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의 경영자’ 본색을 드러내다
  • 김원식│뉴욕 통신원 ()
  • 승인 2014.09.24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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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그림자에서 벗어나려는 팀 쿡 애플 CEO

“잡스는 죽었지만 죽지 않았다. 그는 제품 출시에 열정을 다 바침으로써 죽음을 초월했다. 이것이 바로 그가 남긴 유산이다.” 지난 3월 스티브 잡스 전 애플 CEO 사후 200여 명의 애플 직원을 인터뷰해 <유령의 제국: 잡스 이후의 애플>이라는 책을 펴낸 월스트리트저널 기자 출신인 유카리 케인은 잡스를 이렇게 평가한다.

잡스가 사망한 지 3년이 되어가지만 여전히 대다수 사람은 ‘애플’을 말할 때 현 CEO인 팀 쿡이 아니라 스티브 잡스를 먼저 떠올린다. 케인의 책 제목처럼 애플은 잡스의 유령으로 가득 찬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애플이 거대 제국으로 성장하는 데 잡스의 공이 탁월했던 이유도 있지만 반대로 잡스 사후의 애플에 대한 우려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이 의문은 반대로 팀 쿡이 잡스의 유산을 어떻게 이어갈지로 모아졌다. 애플은 잡스가 독재하는 개인 회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상품 개발과 디자인은 물론 판매 전략까지 잡스가 손대지 않은 부분이 없었고, 잡스의 생각과 다른 의견이나 아이디어는 빛을 보지 못했다. 애플의 모든 직원은 잡스의 생각에 초점을 맞췄다. 애플의 한 직원이 자신의 차 번호판을 ‘WWSJD’(What Would Steve Jobs Do?:스티브 잡스는 무엇을 하려고 할까?)로 달고 다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를 보좌한 쿡도 이런 직원과 다를 바 없었다.

큰 화면을 가진 아이폰6가 출시되면서 팀 쿡 애플 CEO의 ‘잡스 벗어나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AP연합
“잡스, 당신과 같은 층에 작은 사무실 달라”

잡스는 무대 위의 스타였고, 쿡은 무대 뒤의 매니저였다. 별로 알려진 게 없었다. 잡스는 이상주의자지만 쿡은 실용주의자라고 말한 게 그나마 몇 안 되는 평가의 전부였다. 미혼이고 친한 친구도 알려진 바 없을 정도로 비사교적이며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기를 기피하는 쿡을 두고 그의 일부 동료들은 ‘텅 빈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쿡은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지 않고 철저히 잡스의 뒤를 받쳤다.

2011년 8월 병마에 시달리는 잡스 대신 CEO에 취임한 쿡은 처음으로 애플 전 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애플이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려주고 싶다”며 “잡스가 전 세계에서 전대미문의 기업과 문화를 창출했다. 이것이 우리의 유전자(DNA)이며 우리는 함께 앞으로도 애플을 최고로 매력적인 기업으로 만들 것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그랬던 쿡이 9월9일 들고나온 ‘아이폰6’는 평소 잡스가 “큰 화면의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며 쳐다보지도 않던, 바로 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애플에서 쿡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켜고 있다는 신호탄으로 언론들은 해석하고 있다.

쿡은 잡스만큼이나 일에 미친 사나이로 알려져 있다. 1960년생, 올해 54세인 쿡은 매일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한 다음 6시에 일을 시작한다. 아버지가 조선소에서 일하던 플로리다 주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쿡은 앨라배마 주 로버츠데일로 이사해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마쳤다. 이후 그는 오번 대학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한 후 듀크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받고 IBM에서 일했는데 약 12년간 개인용 컴퓨터 사업 북미 총괄 책임자로 일하면서 사업 수완을 쌓았다. IBM에 있을 때도 크리스마스이브와 새해 전날의 업무를 자청해 맡을 정도였다. 이후 컴팩으로 옮겼다가 잡스의 제안으로 1998년부터 애플 임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쿡은 잡스에게 “당신과 같은 층 구석에 작은 사무실을 달라”고 요구했다. 보스인 잡스가 무슨 행동을 하며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등을 알기 위해서는 가까이에서 지켜봐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애플의 성장 과정에서 쿡의 역할은 두드러졌다. 잡스가 애플의 혁신을 담당했다면 쿡은 애플의 안정성을 떠맡았다. 월가에서는 그를 ‘업무 운영의 달인’이라고 불렀다. 애플은 전 세계에서 수요·공급을 예측해야 하는 기업이다. 쿡은 제품의 공급을 매우 세밀하게 운영했다. 과거 몇 주 단위였던 상품의 재고 물량은 쿡이 운영하면서 16시간 단위까지 예민하게 조절됐다. 신제품을 투입하다 재고 관리에 실패해 결국 가격을 대폭적으로 인하하는 악순환을 대다수 회사가 자주 겪지만 애플은 그 부분에서 자유로워졌다. 실제로 애플의 경우 제품 주기의 마지막 시기쯤에는 재고가 거의 남지 않는다. 온화한 어조로 말하며 매우 꼼꼼하게 일하는 쿡은 정반대 성격의 잡스에게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이처럼 두각을 나타낸 쿡이 잡스의 후계자가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동료들에게는 일하는 기계처럼 평가되지만 일부는 그의 감춰진 성공 비결을 알아내기 위해 마치 잡스 옆에 사무실을 낸 쿡처럼 그에게 접근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아침 운동도 애플의 본사 안에 있는 체육관이 아닌 다른 곳을 이용하며 회사 밖에서는 회사에 관한 이야기를 절대 하지 않는 등 그런 주변의 접근을 반기지 않는다. 2인자 역할에 충실했던 성격이 CEO가 된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그가 잡스를 버리지 않았다는 징후는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지난 9월9일 쿡이 “애플 역사의 새로운 시작”이라고 평가하며 아이폰6와 시계 형태의 웨어러블 기기인 애플워치를 발표한 장소는 애플 본사 근처에 위치한 유서 깊은 극장이다. 이곳은 30년 전 잡스가 PC인 ‘매킨토시’를 발표했던 곳이다.

잡스의 철학 손에 쥔 채 변화 추구

신제품 출시에 관해서도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킨다’는 잡스 노선을 답습 중이다. 그는 올해 초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정말 대단한 것을 작업 중”이라며 “상식적이라면 이 제품이 새로운 범주가 아니라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띄운 바 있다. 쿡 스스로도 아이폰 시리즈가 가진 한계를 인정하는 발언이었다. 발표회 이후인 9월12일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도 “계속해서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 중 하나는 TV다. 지금 TV는 사용자 편의 측면에서 1970년대 수준에 갇혀 있다”면서 혁신적 제품을 준비하고 있음을 거듭 밝혔다.

물론 그 사이에 쿡은 자신의 신념을 바탕으로 한 영업 활동을 전개해왔다. 트위터 등으로 환경 보호와 동성애 옹호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직원 모금액과 동일한 금액을 회사가 내는 자선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지속 가능한 제품의 사용에 힘을 불어넣는 등 잡스와 다른 철학을 경영에 도입하고 있다. 최근에는 잡스가 오랫동안 적대시했던 IBM과 업무 제휴를 단행했고, 삼성과의 특허 소송 대다수를 철회하는 등 잡스 노선으로부터의 전환을 진행 중이다.

잡스의 그림자가 깊은 만큼 모든 게 한꺼번에 바뀔 수는 없다. 잡스와 쿡을 모두 잘 아는 애플의 디자인총괄 수석부사장 조나단 아이브는 애플의 미래에 관해 질문을 받으면 이렇게 말한다. “스티브도 고심하고 있었다. 그것은 팀도 마찬가지다.” ‘팀 쿡의 애플’은 여전히 변화를 고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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