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100만 표’ 무력 시위에 굴복하다
  • 안성모·이규대 기자 ()
  • 승인 2014.10.07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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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연금 ‘셀프 개혁’ 선회…공무원 저항에 꼬리 내린 여당

공무원연금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여당인 새누리당이 주도하던 공무원연금 개혁이 정부가 주도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자 ‘셀프 개혁’ 논란이 일고 있다. 퇴직 후 연금을 지급받게 될 수급 대상인 공무원들이 제대로 된 개혁안을 내놓을 수 있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공무원연금에 대한 개혁 논의가 진행될 때마다 관료사회의 반발이 극심했다는 점에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한편으로는 공적연금의 부실 책임을 공무원에게만 떠넘기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공무원연금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혁 대상이 됐다. 이유는 크게 다르지 않다. 두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수조 원에 이르는 적자를 세금으로 메우는 일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 거론된다. 공무원은 매달 기준소득 월액의 7%를 보험료로 낸다. 고용주인 정부 역시 똑같은 금액을 부담한다. 근로자와 회사가 각각 4.5%씩 내는 국민연금과 같은 방식이다.

ⓒ 일러스트 신춘성
그런데 공무원연금의 경우 부족한 지급액만큼 정부가 보전해주고 있다. 2013년 공무원연금 수입 현황을 살펴보면 전체 15조3763억원 가운데 자체 수입은 5조7006억원이었다. 이 중에서 보험료(기여금) 수입은 3조4353억원이다. 반면 정부 내부 수입은 7조642억원으로 자체 수입보다 1조3636억원 많다. 이 중에서 보전금이 1조7794억원에 이른다.

공무원연금은 1993년부터 적자를 기록했다. 2001년에는 기금이 고갈됐다. 문제는 정부가 부담해야 할 금액이 갈수록 커진다는 데 있다. 이미 적신호가 들어온 정부 부채도 덩달아 늘어날 수밖에 없다. 2011년 773조5000억원이던 국가 총부채는 2013년 1117조9000억원으로 늘어났다. 연금 충당 부채는 이보다 더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2011년 342조1000억원이던 연금 충당 부채는 2013년 596조3000억원으로 늘어났다.

국민연금 120만원 vs 공무원연금 219만원

일반 국민이 가입하는 국민연금과 비교할 때 공무원연금의 지급액이 너무 높다는 점도 거론된다. 30년간 근무한 일반 국민의 평균연금액은 120만원인 데 반해 공무원의 경우 219만원에 이른다. 단순 평가는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1960년 첫 시행된 공무원연금은 낮은 보수와 적은 퇴직금에 대한 보완 성격을 지녔다. 하지만 공무원의 보수가 상당 부분 현실화했고 퇴직금이 적은 대신 민간 기업에 비해 직업 안정성이 크다는 장점이 있다. 공무원연금을 두고 ‘특권 연금’이라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정권이 공무원연금 개혁을 추진하면서 우선 부각시키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현 정권도 공무원연금 개혁에 칼을 빼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월25일 ‘경제 혁신 3개년 계획’ 담화에서 공적연금에 대한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공무원연금 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새누리당이 행동에 나섰다. 한 달여 뒤인 4월1일 당내에 경제혁신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친박(친박근혜)계 4선 중진인 이한구 의원이 위원장을 맡았다. 정책위원회 의장을 두 차례 맡았고 원내대표까지 지낸 당내 대표적 경제통이다. 경제혁신특위는 개혁 부문에 맞춰 규제 개혁, 공기업 개혁, 공적연금 개혁 세 개 분과를 뒀다. 이 중에서 규제 개혁과 공기업 개혁은 공청회를 거친 후 입법 단계에 들어갔다.

하지만 공적연금 개혁의 첫 단계로 추진하던 공무원연금 개혁은 발목이 잡혔다. 공무원들의 반발이 예상보다 거셌다. 새누리당은 9월22일 국회에서 공청회를 열려던 계획에서 한 발짝 물러나 토론회를 개최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공무원 노조원 수백 명이 토론회장에 몰려들면서 파행으로 끝났다. 새누리당 경제혁신특위는 이 자리를 통해 6개월여 논의 끝에 마련한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선보일 예정이었다.

새누리당이 한국연금학회에 의뢰해 마련한 공무원연금 개혁안은 이전 정부의 개혁안보다 고강도라는 평가가 나온다. 2016년을 기점으로 기여율(연금 부담) 및 급여율(연금 수령)이 달라지도록 했다. 2016년 이전에 임용된 공무원의 경우 기여율은 2016년 8%에서 2026년 10%까지 올라가고, 급여율은 2016년 1.9%에서 1.25%로 낮아진다. 2016년 이후에 임용되는 공무원의 경우 기여율이 4.5%로 국민연금과 동일하고, 급여율도 2016년 1.15%에서 2028년 1%로 낮아진다. 기여율이 4.5%라는 것은 공무원 부담률과 함께 정부 부담률도 국민연금에서 회사가 부담하는 수준으로 낮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새누리당의 개혁안 내용을 토론회에 앞서 파악한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공무원이 납부하는 연금 부담액을 현재보다 50% 가까이 인상하고 수령액도 삭감하는 파렴치한 개악안을 준비 중”이라고 비난했다. 노조에 따르면 새누리당의 개혁안이 시행될 경우 공무원연금은 국민연금보다 수익비(납입금 대비 수령액의 비율)가 낮아지면서 공적연금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노조는 “새누리당이 이해 당사자의 소통을 원천봉쇄한 가운데 공적연금 개악을 모의해왔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후 여권 내부에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됐다. 청와대와 정부, 새누리당은 9월29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당·정·청 협의에서 공무원연금을 정부안을 중심으로 논의하기로 결정했다. 안전행정부가 개혁안을 만든 후 당·정 협의를 통해 최종 결정하는 방식이다. 당초 공무원연금은 이날 협의 의제에 포함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당에서 먼저 제안을 하고 정부에서 받아들이는 모양새였다고 한다.

친박 지도부 비박으로 바뀐 후 입장 변화

이에 앞서 당 지도부를 중심으로 공무원연금 개혁을 주도하는 데 대한 부담감과 피로감이 암암리에 흘러나왔다. “당에서 주도하면 전 공무원과 등을 져야 하지만 하기는 해야 한다”(김무성 대표), “정부가 시작한 일을 당에서 뒤치다꺼리하고 있다”(주호영 정책위의장) 같은 발언이 대표적이다. 새누리당이 골치 아픈 문제를 정부에 떠넘긴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치권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다. 공무원들과 부딪쳐서 좋을 게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시절 연금 개혁을 주도했던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은 주무 장관인 박명재 행정자치부장관(현 새누리당 의원)과 청와대에서 고성이 오가는 말싸움까지 했지만 공무원연금 개혁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국회로 돌아와 관련 법안을 발의했지만 상임위에 상정조차 하지 못했다. 행정자치위 소속 의원들이 욕먹기 싫다며 손사래를 쳤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개편도 마지못해 고치는 시늉만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새누리당이 경제혁신위를 만든 배경에는 ‘셀프 개혁으로는 안 된다’는 당의 입장이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정부가 스스로 개혁안을 마련하는 이른바 ‘셀프 개혁’이 제대로 된 성과물을 낼 수 있을지에 회의적이었던 셈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아닌 당이 경제혁신위를 중심으로 강하게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경제혁신위 출범 당시에는 황우여 대표(친박)가 위원회에 상당한 힘을 실어줬다. 그런데 당이 김무성 대표(비박) 체제로 바뀐 후 위상이 흔들렸다. 정치적인 이유가 어느 정도 작용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한구 위원장도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그런 얘기 듣게 생겼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당 지도부의 공무원연금 개혁 의지에 대해 “별로 강하지 않다”고 말했다.

공무원 사회도 조직적 대응 나서

올해 들어 공무원연금 개혁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자 공무원 사회도 조직적 대응에 나서기 시작했다. 지난 5월 주요 공무원단체들이 모여 ‘공적연금 개악 저지를 위한 공동투쟁본부’를 결성한 것이다. 공동투쟁본부는 공무원연금 손질 시도를 ‘일방적인 개악’으로 규정하고 있다. 100만여 공무원의 노후 보장과 생존권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문제임에도 당사자들과 충분한 논의 없이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공무원연금 문제를 공적연금 축소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공적연금제도가 후퇴하며 사회 안전망이 해체되는 흐름의 연장선에 공무원연금이 있다는 주장이다.

가장 첨예한 쟁점인 재정 불안정 문제와 관련해 보험 수리상의 불균형 및 개선의 지연, 은퇴자 수 및 수명 증가로 재정 건전성 문제가 심각해졌다는 점에는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가 이 정도로 심각해진 데는 공무원들의 과도한 수급 때문이 아니라 재정을 부실하고 방만하게 운영해온 정부의 책임이 크다는 주장이다.

공무원연금의 혜택이 일반 국민연금에 비해 지나치게 많다는 형평성 논란에 대해서는 공무원연금의 특수성을 들어 반박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노후 소득 보장 측면에 치중한 제도라면 공무원연금은 여기에 퇴직금 일부 보조, 후불 임금 기능, 유능한 인재 영입 및 장기 근속 유도 등의 인사정책, 노동 3권 및 정치 참여 등 권리 제한에 대한 보상, 산업재해 보상 및 후생 복지 등 다양한 제도적 성격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 시사저널 이종현
정부·여당의 공무원연금 개혁을 ‘개악’으로 규정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국민연금과의 형평성을 내세우며 연금을 깎으려는 논리가 궁색하다. 한국의 공적연금제도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과 비교해보면 열악한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로 성격이 다른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을 단순 비교해 후자를 전자 수준으로 낮추자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비교 대상이 잘못됐다. 비교를 하려면 공무원연금을 포함한 국내 특수 직역 연금 간 형평성이 어떤지, 아니면 다른 나라와 우리나라의 제도 차이가 어떤지를 살펴야 맞다.

상당수 전문가는 공무원연금 재정 적자 문제가 심각하다고 경고한다.

일정 부분 과장된 것이다. 향후의 물가 상승, 공무원 자신 및 국가의 부담률 조정 등을 세밀하게 적용하지 않은 결과다. 현재 논의를 주도하는 경제학 전문가 중 상당수는 공적보장제도를 축소해 민간 시장으로 전환시키는 것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재정균형을 기계적으로 맞추는 데만 집중해 국가의 공적 책임성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와 다른 견해를 가진 다른 분야 전문가도 많다. 행정학 전문가의 경우 일반 국민연금과는 다른 특수직 연금의 특수성을 지적한다. 사회복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OECD 국가 평균 수준의 국민연금보다 못한 공무원연금을 왜 특혜라고 하나”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현재 공무원연금 관련 논의에서는 이런 다양한 시각들이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공무원연금의 혜택이 일반적인 경우와 비교할 때 지나치게 컸다는 비판도 나온다.

공무원연금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 공무원의 고용주는 국가다. 국가가 인사관리상의 필요성, 임금에 대한 국가의 부담 조정 등을 위해 활용하는 제도 중 하나가 공무원연금이다. 원래 공무원연금은 재직 시에 박봉을 받는 대신 퇴직 후에는 충분한 연금을 통해 보상하는, 일종의 유인책으로 출발했다. 여전히 공무원 보수 수준은 낮다. 근로자 100인 이상 기업 대비 83.7%, 일반직 대졸 노동자 대비 69%다. 특히 하위직으로 갈수록 차이가 크다. 또 공무원의 퇴직금은 민간 근로자의 39%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걸 이야기하지 않고 단순히 연금 액수만 비교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그렇지만 상당수 국민은 공무원을 ‘특권 계급’으로 받아들이는 정서가 강하다.

충분히 이해한다. 지금 많은 국민의 노후가 불안한 상황이다. 공무원이었다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안정된 노후를 누리는 모습이 그렇게 비칠 수 있다. 하지만 공무원연금을 현재 국민연금 수준으로 후퇴시키는 것은 분명 개악이다.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한 공적보장제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공무원연금 문제의 해법은 무엇이라고 보나.

문제의 핵심은 조기에 정년을 마친 퇴직자들에게 오랜 기간 많은 액수의 연금 재정이 지출되면서 재정 부담이 발생하는 시스템에 있다. 이를 해소하려면 근본적인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 본인 및 정부의 부담 비율 조정, 정년 연장 등 공무원 조직 및 인사제도 전반과 연동한 장기 계획을 바탕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필요에 따라서는 최장 수급 기간을 제한하는 등의 방안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노후 보장 수준을 대폭 후퇴시키는 방향은 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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