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를 ‘공공의 적’으로!
  • 김회권 기자·임수택 편집위원 (khg@sisapress.com)
  • 승인 2014.09.24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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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극우 세력, ‘위안부 오보’ 맹폭…본질은 비판 언론 통제와 역사 뒤집기

세계적인 신문대국은 미국도 영국도 아닌 바로 일본이다. 세계 인쇄 매체들이 오프라인 신문의 존폐를 고민하는 이때에도 세계 발행부수 최상위권은 일본 신문들의 차지다. 일본ABC협회자료에 따르면, 2013년 상반기를 기준으로 988만부를 찍은 요미우리신문이 1위, 761만부를 찍은 아사히신문은 2위를 차지했다. 부수 기준으로만 보면 이 두 신문은 세계 순위에서도 부동의 1~2위다.

이렇다 보니 일본에서 신문은 여론 지배력이 막강하다. 흔히 요미우리와 아사히는 일본의 보수와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신문으로 꼽힌다. 그에 못지않게 일본에서는 ‘발행부수의 요미우리, 영향력의 아사히’라는 말이 있다. 양에서는 요미우리가 우위지만, 신문 품질에서는 아사히가 높은 점수를 받는다. 광고의 격도 아사히신문이 니혼게이자이신문과 함께 가장 고급스러운 매체로 통한다. 일본에서는 보통 재무성의 관료를 가장 자부심이 강한 집단이라고 하는데, 아사히신문 기자들 역시 이에 못지않은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기무라 다다카즈 아사히신문 사장(오른쪽)이 9월11일 기자회견에서 오보와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 연합뉴스
9월11일은 아사히신문 역사에 치욕적인 날이 됐다. 이날 기무라 다다카즈(木村伊量) 아사히신문 사장과 편집국 간부들은 다른 매체의 취재진 앞에 일렬로 서서 고개를 숙였다. 최근 벌어진 일련의 오보 사태 때문이었다. 사장은 자신의 직을 던졌고 조직 내부를 다시 다지겠다는 다짐을 기자들 앞에서 해야 했다.

“아사히, 지나친 프라이드가 오보 사태 낳아”

오보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오래된 위안부 강제 연행 관련 기사다. 아사히는 올해 8월5일자 지면에, 1982년 9월 이후 여러 차례 보도했던 요시다 세이지(吉田淸治)의 발언과 관련한 기사를 취소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요시다는 “일본의 식민지였던 제주도에서 950여 명의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했고 위안부 활동을 위해 끌고 갔다”고 증언했지만 그 신빙성을 의심받았다. 기무라 사장은 기사 취소에 대해 공식 사죄했다.

두 번째는 ‘요시다 조서’다. 아사히는 5월20일자 기사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났을 때 도쿄전력 직원의 90%인 650여 명이 소장의 대기 명령을 어기고 철수했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는 당시 원전 소장인 요시다 마사오의 조서를 바탕으로 작성된 특종이었다. 그런데 9월11일 일본 정부가 조서를 공개하자 후폭풍이 엄청났다. 조서에 따르면, 요시다는 부하들이 제2원전으로 간 것을 ‘명령 위반’이라기보다는 타당한 대피로 여겼다. 기무라 사장은 이 기사를 ‘잘못된 기사’라고 단정하고 사과했다.

사장이 직접 나서 고개를 숙일 정도로 일본 내 여론은 아사히신문에 호의적이지 않다. 일본의 뉴스 전문 채널인 NNN이 사과 다음 날인 9월12일부터 이틀간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사히신문의 사과에 대해 ‘인정한다’라고 답한 사람은 6.4%에 불과했다. ‘정정·사과는 인정하지만 너무 늦었다’가 63.6%, ‘인정하지 않는다’는 23.3%로 부정적인 의견이 절대 다수다. ‘아사히신문이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는 응답은 고작 21.5%였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가 60.4%에 달했다. 아사히신문에 대한 불신이 최고조에 이른 게 지금의 일본 사회다.

마이니치(每日)·요미우리(讀賣) 등 일본 신문들은 아사히 보도 취소 파문을 대서특필했다. ⓒ 연합뉴스
보수 진영 “위안부 거짓 여론 만들면 성공”

일본 내에서는 아사히신문의 강한 프라이드가 범한 오류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위안부 증언의 경우에도 오래전부터 문제가 제기됐지만 아사히신문 측에서는 심도 있게 점검하지 않았다. 후쿠시마 원전 기사 역시 마찬가지다. 이 기사는 아사히신문 내 ‘특별보도부’가 작성했다. 숨겨진 사실을 발굴하는 탐사보도 전문 부서다. 2006년에 ‘특별보도팀’으로 설립돼 2011년 부로 승격했는데 각 부서에서 모인 우수한 기자 20명 정도가 팀을 이루고 있다. 이 팀은 2012년 일본 원전의 파탄을 다룬 기획 기사 ‘프로메테우스의 덫’, 2013년 후쿠시마 제1원전 부근에서 진행된 제염 작업의 부실을 발굴한 ‘부실 제염’을 통해 2년 연속 신문협회상을 수상했다. 아사히신문 내부에서도 “특별보도부 기사여서 충분한 검토가 이뤄지지 않은 것 아닌가”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일본 내 보수 세력은 이런 비난 여론의 틈을 파고들며 아사히신문 공격에 나서고 있다.

정치 컨설턴트인 와카마쓰 오사무는 시사저널과의 전화통화에서 “아사히신문은 아베 정권에 대해 비판적이다. 이런 관계 속에서 아베 총리는 오보 기사가 나오자 이때라고 판단해 ‘아사히신문이 일본인의 가슴에 상처를 입혔다’며 여러 번 반복해서 비난하고 있다”고 말했다. 총리가 특정 신문을 거론하며 비난하는 것은 일본에서 드문 일이다. 실제로 위안부 강제 연행과 관련된 증언 기사와 요시다 조서를 바탕으로 한 후쿠시마 원전 기사는 해외 언론을 통해 세계로 송출된 것들이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국가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보수 진영의 논리는 일본 사회에 먹혀들고 있다. 아베 총리까지 나서 사장의 사과 이후에도 “아사히신문은 세계를 향해 (위안부 강제 연행) 취소를 주지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산케이·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보수 언론은 “유엔의 쿠마라스와미 보고서 철회를 요구하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언론뿐만이 아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9월5일 기자회견에서 “(쿠마라스와미) 보고서의 일부가 아사히신문이 취소한 그 기사의 내용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고 강조했다. 쿠마라스와미 보고서는 1996년 유엔 인권위원회가 채택한 스리랑카 여성 법률가인 라디카 쿠마라스와미의 위안부 문제 조사보고서다. 일본군의 종군 위안부를 ‘성노예’로 인정하고 일본에 법적 책임을 질 것을 요구했는데, 이는 ‘고노 담화’와 함께 보수 진영의 눈엣가시로 여겨져왔다. 이 보고서에 근거를 제공한 것이 아사히신문의 ‘요시다 증언’이라는 게 보수 진영의 논리다. “아사히가 ‘요시다 증언’을 취소했으니 쿠마라스와미 보고서도 무효이며 아사히는 그 책임을 지라”는 게 핵심이다. 굳이 보고서의 무효가 아니더라도 아사히신문이 틀렸으니 위안부 역시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 그리고 그런 다수 여론을 만들어내려는 정치적 의도가 현재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사히 죽이기’의 본질인 셈이다.

아사히, 아베 정권 비판 현저히 위축

아사히신문의 위기는 옐로저널리즘 성격이 짙은 일본 주간지들의 가십거리가 됐다. 아사히신문에 다니는 남편을 둔 주부가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곤란을 겪는 것까지 기사로 다뤄지는 판이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위안부 오보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일부 강경파는 아사히신문의 폐간을 외치며 구독 중지 캠페인까지 제안하고 있다. 물론 그들의 바람대로 아사히신문이 폐간될 리는 없다. “당장 구독자가 급속하게 줄어들고 있다는 징후는 없다. 오히려 최근에는 요미우리신문 쪽 부수 감소가 더 많다. 만약 아사히신문의 부수가 떨어진다고 해도 부동산 등 자산이 많아 타격이 심하지는 않을 것이다”(아사히신문 관계자)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오히려 우려되는 것은 따로 있다. 아사히신문이 저널리즘 본연의 감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다. 와카마쓰는 “아베 총리는 자신을 비난하거나 반대하는 사람은 결코 용서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언론들도 이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아사히신문 사태를 계기로 정부 비판의 수위가 낮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아사히신문에도 이 지적은 해당된다. 정권 비판이나 전쟁을 검증하는 보도 자체를 할 수 없게 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커지고 있다. 8월27일 아사히신문은 아베 총리가 전범으로 처형된 전 일본 군인들의 추모 법회에 애도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는 특종 기사를 냈다. 이 법회는 연합국에 의한 재판을 ‘보복’으로 평가하고 처형된 전원을 위령하는 행사다. 전범 중에는 도조 히데키 전 총리 등 A급 전범 14명도 포함돼 있다. 이런 법회에 아베 총리는 “자신의 영혼을 걸고 조국의 초석이 되신”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아사히신문 관계자는 “예전이라면 확실히 1면 톱기사 감이다. 하지만 이미 위안부 문제 비판이 거세지고 있던 때라 가급적 자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9월3일 아베 정권 2차 내각에서 총무대신이 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와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을 맡았던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가 일본의 네오나치 단체와 사진을 찍은 사실이 드러나 파문을 일으켰다. 이 소식은 해외 언론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이전이라면 톱뉴스 감이었지만 아사히신문은 그러지 못했다.

아사히신문은 요미우리·산케이 신문에 비해 기자들의 자율이 어느 정도 보장돼 있는 매체로 여겨져왔다. 기무라 사장 체제에서도 기자들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보장돼 있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아사히신문 내부 권력 지형에도 변화가 생겼다. 앞서 언급한 아사히 관계자는 “기무라 사장 체제 이후에는 결국 회사 내 우파가 요직을 차지하게 된다. 특별보도부도 해체됐기 때문에 자유롭게 움직이는 취재 부서도 더 이상 없다”고 우려했다. 오른쪽 목소리에 대항할 만한 다른 쪽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일본, 아사히 사태가 가져온 결과다. 우리로서는 썩 반갑지 않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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