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대학언론상]“노숙인 내쫓자는 게 아냐, 우리도 서민이야”
  • 이호재(동국대 행정학과)·황현규(국민대 언론학과) ()
  • 승인 2014.09.17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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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급식소 들어서며 상권 죽어버린 지역 상인들의 절규

올해로 세 번째를 맞는 ‘시사저널 대학언론상’이 6편의 수상작을 냈습니다. 기자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한 시사저널 대학언론상 수상작들 속에는 예비 언론인들의 열정이 담겨 있습니다. 다소 투박하고 덜 매끄럽지만 풋풋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원문을 게재합니다. 

 

서울역은 한국의 현재를 담고 있다. 언뜻 보면 마천루로 둘러싸인 중심지 같지만, 속살을 들여다보면 키 작고 낡아버린 건물들이 들어찬 삶의 변두리다. 특히 13번 출구부터 숙명여대 방향으로 이어지는 동자동 43번가는 노후 건축물이 다닥다닥 몸을 붙이고 있어 재개발 지구를 연상케 한다. 건물들이 주는 이미지보다 더욱 삭막한 것은 지역 상인들의 속마음이다. 담뱃재로 물든 동자동 거리의 보도블록만큼 어두웠다.

 

2010년 무료급식소가 생긴 이후 서울역 13번 출구 주변은 삭막한 거리로 변해버렸다. ⓒ 시사저널 박은숙

“하루에 3만원 번다, 우리도 좀 살게 해달라”

직장인들로 붐비던 동자동 43번가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2010년부터다. 서울시 주도로 무료급식소가 생기고 거리에 노숙인들이 몰리면서, 자연스럽게 이곳 식당과 상가를 찾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겼다. 지역 상인들은 쫓겨나다시피 가게를 내놓아야 했고, 그 자리에는 노숙인 관련 봉사단체와 교회들이 들어섰다. 그러나 이곳 상인들은 어디에 하소연할 수도 없다. 사회적 약자인 노숙인을 꺼리는 기색을 보였다간 여론의 뭇매를 맞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7월23일 정오께 서울역 13번 출구부터 대기 줄이 늘어섰다. 무료급식소에서 식사하기 위해 몰려든 긴 행렬은 지하도를 지나 14번 출구까지 이어졌다. 5년 전 서울역 13번 출구 앞에 무료급식소 ‘따스한 채움터’가 들어서면서 이곳 상인들에게는 익숙해진 풍경이다.

“여기서 대기하고 있는 노숙인들 때문에 누구도 이 주변을 오려고 하지 않아요. 여기부터 저기 끝까지 다 노숙인뿐이야. 사람들이 다니겠어요?” 동자동에 있는 세계요리학원 직원 남용현씨(31)는 노숙인들에 관해 묻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2009년 ‘서울역 주변 거리급식 환경 개선 계획’이 나오면서 2010년 동자동 43-9번지에 무료급식소 ‘따스한 채움터’가 세워졌다.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직접 개소식에 참석했고 28개 시민사회단체가 무상으로 식사를 제공하겠다고 나설 정도로 각계의 호응이 뒤따랐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2013년 한 해 동안 ‘따스한 채움터’를 방문한 노숙인은 30만6984명에 달했다. 하루 평균 841명이 이곳에서 식사를 했다.

노숙인들은 근처에서 밥만 먹은 게 아니었다. 급식 시간 이전부터 인근 시설에서 기다리거나 배회했고, 식사 후에도 주변에 머무르며 노숙을 했다. 그러자 행인들의 발길이 줄어들었고 인근 가게의 매출이 급감하며 상인들이 떠났다. 떠난 자리에는 노숙인 관련 단체들이 들어섰다. 실제로 서울역 13번 출구에서부터 ‘임대’라는 글씨가 붙은 건물이 제법 눈에 띄었고 13개 상가가 비어 있었다. 이 거리에 들어선 노숙인 관련 사업체 14개 역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발을 들여놓기 꺼려지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인적이 드물어진 서울역 13번 출구는 이렇게 ‘노숙인 거리’가 돼버렸다.

“하루에 3만원 벌고 있어. 어느 때는 그것도 못 벌고. 우리도 좀 살게 해줘.” 선풍기 소리로 가득 찬 가게에서 김영숙씨(여·53)가 목소리를 높였다. 김씨는 10년 전 분식집을 양도받아 그럭저럭 가게를 운영해왔다. 하지만 5년 전 무료급식소가 생기면서 가게는 기울기 시작했다. 식사 시간이 되면 거리 전체가 노숙인들로 가득 찼고, 어수선한 환경을 이유로 과거 손님이었던 학생과 회사원이 사라졌다. 13번 출구 맞은편에는 높은 건물이 적지 않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들은 대부분 빌딩 뒤편에서 식사를 해결한다. KDB생명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직원은 “노숙인들이 많아 건너편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분위기가 음침해 식사는 그쪽(서울역 13번 출구)에서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피해를 보는 곳은 음식점뿐만이 아니다. 서울역에서 노래방을 운영하고 있는 이현주씨(60)는 가게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무료급식소가 생기고 노숙인들이 많아지면서 손님이 뚝 끊겼지. 결국 가게 내놨어. 권리금이 뭐야! 한 푼도 못 건질 지경인걸.” 이씨는 말을 하며 연신 한숨을 쉬었다. 이곳에서 40년간 자리 잡고 있었다는 ○○학원 관계자는 자포자기 상태였다. 그는 “이사 갈 곳을 알아보고 있다.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우리가 떠날 수밖에”라며 탈출을 결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곳에 입주한 대다수 상인은 권리금은커녕, 월세를 내지 못해 보증금까지 까먹고 있는 형편이었다.

생계 터전 잃은 상인들 사정 감안해야

몇몇 상가에는 ‘불법 건축물 out, 해돋는 마을 out’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이곳 상인들이 스스로 만든 ‘환경연합회’가 써놓은 문구였다. 사단법인 ‘해돋는 마을’은 ‘따스한 채움터’와 마찬가지로 무료급식을 하고 있는 봉사단체다.

1년 전 환경연합회는 서울시에서 8930만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해돋는 마을’ 뒤에 위치한 창고와 철도 사이 198㎡ 부지에 2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급식대기소를 만들려고 했다. 노숙인들을 위한 대기소를 만들어 거리를 회복하고자 했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은 철도 완충지를 사용하도록 허가해주었고 용산구청에도 가건물 설치를 신고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에 완공됐어야 할 대기소 대신 아직도 ‘해돋는 마을’의 식재료 창고가 부지 위에 서 있다. 김영철 환경연합회 총무는 “건설업체가 착수금을 받고 건축 자재까지 구입했는데 공사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마지막 희망인 급식대기소가 불법 건축물인 식자재 창고 때문에 물거품이 될까 걱정된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유평준 ‘따스한 채움터’ 소장도 “급식대기소는 노숙인들에게 훨씬 쾌적한 환경을 제공한다. 천막은 물론 냉·난방기도 갖출 계획이다. 야외에 쪼그려 앉아 기다리는 것보다 안전하지 않겠느냐”며 급식대기소의 시급함을 강조했다.

서울시도 수차례 ‘해돋는 마을’에 자진 철거를 요구하고 공문도 보냈지만 사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시 공무원은 “‘해돋는 마을’이 배 째라 식으로 나오니 방법이 없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반면 정기연 ‘해돋는 마을’ 사무국장은 “식재료 창고가 불법 건축물인 건 맞지만 우리 사정도 좀 이해해달라. 많은 노인에게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식재료를 가건물에 쌓아두고 있다.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지 일방적으로 철거하라고 하는 건 옳지 않다”고 말했다.

“좋은 일 하는 거 좋지. 우리도 그 사람들(노숙인)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니야. 노숙인들 몰아내자는 게 아니야. 우리 이야기도 좀 들어달라는 것뿐이야. 우리 이야기 써주는 기자 하나 없어. 우리도 서민이야.” 분식집을 운영하는 김영숙씨의 말이다.

노숙인을 대상으로 하는 봉사 시설은 언제나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는다. 올해 상반기에만 안전행정부장관, 농협회장, 국세청 차장 등 고위 인사들이 ‘따스한 채움터’를 찾았다. 그러나 생계를 잃어버린 지역 상인들을 향해서는 누구 하나 도움의 손길을 뻗지 않고 있다. 최근 5년간 기사를 검색해봐도 서울역 노숙인 관련 보도 200건 중 지역 상인의 피해를 담은 기사는 단 한 건도 없을 정도로 이들은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시 소속 사회복지사는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약간 덜 어려운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특히 노숙인 관련 정책은 허점이 생기기 쉽다”고 지적했다.

언론을 통해 바라본 서울역 노숙인 급식소 주변은 단지 지저분해진 동네일 수 있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13번 출구 앞을 걸어본 사람이라면 안다. 이곳은 약자와 약자가 함께 살면서 갈등하는 서울의 한 변두리일 뿐이다.

 

 

ⓒ 시사저널 임준선
사회의 또 다른 약자인 서울역 13번 출구 앞 지역 소상인들을 지키고 싶었다. 기성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그들의 고된 삶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노숙인을 위한 무료급식소가 들어서면서 상인들의 가게는 조금씩 기울어갔다. 하지만 누구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상인들은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었다. 건너편에 위치한 빌딩은 점점 높아졌지만, 13번 출구 앞은 약자들끼리 갈등하는 길이 되어버렸다. 최하위 계층을 위한다는 이유로 차하위의 몫을 앗아가는 일은 옳지 않다는 생각을 기사에 담고자 했다.

 

7월17일부터 3주 동안 취재를 하면서 하루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 누구의 시름도 가벼운 것이 없었고, 그 시름의 골을 들여다보는 일이 무슨 죄라도 되는 양 우리들 가슴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예비 언론인으로서 책임감을 느낀 순간의 연속이었다. 멀리서 사건을 보도하는 제3자가 아니라 현장에서 부대끼며 그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살아 있는 기사를 쓰고 싶은 열망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발품을 파는 동안 과연 이 모습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을지, 혹시 우리 의도에 맞추어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했다. 그래서 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기사를 쓰려고 노력했다. 서툰 인터뷰에 응해주신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 전한다. 부족한 기사에 지면을 내준 시사저널에도 감사드린다.

취재 기간 동안 폭염주의보가 울렸고 거리는 태풍에 흔들렸다. 변덕스러운 날씨 속에서도 지키고자 했던 것은 ‘고생하더라도 올바른 기사를 쓰자’는 첫 마음가짐이었다. 이 다짐이 얼마나 지켜졌는지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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