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시대를 증언하다] 치약 튜브에 빨간색 넣으면 빨갱이?
  • 정준모│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 승인 2014.08.20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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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 둘러싼 정치적 금기와 상업적 욕망…공산품 시대의 개막

비누·치약·샴푸의 자체 생산으로 한국 사회에는 현대식 위생 개념이 대량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는 공산품의 포장과 용기를 통해 먼저 산업화를 이룬 서양식 산업미술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빨랫비누가 양잿물을 대체하게 된 것은 1944년부터다. 고(故) 유한섭이 무궁화 문양이 찍힌 빨랫비누를 만들어 거저 주기도 하고 팔기도 하다가, 1947년 무궁화유지를 설립하고 서소문공장에서 공식적으로 ‘무궁화비누’를 제조·판매하면서 생필품이 되었다. 이후 1950년 동산유지, 1954년 애경유지가 설립되면서 비누로 빨래를 하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 멋쟁이 모던 걸, 모던 보이의 전유물로 귀하디귀했던 비누는 1956년 애경유지가 세숫비누인 ‘미향’을 생산하면서부터 대중화됐다. 다음 해에는 빨랫비누 ‘백합’을 생산했다. 특히 ‘미향’은 세숫비누가 귀하던 시절이라 인기가 대단해 당시 한 달에 100만장을 판매할 정도였다.

락희화학은 1947년부터 ‘동동구리무’로 불리던 ‘럭키크림’을 제조·판매한 화장품·생활용품 전문 기업이었다. 검은색 용기에 흰색으로 미국의 영화배우 디나 더빈(Deanna Durbin, 1921~2013년)의 얼굴과 제품명을 새긴 디자인은 단순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느낌을 풍겨 다른 회사 것보다 값이 두 배나 비쌌지만 인기가 좋았다. 하지만 이런 인기 덕에 크림을 담은 검은 용기가 깨지거나 금이 간 용기에 크림을 담은 불량품이 버젓이 나돌았다. 때문에 가볍고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1952년 플라스틱 제품도 생산하기 시작했다. 치약도 귀해 대개는 양키시장에서 ‘야메’ 치약을 구해 썼다. 일반인이 치약 양치질을 하게 된 것은 1954년의 일이다. 머리빗, 비눗갑, 칫솔 등을 판매하던 락희화학공업사는 칫솔을 팔기 위해 알루미늄 튜브형 치약 생산을 서둘러 국산화에 성공했다. 1955년부터는 ‘미국 기술, 미국 처방, 독일 기계로 만들어 미제와 똑같은 럭키치약’이란 광고를 통해 3년 만에 미제 ‘콜게이트’ 치약을 제압한다.

1966년에는 합성세제인 가루비누가 탄생한다. 락희화학이 ‘하이타이’와 ‘뉴힛트’를 내놓자 애경은 ‘크린업’과 함께 중성세제인 ‘써니’를 내놓았다. 애경은 그해 주방세제 ‘트리오’를 출시해 부엌을 장악한다. 주방세제의 효시인 트리오는 채소·과일·접시 등 세 가지를 모두 닦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쓰였다. 첫선을 보인 트리오는 파란색 계열의 남색 용기에 흰색 뚜껑이었다. 더운 물에 그릇을 담그고 짚이나 모래로 문질러 설거지를 하던 시절, 기름기를 깨끗이 씻어주고 번쩍번쩍 윤까지 내주는 트리오는 주부들 사이에 선풍을 일으켰다. 전반적으로 위생 상태가 나빴던 시절 트리오가 채소나 과일에 묻은 기생충 알을 없앤다는 점이 알려져 당시 한국기생충박멸협회의 추천품으로 5년간 선정되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1980년에 들어서면서 노란 용기에 빨간 뚜껑으로 변신해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다. 브랜드 이미지를 변함없이 지켜가면서 선발 주자로서의 자부심을 지키고 있다. 

락희는 1972년에야 ‘퐁퐁’을 발매한다. 퐁퐁은 트리오와 정반대로 흰색 용기에 청색 뚜껑을 달았다. ‘퐁퐁’이란 이름은 세제 거품이 솟아나는 소리에서 빌려왔다. 쉬우면서도 경쾌한 어감은 지금도 ‘브랜드 네이밍’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다. 이후 대한민국 주방의 개수대에는 흰색 또는 파란색, 노란색이 빠지지 않게 됐다.

1960년대만 해도 머리는 감는 것이 아니라 빠는 것이었다. 그래서 머리는 빨랫비누로 감았다. 샴푸는 귀한 사치품으로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레브론이 최고였다. 하지만 1967년 락희화학이 비누가 아닌 계면활성제를 사용한 국내 최초의 샴푸 ‘크림샴푸’를 내놓으면서 생활필수품이 되었다. 당시 크림샴푸 용기는 베이지색 플라스틱 통으로 중성의 부드러운 이미지를 통해 서양 영화에서나 보던 ‘홈 스위트 홈’의 시대를 열어간다.  

ⓒ 정준모 제공
1965년 ‘우유비누’가 나오면서 흰색 비누 시대가 열렸다. 이후 다이알비누·인삼비누 등이 출시되면서 다양한 색깔의 제품이 나왔지만 역시 세숫비누는 흰색이 대세였다. 흰색이 주는 순결·순수함·깨끗함 등의 이미지가 비누의 기능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숫비누의 대세는 빨간색의 타원형으로 천광유지에서 만든 ‘이뿐이 비누’였다. 고급 비누인 밍크비누가 흰색이었던 데 반해 ‘말표 이뿐이 비누’는 빨간색을 고수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다른 비누에 밀려 공중목욕탕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비누로, 나중에는 고운 흙과 함께 그릇을 닦는 비누로 전락했지만 1960년대 이뿐이 비누로 세수하면 예뻐진다고 해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이뿐이 비누는 속이 보이는 비닐에 3개씩 넣어 팔았는데,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꽤 인기 있는 명절 선물로 통했다. 초기의 비누는 여성들의 보습 효과를 위해 벌꿀을 가미했다는 문구를 넣었으며 ‘아름다움’의 상징인 빨간 장미꽃을 포장재에 꼭 새겼고 향이 흩날리듯 꽃잎들을 새겨 넣었다.

이뿐이 비누는 빨간색을 고집했다. 빨간색은 생물 특히 식물의 꽃 빛깔을 대표적으로 나타내는 색이기 때문에 ‘꽃은 예쁘다’는 등식과 여전히 여성을 꽃으로 여기던 전근대적인 사고에 바탕을 둔 것으로 짐작된다. 세숫비누 또는 미용비누라고 불리던 근대적인 일상용품에 여전히 ‘여성은 꽃’이라는 등식이 스스럼없이 받아들여지던 시대상의 반영이라 할 것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빨간색의 팔자다. 6·25전쟁 이후 더더욱 강화된 반공정책으로 빨간색은 붉은 군대의 상징으로서 ‘공산주의자’를 일컫는 대명사이자 무언 중 금기시하는 색이었다. 하지만 빨강은 눈에 잘 띄는 만큼 주목성이 가장 큰 색이다. 상품 디자이너는 빨간색이 자신의 상품을 소비자의 눈에 더 잘 띄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빨간색의 효용성을 포기하지 않고 국민 모두가 사용하는 생활필수품에 빨간색을 요령껏 사용하기 시작했다. 락희치약은 흰색 튜브에 붉은색 타원을 넣고 그 안에 다시 흰 글씨로 럭키치약이라는 상품명을 새겨 넣어 전체적으로는 흰 느낌을 주면서도 붉은색을 적절하게 활용했다. 나중에 빨간 뚜껑을 씌운 트리오는 빨간색을 최소한으로 사용하면서도 주목성을 높이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크린업의 붉은색 줄무늬도 그런 색채 마케팅의 한 예다. 럭키 하이타이도 빨간 바탕의 포장용 박스에 노란 장미를 새겨 넣고 하단에 띠를 둘러 시각적으로 붉은색을 중화시키는 방식으로 금기를 뛰어넘었다. 하지만 락희화학공업사의 심벌은 붉은색 타원에 럭키라는 글자를 새겨 넣은 ‘빨갱이’ 로고다. 빨강은 금기의 색이었지만 장사꾼들의 욕망은 정치적인 금기 이상이었다. 이것이 빨간색의 힘이다. 이런 금기의 색 빨강은 2002년 붉은 악마를 거쳐 2012년 새누리당의 상징색이 되면서 붉은색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진정한 해금을 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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