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해되는 친박, 작전명령 내릴 2인자가 없다
  • 서상현│매일신문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4.10.07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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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심력도, 끈끈함도, 의리도 없다"

최근 서울 여의도의 한 중국음식점에서 오찬을 함께한 TK(대구·경북) 지역 한 초선 의원은 대화 도중 이런 말을 했다. “‘친박(親朴)’이 결집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난번 전당대회에서 친박의 실체를 봤다고 할까…. 어떤 큰 구심력도, 끈끈함도 없고, 의리도 없었습니다. 그 자리에서만 의리, 의리 하다 돌아서면 남보다 더한 남이었어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것이 친박의 현주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당대회 이후 친박은 신주류로 부상한 김무성 대표 체제에서 철저히 소외돼 고립무원 상태다. 박근혜 대통령 임기가 중반도 지나지 않은 마당에 너무 쉽게 비주류로 전락한 것은 아닐까. 전당대회 2위였던 서청원 최고위원과 지명직이긴 하지만 박근혜의 입으로 통했던 이정현 의원도 최고위원 테이블에 함께 앉아 있다. 이완구 원내대표는 ‘범(汎)친박’으로 통하고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는 박근혜의 법사 내지는 책사로 통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 답은 의외로 다른 곳에서 들을 수 있었다. 건설업을 크게 하는 한 기업인에게서 들은 말은 이랬다.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을 도왔던 사람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합니다. 최근 만난 정치권 인사들은 하나같이 ‘이게 뭐냐’고 합디다. 고생한 사람들 보상을 못하니 고개를 들 수 없다나요. 심지어 장(長)을 맡았던 사람들도 백수로 있다는데 말 다 한 거지요.”

새누리당 김학용 대표 비서실장, 이완구 원내대표,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 서청원 최고위원(맨 왼쪽부터) 등이 9월30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등을 보이는 이는 김무성 대표. ⓒ 시사저널 이종현
“‘신친박’은 김 대표 밑으로 짐 싸는 분위기”

결국 늘 해왔던 ‘보은 인사’가 충분치 않으니 내부의 불만이 커졌고, 등을 돌려버리는 데다 급기야 뒤에서 욕하기 바쁘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 주변을 둘러싼 가신 그룹이 철저히 그런 목소리를 막고 있다고 입 큰 개구리들이 여기저기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소문도 흉흉하다. 이곳저곳 신세를 졌던 친박은 공언했던 자리를 주지 못하니 발만 동동 구른다. 앞서의 기업인은 “자칫 친박을 옹호하기라도 했다간 사람들이 다 떨어져나갈 판이니 숨죽이고 지내는 편이 낫다는 사람도 많더라”고 했다.

문제는 구심이 되는 인물이 없다는 데 있다. 흩어진 친박의 재결집은 결국 어떤 사람을 제2의 우두머리로 내세우느냐에 달렸는데 전혀 보이지 않는다. 탈박(脫朴) 색깔을 지우고 철저히 ‘김무성계’를 그리는 김 대표는 최근 보수혁신특별위원회를 만들어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를 위원장으로 세웠다. 그 밑으로 나경원 부위원장이 선임됐다.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원희룡 제주도지사도 자문위원으로 혁신위 깃발 아래 섰다. 친박을 제외한 굵직한 인사를 당으로 다 끌어모으면서 친박계 설 곳이 더 좁아진 것이다. 친박계 사정을 잘 아는 한 의원실 관계자는 이런 해석을 내놓았다.

“지금 와서 보면, 결국 조기 차출이 악수(惡手)였다. 친박의 와해를 불러왔다고 볼 수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유정복 인천시장, 서병수 부산시장 등 구심이 될 수 있는 친박 핵심들이 내각과 지방선거 차출로 빠졌다. 홍문종 의원은 사무총장 재직 때 인사 문제로 의원들로부터 인심을 잃었다고 한다. 윤상현 전 사무총장이나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는 재선이어서 힘이 약하다. 한때 새누리당은 윤상현당으로까지 불렸는데 요즘은 그가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친박에 구멍이 뚫렸다. 오리지널 친박은 이렇고…. 19대 총선 때 들어온 신(新)친박은 김 대표 밑으로 짐을 싸는 분위기다. 워낙 친박 진입 장벽이 낮았기 때문에 이탈도 수월해 보인다.”

친박에서는 잠룡급으로 거론되는 이가 없다. 명령할 사람이 없으니 지리멸렬하는 모양새다. 최경환 부총리를 거론하는 이들도 있지만 ‘초이노믹스’의 결과를 기다려봐야 한다. 최근 김 대표와 최 장관의 재정 관련 설전에서도 많은 사람이 김 대표의 손을 들어준다. 하지만 최근 친박 일각에선 코너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물듯 발끈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혁신특위와 개헌에 관해서다. 이런 도발이 친박의 결집 바람을 불러올지는 알 수 없으나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현재 권력은 박 대통령이고 여의도 정가를 움직일 툴(tool)도 많다. 정책이고 사람이고 모두 박 대통령의 수(手)에 달린 셈이다.

서청원·윤상현, 혁신특위·개헌론 비판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 퐁당퐁당 출석하면서 태업했던 서청원 최고위원은 혁신특위 구성을 두고 김무성 대표를 정면으로 겨눴다. ‘박근혜 색깔 빼기’의 속도와 강도가 심했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는 “(혁신특위 인선과 관련해 김 대표가 최고위원들과) 사전 협의를 거치지 않은 아쉬움이 있다. 그렇게 (당과 혁신특위를) 운영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한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서다. 특히 강석훈 위원 외에 친박이 없는 것을 의식한 듯 “혁신특위 구성에 대해 안타깝게 얘기하는 분들도 있고 저도 그렇게 본다”고 불쾌함을 드러냈다. 더는 뒷방 퇴물 취급을 받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되기도 했다.

개헌에 대해서는 윤상현 전 사무총장이 방어벽을 쳤다. 개헌은 모든 이슈를 삼킬 블랙홀로 현재 권력보다는 미래 권력을 비추게 된다. 박 대통령도 신년기자회견에서 “개헌은 시기상조”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한 바 있다. 윤 전 사무총장은 “어려운 경제 상황을 제쳐두고 (비박계가) 개헌 논란으로 정치적 갈등에 불을 지피는 자체가 정치 부재다. 지금은 민생 안정과 경기 회복에 집중해야 할 때”라며 “정부가 한창 일해야 할 시기에 개헌논쟁을 일으키는 것은 국정 운영의 동력을 잃게 하는 자충수”라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윤 전 사무총장은 요즘 국회와 집에서 책을 쓰고 있다고 한다.

세력 결집을 위한 각종 모임도 예고돼 있다. 대표적인 친박 의원 모임인 ‘국가경쟁력강화포럼’이 지난 9월 세미나를 연 데 이어 이번 달에는 최 부총리를 초청해 ‘한국 경제의 문제점과 나아갈 방향’을 주제로 토론회를 연다. 또 홍문종 전 사무총장이 곧 통일과 경제를 연구한다는 취지로 연구모임 결성을 준비 중이다. 통일과 경제는 김무성 대표도 연구모임 형식으로 만들어놓은 상태여서 맞불 성격이 짙어 보인다.

하지만 친박의 용트림은 헛방귀가 될 소지가 커 보인다. 친박계 내에 2인자가 부상하지 않는 한 구심력을 확보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당내 절대 다수인 초선 의원들이 김무성계로 옮겨 타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친박의 부활보다는 다음 총선 공천이 급한 불이기 때문이다. 당직을 맡았던 한 비례대표 의원은 “황우여 전 대표보다 김 대표의 리더십이 당을 더 건강하게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동료로부터 들었다. 좋아 보였다”며 “19대 때 들어온 초선들은 박 대통령에게 빚진 마음이 크다. 하지만 지난 대선 승리로 어느 정도 갚았기 때문에 이제는 당이 살길에 힘을 보태야 한다”고 했다. 최근 여의도 정가에서 들리는 ‘친박은 없다’는 이야기가 실감 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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