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은 문중에 물어보고 만들라고?
  • 하재근│대중문화 평론가 ()
  • 승인 2014.09.18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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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의 악역 배설 문중, 제작진 고소 예정

경주 배씨 문중이 영화 <명량>의 역사 왜곡으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다며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을 접수한 데 이어 감독 등 제작진을 경찰에 고소할 예정이라고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영화 속에서 경상우수사 배설은 이순신 암살을 시도한 후 거북선을 불태우고 달아나다 아군의 화살에 맞아 죽는 인물로 그려지는데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배설은 조선 수군이 전멸한 칠천량해전 때 판옥선 12척을 이끌고 이탈한 장수로, 한산도 삼도수군통제영으로 가 막대한 조선의 군수 물자를 모두 불태운 후,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이순신 장군에게 함대 지휘권을 넘긴 인물이다. 그가 한산도의 군수 물자를 불태운 것은 조선수군이 궤멸된 상황에서 조선의 물자가 왜적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막은 전략적 조치였다. 그는 명량해전 직전에 수군을 이탈했는데 정확히 어떤 심경에서 그 같은 행동을 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이순신 암살을 시도한 적도, 거북선을 불태운 적도 없다. 다만 전장에서 도망친 죄로 목이 잘렸을 뿐이다. 그런데도 <명량> 제작진은 그에게 거북선을 불태우고 도망가는 캐릭터를 부여했다. 배씨 문중은 이것이 역사 왜곡이며 후손들이 이로 인해 조롱을 받는 등 피해가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의 한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과거 역사 인물과 현대인 무슨 상관 있나

얼마 전엔 <기황후>와 관련해 역사 왜곡 논란이 있었다. <명량>이 배설을 과도하게 악인화했다면, <기황후>는 기황후를 과도하게 미화했다. 기황후는 고려의 자주성을 회복하려는 공민왕의 조치에 반기를 든 인물로, 우리 민족 입장에선 반역자라고 할 수 있는데 드라마는 오히려 민족의 영웅으로 그린 점이 문제가 됐다. 이런 논란에 대해선 ‘창작물은 창작물로 보자’는 입장과, ‘당신 조상이 역적으로 표현됐어도 가만히 있겠느냐? 역사 왜곡은 안 된다’는 입장이 충돌한다.

<기황후>처럼 우리 민족의 역적을 영웅으로 그린다든지, 아니면 영웅을 역적으로 그리는 데는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이완용을 항일 영웅으로, 백범 김구를 매국노로 그린다면 아무리 창작물이라 해도 용납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도로 심한 경우가 아닌 일반적 상상의 범주라면 창작물에 역사적 엄밀성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과하다.

요즘 역사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사극의 표현을 실제 역사라고 오해한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 문제는 창작물에 대한 단속 강화가 아닌 역사 교양 교육의 강화로 풀 일이다. 사극을 퓨전 사극과 정통 사극으로 나누어, 퓨전 사극에선 엄밀한 역사적 사실을 구하지 않는 지혜도 필요하다. <명량>의 경우엔 철저한 고증을 강조한 정통 사극적 성격이 있었는데도 실존 역사 인물을 왜곡했기 때문에 아쉬움은 남는다.

작품적으로 아쉬움이 있다고 해서 문중의 대응이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배씨 문중은 배설 장군에 대한 악의적 묘사 때문에 후손들이 피해를 볼 우려가 있다며 소송까지 불사하겠다는 것인데, 임진왜란 당시의 인물과 현대인 사이에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일까. 아무런 상관이 없다. 서로 다른 생각과 취향을 가지고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일 뿐이다.

이렇게 관련성이 없는데도 한국에선 사극의 표현에 대해 문중이 거칠게 반응한다. 문중이 소송을 건다고 해도 직계 후손이 아닌 한 재판부에선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소송과 항의에 시달리는 자체가 상당한 스트레스로 제작진을 압박한다. 과거 <허준> 제작 당시 최완규 작가에게 방송사에서 만든 상당한 두께의 ‘문중 항의 관련 지침’이 전달됐다고 한다. 워낙 사극 제작진이 문중의 항의에 시달리다 보니 아예 관련 매뉴얼까지 준비한 것이다. 이렇게 준비한 덕분인지 <허준>은 나중에 진주 류씨 문중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류의태라는 가공의 인물을 이상적인 의술인으로 그려 류씨 문중이 류의태를 족보에까지 올린 것이다. 이렇게 문중의 명예를 훼손한 작품엔 거칠게 항의하지만 문중의 명예를 드높인 경우라면 실제 역사가 아닌데도 환영한다. 문중의 위신이 올라가면 그것이 곧 문중이라는 집단의 구성원, 이른바 후손들의 위신까지 함께 올려주게 된다는 관념 때문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몇몇 문중 어르신의 고루한 관념이 아니다. 네티즌도 역사 인물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를 보고 그 인물의 후손을 싸잡아 조롱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 사회엔 한 개인의 독자적인 개성·취향·능력보다 그가 속한 집단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몇 백 년 전 인물과 현대인 사이에 아무런 상관이 없음에도 그 인물이 한 집단을 대표할 경우 해당 집단이 그 인물의 명예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 명예가 곧 나의 명예이며 나의 이해관계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영화 에서 조선수군의 작전회의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문중·학교·고향으로 한 덩어리 되는 전근대성

한국의 언론은 고위층 인사들에 대해 출신 학교나 출신 지역으로 분류하기를 즐긴다. 그들이 각각 어떤 개성을 가진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느 지역 사람인지, 어떤 학벌 사람인지로 구획될 뿐이다. 네티즌도 물의를 일으킨 사람에 관한 기사를 보면 결국 고향과 학벌을 따진다. 전라도 출신이면 전라도를 싸잡아 조롱하고 경상도 사람이면 경상도를 욕한다. 고려대 출신이면 고려대를 욕하고 이화여대 출신이면 이화여대를 난타한다. 개인 이전에 집단이라는 인식을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 집단의 이름 아래 생면부지의 사람도, 몇 백 년 전의 사람도 ‘우리 모두 하나’가 된다.

부모들은 어떻게든 자식을 강한 집단의 일원으로 만들어주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입시 경쟁이다. 학벌을 취득한 아이들은 학벌 간판의 명예를 드높이려 경쟁한다. 요즘엔 인터넷에서 자기 학벌을 높이고 다른 학벌을 깎아내리는 댓글 싸움까지 벌인다. 그렇게 집단의 명예를 올리는 것이 바로 자신의 이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회에 진입하면 동창회나 향우회 등을 찾아다니며 강한 집단의 일원이 되려 하고 그런 것이 결국 파벌사회의 바탕이 된다. 각각의 파벌이 자기들 집단의 명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판에 가장 전통적인 파벌 집단인 문중이 사극의 표현에 대범하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한마디로 한국 사회에선 아직 근대적 개인이 정립되지 못했다.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 문중으로, 학교로, 고향으로 한 덩어리가 되는 전근대적 사회다. 봉건 사회에선 모르는 사람에 대해 파악할 때 조상과 출신 등을 물었다. 그가 속한 집단, 즉 배경이 바로 그를 말해주기 때문이다. 반면에 근대 사회에선 각 주체의 신념, 취향 등이 중요하다. ‘나’는 그저 ‘나여서 나’일 뿐이지 ‘어디에 속한, 누구의 자손인 나’가 아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비로소 우리는 사극에서 조상을 지우고 볼 수 있게 된다. ‘디지털 코리아’ ‘다이내믹 코리아’를 외치는 21세기다. 이제는 개인이 주체로 홀로 설 때도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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