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특사' 황병서, 그의 손에 쥐어진 메시지는?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4.10.04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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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체제 최고 권력실세 3인방의 동시 한국 방문 후폭풍…북한전문가 6인이 전망하는 향후 한반도의 운명

2014 인천 아시안게임의 최대 피날레를 장식한 것은 한국의 축구·야구·농구 등의 금메달 소식도, 종합 2위 달성도 아니었다. 바로 10월4일 전격적으로 인천에 온 북한의 최고 권력실세 3인방의 방문이었다.

북한 김정은 체제를 떠받치는 쌍두마차로 통하는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최룡해 국가체육지도위원장이 동시에 남한 땅을 밟았다. 또 한명의 거물급 인사인 김양건 통일전선부장도 함께 동행 했다. 세 사람을 포함한 11명의 북한 고위 대표단은 이날 오전 9시52분께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9시경 평양에서 항공편으로 출발, 서해 직항로를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거물급 3인방의 전격 방문은 폐막식 전날인 3일 북한의 긴급 통보를 통해 제안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사전에 전혀 접촉이나 의견 조율이 없었다는 게 통일부 측의 설명이다.

10월4일 오전 인천 송도 오크우드 호텔에서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온 북측 대표단이 우리측 류길재 통일부 장관 등과 티타임을 가지고 있다. 왼쪽부터 김양건 노동당 비서,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노동당 비서 ⓒ사진공동취재단

김정은 체제 ‘2인자 라이벌’ 황병서-최룡해 동반 방문

황병서 총정치국장은 사실상 김정은 체제의 권력 2인자다. 올해 3월 권력 핵심부서로 알려진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승진한 데 이어, 5월에는 군 총정치국장에 올랐고, 급기야 지난 9월25일 최고인민회의 제13기 2차회의에서는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직까지 거머쥐었다.

최룡해 국가체육지도위원장은 최근들어 비록 황병서에게 총정치국장 자리를 내주긴 했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그가 김정은 체제 권력 2인자였다. 김정은 특사로 중국을 방문,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나기도 했고, 장성택 처형의 주도적 역할을 한 인물로 알려지기도 했다. 북한 전문가들은 “최룡해는 비록 군 요직에선 물러났지만 여전히 당에서 비서를 맡으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며 “특히 국가체육지도위원장은 전국적인 조직과 규모를 갖춘 북한의 핵심단체이고, 전직 위원장이 장성택이었을 만큼 북한에서는 요직 중의 요직으로 꼽힌다”고 밝혔다. 우리의 통일부 장관에 해당하는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은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북한의 대남 담당의 1인자다.

북한 최고권력자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왼팔과 오른팔격으로 각각 알려질 만큼 경쟁구도를 갖고 있는 권력 2,3인자의 동반 방문이 갖는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더욱이 지금 북한은 김 위원장이 한 달여 이상 자신의 모습을 외부에 드러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국내와 중국에서는 그동안 김정은의 신변이상설, 군부 쿠데타설이 등장하는 등 추측이 무성 했다. 혹시 이와 관련 있는 건 아닐까. 시사저널은 국내의 권위 있는 북한 전문가들을 통해 황병서 등 핵심 실세 3인방의 전격적인 남한 방문이 갖는 의미와 향후 전망을 들어봤다.     

“경제적 외교적으로 고립된 김정은의 위기감 반영”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이번 3인방 방문은 그야말로 전격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안다. 사전 조율이나 협의는 없었던 듯하다”고 밝혔다. 고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으며 지난 7월15일 출범한 대통령직속 통일준비위원회의 민간위원에 임명된 바 있다. 그는 “얼마 전 유엔총회에서 이수용 북한 외무상이 활발하게 대외활동을 펼치는 등 최근 북한의 움직임은 보다 적극적인 양상으로 변했다. 중국은 물론, 미국 일본 등과의 경색된 대외 국면을 풀어가려는 의지로 보인다”며 “하지만 이 모든 것도 결국 남북관계가 안 풀리면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이번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녹일 수 있는 어떤 불씨를 살려보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밝혔다.

진희관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북한이 최근 외교관계에서 큰 위기를 맞고 있다. 한·중 밀착에 맞서 추진했던 일본과의 대화도 한때 잘 나가다 최근 주춤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역시 미국과의 대화인데,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 미국과는 지금이 소위 ‘딜’을 할 수 있는 절호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미국을 향해 대화 의지를 내보일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은의 핵심 측근인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직접 왔다는 데에 특히 주목해야 한다”며 “북한이 최근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대북 전단 살포 등과 관련해 청와대와 대타협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고 전망했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은 “김정은은 매년 신년사를 통해 2015년을 강조해 왔다. 그때까지 경제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인민에게 뭔가 자신의 업적을 보여줘야 한다. 다급해진 것이다. 외교 교착 상태가 지속되고 있고, 경제 사정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이 상황에서 손을 내밀어줄 수 있는 건 한국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인천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북한이 뭔가 화해 제스처를 취할 것이라는 전망은 충분히 예견되어 왔다”고 밝혔다. 북한 호위사령부 출신인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소장은 “김정은의 신변에 큰 이상은 없다 하더라도 최근 북한 내부가 뭔가 복잡해진 건 사실”이라며 “그만큼 김정은의 입장에서는 다급해졌다는 것이고, 화해 제스처를 취해 뭔가 반전 카드를 만들어야 함은 분명하다”라고 분석했다. 

“김정은, 고도의 정치적 결단 행사 등 건재 과시”

그렇다면 혹시 최근 장기간 공백기를 맞고 있는 김정은의 신변이상설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관련이 없다”는 데에 의견이 일치했다. 오히려 “김정은이 건재하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고유환 교수는 “김 위원장이 다리가 아픈 것은 이미 확인이 되었다. 그 이상의 위기 상황은 아닌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밝혔다. 진희관 교수도 “만약 김정은의 권력기반에 문제가 생겼다면 이 3명이 이렇게 동시에 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가능성 ‘제로’임을 분명히 했다. 정성장 연구위원은 “김정은이 전례 없이 최고 실세 3명을 동시에 내려보낸 것은 비록 몸이 조금 불편하기는 하지만, 고도의 정치적 결단을 내리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과시하는 효과도 노렸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거물급 실세 방문이 당장 남북관계에 큰 변화를 가져오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많았다. 진희관 교수는 “당장 남북정상회담까지 가기에는 무리가 있다. 오히려 북한의 목표는 미국 쪽에 있다고 봐야 한다. 워싱턴을 향해 북한의 대화 의지를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성장 연구위원은 “황병서 등은 사실상 김정은의 ‘특사’로서 박 대통령에게 전달할 친서나 구두 메시지를 갖고 왔을 것”이라고 밝혔고, 이윤걸 소장도 “다른 사람도 아닌 황병서가 왔다면, 그냥 맨손으로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뭔가 메시지를 전달하려 왔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 메시지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향후 남북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핵문제의 진전이 없다면 남북관계 개선은 어렵다”는 게 박근혜정부의 일관된 기조다. 따라서 별다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비관적 전망은 계속 나온다. 고유환 교수는 “북한으로서는 다시 한반도 상황이 악화될 수도 있을 향후를 대비, ‘우리는 남한을 향해 할 만큼 다했다. 대화를 거부한 것은 남한이므로 모든 책임은 남한에 있다’고 책임을 전가할 명분을 확보할 수도 있는 셈”이라고 밝혔다.

박근혜정부의 대응 전략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지적도 많다. 이영종 중앙일보 안보전략팀장은 “이번 방문이 사전 조율 없이 전격적으로 이뤄진 것이 분명해 보이는 만큼, 우리 정부의 대응도 긴급하게 전개되는 모양새다. 현재로서는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지 않고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이 대신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는 류길재 통일부 장관 대신 청와대의 김 실장을 직접 내세워 황병서의 대화 파트너로 삼아 실질적인 고위급 회담을 열어가겠다는 뜻도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고유환 교수 역시 “통일준비위 또한 이번 일을 계기로 좀 더 활발한 활동이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양욱 연구위원은 “사실 지금까지는 박근혜정부의 대북 공세 전략이 어느 정도 먹혀들었던 게 사실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남북 모두가 하나씩 뭔가 큰 것을 양보하지 않으면 또 경색 국면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핵문제에 대해 뭔가 전향적인 카드를 내야 하고, 한국도 5.24 조치 해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 카드 등을 내야 하는 것이다. 고위급 회담 역시 뭔가 전향적 조치나 명분이 있어야 가능하다. 양쪽 다 (경색정국에서) 얼마나 명예로운 퇴진을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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