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리 검사’는 개인의 일탈 행위가 아니다
  •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 승인 2014.08.28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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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창 사태로 본 검찰의 자화상…특권의식과 자만심서 비롯

경찰의 수사 결과를 인정한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의 공연음란행위가 검찰 조직과 상관없는 개인의 일탈 행위일 뿐이라며 가벼이 넘길 수 있을까. 검사 개인의 도덕성 문제로 치부해버릴 수 있을까. 상식을 뛰어넘고 상상을 초월하는 황당한 행태여서 우발적인 해프닝으로 볼 여지도 있는 것 같지만, 단언컨대 아니다. 그렇게 보이도록 법무부가 너무나도 발 빠르게 사표를 수리했지만, 꼬리를 자른다고 몸통 조직이 비난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검찰 내부 문화의 비정상, 생생한 증거로

고위직 검사의 여기자 성추행 사건, 별장 성접대 의혹 사건, 신임 검사의 피의자와의 성관계 사건 등등 자신들이 맡았던 사건의 피의자와 다를 바 없는 온갖 비리와 추문·스캔들에 연루된 검사들의 행태가 끊이지 않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법무부와 검찰이 믿고 싶은 대로 개인적 일탈일 뿐이라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그러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잇따라 터지는 비리와 추문에는 개인의 일탈이거나 우연한 사고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분명 있다. 그것은 바로 일부 검사들의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권력의식과 자만심이다. 그것이 몸에 배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표출된 것이다. 어느 누구도 우리를 건드릴 수 없다는 특권의식이 이런 일탈 행위를 부추기는 것이다.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이 8월19일 제주지검장 관사를 나오다 취재진에게 질문을 받고 있다. 공연음란 혐의를 받자 사임한 김 전 지검장은 이날 관사에 짐을 싸러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 연합뉴스
지난 이명박(MB) 정부 5년 내내 온갖 비리와 권력 남용이 끊이지 않아 국민의 불신이 극에 달했지만 늘 그랬던 것처럼 검찰 조직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조직이 권력화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견제받지 않는 독점 권력을 행사하면서 국민의 개혁 요구를 뭉개고 더욱 공고해진 것이다. 지난 대선 기간 박근혜 대통령 후보는 국민들의 불신에 부닥쳐 쓰러질 듯 위태로운 검찰을 바로 세우겠다며 ‘특별감찰관 제도와 상설특검제 도입’ ‘대검 중수부 폐지’ ‘검찰 수사권 대폭 축소’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박근혜정부의 검찰은 MB 정부 5년의 판박이이자 되돌이표다. 검찰 구성원들의 안이한 특권의식이 비정상을 정상으로 보는 착시를 갖게 했다. 정치권력도 자신들을 위해 편파적으로 움직여주는 검찰을 정상으로 보면서 오히려 검찰 개혁 주장을 비정상으로 여겼다.

그러나 정치적 편파성뿐만 아니라 검찰의 직업윤리도 정상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MB 정부 5년간 검찰 윤리의 실종을 목도했다. 법·규범 준수와 청렴성에서 누구보다도 높은 수준을 유지해야 할 검찰총장이나 법무부장관조차 증여세 탈루, 위장 전입, 다운계약서 작성 등 많은 비리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 ‘벤츠 여검사’ ‘성추문 검사’ 등 각종 비리 검사들이 끊이지 않으면서 검찰 내부 문화의 비정상을 생생한 증거로 보여주었다. 김진태 검찰총장이 취임사에서 “당당한 검찰로 거듭나기 위해 제일 먼저 검찰공무원다운 도덕성과 기강을 보여주자”고 강조했지만 비리 검사에 대한 징계가 물러터지거나 불공평하다 보니 일벌백계의 효과를 노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부 개혁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기간에 약속한 특별감찰관 제도와 상설특검제가 제대로 도입되었다면 비정상의 검찰이 정상화의 길로 들어섰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통령의 공약은 지극히 형식적으로 지켜졌다. 여야 간 1년여의 지루한 줄다리기 끝에 지난 2월27일 국회에서 특별감찰관제도와 제도특검의 형식을 띤 상설특검 도입을 내용으로 한 법안이 통과되었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실질 면에서 검찰 개혁의 본래 취지를 살릴 수 없는 ‘무늬만 개혁’이다. 특별감찰관 제도는 애초 대통령이 약속한 바와 다르게 특검과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 상설특검제의 내용은 더욱 실망스럽다. 국민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상설특검이 상시적으로 집권층의 권력 남용과 부패를 감시하고 처벌함으로써 법치주의가 실현되는 민주국가로 나아가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나아가 현재 독점 권력의 자만과 부패에 빠져 있는 검찰을 각성시킬 수 있는 기구특검을 원했던 것이다.

수사권·기소권 독점 구조 반드시 고쳐야

상설특검제도의 본질은 집권 세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된 특별 수사기구를 두어 독립적이고 상시적으로 수사하고 기소할 수 있도록 하자는 데 있다. 그러나 도입된 제도특검은 기존의 사안별 특검과 다를 바 없이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국회가 협의해 특검 도입을 의결하는 비상설 특검이다. 특히 특검 발동을 위한 국회 의결 요건을 재적 의원 과반수로 정해 여전히 집권 세력의 동의가 없으면 특검이 활동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상황에서는 의결 정족수를 채우기 쉽지 않다. 특히 검찰 수사를 옹호할 가능성이 농후한 집권 여당이 다수당이면 특검 발동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어느 당이든 일단 다수당이 되면 검찰이 정상으로 보이고 검찰 수사가 공정해 보이게 마련이다. 정치적 중립성도 유지하고 있으며 편파적이지 않다고 착각한다. 그런 국회에서 특별검사를 임명하기 위한 절차는 험난하다. 그래서 집권 여당은 실효성 없는 법률 제정으로 생색만 내면서 검찰 개혁을 퉁쳤다는 비난을 받는 것이다. 비정상의 검찰을 정상화하려면 국민에게 위임받은 검찰권이 공정하게 행사될 수 있도록 견제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당면 과제다. 검찰의 수사 및 기소권 독점 구조는 어떤 형태로든 수술이 불가피하다. 중수부를 폐지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상설특검이든 공직자비리수사처든 권력형 비리 수사 전담 기구를 도입해야 한다. 검찰뿐만 아니라 임명권자인 대통령으로부터 독립된 특별 수사기구를 설치해 판·검사, 정치인 및 고위 공직자가 관련된 권력형 비리와 부정부패 사건에 대해 수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박근혜정부에서도 희망은 없어 보인다. 검찰 출신 인사를 국무총리와 법무부장관, 청와대 비서실장과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임명한 것을 보면 과연 검찰을 개혁할 의지가 있는 것인지, 학연과 지연, 선후배로 얽혀 있는 검찰 출신 인사들을 곁에 두고 검찰을 정상화시킬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박근혜정부 출범 후 1년 5개월 만에 9명의 검사가 청와대로 자리를 옮겼다. 최근 1명이 청와대 근무를 위해 검사직을 사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검찰의 중립성과 독립성 확보를 위해 검사의 외부 기관 파견 등을 제한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지만 법이 금지하고 있는 청와대 파견 금지의 취지를 왜곡하면서 오히려 편법으로 확대 운용하고 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일선 검찰청 이상의 진용을 갖추고 있는 모양새다. 박근혜정부에서도 청와대와 검찰의 관계가 어떠할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박근혜정부가 개혁의 기치로 내세운 ‘비정상의 정상화’는 검찰 앞에선 힘 못 쓰고 맥 못 추는 국정 어젠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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