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는 거짓말 탐지기도 속인다
  • 김형자│과학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9.18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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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타고난 거짓말쟁이 하루 평균 1.5회 거짓말

“어머~ 사모님이 미인이시네요.” 탄성이 터질 정도로 예쁘게 생기지도 않았는데, 지인의 아내에게 거짓 감탄사를 내뱉는다. 선의의 거짓말이 인간관계를 잘 지키는 예절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는 이처럼 크고 작은 거짓말들이 오간다. 예의상 하는 하얀 거짓말, 악의적인 새빨간 거짓말 등등.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사람들은 하루 평균 1.5회씩 거짓말을 하고,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서도 10분 만에 거짓말을 3번이나 한다.

선의의 거짓말이든 악의적인 거짓말이든, 거짓말을 하게 되면 언어에 변화가 일어난다. 악의적인 경우, 말이 잠시 끊기면서 유창함이 떨어지고 억양이 단조로워진다. 시선을 회피하거나 손동작이 감소할 수도 있다. 이에 반해 눈 하나 깜짝 않고 얼굴색 변화 하나 없이 거짓말하는 ‘강심장’도 있다. 어떻게 이처럼 뻔뻔하게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

거짓말 잘하는 사람은 대체로 말 빨라

거짓말을 할 경우, 사람이 느끼는 긴장감은 자율신경에 의해 지배된다. 자율신경은 소화기관의 운동처럼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반응하는 신경이다. 사람이 밥을 먹으면서 ‘나는 절대 소화하지 않을 테야’라고 아무리 의지를 드높여도 위와 장은 음식을 소화한다. 위장 운동이 자율신경계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거짓말을 하면 혈압이 높아지고 맥박이 빨라진다. 높아지는 정도가 다소 약할 수는 있어도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낮아지는 일은 없다.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표정 변화에 거짓말의 단서가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는 일반인이 알아채기 어려운 미세한 얼굴의 움직임, 손동작, 말의 속도, 몸짓, 체온, 목소리, 동공 크기 순으로 단서가 나타난다.

에드워드 가이젤먼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심리학과 교수에 따르면,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은 대체적으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짧게 하는 게 특징이다. 적게 말하고 세부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뭉뚱그려 대충 넘어가려 든다. 말을 많이 하게 돼 많은 정보를 드러내면 허점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게다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말은 갈수록 속도가 빨라진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말하는 속도가 변하지 않고 일정한 데 반해, 거짓을 말하는 사람은 꾸며낼 이야기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처음엔 천천히 말하다가 뒤로 갈수록 빨라진다는 게 가이젤먼 교수의 설명이다. 훈련된 전문가들은 이러한 단서를 근거로 상대의 거짓말 여부를 확인하는데, 정확도는 95% 이상을 자랑한다.

사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인지적으로 생각에 부하가 걸리기 때문이다.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는 얘기다. 상황을 단순히 부정하는 거짓말이나, 그냥 자신이 실제 경험한 사실을 말하지 않고 뭔가를 꾸며내야 할 때 우리의 뇌는 많은 일을 한다. 앞뒤 계산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그렇게 날조된 거짓말을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어야 하기에 뇌는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미국 템플 대학 연구팀 논문에 따르면, 생각에 부하가 걸리면 정서에도 부하가 걸리고, 이때부터 감정이 뜻대로 통제되지 않아 자기도 모르게 표정이나 몸짓, 목소리가 평소와 달라지게 된다. 그런 반면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마치 거짓을 진실인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건 일종의 병이라는 것. 그렇다면 병적으로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들은 과학적으로 어떤 상태에 놓인 걸까.

병적 거짓말 환자를 꼼꼼히 분석하면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위기 상황만 되면 뇌에서 충동조절 물질인 세로토닌이 적게 분비돼 순간적으로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또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해야 직성이 풀리고 그렇지 않으면 안달이 나서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마지막으로 선천적으로 타고난 연기자처럼 거짓말을 지어내 떠벌리면서 자신도 철석같이 믿는 경우다. 자신의 거짓말이나 망상을 현실과 혼동해 사실로 믿어버리는 증상을 ‘공상 허언증(虛言症)’ 또는 ‘리플리 증후군’이라고 한다.

공상 허언증 환자는 거짓말을 진실로 믿어

공상 허언증 환자는 자기가 하는 말은 모두 다 진실이라고 스스로 믿는 부류의 사람이다. 돈·명예 등 겉으로 드러나는 특정 목표를 이루기 위해, 또는 자신의 내부에 스스로 만들어낸 환상을 믿기 위해 거짓말을 밥 먹듯 하게 된다. 자신을 최대한 미화해서 포장한 절묘한 연기와 거짓말은 처음 본 사람들에게 피상적 매력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아이돌 그룹 멤버의 사촌언니 행세와 유명 프로야구 선수의 애인 행세 등을 일삼고, 세월호 침몰 사고 때 자신을 민간 잠수부라고 속여 공분을 산 사람이 대표적이다.

공상 허언증 사람들은 보통 지적으로 영리하기 때문에 정서적 공감 능력이 결여됐음에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위로하거나 공감하는 연기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심지어 가족을 속이고 조종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이 거짓말을 반복할 경우, 뇌는 그것에 익숙해져 거짓을 착각하고 사실처럼 기억하게 된다. 따라서 당사자는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스스로 진실이라고 믿는 경향이 강해져 거짓말의 단서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거짓말 탐지기로도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다.

인간이라면 어느 정도의 허언 증세는 갖고 있기 마련이다. 성공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할 수 있다’고 다짐하는 것도 일종의 허언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긍정적이다. 문제는 스스로를 속이는 ‘자기기만’이다. 자신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도 일종의 자기기만이라 할 수 있다. 자기기만은 때론 편익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심각한 문제를 야기해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악의 없는 거짓말이 어느 정도 필요하기도 하다. 하지만 도가 지나친 거짓말은 스스로 그 덫에 걸려 되레 낙오자가 되게 할 수 있다. 인간은 거짓말을 통해 진화한 ‘타고난 거짓말쟁이’다. 그렇다고 정직이 가지는 가치를 버려서는 안 된다. 거짓말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정직이 가지는 가치를 지키려 할 때 우리는 지금보다 더 나은 세계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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