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 같은 야성으로 사내를 사냥한 그 여인
  • 조철│문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9.24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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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별아 작가가 탕녀 시각에 반기 들고 재해석한 ‘어우동’

‘또 다른 세상이 열렸다. 그곳은 낯설고도 익숙하며, 더럽고도 깨끗하고, 혐오스러우면서도 황홀한 신세계였다.’

김별아 작가(45)가 조선이라는 억압적 사회와 욕망하는 여성의 충돌을 주제로 구상한 ‘조선 여인 3부작’ 마지막 편 <어우동, 사랑으로 죽다>를 펴냈다. 앞의 문장은 어우동이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는 시점에서 등장하는 글이다. 어우동이라는 한 여인을 바라보는 세상의 편견을 부수는 상징적인 문장이랄까. 작가는 철저히 여인의 편에 선 듯하다. 죄인을 변호하는 관점에서 시작한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어우동에게 돌을 던지고 희화한 세상 사람들 앞으로 혼자 나서서 눈 부릅뜨고 외치는 작가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한다.

작가는 어우동의 욕망에 대해 알려면 욕망 자체보다 사회적 배경을 탐색해봐야 할 소지들이 많다고 여겼다. 이제껏 남성의 시각으로만 바라봤던 어우동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성도 느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당돌하고 능동적이며 모험적인 ‘별종 여인’

어우동이 누구인가. ‘열녀’ 또는 ‘음녀’로 평가되는 조선시대 여인들 속에서 ‘희대의 방종녀(放縱女)’로 남은 여인, 세종대왕의 형인 효령대군의 손자며느리에서 남편에게 버림받은 소박데기가 됐다가, 이후 3년 동안 열여섯 명이 넘는 남자들과 간통한 사실이 밝혀진 지 3개월 만에 급기야 교형(絞刑)에 처해진 여인, 양반가 여인으로서 신분·나이·촌수를 아랑곳하지 않고 종친부터 노비까지 관계를 갖고 문신으로 그 이름을 남긴 전대미문의 사건 속 여인.  

작가는 이런 조선 최고의 ‘문제적 여성’ 박어을우동(朴於乙宇同)의 삶을 되살려냈다(소설에서는 대중에 익숙한 ‘박어우동’의 표기를 따랐다). 작가는 어우동이 엄격한 신분 사회에서 사랑이라는 모험을 통해 자아를 찾고자 한 방랑자였다며, 그를 당돌하고 능동적이며 모험적인 ‘별종의 여인’으로 펼쳐냈다. 어우동의 편에 서보니 그랬다는 것이다.

‘어우동 사건’은 성종 11년(1480년) 6월13일 방산수 이난의 간통 사건으로 <조선왕조실록>에 처음 등장한 후 ‘음행을 자행해 풍속을 문란하게 한 부녀’를 율법에 의해 다스릴지 극형을 내릴지를 논한 내용이 16번이나 언급될 정도로 조정 내에서 뜨거운 논쟁을 일으켰다. 열두 명의 대신 중 여덟 명이 극형에 반대하고 네 명이 찬성했음에도 성종의 강한 의지에 따라 어우동만 교형에 처해지고 사건과 관련된 남자들은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으며 종결됐다. 이는 2년 후 폐비 윤씨가 실덕(失德)을 이유로 사사되는 사건과 함께 성리학의 나라를 세우려는 성종대의 사회 분위기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으로 민간에까지 회자됨으로써 <용재총화(?齋叢話)> <송계만록(松溪漫錄)> 등에 실려 ‘어우동’이라는 이름이 대중에 각인되는 결과를 낳았다.

사건이 세상에 드러나기 3년 전 남편 태강수 이동은 누명을 씌워 어우동을 내쳤다. 작가는 사이가 좋지 않은 부모와 방탕한 오빠 밑에서 자란 어우동이 남편에게 버림받은 후 돌아갈 곳이 없었던 점에 주목한다. 스스로 이름을 짓고 부나비처럼 떠돌아야 했던 여인의 삶을 그려나가면서 남성 중심의 신분 질서 속에서 자기결정권을 갖지 못한 여성이 가져야 했던 욕망의 한계를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작가는 어우동의 행적과 가정사를 추적한 뒤 소설적 상상력을 덧붙여 입체적으로 사건을 그려냈다. 또한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 성종이 마음속의 소년을 꾹꾹 누르고 스스로를 유교적 윤리와 도덕으로 옭아매 이상적인 군주가 되고자 했으리라는 점을 지적했다. 청상과부였기에 더 철저히 교육시킨 어머니를 거스르지 않고 훌륭한 왕으로 자신을 증명하려 했기에 어우동의 추문과 도발을 더욱 강력하게 다뤘다는 것이다. ‘태평성대의 군주’로 일컬어진 성종이 왜 극단의 결정을 내려야 했는가를 이해해보려는 시도로, 작가는 박제된 역사의 기록을 인간 삶의 기록으로 변모시킨다.

어우동은 추포된 후 3개월 만에 죽음으로 최후를 맞고 마침내 왕실의 족보인 <선원록(璿源錄)>에서 이름이 삭제됐다. 정사품의 ‘혜인(惠人)’이라는 봉작을 버리고 스스로 지은 이름 ‘현비(玄非)’로 새 삶을 선택했던 어우동은 ‘누구의 딸도 아내도 어미도 아닌, 순정한 암컷’으로 살았다. 작가는 그런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몸부림쳤던 한 여인의 절박한 외침을 다음과 같이 읽어냈다.

‘흑백의 절망’에 복종할 수는 없다

“더 이상 불행하지 않을 거야. 남들이 쳐놓은 어둠의 그물에 갇혀 있지 않을 테니까. 누더기 먹옷 같은 기억 따윈 벗어버려.”

여인의 눈빛이 견고해졌다. 이곳이 바닥이었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었다. 그 차갑고 딱딱한 진실이 위로이자 의지가 됐다.

“너는 이제까지의 어우동이 아니야.” 그가 지나간 검은 시간을 향해 말했다. 검은 것은 어둠이다. 검은 것은 침묵이다. 검은 것은 죽음이다. 살아 왁자지껄 빛나는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휘장이다. 색이 사라진 세상, 오직 옅거나 짙을 뿐인 흑백의 절망에 복종할 수는 없다.

<채홍> <불의 꽃>에 이어 ‘조선 여성 3부작’을 마무리한 작가는 “세 명의 조선 여성은 그 빛깔이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조선에서 금지된 사랑의 죄를 지어 국가 권력에 희생당한 여인들이다. 그런데 봉빈의 동성애와 유씨의 간통이 폐쇄와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생존형’이라면 어우동의 난봉은 사뭇 당돌성이 도드라진 의도된 ‘모험형’이다”고 분석했다.

“늑대 같은 야성, 힘과 직관과 장난기와 끊임없는 호기심으로 사내를 ‘사냥’한 어우동의 모험은 우리가 몰랐던 조선 여성의 또 다른 민낯을 드러낸다. 그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고 나긋나긋하게 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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