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병사는 곧 터질 병영의 폭탄”
  • 김종대│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
  • 승인 2014.08.28 11:0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구타 유발자 되거나 사고 칠 수도 개인 따돌리는 집단 공모 뿌리 뽑아야

전방 군단에 설치된 ‘그린캠프’라는 수용시설이 있다. 여기에 심각한 수준의 관심병사로 분류돼 수용된 이들은 일종의 ‘경계인’들이다. 현역 복무자로 분류돼 군에 오기는 했지만, 병영의 집단생활에는 적응이 안 되는 병사들이다. 애매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경계선 위의 사람들이자 가장 슬픈 우리 20대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심신 장애로 군에 오지 못하는 장애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남들과 같이 경쟁에 뛰어들 수 있는 정상인도 아니다. 육군의 경우 2013년 총 397명의 병사가 그린캠프에 입소했는데, 이 중 187명이 재입소 인원이다. 적어도 절반 정도는 치료를 해도 또다시 부적응자가 된다는 뜻이다. 필자가 방문한 한 군단의 캠프는 원래 2주간 웃음 치료, 체력단련, 상황 심리극, 상담치료로 개인의 자존감을 회복해주는 것을 목적으로 운용됐다. 그 교육이 끝나면 다시 자대로 돌아가거나 현역 적합도 심사를 통해 제대시켜야 한다. 그러나 2주간 치료만으로 자대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절차도 복잡하고 심사도 까다로운 현역 부적합자로 판정되는 경우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즉 이도 저도 아닌 것이다.

지난 8월22일 서울역 여행장병라운지에 ‘국방 헬프콜’ 안내가 부착되어 있다. 국방부는 군내 자살 예방과 병영생활 고충 상담, 군 관련 범죄 신고 접수를 통합하는 국방 헬프콜(SOS) 1303번을 운영하고 있다. ⓒ 시사저널 구윤성
그린캠프,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역할

한 지휘관은 그 원리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런 중증 관심병사는 이미 도화선이 타들어가 곧 터질 병영의 폭탄이다. 다른 병사들이 문제가 있는 그 병사를 사랑으로 감싸주고 돌봐주어야 하는데, 그럴 여유가 없으니 이들은 구타나 가혹행위를 유발하는 ‘구타 유발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또는 이에 반발해 사고를 칠 수도 있다. 그런 폭탄에 붙은 불을 끄고 자대에 되돌려주는 것이 그린캠프인데, 비록 지금은 불이 꺼졌지만 폭탄 자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정말 위험한 폭탄은 부대에 되돌려주지 못하고 사회로 내보낸다. 그런데 현역 부적합자로 처리하는 건 군단이 아니라 군사령부 소관이다. 꾀병을 부려 군에서 제대하려는 가짜 관심병사를 가려내기 위해 심사를 까다롭게 한다. 각종 진료 기록, 상담 기록 등 많은 서류가 요구된다. 이걸 제대로 갖추기란 쉽지 않다. 결국 자대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제대하지도 못하다 보니 그린캠프에 11개월 입소했다가 여기서 만기로 전역하는 경우도 있다. 군이 활용하지 못하고 장시간 캠프에 머물러 있는 병사를 관리하느라 시설과 인력을 배치하는 건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실상을 설명하는 이 지휘관의 해결책은 이렇다. 꾀병을 부리는 관심병사가 20% 섞여 있더라도 군이 “속아주자”는 것이다. 5명 중 1명꼴로 멀쩡한 병사가 현역 복무에서 면탈을 하더라도 차라리 그게 더 다수를 위한 길이라고 본다. 그 대신 정신과 의사, 임상 심리사를 군에 더 투입해 관심병사를 더 많이 수용하도록 그린캠프를 확충하고 정말 문제가 있는 병사들을 솎아낼 수 있는 전문 역량을 구비하자는 것이다. 때마침 8월에 출범한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도 징병검사와 자대 배치로 이어지는 징병 과정에 의사와 심리사를 추가 투입해 관심병사를 조기에 식별해 병영에서 퇴출시키는 데 혁신안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의문이 있다. 최근 병영에서 터져 나온 주요 사건을 보면 구타와 가혹행위, 집단 따돌림을 자행하는 가해자는 한 명이 아니다. 여러 명이 공모해 개인을 따돌리거나 폭행하는 사건이 대부분이다. 관심병사는 한 명이라 하더라도 그 한 명을 사적으로 처벌하는 집단 전체의 조직적 공모를 어떻게 뿌리 뽑을 것인가. 여기에는 “맞을 짓을 하는”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군의 집단 정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이런 집단 정서를 당연시하는 군대는 전쟁이 나면 다쳐서 낙오된 전우를 버리고 간다. 우리가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감동하는 이유는 집단이 개인을 배려한다는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 군은 병영에서 낙오되는 병사들을 돌볼 여유가 없으니 아예 낙오될 가능성이 큰 병사들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개혁안을 구상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집단이 아닌 개인에게 책임이 있다는 관점이다.

병영문화 혁신, 또 다른 위기 될 수도

사실 우리 군의 개인 따돌리기는 오래된 습관이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1만4000명의 공작원을 북한에 파견해 그중 7000명이 사망했는데 군은 이를 은폐했고,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을 불문하고 보상하거나 예우하지 않았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 수만 명의 국군 포로가 있었지만 우리 정부는 이들을 송환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국군 포로라는 말 자체도 부정했다. 함께 싸운 전우에 대한 망각과 배신, 사람이 맞아 죽어도 자살로 포장해버리는 조작과 왜곡은 한국 병영에서 그리 새로울 것도 없는 관행이었다. 군에 다녀온 우리 사회의 기성세대조차 그런 걸 고발해야 된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 집단적 공모의식, 또는 도덕적 무감각이 오랫동안 학습되고 내면화되어 있다.

윤 일병 사망 사건이 공개되고 나서 한 방송사가 군 생활 당시의 구타와 가혹행위 사례를 접수했지만 수백여 건의 제보는 “어디서 그런 걸 들었다”는 식의 ‘카더라’ 제보가 대부분이고 자신이 직접 목격했거나 당한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분명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례가 있을 터인데 왜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하길 꺼리는 것일까. 여기에는 군 생활 당시에 부당한 일을 목격하고도 자신도 침묵했다는 걸 스스로 정당화하면서 살아온 인생이 있다. 이제까지 침묵하고 있다가 그 부당한 사건을 고발하면 그동안 침묵해왔던 자신에 대한 공격이 되기 때문에 양심의 목소리를 눌러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 방송사의 사례 수집은 실패작이 됐다. 더불어 우리의 집단 도덕도 복원되지 않았다. 

우리 병영에서 관심병사라는 존재 역시 배제하고 차별해야 할 수용소의 필요성을 일깨우는 존재다. 국방부가 향후 심리사와 정신과 의사를 군에 대거 투입하려는 움직임 역시 이러한 흐름을 가속화하는 촉진제로 작용할 수 있다. 과학과 의학이 관심병사를 식별하는 확실한 근거로 작동한다면 비정상 병사들의 이미지는 더욱 구체화될 것이고, 이것이 차별과 배제로 악용될 가능성은 그만큼 커진다. 이를 방지할 수 있는 도덕적 원칙이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자칫하면 병영문화 혁신은 또 다른 병영 위기의 시작이 될지도 모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