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구 전 KBO 총재가 약속 어겼다”
  • 박동희│스포츠춘추 기자 ()
  • 승인 2014.09.18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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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원더스 2군 리그 참가 밀약 계속 미루다 결국 해체

국내 최초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가 KBO(한국프로야구)와의 재계약을 포기했다. 원더스는 9월11일 보도자료를 통해 “3년간 구단을 이끌면서 애초 창단을 제의했던 KBO와 구단 운영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반복해 확인했다. 아쉽지만 한국 최초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는 2014년 시즌을 끝으로 도전을 멈추고자 한다”고 밝혔다.

원더스 관계자는 “도전을 멈춘다는 게 구단 해체를 의미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게 받아들이면 될 것”이라며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그리고 구단 직원에게 (해체) 사실을 미리 알려줬다”고 설명했다.

원더스 해체 소식을 접한 야구계는 ‘충격’이라는 반응 일색이다. 야구해설가 L씨는 “3년간 잘 운영하던 구단이 왜 갑자기 해체를 결정했는지 이유가 궁금하다”며 “혹시 자금 부족이나 누적 적자로 해체를 선언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웃했다.

야구계 일각에선 원더스 해체를 두고 L씨와 같은 의견을 보이는 이가 적지 않았다. 한 야구인은 “원더스의 모그룹인 소셜커머스업체 ‘위메이크프라이스(위메프)’가 어려워져 독립구단 운영을 포기했다는 소문이 있다”며 “요즘처럼 전체적으로 불경기일 때 한 해 40억원씩 독립구단에 투자하기가 쉽겠느냐”고 반문했다.

9월11일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이 경기도 고양시 국가대표 야구훈련장에서 열린 선수단 미팅에서 팀 해체 결정을 선수들에게 알리고 있다. ⓒ 연합뉴스
“위메프 재정난으로 해체되는 건 아니다”

9월11일 대구구장에서 원더스 해체 소식을 들은 선동열 KIA 감독은 “(원더스는) 쓰기만 했지 벌어들이는 것이 없지 않으냐”고 말문을 연 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렇게 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원더스의 적자가 구단 해체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원더스 측은 “위메프가 어려워졌다는 루머는 어디서 나온 소린지 모르겠다. 위메프는 현재 소셜커머스 1위 업체로 승승장구하는 중”이라고 반박했다. 틀린 말도 아니다. 쿠팡·티몬·그루폰 등 경쟁 업체에 밀려 업계 4위였던 위메프는 지난해 12월 3년 만에 1위를 탈환했다. 올 2월에는 소셜커머스업계 최초로 PC·모바일 순방문자 수 1300만명을 돌파했다.

소셜커머스업계 핵심 관계자는 “위메프가 어려우면 다른 회사는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며 “위메프의 경쟁 상대는 같은 소셜커머스가 아니라 롯데마트·이마트와 같은 대형 유통업체”라고 말했다. 그는 “위메프는 이미 소셜커머스를 평정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할 준비를 하고 있는 유망 업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원더스의 누적 적자 때문에 구단 운영을 포기한 것일까. 원더스 관계자는 “허민 구단주는 흑자는 고사하고, 구단을 통해 10원도 벌 생각이 없는 분이다. 2011년 10월부터 2014년 9월까지 150억원 이상을 쓸 때도 적자 때문에 고민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그 이유에 대해 “허 구단주는 처음부터 원더스에 대한 투자를 사회적 기부로 봤다. 흑자나 수익을 바라는 기부가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야구계에 도는 원더스 해체의 가장 큰 배경은 KBO와의 갈등이다. 야구인 K씨는 “‘KBO와 원더스가 2군 리그 참가를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결국 이 때문에 원더스가 구단 운영을 그만둔 것”이라며 “KBO가 일을 똑바로 하지 못해 원더스가 해체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개연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원더스는 보도자료에서 ‘3년간 구단을 이끌면서 애초 창단을 제의했던 KBO와 구단 운영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반복해 확인했다’는 말로 아쉬움을 나타냈다. 내막은 이렇다.

애초 허 구단주는 독립구단 창단 계획이 없었다. 그런 허 구단주를 설득해 독립구단 창단을 유도한 건 KBO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유영구 당시 KBO 총재와 핵심 관계자들이었다. 이들은 2009년 12월부터 허 구단주에게 독립구단 창단을 권유하며 “만약 창단하면 2군 리그에 정식으로 편입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

KBO도 몰랐던 ‘KBO-원더스’ 약속

허 구단주는 ‘야구를 통한 기부도 괜찮겠다’ 싶어 KBO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고, “프로에서 낙오했거나 프로 문을 밟지 못한 아마추어 야구선수가 독립구단을 통해 재도전 기회를 잡았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하지만 그해 9월15일 창단 발표를 한 이후부터 KBO는 말을 바꿨다. 애초 약속했던 2군 리그 정식 참가는 2013년으로 밀렸고, 2012년엔 30경기만 뛸 것을 요구했다. 그것도 정식 경기가 아닌 번외 경기였다. 한술 더 떠 KBO는 “30경기를 치르려면 예치금 10억원을 내라”고 요구하며 애초 합의사항엔 없던 원정 경기 소화까지 강요했다.

원더스는 반발했지만 ‘기부하려고 구단을 만들었는데 KBO와 싸울 필요가 있겠느냐’는 허 구단주의 만류로 KBO의 요구사항을 대부분 받아들였다. 하지만 KBO는 원더스 창단 3년째가 되는 올 시즌까지도 ‘2군 리그 편입’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원더스 관계자는 “우리가 원해서 구단을 창단한 것도, 우리가 먼저 2군 리그 편입을 바란 것도 아니다. KBO가 먼저 약속해놓고 지금 와서 전부 모른 척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상한 건 KBO가 원더스와의 약속과 관련해 “정말 우리는 모르는 사실”이라고 항변한다는 것이다. 기자가 과거 KBO가 원더스 측에 건네준 각종 서류를 꺼내 보이며 “이렇게 증거가 많은데 모른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묻자 KBO 관계자는 뜻밖의 사실을 들려줬다. “KBO 사무국 직원들은 이런 서류를 본 적도 없다”는 것이었다. 이 관계자는 “당시 원더스 창단에 개입한 건 극소수의 KBO 고위층 인사들이었다. KBO 사무국 내에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과연 그럴까. 당시 KBO 고위 간부였던 O씨는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O씨는 “KBO 사무국이 아닌 유 총재 비선(秘線)에서 움직인 통에 직원들은 창단 발표 전까지 원더스 자체를 몰랐다”며 “원더스가 KBO에 ‘약속을 지키라’고 주장하는 것들도 KBO 사무국이 아닌 총재 비선에서 약속한 내용들”이라고 귀띔했다. O씨는 “총재 비선이 약속한 내용을 기존 구단 단장, 사장들 역시 전혀 모르고 있었다”며 “이 바람에 원더스가 언론을 통해 ‘KBO는 2군 리그 편입 약속을 지키라’고 주장할 때마다 기존 구단들이 ‘독립구단이 무슨 2군 리그 편입이냐’고 발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더스 내부 관계자는 “구단 운영을 둘러싸고 KBO와 우리의 시각 차이도 있었겠지만, 일부 야구인과 언론이 원더스를 존중하지 않은 것도 재계약 포기의 주요 배경이 됐다”며 “시즌이 끝날 때마다 김성근 감독의 거취를 둘러싸고 수많은 기사와 풍문이 쏟아지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해마다 시즌이 종료된 후에는 김 감독의 거취를 둘러싼 갖가지 소문과 기사가 홍수를 이뤘다. 올 시즌엔 시기가 빨라져 채 시즌이 끝나기 전부터 ‘김 감독이 어느 어느 구단으로 간다더라’는 루머가 설득력 있게 퍼졌고 그와 관련한 기사가 줄을 이었다. 원더스 관계자는 “엄연히 우리 구단 감독님이고 아직 계약 기간도 남아 있는 분인데 어떻게 시즌 중에 거취 관련 소문과 기사가 나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만약 우리 구단이 프로구단이었어도 그런 기사를 쓸 수 있었을지 의문”이라며 “구단 내부에서도 ‘야구계가 우릴 존중하지 않는 상황에서 계속 야구단을 운영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자조 섞인 이야기가 자주 흘러나왔다”고 전했다.

원더스 해체가 발표된 다음 날. 고양구장은 몰려온 야구인과 기자들로 하루 종일 붐볐다. 이를 지켜본 한 원더스 직원은 “창단 이후 처음으로 존중받는 기분”이라며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싶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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