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 종교인 / 염수정 추기경 첫 1위 등극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4.09.02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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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수환 추기경 2위로 밀려 입적 10년 넘은 성철 스님 순위 재상승

올해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인’ 순위에 큰 변화가 생겼다. 선종한 해인 2009년을 제외하고 매년 1위를 도맡아온 고 김수환 추기경이 올해는 2위로 밀려났다. 대신 그 자리를 염수정 추기경이 이어받았다. 1969년 고 김수환 추기경과 2006년 정진석 추기경에 이어, 올해 2월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에서 추기경으로 서임된 그는 한국인으로는 세 번째 추기경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염 추기경은 순위권에 들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는 추기경 서임 후 6개월 동안 숨 가쁜 활동을 이어갔다. 정치인부터 세월호 희생자 가족까지 두루 만나 소통했다. 5월에는 파주 출입사무소를 통해 북한도 다녀왔다. 지금까지 여러 종교인이 북한을 방문했지만 추기경으로는 첫 방북이었다. 장석만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소장은 “염 추기경은 개인적인 영향력을 갖춘 종교인이어서가 아니라, 지난 8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등으로 커진 천주교의 영향력으로 관심을 받은 것 같다”며 “올해 초 추기경 서임을 받은 만큼 새로운 인물로서 주목받은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염수정 추기경 ⓒ 연합뉴스
천주교·불교계 강세…개신교 영향력 떨어져

이 분야 3위에는 자승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이 올랐다. 불교계 인물로는 가장 순위가 높다. 자승 스님은 조계종 33대(2009년) 총무원장을 맡았고 지난해 연임에 성공했다. 당시 일부 승려들은 서울 조계사에서 자승 스님의 재임 포기를 요구하는 묵언 정진을 하기도 했다. 현재도 총무원장 불법 선거 논란이 식지 않고 있다.

지난해 2위였던 정진석 추기경은 4위에 머물렀고, 1993년 타계한 고 성철 스님은 지난해 8위에서 5위로 상승했다. 정진석 추기경과 고 성철 스님은 매년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인’ 10위권 내에 꾸준히 오르는 인물이다. 정 추기경은 대주교 시절부터 생명윤리를 강조했는데, 2005년 황우석 서울대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인간 생명을 극도로 훼손하는 행위”라며 비판했다. 입적한 지 10년이 지난 고 성철 스님이 올해 다시 5위로 순위가 재상승한 점은 주목된다. 이에 대해서는 최근 불교계에서 성철 스님의 말씀을 다시 새기는 책과 음반 등이 출시되는 경향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백련불교문화재단(이사장 원택 스님)에서 성철 스님의 출가송과 오도송, 열반송, 법문 등을 음악에 실은 음반 <음악법문 성철 이야기>를 출시했다. 지난 7월에는 경남 합천 해인사의 해인사출판부에서 <성철스님의 화두공부하는 법>이 출판되기도 했다.

‘무소유’를 강조했던 고 법정 스님 역시 매년 꾸준히 순위권 내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올해는 6위에 올랐다. 법문집·명상집·산문집 등 다양한 분야에 50종의 책을 저술했고 상당수가 수십만 독자의 관심을 받은 베스트셀러로 여전히 관심을 받고 있다. 대표 산문집 <무소유>는 1976년 처음 발간된 이후 300만부 이상 팔렸다. 

고인이 된 종교인들 여전히 영향력 발휘

1위부터 6위까지는 천주교와 불교계가 각각 3명씩 차지한 반면, 개신교계 인사는 단 한 명도 없다. 이명박 정부 시절 많게는 5명의 목사가 10위권에 포진했던 것과 비교된다. 올해 조사에서는 10위권에 두 명의 개신교 종교인이 이름을 올렸는데,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7위)와 고 한경직 목사(10위)다.

교계 주변에서 두 목사에 대한 평가는 상반된다. 조 목사가 영향력 있는 종교인 10위권 내에 든 배경에 대해 종교계는 악명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는 교회 재산을 배임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해 올해 2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반면 한 목사는 긍정적인 면에서 영향력을 미친 개신교 인물이라고 평가된다. 그는 생전에 영락교회를 세워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종교인의 모습을 보였다. 사회복지, 복음 전파, 남북 화해 등에 이바지한 공로로 1970년 국민 훈장 무궁화장을 받았고, 1992년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턴상을 수상했다. 2000년 삶을 마감하면서 남긴 유산은 말년에 타고 다녔던 휠체어와 지팡이, 겨울 털모자, 입던 옷가지, 생필품이 전부였다.

ⓒ 시사저널 포토·연합뉴스
이 분야 8위는 법륜 스님이다. 안철수 전 새정치연합 공동대표의 정계 진출 이전부터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멘토로 대중에게 알려졌다. 대중이 즉석에서 던지는 질문에 바로 답을 해주는 법회(즉문즉설)로 최근 대중과 더 가까워졌다. 9위에 오른 혜민 스님 역시 대중의 멘토 격이다. 바쁜 현대인에게 느린 삶을 강조하면서 ‘힐링 멘토’라는 별명을 얻었다. 저서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출간된 지 3개월 만에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16주간 자리를 지켰고 최단 기간(7개월)에 100만부 판매 기록을 세웠다.

10위권 밖의 인물들 가운데서는 구원파를 대표하는 고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눈길을 끈다. 0.7%로 공동 15위에 올랐다. 올해 세월호 참사의 원인인 청해진해운과 관련 있는 것으로 알려져 검찰의 추적을 받던 그는 잠적한 후 전남 순천의 야산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김삼환 명성교회 목사와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은 각각 11위(1.4%)와 12위(1.3%)를 차지했다.

시사저널의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인’ 전문가 설문조사에서는 매년 유명을 달리한 종교인이 다수 포함됐다. 올해 조사에서도 역시 김수환 추기경, 성철 스님, 법정 스님, 한경직 목사 등 이미 고인이 된 인물 4명이 10위권에 들었다. 장석만 소장은 “여러 물의를 일으킨 개신교에 대한 호감도가 하락하면서 종교인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감퇴했다”며 “고인이 된 종교인 이름이 매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은 현실 관계(이권)와 끊어진 사람이어서 긍정적으로 보일 수 있으며, 그만큼 또 우리 사회에 정신적 지주가 없다는 방증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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