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수렁에 빠져 동네북 되다
  • 김원식│미국 통신원 ()
  • 승인 2014.08.20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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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습 승인으로 체면 구긴 오바마…네오콘 거센 공격에 궁지

항공모함 조지 부시호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명령이 떨어졌다. F18 전투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이라크로 향했다. 전투기는 IS(이슬람 국가)의 기지와 수송부대에 500파운드 레이저 유도형 정밀 폭탄을 투하했다. 하지만 하늘에서의 폭격은 그 효과가 제한적이었다. 맹렬한 기세로 쿠르드족의 중심 도시인 아르빌과 수도 바그다드를 점령하려는 IS의 진격 속도를 늦추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허드슨 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공습이 끝난 뒤 이렇게 물었다. “이후 어떤 식으로 전투를 진행해 이라크 전역의 안정을 도모하려고 할 것인가?”

8월9일 휴가를 떠나기에 앞서 기자들 앞에 선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이 이라크 공습을 승인한 과정을 설명했다. 하지만 그보다 자신을 비판하는 이들을 향해 날린 말들이 주목받았다. “이라크 사태에 관한 분석은 여기저기서 늘 자주 횡행하는 가짜(bogus)이며 잘못된 것이다.” ‘가짜’라는 단어는 딕 체니 전 미국 부통령을 향해 내뱉은 말로 해석됐다. 체니 전 부통령은 최근까지 이라크 철군을 강하게 비난하면서 과거 이라크 전쟁의 당위성을 언론을 통해 거듭 주장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8월11일(현지 시각) 휴가지에서 이라크 사태를 언급하던 중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 AP 연합
이라크 전쟁을 ‘멍청한(dumb) 전쟁’이라고 규정하며 완전 철군을 완료한 것이 최고의 업적이라던 오바마 대통령은 스스로 이라크 공습을 결정하는 모순 덩어리가 됐다. 그는 이번 공습이 “몇 주 안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라크 사태가 만만치 않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발언이다. 업적으로 내세웠을 때의 당당함과 비교하면 궁색해 보였다. 지금 미국에서는 “누구의 잘못으로 이라크가 붕괴했는가”라는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그리고 대다수 사람은 오바마 대통령을 가리킨다. 기자들의 매서운 질문만큼이나 최초의 흑인 대통령과 함께 외교정책을 다듬던 관료들까지 오바마 정부의 외교정책 실패를 직접 거론하고 있다.

힐러리 전 국무장관도 오바마 비난에 가세

미국 정보기관의 핵심 부서인 국방정보국(DIA)의 마이클 플린 전 국장은 8월7일 백악관과의 불협화음 끝에 퇴임식을 가졌다. 퇴임 직전에는 한 안보 포럼에 참석해 “미국은 지난 13년간 두 개의 전쟁을 치르며 엄청난 달러를 쏟아부었지만 더 안전해지지 못했다. 오히려 ‘알카에다’보다 더 급진적인 세력과 마주해 더 위험해졌다고 볼 수 있다”고 호되게 비판하며 오바마 정부의 철군 정책에 낙제점을 매겼다.

그나마 플린 전 국장 발언은 퇴임을 앞둔 화풀이 성격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그와 다르다. 오바마 1기 정부에서 직접 외교를 책임졌던 그는 8월10일 발행된 ‘애틀랜틱(Atlantic)’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의 외교정책을 부정했다. 오바마 정부의 외교정책을 상징하는 문구는 ‘멍청한 짓은 하지 마라(Don’t Do Stupid Stuff)’다.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 회의나 사석에서 외교 원칙을 설명하며 이 문구를 종종 사용한다. 부시 행정부의 ‘멍청한 전쟁’과 비교하며 차이점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이걸 두고 클린턴 전 장관이 “(그 말은) 위대한 국가의 외교 원칙으로는 가치가 없다”고 비판하며 일이 커졌다. 오바마의 철학을 부정하자 대다수 언론은 이를 두고 ‘오바마와의 거리 두기’로 해석했다. 현 정부는 역대 최저 수준인 40%대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최근 워싱턴 정가에서는 이라크라는 주제와 관련해 흉흉한 소문이 많이 떠돈다. 7월 말 백악관에서는 대통령과 상·하원 중진들이 회동을 가졌다.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는 이내 ‘이라크’ 때문에 깨져버렸다. 밥 코커 상원 외교위원회 간사(공화당)가 “시리아 반군을 조기에 무장시켰으면 이라크 상황이 지금보다 나았을 것”이라고 비판하자 오바마 대통령이 ‘헛소리(horseshit)’라는 비속어를 써가며 크게 화를 냈다는 이야기가 소문으로 나돌았다.

소문 진화에 진땀을 빼던 백악관이 클린턴 전 장관이라는 악재를 만났으니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터다. ‘오바마의 남자’로 불리는 데이비드 액설로드 전 백악관 고문은 “멍청한 짓은 오히려 이라크 전쟁이었다”고 힐러리를 비판하며 민주당 내부에서 파열음이 들렸다. 8월12일 클린턴 전 장관이 직접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대통령의 리더십을 공격한 게 아니다”고 해명했지만 백악관은 이에 관해 공식적인 반응을 일절 보이지 않을 만큼 기분이 상했다. 

“오바마 정부가 내건 국제 문제 불개입주의는 결국 신고립주의를 초래할 것이며 미국은 오히려 더욱 많은 외교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라는 보수 평론가들의 예상은 점점 맞아 들어가고 있다. 네오콘은 “부시 정부의 승리를 오바마가 날려먹었다”며 백악관을 곤란하게 하려 한다.

“최소 1만5000여 명의 지상군 투입 필요”

반면 백악관은 헛소리라고 반격 중이다. 익명의 백악관 고위 관료는 “우리의 외교정책은 절대로 고립주의가 아니다. 굳이 표현한다면 ‘다자적 개입주의’ 혹은 ‘제한적 개입주의’”라고 주장했다. 모든 국제 갈등을 미국 혼자서 짊어질 수 없다는 게 백악관의 인식이다. 이들의 분석에는 “이라크를 파괴한 것은 네오콘이며 우리는 그들의 뒤처리를 하고 있다”는 자조가 깔려 있다. 과거 부시 행정부는 중동에 민주주의를 수출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2005년 2기 정부 취임사에서 부시 전 대통령은 ‘부시 독트린’을 표명하면서 “미국의 자유 실현은 타국의 자유 실현에 달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국은 무기나 장비 수출은 잘했어도 민주주의 수출에는 매우 서툴렀다. 

4500명에 달하는 사망자, 3만2000여 명의 부상자 그리고 8000억 달러의 세금을 미국은 이라크에 쏟아부었다. 이라크 전쟁에 소모된 것들이 되풀이되는 것을 미국 유권자들은 원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직접 TV에 등장해 “지상군 파견은 없다”고 천명한 이유다. 반면 전문가들은 반대로 본다. 피터 만수르 오하이오 대학 교수는 “이라크 북부 산악지역에 고립된 4만여 명의 소수 종파 인도 활동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최소 1만?1만5000명 규모의 지상군 투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약속을 지키기 어려운 이라크의 현실이 오바마 대통령을 또 한 번 자기모순에 빠뜨릴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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