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관리비 100만원을 40만원으로”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4.09.30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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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송도 고층 아파트 입주민대표회의 회장 증언

인천 송도에 있는 64층짜리 고층 아파트(더샵퍼스트월드)에 입주가 한창이던 2009년 8월, 가구당 관리비는 100만원을 넘었다. 입주자가 전체의 50%밖에 안 된 상태였고 공용 전기료에 누진제가 적용된 탓이다. 다른 아파트에 비해 2~3배 많은 금액이다. 3년 후인 2012년 관리비는 40만원으로 뚝 떨어졌다. 입주 당시 ‘겉만 번지르르한 깡통 아파트’라는 불명예를 받았던 이 아파트는 2012년 인천시가 뽑은 ‘살기 좋은 아파트’로 선정됐다. 아파트 관리비의 하락은 2011년 입주자대표회의(입대의) 구성원이 바뀌면서 시작됐다. 당시 입대의 회장을 맡았던 김지섭씨는 “60만원은 주민이 내지 않아도 되는 돈이었던 셈”이라며 “방만한 아파트 운영으로 관리비가 줄줄 새고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전기료 절감 실험으로 관리비 절반 줄여

관리비 운용에는 두 개의 조직이 관여한다. 관리비 사용을 결정하는 입대의와 이를 집행하는 관리업체다. 이 아파트의 입대의는 주민의 돈을 비상식적으로 사용했다. 예를 들면, 이사할 때 엘리베이터 내부 손상을 막기 위해 사용하는 보호제 구매에 1000만원을 썼고, 각 동 입구에 놓은 발판 30여 장 구입비로 1600만원을 사용했다. 김씨는 “이전 입대의 시절에 지하주차장을 청소하는 3~8년 된 중고 차량을 신차 가격의 85%나 주고 구입했는데, 전문가들에게 물어보니 5년 이상 된 중고 청소차는 폐차할 수준이었다”며 “비상식적으로 지급한 돈이 누구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는지 알 길이 없다”고 말했다.

인천시 송도 더샵퍼스트월드 주상복합아파트. 64층 4개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입대의가 잘 몰라서 이런 실수를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관리비가 높게 부과되자 주민들 사이에는 입대의가 고의로 뒷돈(리베이트)을 챙긴 게 아니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실제로 입대의가 아파트 선거관리위원회에 매달 1000만원가량을 준 사실에 대해 주민들은 동 대표 선거를 염두에 둔 선심성 지원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입대의는 창문 보수 신청을 받기 위해 고용한 아르바이트 직원 3명에게 수천만 원을 줬고, 노인회에 월 40만원씩 2년 동안 1000만원 가까운 돈을 지원했다. 명목은 부식비로 잡혔지만 지원비를 지급한 이유 등 구체적인 명세는 공개되지 않았다.

관리업체는 계약 기간(2009~10년) 동안 관리 수수료로 약 1억5000만원을 받았다. 여기에는 직원 인건비와 퇴직금 등이 포함돼 있다. 직원이 퇴사하면 인건비가 줄어든다. 그러나 관리소장은 직원의 퇴직 사실을 알리지 않고 매달 수백만 원의 인건비를 받아 챙겼다. 또 1년 이상 근무한 직원이 퇴사할 때는 퇴직금을 지급해야 하지만 이 관리업체는 직원을 11개월마다 갈아치우는 수법으로 퇴직금을 가로챘다. 기타 장비 수리나 교체 비용은 별도로 받았다.

주민 여론이 악화된 2011년, 김씨를 회장으로 한 제2기 입대의가 들어섰고, 이들은 관리비 줄이기에 나섰다. 김씨는 “관리업체는 아파트의 관리·미관·보안 등을 책임지며 그 대가로 관리 수수료를 받는다. 그런데 이전 관리업체와 입대의 간에 맺어진 계약서를 보니 관리업체가 기업 이윤이라는 명목으로 연간 8400만원을 추가로 받았다”며 “기업 이윤은 보안이나 미화를 담당하는 하청업체에 지불하는 돈이다. 관리업체가 직영으로 관리하면 될 일을 하청을 주면서 그 비용을 아파트 주민에게 전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입대의는 관리업체를 바꾸면서 계약서에 관리 수수료만 주기로 표기하고 기업 이윤 항목을 없앴다. 또 직원 월급은 입대의가 직접 주는 식으로 변경해 인건비나 퇴직금이 특정인의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것을 막았다. 김씨는 “130명이던 관리업체 직원을 97명으로 줄여 인건비를 절약하면서도 그 인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함으로써 운영 효율은 과거보다 좋아졌다”며 “1년도 안 돼 해고될지 모른다는 고용 불안을 없애주니 관리업체 직원은 아파트 일을 자신의 일처럼 열심히 했다”고 밝혔다. 

돈이 새는 주범인 공용 전기료에도 손을 댔다. 이 아파트는 창문을 열 수 없는 구조여서 강제 공기 순환장치를 24시간 가동한다. 이 장치의 전기료가 전체 전기요금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심각했다. 입대의는 관리업체를 설득해 다양한 실험을 했다. 낮 시간에 이 장치를 꺼서 전기 사용량을 줄여보았지만 이웃집 담배 연기나 음식 냄새가 퍼지는 단점이 드러났다. 여러 차례 실험한 끝에 배기는 24시간 가동하되 공기 급기(공기 유입)는 한 시간 단위로 켜고 끄는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누진율이 줄어들면서 전기료가 대폭 줄었다.

또 강제 공기 순환 장치에 들어가는 필터를 바꿨다. 기존 필터를 납품하던 업체는 ‘특허’ 제품이라는 이유로 턱없이 높은 가격을 요구했고 주민들은 그 가격에 필터를 구입해 사용해왔다. 김씨는 “특허는 기존 제품과 다른 방식이라는 것이지 우수한 제품이라는 의미는 아니다”며 “여러 필터 업체에 문의해본 결과 같은 기능이면서 가격은 저렴한 필터를 공급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무작정 인력 줄이는 것은 손해

관리비가 새는 구석을 찾아내 막는 노력 끝에 이 아파트 전체 관리비는 2009년 8월 12억원에서 2013년 8월 9억2000만원대로 떨어졌다. 관리비를 낮출 때 가장 먼저 손을 대는 것이 경비원이다. 인원을 줄여 인건비를 절약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씨는 “경비 인력을 줄이면 당장 인건비가 줄어드는 효과를 보지만 경비원은 재활용품 정리, 미화, 아이들 안전과 같은 부분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며 “경비 인력을 줄이고자 아파트 출입문에 차량 차단기를 설치한 곳이 많다. 그러나 수리비·전기료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하는 데다 통과할 때 불편한 점이 많아 사용하지 않는 아파트가 많다”고 설명했다.

투명한 관리비 운영에는 무엇보다 주민들의 관심이 중요하다. 관리비 명세서를 꼼꼼히 살피거나 입대의와 관리업체의 일을 관찰하면서 지원과 견제를 해야 한다. 김씨는 “주민이 관심을 갖지 않으면 입대의와 관리업체는 언제든지 담합할 수 있는 관계”라며 “평소에는 애정을 보이지 않다가 자신에게 불리한 일에만 목소리를 높이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행동은 공동주택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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