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서-최룡해 권력싸움 끝나지 않았다
  • 이승열│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연구위원 ()
  • 승인 2014.10.13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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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 이어 인천에서도 확인된 두 실세의 2인자 다툼

지난 10월4일 인천아시아경기대회 폐막식을 앞두고 북한은 깜짝 정치쇼를 연출했다. 북한의 최고 실세인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최룡해 노동당 근로단체 비서, 김양건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가 한꺼번에 인천으로 날아온 것이다. 북한 대표단의 파격 행보는 3인이 동시에 방한했다는 것뿐만이 아니다. 이들이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전용기를 이용했으며, 수령만이 받을 수 있는 밀착 경호를 받으며 내려왔다는 점도 우리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국방위 부위원장이며 총정치국장인 황병서 동지가 남조선의 인천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평양을 출발했다. 최룡해 노동당 비서와 김양건 비서가 동행했다”며 이들의 방한을 확인해주었다. 그러나 북한의 최고 정치 엘리트 3인의 깜짝 등장은, 형식은 화려했지만 내용은 다소 부실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엇보다 청와대가 제안한 대통령 예방을 북한 대표단이 시간상의 이유로 거부한 것은 이들의 방문 목적이 남한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내부 선전도 고려한 이벤트였다는 점을 보여준다.

10월4일 인천 송도 오크우드호텔에서 우리 측 류길재 통일부장관 등과 티타임을 갖고 있는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왼쪽)과 최룡해 노동당 비서. ⓒ 사진공동취재단
북한 권력 실세 3인방의 방한은 우리에게 북한 권력 엘리트 집단의 속성을 엿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했다. 2007년부터 대남 비서로 활동한 김양건을 제외하고 김정은 통치하에서 최고의 직책에 오른 황병서 총정치국장 겸 국방위원회 부위원장과 이번 인천아시안게임 성과의 책임을 맡고 있는 국가체육지도위원장이며 직전 총정치국장이었던 최룡해의 관계는 매우 흥미로웠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보도문에서 황 총정치국장이 김정은의 대리인이며, 최룡해와 김양건은 ‘동행’한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황병서도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께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따뜻한 인사를 전한다”고 함으로써 자신이 김정은의 대리인임을 확인해주었다. 그러나 김양건이 황병서의 허락을 받아 발언하는 모양새를 취한 데 반해, “조국통일 사업에서 체육이 제일 앞서가고 있다”며 자신이 맡고 있는 국가체육지도위원회가 마치 조국통일의 선봉에 선 것처럼 말한 최룡해의 언행은 확실히 달랐다. 마치 자신이 김정은의 대리인인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수직관계라기보다는, 뭔가 각자의 역할이 있는 수평적 관계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 황병서와 최룡해는 과연 어떤 관계일까.

최룡해는 혈통, 황병서는 인연에서 앞서

최룡해는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인 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로 북한에서 백두혈통 다음가는 ‘빨치산 혈통’이다. 김정일 시대에도 총애를 받았던 최룡해가 북한 정치에서 최고 실세로 두각을 나타낸 것은 2012년 4월 민간 당료 출신이면서 군을 통제하는 총정치국장과 정치국 상임위원, 그리고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호명되면서부터다. 최룡해는 2012년 7월 장성택과 함께 리영호 총참모장의 숙청을 주도했으며, 2013년 이후 북한의 실질적 2인자였던 장성택마저 제치고 김정은의 현 지지도 수행 빈도수 1위를 차지했다.

최룡해는 2013년 김경희(김정은의 고모)가 치료차 러시아로 출국한 사이에 조직지도부와 모의해 백두혈통의 후견인인 장성택을 ‘반당반혁명종파행위’와 ‘국가전복음모행위’로 처형하는 데 앞장섰다. 지난해 12월17일 열린 ‘김정일 2주기 추모대회’에서 최룡해는 김정은 왼쪽 옆자리에 앉게 됨으로써 장성택 이후 북한의 실질적인 2인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최룡해의 급부상에 부담을 느낀 김정은이 현지지도 순위에서 최룡해 대신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인 황병서를 내세웠고, 그해 4월 최룡해를 총정치국장에서 해임하고 대신 황병서를 총정치국장에 임명했다. 최룡해는 2012년 4월 이전의 직책인 노동당 근로단체 비서로 좌천됐다.

황병서는 최룡해보다 김정은과의 개인적 인연이 훨씬 깊다. 황병서는 군 출신으로 2005년부터 조선노동당 조직지도부의 군사담당 부부장으로 활동했다. 김정은은 김일성종합대학을 마친 아버지 김정일과 달리, 김일성종합군사대학에서 5년 과정을 마쳤고, 직전에 약 1년 6개월가량 사병생활도 경험했다. 이 시기 김정은을 남몰래 돌봐줬던 인물이 바로 조직지도부 군사담당 13과장이었던 황병서다. 당연히 김정은의 생모인 고영희와도 자주 만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배경을 통해 황병서는 김정은 시대 최고 실세로 등장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장성택 숙청을 모의했던 백두산 삼지연 회의에 조연준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과 함께 참석하면서 권력 실세로 부상했다.

올해 초부터 최룡해를 제치고 김정은 현지지도 수행 1위를 차지했으며, 3월에는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4월 인민군 대장으로 승진했고, 11일 만에 총정치국장에 임명되면서 차수로 다시 승진했다. 곧이어 9월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방위 부위원장에 임명됨으로써 북한의 실질적인 2인자의 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황병서는 현재까지 김정은 현지지도 수행 총 97회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최룡해는 빨치산 혈통으로 북한 정권 내에서 나름 지분을 갖고 있는 권력 실세인 반면, 황병서는 군 사단장 출신으로 2005년부터 조직지도부에 근무하면서 고영희·김정은과 개인적 인연을 맺은 북한 내 전형적인 테크노크라트 출신이다. 결과적으로 두 사람 출신성분의 차이점은 이들의 대외적인 행보에서도 상이한 행동을 불러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최룡해, 황병서 의식 않는 자신감 보여 주목

대표단 단장임에도 불구하고 대외적으로 말수가 적고, 술에 손을 대지 않고, 공식적인 언급 외에는 자제하는 황병서의 모습에서 벼락출세 이후 조심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반면 출신성분이 좋은 최룡해는 황병서를 의식하지 않고 의자를 건들거리며 대화하거나, 체육이 통일에 가장 앞서간다는 말로 자신이 맡고 있는 국가체육지도위원장의 위상을 공개적으로 자랑하는 등 외부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행동을 보였다. 최룡해의 적극적인 행동은 비록 총정치국장에서 밀려났지만 장성택이 담당했던 국가체육지도위원장 직을 맡은 이후 김정은의 신임을 확인한 자신감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황병서와 최룡해는 김정은 체제에서 경쟁관계임에 틀림없다. 향후 북한 내부의 권력 구도가 어떻게 바뀔지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최룡해는 재기를 위한 권력투쟁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황병서 또한 최룡해의 공격을 막기 위해 최대한 자신을 낮추되 김정은에 대한 충성심을 높여 입지를 확고히 하려 할 것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최룡해는 창이고, 황병서는 방패인 셈이다. 창과 방패 중 누가 오래 버티느냐의 게임은 이미 시작되었고 매우 흥미롭게 진행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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