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김문수 손잡고 “친박 꿇어!”
  • 양정대│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4.10.01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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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위에 비박 진지 구축 청와대 압박…2017 대선 놓곤 동상이몽

“김무성 대표가 뭔가 생각하고는 있는 것 같은데 좀 어설펐던 거지. 어차피 한 번은 세게 붙어야 할 테니 이번 일은 워밍업 정도로 생각하면 될 거다.” 새누리당 보수혁신특별위원회 인선 문제를 두고 한바탕 논란이 인 9월25일, 새누리당의 한 수도권 중진 의원이 기자들과 만나 한 얘기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가까운 이 중진 의원은 “권력이란 게 나눠 가질 수 없는 것이니 결국은 제로섬 게임 아니냐”며 “게다가 게임의 주체는 ‘친박(親朴)’ 대 ‘비박(非朴)’처럼 단순하지만도 않으니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다”고 혀를 찼다.

여권 내에서 김무성 대표의 입지는 다소 어정쩡하다. 7·14 전당대회를 통해 당권을 거머쥐면서 명실상부한 국정의 한 축으로 부상했지만, 여권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건 여전히 박근혜 대통령이다. 당에서 목소리가 큰 이들도 대부분 친박계다. 김무성 대표 자신은 친박을 자임하지만, 정작 친박계 내부의 시선은 뜨뜻미지근하다. 당 대표인데도 ‘비주류’ 딱지가 붙어 있는 건 이 때문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왼쪽)와 김문수 보수혁신위원장이 9월25일 혁신위 추가 인선 결과를 발표한 후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무성의 ‘혁신’은 자기 당 만들겠다는 것”

김 대표가 ‘혁신’을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을 두고 친박계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친박 중진 의원은 “말이 좋아 혁신이지 실제로는 ‘무대(김 대표의 별칭)당’을 만들겠다는 것 아니냐”고 했다. 박 대통령의 영향력을 지우고 김 대표 자신의 대권 플랜을 위해 당을 재정비하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이 같은 양측 간 불신 기류는 김 대표가 보수혁신위원회 구상을 천명하고 비주류의 한 축인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를 위원장에 앉히면서 노골화됐다. 한 친박계 핵심 의원은 혁신위가 상향식 공천 제도화를 비롯한 정치 개혁과 함께 박 대통령의 집권에 맞춰져 있던 당헌·당규 개정을 핵심 과제로 내세운 데 대해 “당에서 친박 색깔을 빼겠다는 것 아니냐”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대표적 비박 인사인 김 전 지사의 혁신위원장 임명은 사실상 불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 됐다.

김 대표의 김문수 혁신위원장 카드는 사실상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이다. 자신이 직접 칼을 뽑을 경우 어떤 식으로든 박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해석될 게 빤한 상황이란 점에서다. 한 측근 의원은 “경기도지사 3선 출마를 포기하고 7·30 재보선도 건너뛴 김 전 지사 입장에서는 뭔가 중앙정치 무대로 복귀할 계기가 필요했을 테고, 김 대표 역시 자신을 대신해 역할을 해주길 바라지 않았겠느냐”고 했다. ‘박근혜 vs 김문수’ ‘혁신위 vs 친박’의 대립이 본격화하는 과정에서 김 대표는 짐짓 포용력을 발휘하는 모양새를 그렸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문무(김문수·김무성) 연대’는 초장부터 어그러졌다. 비주류 잠룡 두 사람이 손을 잡은 듯한 모양새만 해도 친박계로서는 발끈할 일인데, 또 다른 비주류 잠룡들인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원희룡 제주도지사까지 혁신위에 가담시키겠다고 하자 친박계가 폭발한 것이다. 박심(朴心)으로 통하는 이정현 최고위원은 “혁신위 활동이 당 개혁이 아니라 정치 개혁에 집중돼야 한다”고 점잖게 말했지만, 영남권 친박계 핵심인 유기준 의원은 “특정 색깔을 가진 인사들만으로 혁신위를 꾸리는 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에 비주류 최고위원들까지 가세했다. 이인제·김태호 최고위원이 직간접적으로 홍준표·원희룡 지사 인선을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심지어 김태호 최고위원은 공개석상에서 “혁신위가 김 대표와 김 위원장 등 두 사람의 놀이터라는 비판이 있다”고까지 말했다.

이는 혁신위의 역할과 운영을 두고 김무성·김문수 두 사람이 동상이몽을 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김 위원장 측의 얘기다. “김 대표는 이이제이를 생각했는지 몰라도, 우리가 그 정도로 간단한 사람들이 아니다. 기왕 혁신위원장을 맡을 바에야 큰 꿈으로 가는 데 도움이 되는 판을 만들어야 한다. 박 대통령의 한마디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몇몇 친박계 목소리만 들리는 당에서 벗어나려면 정치적 비중이 있는 비주류 인사들이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진지를 구축해야 하지 않겠나.”

물론 혁신위를 비주류의 전진기지로 삼겠다는 구상은 김 대표 측도 마찬가지다. 다만 누가 주도권을 쥐고 갈 것이냐에 대해선 양측 간 입장이 분명히 달랐던 셈이다. 이는 혁신위의 2대 운영 방향, 즉 공천제도의 개편과 당헌·당규 개정이 실질적으로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을 겨냥해 새로운 판을 짜는 것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친박계는 물론 ‘동지’로 여겨온 비주류 최고위원들까지 반발하고 나선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정현 최고위원이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이인제 최고위원. ⓒ 시사저널 이종현
대통령-대표 정례회동 요구에 청와대 ‘침묵’

사실 여권 내 친박 주류와 비주류 간 충돌 조짐은 이미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선 듯한 모습이다. 정치 현안과 경제정책 방향, 당·청 관계, 새누리당 운영 등에서 전 방위적으로 이견이 불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김무성 체제’가 출범한 후 살얼음판을 걷듯 서로 조심스러워하던 관계가 현안들에 대한 해법을 두고 충돌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장 정국 정상화의 최대 쟁점인 세월호 특별법 논의 방향은 물론 대야 관계에서 양측 간 이견은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친박 주류는 9월16일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도부의 회동 이후 ‘세월호 흔적 지우기’로 방향을 잡고 대야 강경 드라이브를 본격화하고 있다. 친박계 의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세월호 특별법 재협상이 시작되더라도 추가 양보는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으며 연일 단독국회 운영 불사를 주장하고 있다. 반면 김무성 대표를 비롯한 비주류 측은 대화와 타협을 통한 여야 관계 복원에 무게를 두고 있다. 박 대통령의 국회의원 세비 반납 언급, 정종섭 안전행정부장관의 국회 해산 발언 등에 대해 야당 못지않은 비판을 쏟아낸 게 단적인 예다.

특히 관심을 모으는 건 김 대표가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정책 방향에 잇따라 어깃장을 놓고 있는 대목이다. 박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임 아래 경제 살리기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최 경제부총리의 면전에서 재정 건전성 문제를 지적했고, 확장 기조로 짜인 내년도 예산안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면 문제가 좀 있는 것 같다”고 경고음을 보냈다. 김 대표가 기업 사내 유보금에 대한 과세 방침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천명한 후 여권 내에선 ‘무대의 반란’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동안 청와대 일방우위로 흘렀던 당·청 관계를 정상화하겠다는 김 대표의 복안을 두고도 양측의 신경전은 뜨겁다. 김 대표 측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정무수석 등을 통해 박 대통령과의 정례회동을 수차례 제안했지만 긍정적인 답변을 듣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내에선 추석 연휴 직후 김 대표가 김 비서실장을 공개 비판했던 이유를 여기에서 찾는 이도 적지 않다. 최근 들어 양측 간에 심상찮던 기류가 결국 혁신위 인선을 매개로 한 차례 정면충돌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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