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언론인 수사, 특정인 기사 쓰지 말라는 메시지?
  • 김정우│한국일보 사회부 기자 ()
  • 승인 2014.10.07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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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비판·감시 기능 위축 우려

“(카카오톡 같은)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에서 이뤄지는 사적 대화의 경우, 검색을 하거나 수사를 할 계획이 없다. 사적 공간에 대해선 실시간 검색을 할 수도 없다.”

지난 9월25일 유상범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는 출입기자들과의 정례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불과 일주일 전, 검찰이 “사이버상 허위사실 유포 사범 엄단을 위해 인터넷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전담 수사팀을 신설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수사기관의 SNS 검열·감시’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자 서둘러 진화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검찰의 ‘기대’(?)와는 달리,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더욱 증폭되는 모양새다.

사이버 명예훼손 전담팀을 이끌고 있는 유상범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는 “SNS 같은 사적 공간에 대해선 수사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SNS 감시 아니다” 검찰 해명 불구 논란 계속

핵심은 실시간 모니터링의 범위가 도대체 어디까지인지 아직 불명확해 보인다는 점이다. 검찰은 “네이버·다음 등 포털 사이트처럼 ‘공개된’ 인터넷 공간”이라며 “일반적으로 누구나 검색이 가능한 곳에서 이뤄진다면 수사 대상이 된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포털뿐만 아니라 ‘엠엘비파크’ ‘오늘의 유머’ ‘디비디프라임’ ‘일간베스트’ 등 특정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오는 글들도 일일이 살펴보겠다는 뜻이다.

이뿐이 아니다. “검색이 가능한 곳”이라는 표현에 주목하면 ‘검찰의 눈’이 향하는 영역은 더욱 넓어질 수 있다. 예컨대 운영진 승인을 거쳐야 회원 가입이 가능하고 그 이후에 게시물을 볼 수 있도록 한 인터넷 카페에 오른 글이라 해도, 키워드 검색을 통해선 누구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 SNS 중 하나인 페이스북에 오른 글들도 마찬가지다. 사실상 거의 모든 사이버 공간이 수사기관의 상시적인 감시 체제 아래 놓이게 되며, 고소·고발이 없더라도 검찰이 자체 인지수사에 나설 수 있다는 얘기다. 검찰 관계자는 “사실 검색의 범위에 대해선 아직 정리가 덜 돼 있는 상태다. 계속 내부 논의 중이며, 방침이 정해지면 그때부터 모니터링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SNS를 감시하겠다는 게 아니다”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계속되자 한 발짝 물러선 셈이다.

어쨌든 이로써 ‘감시의 내면화’가 이뤄지고, 이는 ‘표현의 자유 위축’이라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물론 익명성의 그늘로 인해 발생하는 폐해가 적지 않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해결을 위해 무조건 형사처벌의 잣대를 들이대면서 으름장을 놓는 게 온당한지는 의문이다. 대다수 선진국에서 명예훼손죄는 사라지거나 사문화됐고 유엔도 폐지를 권고하고 있는 세계적 추세와는 반대로, 한국 사회는 거꾸로 가고 있는 측면이 분명히 있는 것이다. 탁현민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유언비어가 나도는 이유는 그만큼 시민들의 정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기 때문”이라며 “명예훼손·유언비어를 엄단하겠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군사독재 정권 시절이었다”고 지적했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과 관련한 기사를 쓴 후 고발당한 일본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서울지국장이 8월18일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검찰 행보, 정윤회씨가 ‘실세’임을 보여준 꼴”

특히 우려스러운 대목은 앞으로 검찰이 누군가를 향해 칼을 겨눌지가 너무나 빤해 보인다는 점이다.

 서울중앙지검에 ‘사이버상 허위사실 유포 전담 수사팀’이 꾸려진 시점(9월19일)은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었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9월16일)이 나온 직후였다. 대통령, 나아가 정부에 대한 비판을 억제하겠다는 의도가 뚜렷해 보였다. 그리고 검찰은 주요 수사대상으로 ‘공적 인물과 관련한 허위사실 조작·유포 행위’를 가장 먼저 언급하면서 이러한 추측에 신빙성을 더해줬다.

이 같은 정부의 ‘압박’에선 언론도 자유로울 수 없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들이 응당 누려야 할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경우, 언론의 권력 견제·비판·감시 기능도 함께 약화되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바로 지금 한국 사회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행적 관련 의혹을 제기한 일본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加藤達也·48) 서울지국장에 대한 속전속결 수사가 대표적이다.

가토 지국장은 지난 8월3일자 산케이신문 온라인판에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 누구와 만났나’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현 정부의 ‘비선(秘線) 실세’로 지목되고 있는 정윤회씨와 박 대통령이 함께 있었다는 내용의 증권가 ‘찌라시’가 돌고 있다며 ‘남녀관계’를 언급한 글이었다. 한 보수단체가 박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가토 지국장을 고발했고, 검찰은 문제의 보도가 나온 지 일주일 만인 8월10일 그에게 소환 통보를 했다. 가토 지국장이 출석을 거부하자 8월 중순, 의혹의 당사자로 지목된 정씨를 참고인으로 불렀다. 정씨가 세월호 사고 당일 자신이 만난 사람은 한 한학자였다는 ‘알리바이’를 제시했고, 검찰은 가토 지국장의 글이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보고 사법처리 수위를 고민하는 중이다. 심지어 가토 지국장의 글을 번역한 인터넷 매체 기자에 대해서도 수사를 진행 중이다. 다른 명예훼손 사건과 비교하면 이례적일 정도로 전광석화 같은 수사 속도다.

정씨는 검찰 조사에서 “나는 정권 실세가 아닌데, 너무 많이 과대포장돼 있어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정씨와 연관된 사건에서 검찰이 유독 빠른 행보를 보임으로써 오히려 세간에는 “정씨가 진짜 실세임을 보여준 꼴”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라인으로 정씨가 포함된 만만회를 언급한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현재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상태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시민이나 언론이 발언·보도 행위 당시에 부분적 허위사실이 있어도 무조건 처벌할 수는 없다”며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인데 누구든 행위 시점에 완벽한 정보를 얻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검찰이 지금처럼 허위사실 유포 행위를 단속하겠다고 나서면 제2, 제3의 ‘미네르바’ 사건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는 검찰이 앞으로 어떤 수사를 하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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