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뉴스스탠드 언론을 가두다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4.09.02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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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신문·방송사 밀어내고 ‘영향력 있는 언론’ 빅3 자리매김

“그러면 시간을 나눠서 순번을 정하죠.” 한 언론사의 온라인 담당자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때아닌 순서 정하기가 벌어졌다. ‘기사를 언제, 어느 매체가 네이버에 전송할 것인지’에 관해 논의하는 자리였다. 서로 한 몸에서 뻗어나온 계열사 관계인 이들은 그동안 네이버에 경쟁적으로 비슷한 기사를 쏟아내고 있었다. 회사 전체로 볼 때 자회사들 간에 벌어지는 경쟁이 달가울 리 없었다. ‘교통정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아졌고 결국 담당자들이 모였다. 논의 끝에 ‘시간대별로 돌아가며 네이버에 쏘자’는 결론이 내려졌다. 국내 메이저 언론사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네이버는 우리에게 원수 같은 존재다.” 언론사의 온라인 담당자들은 네이버가 언론 시장을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 종합일간지 온라인 담당자의 말이다. “포털 시스템으로 가면서 가장 많이 검색될 만한 기사를 재빨리 올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퀄리티는 필요 없다. 네이버가 뉴스캐스트에서 뉴스스탠드로 가면서 트래픽이 줄어들었고 그걸 만회하려면 뉴스스탠드 구독 수를 늘려야 했다. 그러다 보니 제목을 뽑더라도 좀 더 ‘섹시’하게 갈 수밖에 없다.”

네이버보다 영향력 큰 곳 KBS·조선일보뿐

그런 섹시함에 대해 이용자들의 눈길은 곱지 않다. 네이버조차 이 부분에 대해 언론사에 책임을 돌린다. 플랫폼을 제공했더니 언론사들이 난장(亂場)을 벌인다는 투다. 지난해 7월 열린 한 토론회에서 유봉석 네이버 미디어서비스실 실장은 “선정성으로 트래픽이 높아졌을지는 모르지만 그만큼 이용자들의 불만은 커졌다”고 지적했다. 반면 언론사 입장에서는 눈에 당장 나타나는 숫자를 무시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앞서 언급한 담당자는 “결과를 보면 실제로 그렇다. 건조하게 정돈한 기사는 트래픽이 떨어진다. 비슷한 기사를 선정적으로 가공하면 트래픽이 뛰어오른다. 그래서 어쩔 수가 없다”고 말했다.

기사의 선정성 문제는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논쟁과 비슷하다. 일단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뒤로 미루더라도 하나는 확실하게 증명됐다. 그 어느 때보다 네이버의 영향력이 크다는 점이다. 매년 시사저널의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전문가 조사에서 네이버가 차지하는 언론 매체 영향력 조사의 순위를 봐도 잘 알 수 있다. 올해 조사에서 네이버는 드디어 영향력 3위(32.1%)에 올랐다. 이제 네이버보다 영향력이 큰 매체는 KBS(59.6%)와 조선일보(51.2%)뿐이다. 올드 미디어인 방송·신문의 대표 주자와 뉴미디어의 대표 주자가 삼두마차를 형성했다.

최근의 조사 지표를 보면 네이버의 영향력은 이제 고착화됐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2006년 6위로 처음 순위권에 진입한 이래 2009년 5위를 차지했던 네이버는, 2010~13년에는 줄곧 4위를 유지했다. 이른바 언론계 ‘빅3’로 불리는 KBS·조선일보·MBC 체제를 깨지는 못했다. 그러다 올해 처음으로 MBC를 밀어내고 3위에 진입했다. 새로운 ‘빅3 시대’를 연 것이다. 전문가들의 지목률도 매년 상승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향후 조사에서 1위에 이름을 올리더라도 크게 놀랍지 않을 것 같다.

네이버에 뉴스는 무엇일까. 홍종윤 서울대 ICT사회정책센터 연구원은 “포털에서 뉴스 서비스가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미미하다. 하지만 관문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포털은 사람들을 모아 사이트에 가둘 수 있어야 한다. 그 기능을 수행하는 게 뉴스다. 특히 뉴스 수요가 많은 해일수록 이 같은 포털의 가두리 기능은 효과를 발휘한다. 이민규 중앙대 신문방송학부 교수는 “올해는 세월호 이슈 등으로 상반기에 뉴스 수요가 많았다. 네이버가 종합적으로 뉴스를 요약해주는 역할을 하며 그 효과를 톡톡히 봤다. 뉴스 수요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고 그런 점에서 네이버의 힘은 유지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검색어 기사’는 언론의 네이버 종속 증거

현실은 이 교수의 지적대로 흘러간다. 우리 사회에서 갑이라는 언론사들 위에 네이버라는 ‘슈퍼 갑’이 있다. 네이버에 기사를 전송하기 위해 언론사들이 애쓰는 행태는 역설적으로 네이버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증거다. 2009년부터 실시된 뉴스캐스트 시절, 언론은 ‘네이버 중독’을 환상적으로 경험했다. 그 어느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트래픽이 광고와 연동되면서 언론사에 막대한 수익을 안겨준 때였다. 그리고 네이버 의존도가 심화된 때이기도 했고 언론사들의 뉴스 생산 방식이 바뀐 때이기도 했다. 낚시 기사로 이용자들을 낚고 야릇한 기사의 제목이 판을 치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문제는 뉴스캐스트가 뉴스스탠드로 전환되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 경제지 온라인 기획 담당자는 “뉴스캐스트 때 얻은 수익 때문에 우리 회사는 단기적인 전략, 즉 어떻게 광고 수익을 얻을지에만 몰두했다. 그래서 실시간 시청률 보듯 트래픽 추이를 관찰하면서 클릭을 잘 뽑아내는 법만 연구했다. 그러다 보니 플랫폼 변화 등 온라인에 관한 근본적인 대응에 소홀했다”고 말했다.

뉴스스탠드 실시 이후 자사 방문 트래픽이 갑자기 줄어들자 언론사들은 당황했다. 그러나 새로운 디지털 전략을 세우기보다는 일단 잃어버린 트래픽을 회복하는 쪽에 초점을 맞췄다. 최근에 유행하는 ‘검색어 기사’가 대표적이다. 8월28일 오전 10시55분 네이버 초기 화면을 보자. 오른쪽 상단에서 볼 수 있는 검색어 순위에서 1위는 SBS 새 프로그램 ‘달콤한 나의 도시’였다. 1위에 오른 이 검색어를 제목으로 한 기사들이 40분 만에 무려 100여 건 쏟아졌다. 한 종합지는 3분 만에 3개의 기사를 만들어 뿌리기도 했다. 실시간 주요 검색어에 맞는 기사를 만드는 일에는 이제 고상한 일간지들까지 전담팀을 만들어 뛰어들고 있다.

전담팀의 크기가 클수록 뉴스 생산에는 유리하다. 규모의 경제는 여기서도 통용된다. 조선일보의 경우 신참 기자들과 아르바이트생을 중심으로 30여 명이 온라인 뉴스 생산을 전담하고 있다. 이들이 사무실에서 차지하는 공간은 조선일보 사회정책팀의 공간보다 넓다. 앞서 사례로 들었듯 자회사끼리 순번을 정하는 것도 검색어 뉴스가 등장하고 생긴 신풍속이다. 네이버 밖이 아니라 네이버 안에서 해법을 찾는 일이 되풀이되면서 언론사들의 탈(脫)네이버 희망은 더욱 뒤로 미루어지고 있다.

앞으로도 네이버의 대(對)언론 영향력이 확대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최근 언론사들을 긴장시키는 소식이 새로 추가됐다. 카카오의 뉴스 서비스가 수면 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국내 3500만명의 회원을 가진 메신저가 가지는 파괴력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 쪽도 심상치 않은 변화로 보고 주시하고 있다. 강장묵 고려대사범대학 정보창의연구소 교수는 “지금은 유기적인 네트워크로 경쟁하는 시대다. 네트워크와 모바일 DNA를 가진 카카오톡에 뉴스 서비스가 생긴다면 네이버가 뉴스 시장을 빼앗길 것이다. PC와 달리 모바일에서 강점이 보이지 않는 네이버로서는 위기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네이버에서 빠질지도 모를 영향력이 언론사가 아닌, 다른 곳으로 넘어갈 것 같다는 점은 매체들에 비관적인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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