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식-송혜교-김윤석 '추석 대전' 후끈
  • 허남웅│영화 평론가 ()
  • 승인 2014.09.02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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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타짜-신의 손> <두근두근 내 인생> 개봉

 추석은 방학 시즌과 더불어 영화계에서 가장 큰 대목이다. 블록버스터만큼 거액의 제작비가 투입되거나 화려한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못지않은 재미와 감동으로 추석 극장가를 공략하는 것이다.

지난 한 달간 한국 영화계는 그야말로 <명량> 열풍이었다. 이순신을 연기한 최민식은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는 영웅의 이미지로 1600만이 넘는 관객의 환호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런 최민식이 악역으로 돌아왔다. 그것도 프랑스의 거장 뤽 베송이 연출한 <루시>에서 말이다.

그가 맡은 역할은 미스터 장. 태국에 근거지를 두고 마약을 밀매해 큰돈을 버는 조직의 보스다. 그에게 걸려든 불쌍한 영혼은 미국에서 온 평범한 여자 루시(스칼렛 요한슨)다. 남자친구의 부탁으로 의문의 가방을 전달하다가 미스터 장에게 납치된 루시는 강제로 절개당한 배 안에 마약을 넣고 이를 해외로 빼돌려야만 한다. 이에 저항하다 배를 맞고, 그 충격에 마약 포장이 터져 약물이 체내로 퍼지게 된다. 그 부작용(?)으로 루시의 뇌 사용량은 보통사람들이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다.

영화 ⓒ 롯데엔터 제공
‘여전사’는 뤽 베송 감독이 즐겨 연출하는 테마다. <레옹>(1994년)의 마틸다는 가족의 원수를 갚기 위해 킬러가 되기로 한 12세 소녀다. 그 전에 뤽 베송은 <니키타>(1990년)를 통해 뒷골목의 불량 소녀가 정체가 분명치 않은 비밀 정보기관에서 전문 킬러로 양성되는 이야기를 선보인 적이 있다. 농촌 출신의 소녀가 백년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프랑스의 국가 영웅이 되는 <잔 다르크>(1999년), 15년의 가택연금을 견딘 미얀마의 지도자 아웅산 수치를 다룬 <더 레이디>(2011년) 등도 뤽 베송이 연출한 강한 여성 캐릭터의 계보에 들어간다.

베송의 여자 캐릭터는 잔인무도한 남자들이 구축한 정글 같은 세계에서 살아남음으로써 강함을 획득했다. <루시>도 마찬가지다. 특기할 점은 루시의 강함을 돋보이게 하려고 선택된 배우가 최민식이라는 사실이다. 그의 영화 속 잔인한 면모는 <올드보이>(2003년), <악마를 보았다>(2011년)로 정평이 나 있지만 <루시>에서는 이에 더해 한국어 대사를 시연한다. 뤽 베송은 루시가 여전사가 되기 전 낯선 환경과 낯선 언어에서 느끼는 공포감을 배가하기 위해 극 중 미스터 장으로 하여금 한국어만 쓰게 했다. 그것이 한국 관객에게는 꽤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타짜-신의 손>, <타짜> 흥행 잇는다     

<타짜-신의 손>(이하 ‘<타짜2>’)의 추석 개봉은 전략적이다. 전편인     <타짜>(2006년)가 명절이면 가족끼리 즐기는 게임이 화투라는 데 착안해 추석 개봉으로 흥행을 극대화하자 이 전략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타짜>와의 연관성은 이뿐만이 아니다.

<타짜2>에는 전편에서 고니와 환상의 호흡을 맞췄던 고광렬(유해진)과 고니와는 철천지원수 사이인 아귀(김윤석)가 다시 한 번 등장해 반가움을 선사한다. <타짜2>에는 고니의 사촌 대길(최승현)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타짜>가 스승 평경장을 아귀에게 잃었다고 생각한 고니의 복수극이었던 것처럼 <타짜2>는 고니가 고광렬을 스승이자 멘토로 모시던 중 아귀를 만나 마지막 대결을 펼치는 것으로 이야기의 큰 줄기가 펼쳐진다.

사실 <타짜2> 연출을 맡은 강형철 감독 이전에 장준환 감독이 허영만 화백의 원작 <타짜> 4부작 중 4부 ‘벨제붑의 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 프로젝트가 무산된 후 <과속스캔들>(2008년)과 <써니>(2011년)의 강형철 감독이 메가폰을 잡으면서 2부 ‘신의 손’으로 변경한 것인데 상업적으로 꽤 영리한 선택으로 보인다. 영화 <타짜>와의 연관성과 더불어 마지막 대결에 참석한 이들이 모두 옷을 벗고 화투를 친다는 설정은 최승현·신세경·이하늬의 캐스팅에 비추어 꽤 흥미를 돋우는 것이다.

이것이 강형철 감독이 두 편의 전작에서 각각 800만과 700만 관객을 동원한 힘이다. <타짜>가 불나방 같은 인간의 탐욕을 화투에 빗대 감독의 비전을 실현했다면, <타짜2>는 서로를 어떻게 속여먹는지 게임의 측면에서 접근해 대중성을 높이는 전략을 택했다. 극 중 대길에게는 사랑하는 미나와 고광렬을 제외하면 믿을 만한 사람이 없다. 아무리 옷을 벗고 화투를 친다 해도 타짜의 세계에서는 속임수가 난무한다. ‘신의 손’으로 불리는 대길은 이 상황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이 클라이맥스에 관객이 원하는 해피엔딩의 재미와 과감한 볼거리와 카타르시스가 모두 담겨 있다.

영화 ⓒ UPI코리아 제공 , 영화 ⓒ CJ엔터 제공
<두근두근 내 인생>, 가족 의미를 되새기다

<두근두근 내 인생>은 젊은 작가 김애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했다. 17세에 아이를 가진 부부와 이들의 사연을 아들의 시선을 통해 전개하는 이 영화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2003년), <여배우들>(2009년)의 이재용 감독이 연출했다. 부부가 이른 나이에 결혼했다는 것을 빼면 평범해 보이지만 실은 이들 부부의 아이는 남들보다 빨리 늙는 조로증을 앓고 있다. 아직은 어린 부부와 훨씬 늙어 보이는 아들의 사연이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다만 영화는 이들 사연을 전하는 데 노골적인 신파조를 따르는 대신 밝고 명랑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에 역량을 다한다. 국내 영화계의 내로라하는 선남선녀 배우인 강동원과 송혜교가 17세에 눈이 맞아 결혼해 지금은 16세 아들을 둔 부부로 출연한다. 기존의 화려한 이미지와는 다른 생활인의 연기를 펼쳐 보이는데 한층 성숙해진 연기까지, 배우 보는 맛이 남다르다. 

너무 일찍 결혼해 아이를 가진 부부는 아이가 병을 앓다 보니 청춘을 정신없이 보내고 말았다. 아빠 대수는 막노동이나 택시 운전을 하며 병원비를 구하느라 바빴고, 엄마 미라는 공장에 나가랴 아들을 돌보랴 힘들게 살아 그 나이에 어울리는 생활을 누리지 못했다. 이들 부부에게 유일한 기쁨은 그래서 아들뿐인데, 아들 아름이는 자신에게 헌신한 부모를 위해 잃어버린 청춘을 복원해주려 한다. 그것이 <두근두근 내 인생>이 아름이의 시선에서 전개되는 이유다. 

죽음을 앞둔 아름이는 그동안 부모님의 청춘을 복원한 소설 ‘두근두근 그 여름’을 대수와 미라에게 선물한다. 이들의 청춘이 얼마나 아름답게 묘사됐는지 이별을 앞둔 이들 가족의 운명이 눈물을 자아내는 가운데서도 아름이의 마음 씀씀이는 한편으로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여전히 철이 없지만, 속이 깊은 부부와 누구보다 빨리 죽어가면서도 겉으로 이를 내색하지 않는 아들의 역설적인 상황이 주는 절제의 미덕은 가족의 해체가 빠르게 진행되는 작금에 관계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도록 한다. 

올여름 극장가가 사극 일색이었다면 추석 극장가는 여러 종의 소재와 다양한 국적의 영화로 관객에게 골라 보는 재미를 선사할 예정이다. 그만큼 관객의 취향에 따라 호오가 갈린다는 의미다. 앞서 언급한 세 편의 영화 역시 그렇다.

장점 위주로 소개했지만 <루시>는 시간이 더할수록 강력해지는 루시의 능력 탓에 미스터 장과의 아슬아슬한 대결의 뒷심이 떨어지는 편이고, <타짜2>는 청소년 관람 불가인 데다 2시간30분에 달하는 긴 상영 시간이 약점으로 작용한다. <두근두근 내 인생>은 한바탕 웃고 싶거나 울고 싶은 관객들에게는 뭔가 부족한 듯한 인상을 줄 수도 있다. 과연, 이번 추석 시즌의 승자는 어떤 영화가 될까. 이를 예측하는 재미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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