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기업들, 브라질 에서 삼바춤 추다
  • 브라질 상파울루=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4.09.24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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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동국제강, 5조원 투자 효과 CSP제철소 건립 삼성전자·LG전자·현대기아차 ‘쑥쑥’

적도 바로 아래에 위치한 브라질 최대의 관광도시 포르탈레자(Fortaleza).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브라질과 콜롬비아의 8강전이 열린 곳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포르탈레자 공항에서 자동차로 1시간 30분을 달려가면 페셍(Pecem) 산업단지가 나온다. 현존하는 브라질 최대 프로젝트가 현재 이곳에서 진행 중이다. CSP제철소 건립 현장이 그것이다. CSP제철소는 한국의 포스코와 동국제강, 브라질 최대 철광석 공급업체인 발레가 합작한 회사다. 2016년 2월 제철소가 완공되면 300만톤의 슬래브가 이곳에서 생산된다.

CSP제철소 건립을 총괄하는 곳은 포스코건설이다. 덕분에 포스코 계열사와 27개 협력업체가 브라질에 동반 진출할 수 있었다. 가장 큰 협력업체인 동양종합건설의 경우 현지 근로자만 1300명에 이른다. 정태화 포스코건설 브라질 법인장은 “국내 협력업체가 브라질 현지 업체보다 업무나 효율성 면에서 낫다”며 “한국에서 이미 호흡을 맞춘 전문 협력업체와 동반 진출하는 것이 외화벌이나 경쟁력 차원에서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① 포스코건설이 수주해 공사가 한창인 CSP제철소 현장. ② 상파울루 모룸비 지역의 대형 쇼핑몰에서 판매 중인 삼성전자 TV. ③ 한 고객이 현대차의 브라질 고유 모델인 HB20을 살펴보고 있다. ⓒ 시사저널 이석
CSP제철소 투자 효과 5조원대 달해

제철소가 건립되면 가전 등 후방 산업이 추가로 진출하는 것이 순서다. CSP 현장에서 400㎞ 떨어진 해시피(Recife) 지역에는 열연·냉연 공장이 들어서기로 예정돼 있어 페셍 산업단지의 발전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CSP제철소에서 생산된 슬래브가 이곳으로 옮겨져 가공된 후 중남미 전역으로 수출된다. 정태화 법인장은 “브라질 정부는 최근 페셍 산업단지를 수출 경제특구로 지정했다”며 “국내 기업이 브라질을 통해 중남미 전체로 시장을 확대할 수 있는 거점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경제 효과는 더 크다. 4조7000억원의 공사비 중 절반 정도가 기자재 비용이다. 제철소 건립에 사용되는 기자재는 대부분 한국에서 공수한다. 이런 파급 효과까지 감안하면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크다. 김동호 포스코 브라질 CSP 사업단장은 “제철소 건립을 통한 실제 투자 효과는 5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포스코 등이 브라질에 진출하면서 겪은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고질적인 관료주의가 먼저 발목을 잡았다. 공사 현장의 출입증을 만드는 데만 일주일이 걸렸다. 직원을 뽑아놓고도 일을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한국에서 공수한 기자재를 현장에 들여오는 데 35가지 절차를 거쳐야 했다. 저효율 고비용 현상이 이어졌다. 현지에서 만난 주재원들은 이런 문제를 ‘브라질 코스트(cost)’라고 표현했다. 김동호 포스코 CSP 사업단장은 “한국에서 온 배가 기자재를 내리지 못해 4개월간 부두에 정박하는 것이 이곳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서 공기가 길어지고 투자비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교관이었던 김건화씨가 자신의 저서에서 ‘신이 내린 땅, 인간이 만든 나라’라고 브라질을 규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현지 노동자의 잦은 파업도 업체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브라질의 경우 노동자 보호를 위한 제도가 잘 정비돼 있다. 노동조합이 강성이라서 수시로 파업이 발생한다. 노사 갈등이 아니라 일방적인 ‘스트라이크’라고 한다. 지난 8월 중순 기자가 방문하기 직전에도 여러 차례 파업이 일어나 몇 개월 동안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는 파업이 끝나고 협력업체를 중심으로 출범한 외주관리센터를 통해 향후 대응책을 마련 중이었다. 언제 또 파업이 벌어질지 몰라 가슴을 졸이고 있었다. 안규영 포스코건설 전무는 “한국의 일부 인터넷 매체들이 노동조합 얘기만 듣고 관련 기사를 보도해 가슴이 아팠다. 현지 실상을 전혀 모르고 있다”며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지금은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했다”고 설명했다.

브라질 포르탈레자에서 국내선 비행기로 3시간 30분을 이동하면 상파울루에 도착한다. 공항에서 다시 차로 2시간여를 달려 신도심인 모룸비(Morumbi) 지역으로 갔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 강남에 해당한다. 이곳에서는 삼성전자·LG전자·현대자동차 등이 활발한 마케팅 활동을 벌이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올해 브라질월드컵을 계기로 시장 점유율이 크게 상승했다. 시장조사 기관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중남미 평판TV 시장 점유율은 올해 1분기 기준으로 각각 36.6%와 30.9%다. 두 회사가 브라질 평판TV 시장을 호령하고 있는 것이다.

코트라 상파울루 무역관에 따르면 브라질의 경제 성장률은 2010년 7.5%로 정점을 찍었다. 2011년부터 3년간 연평균 성장률은 2.1%에 머무르고 있다. 일렉트로룩스·월풀 등 다국적 가전 기업들은 현지 생산 공장 가동을 일시 중단했다. 그 때문인지 삼성과 LG는 역대 최고 점유율을 갱신하고 있다. 2012년 말 대비 삼성과 LG의 시장 점유율은 각각 14.7%와 18.4% 증가했다.

현지 사정에 맞는 특화 전략이 주효했다고 회사 측은 입을 모은다. 김창업 삼성전자 브라질 법인 부장은 “월드컵을 앞두고 TV에 사커 모드를 추가했다. TV를 보면 마치 경기장에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는 기능”이라며 “이런 전략이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8월18일 포르탈레자 페셍 산업단지의 CSP제철소 관계자들이 현지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석
고질적인 관료주의와 파업이 발목 잡아

삼성은 1998년 브라질 외환위기로 현지 생산시설을 철수했다가 2005년 다시 진출했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GfK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삼성전자의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시장 점유율(매출 기준)은 55%와 40%다. 브라질 유력 일간지인 ‘폴라 데 상파울루’가 실시한 2013년 브랜드 인지도 조사에서 삼성전자 제품이 6개나 ‘톱 오브 마인드(Top of Mind Award)’를 수상했다. 삼성전자는 전 부문을 통틀어 소비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인 ‘톱 오브 톱스(Top of the Tops)’까지 거머쥐었다. 손창완 삼성전자 책임은 “태블릿PC의 경우 브라질은 삼성전자가 전 세계에서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라며 “모바일의 경우 자체 개발 연구소까지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LG전자는 2013년 말부터 ‘수아 아레마(Sua Arena, Your Stadium)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경기장에 가지 않고도 TV나 홈시어터 등을 통해 경기장의 감동을 즐길 수 있다는 뜻이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주요 도로에는 LG전자 제품을 알리는 전광판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브라질 내에서 인지도나 고객 충성도만 보면 삼성보다 LG가 더 높다는 것이 현지 교민들의 평가다. LG전자는 1998년 외환위기 때도 현지 생산시설을 철수하지 않았다. 때문에 브라질 현지인들의 브랜드 로열티가 삼성보다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이다. 브라질 유력 일간지인 ‘폴라 데 상파울루’가 실시한 2008년 브랜드 인지도 조사에서 LG전자는 ‘톱 오브 마인드(Top of Mind)’에 선정됐다. 한국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LG가 포함됐다. 2010년에도 LG전자 노트북이 코카콜라·나이키·폭스바겐 등과 함께 ‘톱 오브 마인드’에 올랐다. 모니터의 경우 브라질에서 거의 모든 상을 휩쓸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삼성의 추격이 거세지면서 한국 기업들 간의 경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단기간에 브라질을 열광시켰다. 2011년 말까지만 해도 현대·기아차는 딜러를 통해 수출 제품을 판매했다. 최근 브라질 내수 시장이 위축되고, 오는 10월 실시되는 대선의 불확실성이 확산되면서 자동차 시장 역시 전년 동기 대비 9.7%나 줄어들었다. 하지만 현대차는 월드컵 마케팅 효과로 역대 최고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1~7월 판매 점유율은 7.1%를 기록했다. 피아트, GM, 폭스바겐, 포드에 이어 5위다. 브라질 진출 이후 처음으로 7%대를 돌파했다. 

철저한 현지화가 성공 진출 비결

현대차는 2012년 현지 법인(HMB)과 브라질 공장을 설립하면서 브라질 고유 모델인 HB20 등을 출시했다. 이 모델이 브라질 현지에서 말 그대로 대박을 터뜨렸다. 포드·도요타 등 브라질 시장을 선점하고 있던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도 현대·기아차를 벤치마킹할 정도다. 도요타의 경우 저가형 전략 모델인 에티오스의 가격을 3만5000헤알(1600만원)에서 2만9000헤알(1326만원)까지 낮추기도 했다. 브라질 고유 모델 점유율(5% 이상)까지 합하면 현대·기아차의 시장 점유율은 12%대에 달한다. 현지에서 만난 딜러 레아우두 벨로토(Lealdo  Belotto)는 “현대·기아차는 가격 대비 성능이 다른 브랜드와 비교도 안 될 정도다”며 “소형차 프리미엄급 시대를 개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브라질 유력 언론들도 “브라질 자동차 시장의 새로운 표준을 만들 차가 온다”고 극찬했다.

HB20은 지난 7월 글로벌 자동차 조사 기관인 JD파워가 발표한 종합 고객만족도(VOSS) 조사에서 소형차 부문 1위를 차지했다. 메이커 1위도 현지 법인 HMB가 차지했다. 이용우 현대차 브라질 법인장은 “품질과 디자인, 서비스 등을 지속적으로 혁신해온 점이 높게 평가된 것 같다”며 “향후에도 우수한 품질과 차별화된 서비스로 시장 경쟁력과 소비자 만족도를 높이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치안 불안으로 방탄차 타고 업무 본다 



국내 진출 기업들이 브라질에서 항상 승전보를 올리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불안한 치안은 현지 진출 기업의 큰 고민거리다. 삼성전자 법인은 원래 상파울루의 구도심에 위치해 있었다. 주요 공관이 모여 있던 곳이다. 얼마 전 이곳 사무실에 강도가 들었다. 이들은 금고를 털고 도망가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맞닥뜨렸다. 1층 로비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 이후 삼성전자는 법인 사무실을 지금의 모룸비 지역으로 이전했다.

브라질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한 직원은 퇴근하다 납치를 당했다. 괴한 3명이 신호 대기 중인 자동차에 총기를 들이댄 것이다. 이 직원은 브라질 빈민가인 파벨라로 끌려갔다. 현지 교민은 “파벨라는 한국의 빈민가와 다르다”며 “경찰조차 진입하지 못할 정도로 총기 사고가 빈번하다”고 설명했다.

결국 가족과의 협상 끝에 거액을 주고 이 직원은 풀려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충격으로 한동안 회사에 출근하지 못했다. 결국 이 직원은 한국으로 돌아갔다. 이후 한국 법인 상당수가 업무용 차량을 방탄차로 개조했다. 이곳에서 만난 한국 법인의 한 직원은 “비슷한 사고가 이곳에서 잦다. 강도를 만나면 꺼내줄 수 있도록 우리 돈으로 10만원(약 220헤알) 정도는 항상 지갑에 넣고 다녀야 한다”며 “반항을 하지 않으면 최소한 발포는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기자가 포르탈레자에 도착해 머무르던 숙소 주변에서도 두 건의 총기 사망 사고가 있었다. 이 중 한 건은 도착 하루 전에 발생했다. 날이 저물면 숙소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도 제한을 받았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고를 당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현지 직원이 퇴근을 하다 무장 괴한에게 납치를 당하는 것은 기본이다. 조깅을 하거나, 심지어 장을 보다가도 강도를 당하는 것이 이곳에선 큰 뉴스가 아니다. 김경일 동양종합건설 브라질 법인장(부사장)은 “주방장이 장을 보기 위해 마트에 들렀다가 카운터에서 총기 강도를 당했다”며 “강도 사고가 끊이지 않으면서 그동안 흩어져 있던 숙소를 최근 한 곳으로 모았다”고 설명했다.


 
 

© 시사저널 이석
지난 8월13일부터 사흘간 브라질 상파울루 월드트레이드센터에서 처음으로 ‘한류 박람회(Korea Brand & Entertainment Expo 2014)’가 열렸다. 브라질에서 점차 확산되고 있는 한류를 통해 한국 제품과 콘텐츠를 홍보하는 의미 있는 행사였다. K팝 스타의 공연과 한류 팬들의 커버댄스 공연, 행사 참가 업체 상품으로 진행된 메이크업 패션쇼, 한식 요리 시연 등 다양한 부대 행사가 마련됐다. 유재원 코트라 상파울루 무역관장은 “과거에는 단순히 한국 제품을 홍보하는 자리였다. 이번에는 한류를 접목함으로써 좋은 성과를 이끌어낸 것 같다”고 말했다.

 

한류 박람회는 이번이 처음인가.

“2010년부터 아시아에서 두 번, 유럽에서 두 번 한류 박람회가 개최됐다. 중남미는 이번이 처음이다. 개막식 날 아이돌그룹 ‘빅스(VIXX)’의 공연이 있었다. 비가 많이 와서 걱정을 했는데 기우였다. 공연 시간은 오후 4시였는데 아침부터 한류팬 1만8000명이 몰려들었다.”

현지 언론 반응은 어땠나.

“개막식 당일 브라질 유력 언론의 헤드라인 기사 제목이 ‘한국의 브라질 침공’이다. 이 정도면 말 다한 것 아닌가. IT·패션·식품 등 한국 제품에 한류를 더함으로써 많은 관심을 받았다. 유명 한류 스타와 함께 한국의 중소기업 제품을 소개하는 ‘한류 e-Biz쇼’가 특히 의미 있었다. 최종 집계 결과는 확인해봐야겠지만 630여 건의 상담 실적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중소기업 위주의 행사였나.

“그렇지 않다. 삼성전자·LG전자·금호타이어 등 대기업이 많이 참여했다. 다만 중소기업은 지역적 한계로 유통망 구축이나 시장 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이번 행사는 우리 중소기업에도 큰 도움이 됐다. 일부 업체는 현지 업체와 계약을 체결했다.”

한국 중소기업의 브라질 진출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행사장에서 브라질의 한 상원의원을 만났다. 과거에는 삼성과 LG만 알았지만 이번 행사를 통해 한국 중소기업의 가능성을 엿봤다고 들었다. 관련 행사를 통해 우수한 기술력을 갖춘 국내 중소기업의 브라질 진출이 확산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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