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vs 이헌재 대우그룹 몰락 진실 게임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4.09.02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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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경제 관료들이 기획 해체”…이 “당시로선 최선”

‘세계 경영’을 기치로 내걸어 재계 순위 2위까지 올랐던 대우그룹이 해체된 지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1999년 11월22일 김우중 전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눈물의 고별 편지를 보냈다. 그룹 해체와 함께 출국해 한 달 넘게 유럽의 여러 나라를 전전하고 있을 때였다. 김 전 회장은 “구조조정의 긴 터널을 지나오는 동안 빚어진 경영 자원의 동원과 배분에 대한 주의 소홀, 용인되지 않은 방식으로 접근하려 했던 위기관리 등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초래된 경영상의 판단 오류는 지금도 가슴 아프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뜬구름이 된 제 여생 동안 그 모든 것을 면류관 삼아 온몸으로 아프게 느끼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고 했다.

성공 신화의 주역에서 경영 실패의 주범으로 추락한 김 전 회장이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2014년 8월26일 김 전 회장은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그랜드홀에서 열린 대우특별포럼에서 5분여 동안 짧은 연설을 했다.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해 3월 이후 처음이다. 김 전 회장은 “모두에게 15년 전 가슴 아픈 일이 있었다. 억울함도 있고 분노도 없지 않았지만 되돌릴 수 없는 과거이기에 감수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시간이 충분히 지났으니 적어도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일에 연연하려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서 우리가 한 일과 주장을 정당하게 평가받고 과연 대우 해체가 합당했는지 명확히 밝혀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8월26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제45회 대우특별포럼-김우중과의 대화’에 참석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대우 기획 해체설. 대우그룹이 김대중(DJ) 정부에 의해 기획 해체됐다는 주장은 사실 새삼스럽지는 않다. 이전에도 여러 차례 제기됐던 일종의 음모론이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이 직접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이번에 출간한 <김우중과의 대화-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에서 작심한 듯 이 문제를 수면 위로 끄집어냈다. 저자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는 기자간담회와 강연을 통해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으로 구조조정의 선봉에 섰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와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으로 구조조정의 당위성을 뒷받침한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장관에게 제대로 따져보자며 공개 질의를 했다.

멀쩡한 대우, 정부가 외면했나

먼저 당시 경제 상황에 대한 판단. 김 전 회장은 “20년 가까이 세계 경제가 호황이었다. 그때 아시아만 잠깐 금융 위기였을 뿐이다. 실물 경제는 문제가 없었다. 관리들이 길게 보지 못한다. 20년 이상은 예상하고, 10년은 내다보면서 정책을 세워야 하는데”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가 세계 경영 투자를 멈추지 않았으면 2000년대에 크게 열매를 거둘 수 있었을 거다. 나중에 대우 계열사들이 다 좋아지지 않았느냐”고 주장했다.

외환위기 당시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왼쪽, ⓒ 시사저널 이종현)과 강봉균 청와대 경제수석은 대우그룹 구조조정을 주도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하지만 이헌재 전 부총리의 주장은 다르다. 2012년에 발간한 회고록 <위기를 쏘다>에서 “금융감독위원회가 대우를 처리한 방식은 당시로선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대우 처리는 교과서라 할 만하다”고 밝혔다. “회사를 회생 가능성이 높은 ‘굿 컴퍼니(Good Company)’와 쓰레기 채권을 떠안은 ‘배드 컴퍼니(Bad Company)’로 쪼갰다. 굿 컴퍼니만 살아나도록 지원하고 배드 컴퍼니는 신속히 처분했다”는 것이다.

이 전 부총리는 ‘잠시 자금난에 빠졌을 뿐 멀쩡한 대우를 정부가 외면해 파국으로 몰았다’는 주장에 대해 “과연 그런가. 워크아웃을 통해 엄청난 채무를 탕감해주지 않았어도 대우 계열사들이 잘나갈 수 있었을까. 34조원에 이르렀던 대우의 채무 중 대우건설 등 굿 컴퍼니가 떠안은 부채는 7조원뿐이었다. 엄청난 쓰레기 채권을 떼어 배드 컴퍼니에 안기지 않았다면 그렇게 빨리 정상화될 수 없었을 것이다”고 반박했다.

김 전 회장은 특히 ‘부채 비율 200% 규제’를 “근거도 없는 것을 그렇게 중요한 경제 정책의 기준으로 어떻게 사용하느냐”고 비판했다. “이 규제로 인해 국내 자산을 해외에 헐값에 팔게 만들었고, 한국 제조업 투자의 활력도 많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반면 이 전 총리는 이런 식의 인식이 문제였다고 주장했다. “대우가 해체된 건 시간 싸움에서 졌기 때문이다. 1999년 7월까지 대우는 구조조정에 소극적이었다. 자산 매각이든 외자 유치든 5대 그룹 중 꼴찌였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1998년 5월 제출한 그룹별 구조조정 계획. 삼성·현대는 목표치의 100퍼센트 넘게, SK·LG는 90퍼센트 넘게 자구 노력을 달성했지만 대우는 고작 18.5퍼센트였다”고 주장했다.

박근혜정부에서 활약하는 대우맨들. 맨 왼쪽부터 이한구 새누리당 국회의원·정희수 새누리당 국회의원·강석훈 새누리당 국회의원·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 시사저널 포토
‘지나친 확장 투자로 대우 몰락’ 부인

대우차와 GM의 합작 협상에 대해서도 증언이 엇갈린다. 김 전 회장은 “GM이 다급해서 제안한 것이기 때문에 가격 협상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GM은 나중에 대우차를 인수해서 큰돈을 벌었다. 대우를 해체시킨 다음에 대우차를 거의 공짜로 GM에 넘겼는데, 그 잘못을 가리려고 하는 걸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대우차는 워낙 부실이었으니까 헐값에라도 빨리 GM에 넘기는 것이 국민 경제에 좋았다’ 이런 얘기 하려는 것 아니겠느냐”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전 부총리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협상이었다”고 밝혔다. “대우의 오랜 협력·합작사였던 GM은 대우의 사정을 김 회장만큼 잘 꿰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전 총리는 “게다가 시간이 자신들 편이란 것도 알았다. 조건을 바꿔가며 질질 끌더니 1998년 7월 협상을 깨고 만다. 그러면서 대우가 스스로 살아날 방법은 사실상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김 전 회장은 대우가 지나치게 확장 투자를 벌이다가 대우차 부실로 몰락했다는 ‘정설’을 부인하고 있다. 당시 경제 관료들과 달리 무역 흑자 500억 달러 달성을 통한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조기 탈출론을 강하게 주장한 게 감정 대립으로 확대됐고, 이로 인해 “청와대에 하루가 멀다 하고 대우에 대한 나쁜 보고가 올라갔다”는 것이다.

반면 이 전 부총리는 전혀 다른 입장을 밝혔다. 이 전 부총리는 “한때 대우에 몸담았던 나를 두고 수군거리는 것도 알고 있다. ‘대우를 봐준다는 오해를 피하려고 일부러 더 모질게 처리했다’는 것이다. 사실이 아니다. 구구한 설명은 접자. 하고 싶은 말은 이것뿐이다. ‘시장의 신뢰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 강조했다. 강봉균 전 장관도 기획 해체설에 대해 “이미 여러 차례 나왔던 주장이고 이에 대한 진실은 이미 밝혀졌다”며 “본인은 억울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전혀 사실이 아닌 이야기들이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김 전 회장이 15년이나 지난 지금 왜 이런 주장을 공개적으로 제기한 걸까. 몇 년 전부터 흘러나오기 시작한 ‘김우중 복귀설’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전 회장이 실제 사업을 재개할 것으로 보는 이는 많지 않다. 이보다는 명예 회복을 통해 ‘김우중 경영론’을 재정립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주변 환경이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박근혜정부 들어 이른바 대우맨들이 대활약을 하고 있다. 경제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책임자들부터 그렇다. 경제 권력의 핵심인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비롯해 새누리당 정책위 부의장을 맡고 있는 강석훈 의원,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장인 정희수 의원, 원내대표를 역임한 이한구 의원이 모두 대우경제연구소 출신이다. 또 백기승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은 김 전 회장의 대변인 역할을 했던 최측근 인사 중 한 명이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가 8월2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김우중과의 대화’ 출판 기자간담회에서 출판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박근혜정부 들어 대우맨들 맹활약

김 전 회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인연이 남달랐다. 김 전 회장의 부친이 박 전 대통령의 대구사범학교 은사로 알려져 있다. 김 전 회장은 “박 대통령께서 나를 아들처럼 아껴주셨다. 나를 ‘김 사장’이나 ‘김 회장’이라고 부르지 않고 ‘우중아’라고 부르셨다”며 “나도 박 전 대통령을 아버지처럼 생각했다”고 밝혔다.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의 모태인 대우실업을 1967년에 창립했다. 이후 대우는 말 그대로 초고속 성장을 이뤘다.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김 전 회장은 “경제 발전을 하려면 정부와 기업이 합심해서 잘해야 한다. 합심해서 노력하는 걸 놓고 ‘정경유착’이라고 매도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 “박 대통령께 돈 10원 갖다준 게 없다. 만나러 갈 때 선물 하나 갖고 간 적도 없다”고 강조했다.

DJ 주변에도 김우중 인맥이 적지 않았다. 김 전 회장은 DJ가 가장 호감을 갖고 있던 대기업 총수였다. DJ 정부 출범 직전 김 전 회장은 전경련 회장으로 선출됐다. 국정원을 책임진 이종찬 전 원장이 경기고 동기였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악연’을 맺게 된 이헌재 전 부총리는 경기고 후배다. 이 전 부총리는 공직에서 물러난 후 대우 임원으로서 김 전 회장의 ‘세계 경영’을 옆에서 지켜봤다. 이 전 부총리는 김용환 전 재무부장관과 남덕우 전 국무총리와 함께 김 전 회장을 자신의 멘토라고 밝힌 바 있다.

 


김우중 추징금 17조원 어찌 됐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2005년 6월 40조원대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 등으로 구속 수감됐다. 1심에서는 징역 10년에 추징금 21조4484억원, 2심에선 징역 8년6개월에 추징금 17조9253억원이 선고됐다. 임원들에게 선고된 추징금까지 포함하면 23조원에 이른다. 김 전 회장은 2008년 1월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하지만 추징금은 내야 한다. 현재까지 납부한 금액은 884억여 원으로 0.5%에 불과하다.

대우세계경영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는 장병주 전 대우 사장은 8월26일 기자들과 만나 “징벌적 성격의 추징금 부과였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장 전 사장은 김 전 회장의 경기고 후배이자 최측근 인사다. 장 전 사장은 “추징금 부분은 자료를 요청하면 다 있으니 제공하겠다”고 밝힌 후 “대우는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의 최대 피해자다”고 주장했다.

법무부는 지난해 8월 고액 추징금 미납자의 재산이 제3자 명의로 돼 있는 경우 해당 은닉 재산을 추징할 수 있게 하는 이른바 ‘김우중 추징법’을 입법 예고했다. 해당 법안은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김 전 회장은 재판 결과와 추징금에 대해 헌법소원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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