줄어들었고 영업이익은 101억원으로 57.26%나 감소했다. 특히 전체 매출의 42%를 차지하는 중국 매출 부분이 전년보다 44.6% 감소해 435억원을 기록하며 전체 실적을 악화시켰다. 락앤락 측 관계자는 2분기 실적을 두고 “중국 내 할인점 채널 이관에 따른 출고 중단 및 조정으로 매출 감소가 컸으나 정리가 되면 실적이 개선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체 매출의 34%를 차지하는 국내 매출은 350억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10% 증가했다. 하지만 이 가운데 주력 제품인 플라스틱 용기 등이 포함된 식품 용기 부문은 전년 동기에 비해 21% 감소해 117억원을 기록했다. 이를 두고 시장의 평가가 부정적이다. 경쟁사인 삼광글라스의 식품용기 부문 2분기 매출액은 140억원대로 추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밀폐용기 시장에서 1, 2위 업체가 뒤바뀔 수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창업주인 김준일 락앤락 회장은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이했다. 김 회장은 맨손으로 회사를 일군 자수성가형 최고경영자로 꼽힌다. 1978년 26세의 젊은 나이에 국진유통을 창업했고, 7년 후에 제조업체로 전환하면서 락앤락의 전신인 국진화공을 세워 110개국에 수출하는 상장기업으로 키워냈다. 락앤락이란 브랜드가 밀폐용기의 대명사로 불리기까지 김 회장의 사업 수완이 빛을 발했다.

김 회장은 자수성가형 기업가 특유의 근성을 발휘해 ‘부진의 터널’을 벗어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최근 부진이 계속되고 있는 락앤락에 대해 내년 하반기까지 실적 개선이 힘들 것이라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지난 8월11일 신한금융투자는 락앤락에 대해 “중국 부문 매출과 영업이익 비중이 전체 실적의 40% 이상이다. 최근 실적 추이를 감안할 때 실적 개선 시점을 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다만 기저효과 등을 고려할 때 연결 기준 영업이익 개선은 2015년 3분기 이후 가능해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