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코 연구 용역, 영수증없이 4억 '펑펑'
  • 엄민우·조해수·김지영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4.10.07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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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역사업 보고서·계약서·금액 산출 근거표 단독 입수

여기 이상한 용역 사업이 있다. 사업 시작 전 발주처로부터 예상 소요 비용을 받아내면, 나중에 돈을 어떻게 썼는지 영수증 등 사용 내역을 내지 않아도 된다. 다만 사업을 시작할 때 ‘청렴서약서’에 서명하는 것으로 절차를 대신한다. 발주처도 일단 결과물만 내놓으면 해당 사업에 돈이 기존 계획과 다르게 집행됐더라도 그대로 지급한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이뤄지는 사업에 들어가는 돈이 모두 국민 ‘세금’이라는 점이다. 금융 공기업 연구용역 사업과 관련한 이야기다.

금융 공기업들이 발주하는 연구용역 사업에 쓰이는 비용이 ‘눈먼 돈’처럼 집행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발주처는 집행 내역을 꼼꼼히 살피지 않고 이를 감독해야 할 관계 당국은 서로 책임을 미룬다. 그렇게 돈이 쓰이다 보니 심지어 본 사업 목적과 관련 없이 향후 영향력이 있을 만한 인사들을 관리하기 위한 방도로 쓰이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국민 혈세가 마치 공기업들의 보험금처럼 지급되고 있는 것이다. 

2011년 한국금융학회가 발간한 ‘한국자산관리공사의 기능과 역할 재정립을 통한 미래 발전 방안’ 보고서 ⓒ 시사저널 우태윤
시사저널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캠코의 기능과 역할 재정립을 통한 미래 발전 방안 연구’라는 이름으로 2011년 발주한 사업의 연구보고서와 계약서, 그리고 사업 금액을 산출하는 기준이 됐던 ‘금액 산출 근거표’ 등 관련 자료를 입수했다. 이를 통해 당시 해당 사업의 진행 과정을 들여다본 결과, 사업비 산출에서 석연찮은 부분이 드러났다. 용역을 수행한 이들은 공교롭게도 후일 대부분 요직에 진출했는데, 특히 눈길을 끄는 인물은 프로젝트 책임연구원이던 정찬우 당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다. 그는 현재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있다.

참여 연구진 4명 중 3명, 현 정권에서 ‘영전’

해당 연구용역의 시작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캠코가 종합적 자산관리 기능을 수행하고 이를 토대로 ‘캠코법 개정 입법’을 추진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힘을 기울이던 때다. 2011년 1월 캠코의 한 실무자는 한국금융학회 직원과 전화통화로 ‘캠코의 기능 및 역할 재정립을 통한 미래 발전 방안 연구용역’ 제안서 제출을 요청했다. 한국금융학회에서는 정찬우 당시 선임연구원 등이 연구진으로 포함된 최종 제안서를 제출했고 캠코가 이를 수용해 계약이 체결됐다. 한국금융학회는 금융연구원·한국은행·금융감독원 등 70여 개 기관을 회원으로 둔 학술단체다.

당시 한국금융학회는 연구원 4명과 자문진 3명을 연구 수행자로 제시했다. 그중 실제로 연구를 진행한 연구원은 정찬우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현 금융위 부위원장), 이건호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전 KB국민은행장), 강석훈 성신여대 교수(현 새누리당 국회의원) 등이다. 책임연구원으로 연구를 진두지휘하는 역할을 수행했던 사람이 정 부위원장이다. 그 외에도 장원창 인하대 교수가 연구진으로 참여했다. 자문진으로 한국조세연구원 박형수 선임연구위원, 한국금융연구원 구정한·김영도 연구위원이 참여했다.

참여 자문위원 “해외 출장 간 적 없다”

당시 해당 사업에 대한 캠코의 전체 예산은 5억원이었다. 한국금융학회가 제출한 연구용역 계획서에 따르면 학회가 소요 예산으로 제시한 금액은 이보다 1억원 적은 4억원이었다. 4억원이라는 액수는 어떻게 산출된 것일까. 본지는 당시 한국금융학회가 금액 산출의 근거로 제시했던 ‘금액 산출 근거표’의 내용을 확인해봤다. 해당 표에 따르면 예산은 크게 인건비·경비·일반관리비 세 부문으로 나뉘어 있다. 이 중 가장 비중이 큰 부문은 인건비(2억8866만원)로 전체 비용의 72%에 달했다. 그 다음은 경비(9348만원), 일반관리비(1780만원) 순이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인건비 부문 계획서 및 보고서 기재 내용에서 석연찮은 부분이 발견됐다. 예상 인건비는 책임연구원·연구원·연구보조원·보조원 등으로 나뉘어 각각 6개월 치가 기재됐다. 예컨대 정찬우 당시 책임연구원 인건비의 경우, ‘404만9852원×6(개월 수)×1(사람 수)’로 약 2429만원이 책정됐다. 그런데 연구원 인건비의 경우 수령인이 총 6명으로 계산됐다. 앞서 언급했듯 이 사업의 연구진은 정찬우 당시 책임연구원을 포함해 모두 4명이다. 책임연구원에 대한 인건비는 일반 연구원과 다른 액수로 따로 지급되는 만큼, 일반 연구원 항목에서의 실제 수령 대상은 4명 중 책임연구원 1명을 뺀 3명이 돼야 맞다. 하지만 기재 내용에 따르면 실제 수령인은 연구원 수의 2배에 달한다.

어떻게 이런 인원 책정이 이뤄진 것일까. 해당 사업을 발주했던 캠코 측은 “당시 자문위원들이 연구를 많이 도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 6명은 자문위원들도 연구원으로 포함한 숫자”라고 밝혔다. 자문위원들도 실제로 연구원에 준하는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에 연구원에 포함시켰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규정을 살펴보면 캠코의 이 같은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학술 연구용역 시 원가 계산의 기준이 되는 기획재정부의 ‘예정가격 작성 기준’을 보면, 학술 용역 사업에서의 인건비는 ‘당해 계약 목적에 직접 종사하는 연구요원의 급료’라고 명시해놓고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연구진에 포함되지 않은 자문위원을 ‘직접 종사하는 연구요원’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캠코 측의 말대로 해당 인건비가 자문위원들에게 실제로 6개월간 지급됐는지도 의문이다. 다음은 자문위원으로 포함됐던 3명 가운데 한 명이 당시 연구용역과 관련해 직접 밝힌 입장을 정리한 것이다.

“연구진이 아닌 여러 자문진의 한 사람으로 사업을 도왔다. 난 연구비를 수령하는 연구진이 아니었다.(중략) 해당 사업과 관련해 해외 출장을 간 사실도 없다.(중략) 자문에 대한 대가로 소정의 자문료를 수령했다.”

그는 자신이 분명 연구진이 아니었고 연구비를 수령하지 않았으며, 소정의 자문료만 받았다고 분명히 밝혔다. 자문위원을 모두 연구원에 포함시켜 인건비를 지급했다는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증언인 셈이다.

캠코 연구 용역을 수행한 정찬우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 강석훈 새누리당 의원(왼쪽부터). ⓒ 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
“향후 실세 관리 위한 ‘보험’ 성격” 주장도

인건비 항목 외에 경비 부문에서도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해당 금액 산출 근거표에 따르면, 해당 보고서를 쓰기 위한 해외 방문 비용으로 총 3000만원의 금액이 책정돼 있다. 그러나 연구진은 실제로 해외에 나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행사 개최비가 1000만원으로 설정돼 있는데 확인 결과 실제로 행사를 연 곳의 장소 대관료는 하루에 수십만 원 정도였다. 다른 부대비용들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높은 수준임을 알 수 있다. 부풀려졌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총 4억원의 용역비는 두 번에 걸쳐 지급됐다. 사업이 시작된 2011년 2월 1억6000만원이 선금으로 지급됐고, 같은 해 8월 나머지 2억4000만원이 나갔다. 이 나머지 돈은 사후 검사를 거쳐 지급됐다. 청구 금액 4억원이 처음 제안했던 산출 내용과 똑같이 모두 지출된 것이다. 캠코 관계자는 “국가계약법 및 연구용역계약서에 따라 검사를 완료한 후 용역비를 지급했다. 용역비 중 경비의 집행(인건비, 해외여행 경비, 행사 개최비 등)은 물가 변동, 설계 변경 및 그 밖의 계약 내용 변경에 해당되지 않으므로 계약대로 지급했다”고 밝혔다.

캠코 측 말을 들어보면 공기업 연구용역 계약 자체가 얼마나 허술한지 알 수 있다. 처음 사업비를 받기 위해 제출하는 지출 계획에서 인건비 등에 변동이 있더라도 계약 내용이 변경된 것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사후 검사에서도 문제 삼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해당 연구의 경우 연구 목적 달성에 필요한 총액 내에서 집행이 이뤄지는 ‘비정산 연구용역’으로 분류돼 영수증 증빙도 필요 없다. 사업을 시작할 때 청렴서약서를 제출하고 나중에 잔금 청구 문서만 내면 된다는 얘기다.

해당 사업을 수행하는 곳은 민간이지만, 그 사업에 들어가는 돈은 모두 세금으로 충당된다. 보통 민간이 공공기관의 용역 사업을 집행할 때는 공무원에 준하는 엄격한 회계관리를 받고, 사업 수행 이후 기존 청구 금액보다 비용이 덜 들어갔을 경우 남은 금액은 모두 환원하도록 돼 있다. 그 돈은 국민 혈세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언론사가 언론진흥재단 등 공공기관의 지원으로 해외 취재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처음에 1000만원을 사업 집행비로 청구해 지급받더라도 실제 집행 결과가 800만원이면 나머지 200만원은 기관에서 환수하도록 돼 있다. 1200만원으로 비용을 초과하게 되면 초과된 200만원은 언론사가 부담해야 한다. 집행하는 금액도 기관에서 발급해준 카드로 해야 한다. 국민의 혈세이기 때문에 이는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캠코가 발주한 해당 사업의 경우엔 사업을 마친 후 4억원이 단 1만원의 차액 없이 그대로 집행됐고 예산 지급도 현금으로 4억원이 통째로 주어졌다.

발주처를 제외한다면, 권한을 갖고 이를 감독할 수 있는 곳은 금융위원회와 감사원이지만 감사 중복 등의 이유로 제대로 된 검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금융위는 “금융 공기업에 대한 사전 심의 및 의결권이 없으므로 통제가 곤란하다”는 입장이며, 감사원 역시 “특별히 해당 부분만 따로 감사를 하고 있지는 않다”고 했다.

국민 세금이 눈먼 돈처럼 집행되다 보니 이 돈이 향후 권력이 될 ‘유망주’들을 위한 보험 성격으로 지급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그야말로 눈먼 돈이다. 그렇다 보니 나중에 관료가 될지, 장관이 될지 모르는 이들에게 마치 보험금처럼 지급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 전직 최고위층 금융 관료는 자리에 오르기 전부터 강의비로만 1500만원씩 받으며 관리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의심을 피하기 위해 1500만원을 500만원씩 나눠서 각각 다른 단체 이름으로 3번 지급 받았다는 것은 금융권의 유명한 일화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캠코 본사. ⓒ 시사저널 최준필
캠코 “연구진은 금융학회에서 선정”

앞서 언급했듯이 캠코가 발주한 프로젝트를 수행한 인물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당시 이건호 연구원은 이후 KB국민은행장 자리에 올랐고, 강석훈 연구원은 여당 국회의원이 됐다. 특히 연구 총괄 담당자 역할을 했던 정찬우 책임연구원은 금융위 부위원장에 올랐다. 장원창 인하대 교수를 제외하고는 전부 영전한 셈이다. 특히 정 부위원장과 강 의원은 현 정권에서 성골로 통하는 ‘친박’ 인사로 분류된다. 해당 연구용역에 ‘보험 성격’이 있었다면 나름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해당 용역과 이후 연구자들의 행적이 직접적 관계가 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국가의 세금이 눈먼 돈처럼 집행되고 있는 것은 분명 개선할 필요가 있다. 캠코는 “연구원 개인이 아닌 한국금융학회와 계약을 체결한 것이며, 당시 금융학회에서 정찬우 연구원 등을 포함한 7명을 용역 수행자로 선정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당시 상황을 지켜봤던 금융학회 내 한 고위 인사는 “학회에서는 연구진들이 어떻게 돈을 썼는지 등등까지 다 살펴보지 못한다. 해당 부분은 직접 연구를 수행한 이들이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일반 연구원으로 참여했던 이건호 전 은행장은 “내가 맡은 부분에 대해 연구를 했을 뿐 직접 프로젝트를 관리했던 게 아니기 때문에 집행 내역 등 전반적 부분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연구원으로 참여했던 강석훈 의원 역시 “일단 나는 연구 계약 내용 자체를 결정할 그런 위치에 있지 않았고 연구진으로 참여했을 뿐이기 때문에 뭐라고 이야기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연구 총괄 담당자로서 해당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정 부위원장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기 위해 금융위에 연락을 취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당시 계약 자체가 캠코와 한국금융학회가 체결한 것”이라고 답했다. 정 부위원장 역시 학회 추천으로 참여한 것일 뿐, 당사자는 금융학회라는 것이다. 하지만 기자는 “정 부위원장의 직접적인 설명을 듣고 싶다”며 이후에도 담당자를 통해 몇 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러한 제도적 허점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의 김기식 의원은 “연구비 부풀리기 의혹은 물론, 과다한 수의계약이 반복되고 있는 금융 공기업의 방만한 연구용역 실태 전반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지출증빙을 비롯한 사후검증을 더욱 철저히 하도록 해야 하고, 특히 이번에 구체적으로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서는 금융위원회가 적극적으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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