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롯머신 대부’ 정덕일씨 별세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4.09.16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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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시사저널 통해 “경매사기로 300억 땅 날렸다” 호소

 

슬롯머신업계 대부로 불렸던 정덕일씨가 9월15일 별세했다. 향년 65세. 정씨는 형 덕진씨와 함께 YS(김영삼) 정권 출범 직후인 1993년 5월 이른바 ‘슬롯머신 사건’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인물이다. 당시 정씨 형제를 수사한 검사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를 지낸 홍준표 경남도지사다. 이 사건은 드라마 <모래시계>의 모티브가 됐고, 홍 지사는 일명 ‘모래시계 검사’로 유명세를 탔다.

슬롯머신 사건은 노태우 정권 시절 최고 실세였던 박철언 의원이 구속되는 등 당시 정치 지형을 뒤흔들 정도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TK(대구·경북)에서 PK(부산·경남)로 권력의 중심이 바뀌는 신호탄이었다. 박 의원이 징역 1년6월형을 선고받아 의원직을 상실한 데는 정씨의 역할이 컸다. 국세청 세무조사를 무마해달라며 5억원을 건넸다는 그의 진술이 ‘6공 황태자’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그 후 20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정씨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서서히 멀어졌다. 그런 정씨가 몇 달 전 서울중앙지검을 찾았다는 소식이 들렸다. 시사저널은 8월21일자(제1292호)에서 그 내막을 취재해 보도했다. 당시 정씨는 “경매사기를 당해 300억원에 이르는 제주도 땅을 헐값에 날려버렸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정씨는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일대 땅 9만8234㎡(약 3만평)에 대형 카지노호텔을 건립할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2006년 3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컨설팅회사와 MOU(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이 회사를 통해 세계적 카지노호텔 그룹인 MGM을 제주도에 유치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2008년 미국 월가의 금융위기로 MGM의 대주주인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정씨의 꿈은 무산됐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2012년 1월 해당 부동산이 법원 경매로 넘어갔고, 한 영농조합법인이 낙찰 받아 올해 5월16일 소유권까지 이전했다. 낙찰가는 67억7700만원이었다. 정씨는 이 과정에서 경매사기를 당했다며 진정서와 고소장을 들고 서울중앙지검을 찾았다.

당시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정씨는 “돈도 명예도 다 잃고 나니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져 유서까지 썼다”고 밝혔다. 그는 “돈은 되찾지 못하더라도 명예는 되찾고 싶다”고 말했다. 정씨는 이 사건 이외에 그동안 만났던 정치인과 연예인 등 유명 인사들에 대해서도 많은 얘기를 했다. 그는 파란만장했던 삶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했다. 시사저널은 이러한 내용을 담은 연재물에 대해 정씨와 논의 중에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바람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빈소는 서울순천향대학병원에 마련됐다. 발인은 18일이며 장지는 서울추모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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