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에서 시곗바늘 멈춰버린 새정치연합
  • 엄민우·이승욱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4.09.24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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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선 이후 지금까지 표류하고 있는 배가 있다. 아무도 키를 잡으려 하지 않으면서 누군가 선장이 되면 각자 목소리를 높인다. 결국 선장은 쫓겨나고 또 다시 표류한다. 그 배의 이름은 ‘새정치민주연합호’다. 계파는 계파대로, 잠룡은 잠룡대로 제 살길만 찾는 새정치연합은 이제 ‘하나의 당’이라고 부르기 힘든 지경까지 왔다.

 

“당내 강경 기류를 주도하는 이른바 ‘친노’(親盧) 일부는 당이 처한 공동체 위기에 대한 고민 없이 자신들한테 불리하면 지도부를 흔들어댄다. 아직도 그 못된 버릇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렇다고 진보 진영에서 존경을 받느냐 하면, 또 그것도 아니다. (친노의) 자발적 협조를 기대하기도 힘든 상황이고, 그들하고 멱살잡이하고 싶지도 않다.” ‘이상돈 비대위원장 영입 논란’ 이후 새정치민주연합의 새로운 비대위원장 후보로 거론됐던 야권의 한 인사는 비대위원장 자리를 고사했던 속내를 기자에게 털어놓았다. 어차피 진흙탕에 빠질 게 빤한데 ‘더러운 싸움’에는 휘말리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그의 말 속에는 ‘친노’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거부감이 가득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이는 지금 그 누구도 표류하는 ‘새정치연합호’의 선장을 맡으려 나서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면에 나선다 하더라도 특정 세력에 휘둘려 권한은 없고 책임만 질 게 훤하다는 것이다. 이미 ‘새 정치’를 기치로 내걸며 야심 차게 출발했던 김한길·안철수 체제도, 재보선 참패 후 구원 등판한 박영선 체제도 깊은 내상을 입고 좌초했다. 두 번의 위기가 반복됐지만 ‘새정치연합호’는 여전히 표류하고 있다. 물론 날씨나 조류를 탓할 수도 없다. 비교적 정치적으로 상황이 좋은 때에도 야당의 표류는 계속됐기 때문이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선 당시는 세월호 참사로 인해 오히려 정치적으로 (야당에) 유리한 환경이었지 않나. 이 속에서 실패했다는 것은 정부·여당 핑계를 댈 것도 없이 (야당) 내부적 문제”라고 진단했다.

60년 뿌리의 정통 야당이자, 원내 130석 거대 정당의 몰락은 도대체 어디에 기인하는 것일까. 당 안팎을 막론하고 흔히 계파 갈등을 거론하는 이가 많다. 하지만 계파 갈등의 거죽을 한 꺼풀 벗기면 당내 리더십 문제로 귀결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근 제1 야당의 자중지란을 보는 새로운 시각이 나오고 있다. 이른바 ‘상황론’으로, 책임을 피하고 선사후당(先私後黨) 하려는 대권 잠룡들과 계파 이익에만 급급한 당내 계파 중진들에 대한 비판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의 시선은 오로지 2년 후의 총선과 3년 후의 대선에만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상돈 교수 영입 파동을 거치면서 친노 그룹의 대주주 격인 문재인 의원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지고 있다. 문 의원은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와 맞붙어 48%의 표를 얻었다. 그는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늘 야권 차기 대권 주자 1, 2위를 다툰다. 지난 대선 이후 친노 세력은 크게 약화했고 ‘친문(親文)’으로 분화됐다고 하지만, 그는 여전히 범(汎)친노를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인식된다. 대선 후 2년이 흘렀지만, 새정치연합의 시곗바늘이 2012년 대선 당시에 머물러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지난해 국회의 한 토론회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정치권 인사가 한창 축사를 하던 도중 행사장 뒤편에서 갑자기 문 의원이 들어왔다. 회색 정장을 입은 그의 모습은 검은 정장 차림의 사람들 속에서 더욱 튀어 보였다. 행사장에 있던 카메라 및 사진기자들은 그에게 우르르 몰려들었고 조용히 축사에 귀 기울이던 청중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를 무시하고 묵묵히 축사를 하던 정치인 입에서 이윽고 “허허 참”이라는 실소가 터져 나왔다. 이 모습은 새정치연합의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여전히 대권 후보로 인식되는 ‘문재인’이라는 존재는 늘 카메라를 몰고 다니고, 이로 인해 당의 공식적 메시지나 지도부의 권위는 무력해진다.

첨예한 이슈 때마다 당 지도부 흔들어

문 의원은 긍정적인 스포트라이트만 받는 것이 아니다. 당내 분란의 한가운데 그는 항상 서 있기도 했다. 이상돈 교수 영입 과정과 관련해 문 의원의 책임론이 당 안팎에서 확산되고 있다. 문제는 단순히 책임론뿐 아니라 그동안 보여온 행보를 바탕으로 그의 역할론에 대해서까지 회의적 분위기가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교수 영입 파동과 관련해 새정치연합 ‘비노(非盧)’ 진영의 한 인사는 “‘선당후사’해서 본인이 직접 앞에 나서든지, 그게 아니면 적극적으로 밀어주든지 해야 하는데 매번 뒤에서 움직이면서 책임을 피하려는 모습은 보기 안 좋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일각에서는 박영선 원내대표가 이 교수 영입 과정에서 굳이 왜 문 의원을 찾아가 ‘사전 승인 작업’을 거쳐야 했었는지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고위 당직을 맡았던 새정치연합의 한 중진 의원은 “나는 물론, 다른 당내 고위 인사도 이 교수 영입과 관련해 아무런 언질을 듣지 못했다. 왜 굳이 문 의원만 최종 결재자 노릇을 하게 한 것이냐”고 불만을 제기했다.

문 의원의 과거 행적을 보면 왜 박영선 대표가 그에게 따로 동의를 구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사실상 그에게 암묵적으로라도 동의를 얻어야 향후 역풍을 덜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선이 끝난 후 첨예한 정치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문 의원이 당 지도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종종 보여왔던 사실을 박 대표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당 지도부와 괴리된 그의 엇박자 행보는 지난해 6월 정국을 뜨겁게 달군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문제가 터졌을 때부터 시작됐다. 대화록 유출과 관련해 한창 김한길 지도부가 여당 및 국정원과 대치하고 있을 때 문 의원은 돌연 “대화록을 공개할 것을 제의한다”는 긴급성명을 발표했다. 당시 지도부는 충분한 협의 없이 이뤄진 문 의원의 돌발 행동에 대해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이후로도 문 의원은 한 달여 동안 트위터와 블로그 등을 통해 5차례, 성명서로 2차례 대화록 및 NLL과 관련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올 3월 기초선거 공천 폐지를 놓고도 당 지도부와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당시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가 ‘기초선거 공천 폐지’를 명분으로 통합을 선언한 이후, 문 의원은 “당원 의견을 물어야 한다”고 딴소리를 했다. 결국 기초 공천 폐지는 무산됐고 이는 안철수 의원에게 큰 타격을 주는 결과를 낳았다. 재미있는 것은 기초 공천 폐지는 문 의원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문 의원은 지난 7·30 재보선 때 광주 광산 을 지역구에 출마했던 권은희 후보 지원 유세를 할 예정이었으나 “철야 투쟁 등을 새벽까지 진행했고 급한 일정이 생겼다”는 이유로 갑자기 당일 못 가겠다고 통보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운데)가 8월20일 서울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서 유가족 김영오씨와의 면담을 마친 후 농성장을 나서고 있다. 오른쪽은 문재인 의원. ⓒ 연합뉴스
“문 의원은 지금도 자신이 대선 후보인 줄 알아”

세월호 특별법과 관련해서도 문 의원의 과도한 대응을 문제 삼는 이가 적지 않다. 세월호 특별법 파기 과정에서 박 원내대표의 소통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지만, 차기 대권 주자로 분류되는 그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다. 박 원내대표가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한창 협상 중일 때, 돌연 문 의원은 의원총회에 불참하고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역시나 당 지도부로 쏠려야 할 방송 카메라는 문 의원에게 몰려갔다. 그 결과 협상은 결렬되고 박 원내대표도 떠밀리듯이 거리로 나가게 됐다.

문 의원의 일거수일투족은 그의 진심과는 상관없이 대권 도전을 위한 행보와 직결될 수밖에 없다. 차기 대권에 대한 그의 욕심이 지금의 정국에서 그를 나서지도, 가만히 있지도 못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비노로 분류되는 한 새정치연합 중진 의원은 “당을 위해 정치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여전히 그는 아직도 자신이 대선 후보인 줄 안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당내 비노 인사 역시 “사실 문 의원은 청와대 생활을 오래 했지만 당직 생활은 별로 하지 않았다. 이제 좀 당을 위해 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텐데…”라며 아쉬움을 전했다.

이런 행보가 계속되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희웅 정치컨설팅 ‘민’ 여론분석센터장은 “문재인으로서는 대권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니 당의 방향에 영향은 미치되 본인이 상처 나는 상황이나 책임은 회피하고자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사태가 계속되면 친노에서도 그의 리더십을 의심하게 되고 다른 대체 주자를 찾고자 하는 고민이 생길 수 있다. 실제로 이번 이상돈 사태에서 친노에 대한 그의 통제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음이 증명됐다”고 분석했다.

대권 주자는 불구덩이에 뛰어들지 않으려 하는 것이 정치권의 인지상정이지만 지금 새정치연합의 상황은 도가 지나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아무도 선장을 맡으려 하지 않으면서 당이 더욱 표류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런 비판은 문 의원뿐 아니라 다른 대권 주자들도 피할 수 없다. 이현우 서강대 교수는 “(잠룡들은) 상황이 좋을 때뿐만 아니라 당이 어려울 때 방향을 제시하고 다수 의견을 모으는 역량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와중에 계파 관리?…안철수도 비판 입길

안철수 의원은 지도부에서 물러난 후 그야말로 정중동(靜中動) 행보를 보이고 있다. 당이 겪고 있는 사태와 관련해서도 단 한마디 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도 조용히 각 계파 의원들과 접촉하고 있다. 김한길 전 대표와의 연락도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조용히 ‘자신의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때 안 의원의 최측근으로 통했던 한 인사는 “안 의원의 목표는 오로지 2017년 대선일 수밖에 없다. 그 전도, 그 다음도 없다. 오직 그 한 목표만 보고 갈 것”이라고 말했다. 

손학규 전 상임고문 역시 보이지 않는다. 손 전 고문은 재보선 패배 이후 정계 은퇴 의사를 밝히고 전남 강진의 초막으로 들어가 칩거 생활을 하고 있다. 손 전 고문 주변에서는 “본인 심정은 이해하지만 이런 때야말로 그가 필요한데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홍익표 의원은 “기회가 되면 여러 가지 도움도 청하고 싶고, 우리 당을 위해 일을 해주셔야 한다고 꼭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했다. 손 전 고문과 대립되는 측에서는 “2017년 대선까지 아직 남은 시간이 너무 많아 칩거에 들어간 것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제기하기도 한다. 모든 것이 의심과 불만, 비판 그리고 아쉬움으로 점철되는 게 지금 제1 야당의 현주소다.   

 


새누리는 하는 ‘혁신’ , 정작 새정치는 못해 


“새정치연합은 사무국 체계가 아직 미흡해요. 새누리당은 잘 돌아가죠?”

“경험이 많아서 그런지, 요구하는 자료가 바로바로 사무국에서 들어와요. 전날 회의 내용도 그 다음 날 정리돼서 바로 책상 위에 올려지고. 그런 면은 참 프로페셔널해요.”

“부럽네요. 그런 점은 우리도 좀 배워야 해요. 교수님이 좀 도와주세요.”

박영선 새정치연합 원내대표가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에게 비대위원장을 제안하며 나눈 대화 내용이다. 

18대 대선에서 승리한 박근혜 대통령의 일등공신 중 하나는 ‘경제민주화’라는 의제였다. 경제민주화를 선점한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경제 양극화를 우려했던 중도층을 흡수하며 표의 확장성을 도모할 수 있었다. 자신들의 단골 의제를 빼앗긴 야당과 진보 진영에는 뼈아픈 대목이다.

경제민주화뿐만이 아니었다. 새누리당에 선점당한 단골 메뉴는 하나 더 있다. 바로 ‘혁신’이라는 두 글자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당 쇄신을 전면에 내세우며 외부 인사를 영입하는 대규모 혁신을 추진했다. 전면적인 당 혁신을 통해 새누리당은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연거푸 승리를 거머쥐었다.

야당이 새 정치를 화두로 내걸고도 자중지란을 겪는 동안 새누리당에 혁신은 핵심 의제가 돼버렸다. 지난 7·14 전당대회에 출마한 김무성 대표는 혁신의 이미지를 강조해 당선됐고, 최근 자신의 대권 라이벌인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를 혁신위원장으로 임명하는 등 혁신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지난 6월 장관을 지낸 4선의 중진 의원(정병국)에게 29세의 혁신위원장(이준석 전 비대위원) 밑에서 혁신위원을 맡으라고 해도 당을 위해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새누리당의 모습이다. 혁신위를 출범시킨 새누리당은 7월 재보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그렇다면 왜 개혁 세력이라고 자부하는 야당에 혁신의 효과는 나타나지 않을까. 윤희웅 정치컨설팅 민 여론분석센터장은 “보수 정당은 질서 및 권위 존중, 결정 수용 등의 문화가 형성돼 있는데 진보 정당은 외부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성장해왔다”며 “그러다 보니 내부 질서를 잘 형성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종의 착시 현상이라는 의견도 제시했다. 윤 센터장은 “새누리당은 계파가 2개여서 오히려 선순환 효과가 있다”며 “한쪽이 잡았다가 다른 쪽이 잡으면서 권력이 교체되니 대중은 마치 당이 변화한 것처럼 인식한다”고 말했다. 반면 “새정치연합은 계파가 4~5개씩 되니 선순환 효과보다는 부작용이 더 심하다”고 진단했다.

김태일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당내 계파끼리) 혈전을 벌였다고 하면 과거 새누리당 내부의 친이-친박계가 지금의 친노-비노보다 더 심했다”며 “하지만 보수 진영의 본질적인 성격인지 몰라도 새누리당은 결정을 하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였는데 새정치연합은 전혀 아니다. 자기 이익에 대한 집착이 더 심하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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