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형수’마저 빼버릴 건가
  • 전성인 |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
  • 승인 2014.10.07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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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환표 경제정책이 표류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때는 747 정책이 이륙도 못하고 추락하더니, 이번에는 최경환표 경제정책이 제대로 항해도 해보지 못한 채 떠내려가고 있다.

왜 표류하는 것일까. 평형수를 다 뺐기 때문이다. 배가 흔들리지 않으려면 평형수를 채워야 하듯이, 경제가 표류하지 않으려면 경제정책이 특정 계층의 이익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감각을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최경환표 경제정책은 바로 이 점에서 실패했다. 최 부총리가 공언했던 수많은 약속 중에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강남의 일부 재건축 아파트 가격 상승뿐이다. 강남의 집 부자들이라는 특정 계층의 이익 이외에 눈에 보이는 평형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반론도 있을 수 있다. 소득 주도 성장을 외친 부분이나, 수출 촉진 이외에 내수 활성화를 중시한 부분은 균형감각을 유지하려고 했던 ‘평형수’가 아니냐는 반론이 그것이다. 그렇다. 최 부총리가 진정으로 이런 정책에 골몰했다면 어쩌면 최 부총리의 경제정책은 훨씬 더 멀리 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까지 드러난 바에 의하면 이번에 새로 들어간 부분들은 그냥 ‘립서비스’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서민들의 소득을 늘려서 소비 수요를 자극하고 이를 통해 불황에서 탈출하고 성장을 도모하자는 것이 대략적인 소득 주도 성장의 줄거리다. 그런데 지금 최 부총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재벌 총수 사면론을 들고나오지 않았나. 재벌 총수를 사면해주면 이들이 그 답례로 투자를 할 것이니 그 덕에 수출도 하고 성장도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정책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새누리당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지난 대선 때 경제민주화를 중요한 공약으로 내세웠겠는가. 그러나 경제민주화가 사라졌듯이 소득 주도 성장론도 그냥 사라지고 있다. 내심은 언제나 ‘재벌 총수의 시혜에 의한 성장’이었던 것이다.

애석하고 불행한 것은 우리 경제가 이제 더 이상의 시행착오를 덮어줄 만큼 여유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지난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경제가 너무도 많이 무너졌다. 성장은 둔화되고, 국민들의 상당수가 점차 ‘가난’이라는 단어를 몇 십 년 만에 다시 꺼내서 먼지를 털고 들여다보는 상황이 됐다. 가계 부문의 저축은 줄어들고 부채가 늘어나고 있다. 공공 부문 적자 역시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계층 간의 갈등에 더해서 세대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경제는 빠르게 노쇠하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에게는 시간이 얼마 없다.

최경환 경제팀은 립서비스를 던져버리고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한다. 어떻게 저소득층의 부채 문제를 해결해서 가처분 소득을 올려줄 것인가. 어떻게 경제 전체의 활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필요한 세수를 거둬들일 것인가. 어떻게 중소기업과 서비스산업의 생산성을 끌어올릴 것인가. 

이런 게 귀찮다고 재벌 총수만 바라보는 것은 화물 조금 더 싣겠다고 배에서 평형수를 빼버리는 것과 똑같다. 최경환표 경제정책이 표류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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