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검찰, 600억원대 면세담배 유출 미군부대 압수수색
  • 조해수·엄민우·김지영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4.08.23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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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지난 6월 말께 군납용 면세 담배 불법 유출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사상 처음으로 치외법권 지역인 용산 미군부대를 비롯한 전국의 미군부대를 전격 압수수색한 사실이 시사저널 취재 결과 단독 확인됐다. 검찰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주한미군에 면세 담배를 독점 유통하고 있는 ‘상훈유통’에 대한 압수수색도 벌였다. 미군부대 면세 담배 불법 유통은 매년 끊이지 않고 발생했지만, 대부분 도·소매업자의 개인적인 비리 선에서 수사가 마무리됐다. 그러나 이번 검찰 수사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면세 담배 불법 유통 카르텔 구조에까지 접근하려는 듯하다. 불법 유출에 조직적 커넥션이 있는지, 그 파장이 어디까지 확산될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연합뉴스

무더위의 시작을 알리는 6월 말과 7월 초, 미군기지가 있는 서울 용산 주변에서 이상한 소문이 들려왔다. “검찰이 미군기지 내에 들이닥쳤다”는 것이다. 치외법권 지역인 미군기지 내에 대한민국 검찰이 들어간다는 게 가능할까. 만약 들어갔다면 뭔가 중대한 사건이 있었을 텐데, 과연 그게 무엇일까. 좀 더 구체적인 얘기들이 확인되지 않은 루머와 섞여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전에는 삼각지 주변 식당과 당구장에 면세 담배가 있었는데, 이젠 아예 씨가 말랐다더라.” “단속이 심해 일반 유통이 어려워진 면세 담배가 외국인 카지노 등으로 흘러들어간다더라.” “요즘 미군부대 들어가도 피엑스에서 면세 담배 사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미군기지 내에서 담배 파는 한국인 소매업자들이 줄줄이 조사를 받았다더라.”      

미군부대에 납품되는 면세 담배와 관련해 뭔가 긴박한 움직임이 있는 듯했다. 사정기관 관계자들 및 미군기지 내 관계자들과의 접촉을 통해, 용산 주변에서 떠돌던 ‘소문’은 서서히 그 실체를 드러냈다. 시사저널 취재진은 한 달여 동안 소문의 진원지를 끈질기게 추적하던 중 지난 7월 말, 검찰이 용산 미군부대를 전격 압수수색한 사실을 단독 확인했다. 그 시기는 6월 말께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군납용 면세 담배 불법 유출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사상 처음으로 대한민국 검찰이 치외법권 지역에 들어간 것이다.

6월 말, 전국 미군부대 동시다발적 ‘압수수색’

취재가 본격화되면서 계속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졌다. 인천지검 외사부가 인천본부세관과 함께 미군 범죄수사대(CID)의 허가를 받아 지난 6월 말부터 서울 용산, 경기 의정부·평택·동두천, 대구, 부산, 전북 군산 등지의 미군부대를 동시다발적으로 압수수색했다는 것이다. 사정기관에 따르면, 압수수색 당시 시중에 불법 유출된 면세 담배 규모가 약 600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한미군 기지 내에서 담배를 판매하고 있는 전국의 소매업자들이 모두 소환조사를 받았고, 주한미군 한국인노조 일부 지부에 노조 명부와 계좌 등을 요청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또한 검찰은 미군부대에 대한 전격적인 압수수색 외에도, 현재 주한미군에 면세 담배를 독점 유통하고 있는 ‘상훈유통’의 본사와 전국 지부에 대한 압수수색도 함께 진행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수사 당국에서 미군부대 면세 담배의 유통부터 판매까지 전 과정을 들여다봤다는 얘기다. 매년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는 미군부대 면세 담배 불법 유출 사건을 발본색원하고자 검찰이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한 것이다. 다만 수사 성격상, 그리고 미군부대가 끼어 있는 민감한 부분 등으로 인해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 채 은밀하게 진행되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4월16일 서울 마포경찰서 소회의실에서 열린 ‘미군 면세 담배 불법 유통 조직 검거 관련 브리핑’에서 불법 유통된 면세 담배가 공개되고 있다 © 뉴시스
“부대에서 봉고차로 수천 갑씩 싣고 나온다”

인천본부세관은 지난해부터 국산 면세 담배의 밀수 등과 관련해 수개월에 걸쳐 조사를 했다. 이 과정에서 미군부대는 물론 담배 제조사 생산 공장 등 몇 군데도 조사를 받았다. 수개월에 걸친 조사에서 면세 담배의 불법 유통 및 미군 면세 담배 유통에 조직적 개입 정황 등이 발견됐고, 이후 세관은 관련 내용을 수사권이 있는 검찰에 넘겨 본격 수사가 이뤄지게 됐다. 이에 따라 인천지검은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면세 담배를 뿌리 뽑기 위해 선용품(외항선원용)을 비롯해 주한미군 군납용 면세 담배를 주요 타깃으로 대대적인 조사에 착수했다는 게 사정기관 관계자의 전언이다. 실제 인천지검과 인천본부세관은 이미 지난 4월께 350억원 상당의 외항선원용 담배를 전용한 사실을 적발하기도 했다. 이번 미군부대에 대한 전격적인 압수수색은 이러한 수사의 일환으로 보인다.

미군 전용 면세 담배는 주한 미군부대 내에서만 거래가 가능하고, 외부 판매는 법으로 금하고 있다. 군납용 담배는 일부 세금이 면제돼 시중에 유통되는 담배보다 가격이 훨씬 싸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500원짜리 담배 한 갑에 붙는 세금은 61.9%로, 여기엔 담배소비세(641원), 지방교육세(320.5원), 국민건강증진기금(354원), 폐기물 부담금(7원)과 10%의 부가가치세가 포함된다. 주한미군 내의 한 담배 판매업자에 따르면, 시중에서 2500원에 유통되는 담배는 군납용일 경우 대략 1500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군납용을 영외에서 유통시킬 경우 엄청난 마진을 남길 수 있는 것이다.

미군부대 내에서 국산 면세 담배는 일반적으로 스낵바에서 판매되고 있다. 우리가 흔히 피엑스(PX)라고 부르는 곳이다. 스낵바 운영권은 부대장으로부터 허가를 받아 취득하는데, 담배에 대한 판매권은 상훈유통으로부터 따로 받아야만 가능하다. 스낵바 운영자가 상훈유통에 담배 판매권을 신청하면, 상훈유통이 허가를 해주고 이를 국세청에 신고하는 구조다. 주한미군 내에서 스낵바를 운영하고 있는 한 판매업자는 “한국인이 미군기지에서 갖는 혜택이라곤 담배 하나밖에 없다. 단 1달러짜리도 미국 제품을 구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스낵바도 사실 돈이 안 된다. 스낵바를 운영하는 이유도 담배 하나 보고 하는 것이다. 담배가 곧 돈이다”고 말했다.

면세 담배는 불법 유출을 막기 위해 판매 시 매우 꼼꼼한 절차를 거친다. 판매업자는 “(면세) 담배는 1인당 한 달에 3보루 정도 살 수 있다. 담배 살 때 반드시 사인을 해야 한다. 물론 ‘형 것을 산다’ ‘아버지 것을 산다’는 식으로 많게는 1인당 5보루씩 사가기도 한다. (개인으로는) 많이 못 사 가는데 어떻게 블랙마켓에 팔 수 있겠나. 사가는 사람들은 정말 자신이 피우는 사람들이다”라고 말했다.

면세 담배의 유출 규모는 해가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다.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실이 공개한 관세청 면세 담배 단속 실적에 따르면, 2011년 40여 억원에 그쳤던 것이 2013년 430여 억원으로 10배가량 뛰었고, 올해는 6월까지만 적발된 규모가 이미 900억원을 넘어섰다.

그렇다면 면세 담배가 미군 내에서 불법 유출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지난해 한 차례 미군부대에서 불법 유출된 면세 담배를 적발한 적이 있는 양영구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팀장은 “스낵바 주인이 상훈유통에 (담배) 주문을 한다. 그러면 상훈유통이 부대에 납품을 한다. 납품 담배는 우편으로 오기도 하고, 직접 배달 오기도 한다. 이렇게 받은 물건을 블랙마켓 준도매상들이 직접 스낵바에 봉고차를 몰고 들어가서 박스째 수천 갑씩 싣고 나온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들은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차량은 물품 점검을 꼼꼼히 하지 않는다는 점을 노려 담배 판매 장부를 조작하는 수법을 쓴다. 미군부대에 출입할 때도 스낵바에 납품하러 왔다는 식으로 들어간다. 그나마 담배 매매 시 사인을 해야만 하기 때문에, 사인 명부에 여러 차례에 걸쳐 총 400만원 이상 구입한 사람들 위주로 수사를 진행해 검거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미군부대에서 유출된 면세 담배는 도매상을 통해 함바집, 인근 술집·다방·당구장이나 길거리 좌판에 뿌려진다. 서울·인천·동두천 등지의 깡통시장에서는 손쉽게 면세 담배를 구할 수 있다. 시사저널은 실제 면세 담배의 불법 유통 경로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서울 지역 내에서 면세 담배를 판매하는 소매상은 물론 도매상까지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관련 기사 "'큰 업자'들이 컨테이너에 보관하다 남대문에 넘겨"). 경찰 관계자는 “워낙 방대한 양이 유출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요즘은 수출품으로 위장해 중국 등으로 대거 빠져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검찰이 미군부대 담배 유통권을 독점하고 있는 상훈유통에 대해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나섰다는 점이다. 그동안 미군부대 면세 담배 불법 유통은 매년 끊이지 않고 발생했다. 그러나 대부분 소매 판매업자의 개인 비리 선에서 수사가 마무리됐다. 면세 담배가 불법 유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까지는 들여다보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수사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분위기다. 소매업자를 넘어 유통권을 쥐고 있는 상훈유통까지 수사선상에 올랐다는 것은 면세 담배 유출의 근본적인 문제까지 파헤치겠다는 검찰의 의지로 해석된다.

상훈유통은 1994년에 설립된 대한민국상이군경회 산하 단체로 별도 제조된 국산 담배를 외국군용으로 미군 및 그 가족, 종사자에게 판매하는 수출 알선업을 주요 사업으로 하고 있다. KT&G에서 생산된 담배를 받아 주한미군 내 판매업자에게 보내주는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주한미군 부대에서 미군이 출국 시 사용하던 개인품을 양수받아 통관 판매 및 수리 서비스업을 하는 일도 맡고 있다. 지난해 매출 규모는 400억원을 넘어섰고, 영업이익은 20억원 수준이다.

지금까지 적발된 미군부대 면세 담배 유출 사건에서 상훈유통이 드러난 적은 없다. 대부분 도·소매업자 단속에 그쳤다. 오히려 상훈유통은 면세 담배 불법 유통을 막기 위해 판매업자를 대상으로 불법 판매 근절 교육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견상 상훈유통이 면세 담배 불법 유출과 관련해 압수수색을 당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상훈유통이 압수수색을 당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 상훈유통 관계자는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해 구체적으로 아는 사항이 없을 뿐 아니라 당사 사업 운영상 정보 보호 문제, 유관 기관과의 관계 등 제반 여건상 현재로서는 어떤 답변도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상이군경회 역시 “상훈유통과 관계된 일은 정확히 알지 못한다”며 즉답을 피했다.

검찰 “현재 수사 중”…압수수색 등 부인 안 해

검찰은 불법 유통 실태에 대해 어느 정도나 파악하고 있을까. 시사저널은 8월22일, 그동안 취재해온 내용들을 점검하기 위해 인천지검에 확인을 요청했다. 인천지검 고위 관계자는 “수사 중인 사건이기 때문에 확인해줄 수 없다”면서도 미군부대나 상훈유통에 대한 전국적 압수수색 사실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았다. 국세청 관계자 역시 “검찰이 미군부대와 상훈유통에 대해 압수수색을 단행한 것은 사실”이라며 “좀 더 확실한 물증을 잡기 위해 수사를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정부는 경제 활성화 방안으로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을 내걸었다. 관세청이 지난 한 해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추징한 세액은 2200억원이 넘는데, 이 중 담배가 437억원으로 밀수입 주요 품목에서 2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관세청은 국산 면세 담배의 불법 유통 규모가 연간 600억원을 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역시 추산일 뿐 면세 담배가 실제 시중에 얼마나 유통되고 있는지 파악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검찰의 이번 미군부대 담배 유출 수사는 면세 담배 블랙마켓을 혁파할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면세 담배 유출과 관련해 조직적 커넥션이 있는지, 있다면 어느 선까지 개입돼 있는지가 검찰 수사의 핵심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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