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떡값’마저 자취를 감추다
  • 김현일 대기자 ()
  • 승인 2014.09.17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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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 막기도 했던 역대 추석 정국…‘20억+α’ 파동 이후 세태 변해

여야의 거물급 정치인 두 사람이 화장실 변기 앞에 나란히 서서 ‘볼일’을 보고 있다. 서울 종로구에 소재한 K한정식집에서다. “그동안 별일 없으시고….” 청와대 실세 H씨가 바로 옆에서 일을 보던 야당 핵심 인사 P씨의 와이셔츠 주머니에 작은 봉투 하나를 찔러 넣었다. 봉투 안에는 0이 9개 그려진 수표가 들어 있었다. 얼핏 보면, 각기 다른 방에서 식사를 하다가 우연히 화장실에서 마주친 것 같다. 하지만 실은 남의 눈을 피하기 위한 연출이었다. 두 사람은 오래전부터 잘 알고 지내는 사이였지만, 이날 조우 이후 상호 신뢰는 더욱 굳어졌다.

그로부터 한 달여 뒤, 추석을 열흘 앞둔 날 같은 식당의 같은 식탁에서 두 사람은 마주 앉았다. 이 자리에는 대기업 J회장이 함께했다. J회장이 이 자리에 나온 것은 야당 인사 P씨에게 후원금을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후원금 액수에 대해서는 관계자 모두가 아직껏 함구하지만, 10억원 이상이라는 데는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이날 자리는 청와대 실세 H씨의 주선으로 이뤄졌음은 물론이다. H씨는 뒤탈 없는 ‘보증’ 등을 겸해 합석한 것이다. 그해 가을의 정기국회는 그럭저럭 순항했다. 추석 직전까지만 해도 여야가 극한 대립을 펼쳤다. 겉으로 드러난 대치 상황으로만 판단하면 파행이 마땅했겠으나, 그랬다. 1990년대 중반의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7월15일 청와대에서 새누리당 신임 지도부와의 오찬에 앞서 김무성 대표에게 자리를 권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치권에서 추석이 갖는 의미는 각별했다. 가을 정기국회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결코 바람직한 정치문화는 아니었으나, 가진 것을 서로 나누는 명절이라는 명분하에 이른바 ‘떡값’이란 게 오가는 것을 용인하기도 했다. 이런 유의 비화를 소개하려 들면 끝도 한도 없을 정도다. 정치인 개개인의 사욕 추구를 위한 숱한 불법·부정행위는 차치하고, 정치 세력 대 세력으로서의 거래 내지 흥정은 흔했다. 굳이 표현한다면, ‘반(半)공식적’인 것으로서 주변에서도 대충 짐작하지만 애써 모른 척하는 그런 것이었다. 이런 것들이 쌓여 때로는 소속 의원의 비리를 불문에 부치는 것을 대가로 법안 통과를 양해하는 작태를 보이기도 했다. 이 같은 구태는 정치가 아무리 협상과 합의를 강조한다 해도 타협이 아닌 야합의 표본이라고 욕먹어도 싸다.

‘게임’이 아니라 ‘전쟁’을 하는 한국 정치

과거 대통령은 집권 여당 총재로서 여당에 천문학적 자금을 지원했다. 대선이나 총선 때의 조 단위는 아니라도, 평소에도 연 천억 원대는 보통이었다. 야당에도 여당과 비교하면 떡고물 수준이라지만 상당 액수를 보탰다. 빈한한 야당 살림을 배려한 측면과 함께 회유·입막음 성격도 컸다. 오늘날 청빈의 대명사로 불리는 여권의 L씨도 과거 야당 정치인 시절 청와대 방문 시 거액을 수수했다. 사실 과거 청와대를 방문하는 정치인들에게는 여야 가리지 않고 ‘거액의 촌지’가 건네지는 게 일종의 관행이었다.

김영삼(YS) 대통령이 자신의 야당 시절을 회고하면서 토로했듯이, 대개는 살그머니 봉투를 열어본 순간 상상했던 것보다 ‘0’이 한 개 더 붙은 것을 보고 놀라기 일쑤였다. 그런 측면에서 1995년 노태우 비자금 사건 당시 대통령이던 YS가 야당 김대중(DJ) 총재를 ‘20억+α’ 지원금 건으로 몰아붙인 처사는 유치하기 짝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한참 줄여’ 3000억원이라고 공개한 지원금을 받은 YS가 DJ의 20억+α를 문제 삼을 수 있느냐는 비아냥거림이 그것이다. 그 시절 야당은 정치자금 조달을 위해 전국구 국회의원(지금의 비례대표 의원) 자리를 팔았던 것을 다들 기억한다. 11대(1981년) 국회 당시 3억원이던 전국구 안정권 공정가가 13대(1988년)에 이르러서는 10배로 뛴 것쯤은 그 시절 정치인이라면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한 YS와 DJ는 대한민국 정치 발전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지만, 동시에 ‘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영원한 경쟁자’라는 두 사람의 관계에서 불거진 ‘20억+α’ 논란은 대한민국 정치판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전기가 됐다. 이후 여야의 경쟁이 ‘게임’이 아닌, 그야말로 ‘전쟁’으로 변질됐다는 점에서다. ‘20억+α’ 파동 이후 청와대로부터 여당 의원에게는 300만~500만원, 야당 의원에겐 200만원 수준으로 건네지던 추석 떡값도 자취를 감추었다. 반드시 돈때문만은 아니었겠으나 그 이후 오늘날까지 20여 년간 여의도에는 여야 간 살벌한 대결과 갈등이 지배하고 있다. ‘구태 정치’ 청산 이후 오히려 극한 정쟁이 심화되고 있고, 이 일그러진 퇴행이 슬프게도 우리 정치의 현주소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998년 1월20일 김영삼 대통령(오른쪽)과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청와대에서 주례회동을 갖고 정부 조직 개편 작업과 긴축 예산 편성 등에 대해 협의했다. ⓒ 시사저널 자료사진
박 대통령 침묵 속 추석 민심도 엇갈려 

여야 간 극한 대립과 갈등으로 정치 실종 우려를 낳고 있는 지금의 세월호 정국에서 맞은 이번 추석은 과거 어느 때보다 특별했다. 추석을 계기로 뭔가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그것이다. 특히 여의도 주변에서는 이번 추석에 박근혜 대통령이 야당 국회의원들에게 뭔가 ‘성의 표시’를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물론 시대가 변한 만큼, 과거의 ‘떡값’ 개념이 아닌 ‘마음’을 말한다. 여기엔 상대를 존중한다는 뜻이 전달됐더라면 분위기는 한층 누그러졌을 터이고, 정국 정상화에 자그마한 보탬이 됐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담겨 있다.

아닌 게 아니라 과거 노태우 정부 시절, 대통령이 추석 때 현금 대신 선물 세트를 보내오자 의원들은 “그런 것 못 먹어본 사람 있나”라며 심드렁해했지만, 방문객들에게는 대통령이 보내온 선물이라면서 은근히 자랑했다. 사법 체계를 뒤흔든다는 이유로, ‘떼 정치’는 결코 용납 않겠다는 원칙론적 입장에서 야당의 세월호 특별법안을 받지 않겠다고 하는 것과는 별개로 청와대도 나름의 최선을 다해야 했다는 아쉬움이 제기됐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정면 비판한 것도 이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결국 국가 경영의 최고·최종 책임자로서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지만, 추석 정국에도 여전히 박 대통령은 꿈쩍 않았다. 야당에 명분을 주고 실리를 챙기자는 건의는 장외투쟁을 선택한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지율이 20%대 이하로 추락했다는 등의 주장에 눌려 힘을 잃고 있다. 한 여권 고위 관계자는 박 대통령에게 ‘다른 수순’을 꺼내기조차 어려운 형편이라고 전한다. ‘끝장’을 뜻하는 대통령의 “저하고 일하기 싫으세요?”라는 말을 감내할 인사가 발붙일 형편이 아니라는 것이다.

제1야당 새정치연합도 퇴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민생을 외면한다는 비난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지지층 내의 기류는 다르고 자칫 명분마저 잃을까 봐 다른 선택은 엄두를 못 내는 형국이다. 한 가닥 희망이었던 추석 정국도 지나가고 있다. 이래저래 국민들 처지만 딱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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