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손’, 기무사령관 인사 개입했나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4.10.13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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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수 사령관 1년 만에 전격 교체…청와대 주변에서 권력암투설

흔히 대한민국 최고 정보기관인 국정원을 ‘내곡동’이라고 부른다. 이에 맞서 군의 핵심 첩보기관인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는 한때 ‘소격동’으로 불렸다. 2008년 기무사가 서울 종로구 소격동에서 경기 과천시로 이전하면서 ‘소격동 시대’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1950년 10월 특무부대로 창설된 이후 방첩부대에 이어 보안사령부 시절 정권을 쥐락펴락했던 그 정보력과 위세는 군인뿐만 아니라 민간인들의 뇌리 속에도 강하게 남아 있다. 기무사가 국가 정보기관으로 국정원에 예속돼 있는 측면이 있지만, 2006년 1월 초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방중’을 청와대에 최초 확인해줬던 것도 국정원이 아닌 기무사였다는 점에서 때로는 정보력에서 국정원보다 우위에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실제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과 기무사는 정보 수집 활동과 영역 등을 놓고 끊임없이 갈등을 빚어왔다.  

이른바 ‘군 출신 전성시대’로 불리는 박근혜정부 들어 기무사의 수뇌부 인사가 연일 관심사로 떠오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런데 지난 1년 동안 기무사령관 인사를 두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은 이상 징후로 받아들여진다. 지난해 10월 장경욱 전 기무사령관(육사 36기)이 취임 6개월여 만에 전격 경질된 데 이어, 후임으로 ‘깜짝’ 등장했던 이재수 기무사령관(육사 37기) 역시 재임 1년 만에 석연치 않은 이유로 낙마하면서 군 내부의 인사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통상적으로 기무사령관의 임기는 2년으로 보고 있다. 두 차례 인사 사건은 교체 대상만 다를 뿐 교체 배경을 둘러싸고 잡음이 일고 있다는 점에서 닮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11월15일 이재수 국군 기무사령관의 삼정도에 수치를 달아주고 있다. ⓒ 연합뉴스
“기무사령관 잦은 교체는 군내 이상 징후”

국방부는 10월7일 중장급 이하 장성 113명의 진급 및 보직 인사를 단행했다. 이 인사에서 이재수 기무사령관을 3군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이동시키고, 조현천 중장 진급자(38기·국군사이버사령관)를 후임 사령관으로 임명한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이재수) 기무사령관이 최근 군에서 발생한 일련의 불미스러운 사건과 관련해 적절하게 ‘지휘 조언’을 하지 못한 데 대해 책임감을 느껴왔다”며 “보직된 지 1년이 경과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교체했다”고 밝혔다. 이 사령관은 10월8일 국회 국방위원회의 국방부 국감에 출석해서도 “최근 발생한 군내 (기강 해이) 사건에 대해 기무사가 적절한 지휘보고를 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반성해 (국방부) 장관에게 이번 인사에 포함시켜 달라고 건의했고, 장관이 이를 수용했다”고 밝혔다.

군 당국의 발표와 본인 해명에도 권력 투쟁설, 문고리 권력 개입설 등 뒷말이 계속 나오고 있다. 먼저 절차상 문제가 의혹을 부추겼다. 국방부는 당초 10월5일 인사제청위원회를 열고 대통령에게 제출할 인사안을 확정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민구 국방부장관은 인사안이 확정되면, 이튿날인 6일 박 대통령에게 대면보고를 한 후 공식 발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군 수뇌부가 한자리에 모이고도 회의는 연기됐고, 서면보고만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의혹을 키웠다. 이는 청와대와 군 수뇌부 사이에 인사 문제를 두고 이견이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견의 핵심은 기무사령관 교체로 보인다. 육군 영관급 장교 출신의 한 인사는 “기무사는 군대 내부 조직이지만 다른 군부대와는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며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군을 통제·관리하는 데 기무사가 필수적인데, 사령관이 2년도 채 안 돼 두 번이나 교체된 것은 이상 징후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단행된 기무사령관 교체 과정에서도 권력 내부의 갈등설이 제기됐다. 박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임명한 장경욱 전 기무사령관이 재임 반년 만에 교체되면서 김관진 전 국방부장관(현 국가안보실장) 측과의 갈등설이 불거진 것이다. 특히 당시 장 전 사령관의 교체 이후 장 전 사령관 휘하에 있던 참모장과 기무부대장 등이 물러나면서 당시 인사 파동은 기무사 내부에서 ‘피의 숙청’이라고 불릴 정도로 여진이 적지 않았다. 그 후 장 전 사령관 전격 경질을 둘러싼 권력 암투설은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위 여부가 가려지지 않은 채, 베일에 가려져 있다.

한민구 국방부장관과 최근 기무사령관에 임명된 조현천 사이버사령관(뒷줄)이 10월8일 국방부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대장 진급 위한 경력 쌓기용 배려 시각도

한 차례 인사 파동을 겪은 후 취임한 이 사령관이 다시 장 전 사령관의 전철을 밟자, 이를 권력 내부의 암투와 연관 짓는 시각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이 사령관은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과 중앙고 및 육사 37기 동기로, 학창 시절부터 ‘베프’(베스트 프렌드)로 알려져 있다.

일각에서는 최근 박 회장과 청와대 핵심 권력층의 갈등설 등을 들어 이 전 사령관이 박 회장 인맥이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앞선 지난 4월 조응천 청와대 전 공직기강비서관이 돌연 사표를 제출한 것을 두고도 이와 유사한 권력 내부 갈등설이 나왔다. 박 회장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조 전 비서관을 경계한 청와대 권력 핵심부의 견제를 못 이겨 자진 사퇴한 것이라는 얘기가 있었다. 당시 기자와 만난 친박계 핵심 인사는 “조 전 비서관이 공직기강비서관에서 민정비서관이나 민정수석으로 자리를 옮기려고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자신의 바람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 전 비서관은 자진 사퇴했다.

이 사령관의 전격 사퇴를 다른 시각에서 해석하는 이도 있다. 이 사령관의 교체가 이른바 ‘배려 인사’라는 것이다. 이 사령관은 군내에서 인사 분야 업무를 주특기로 했는데, 야전 지휘 경험이 부족하다는 측면에서 대장 진급을 위한 ‘경력 쌓기용 하차’라는 시각이다. 이 사령관은 10월13일 이임식을 가진 후 3군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자리를 옮긴다. 청와대 역시 이 사령관의 퇴진이 “경질 인사는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불과 1년 만에 두 명의 기무사령관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교체된 것을 두고 우려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군 인사를 두고 잡음이 이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방첩 활동과 군 내부의 정보 보안 및 기강을 책임지는 기무사령관은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가감 없이 군의 동향을 전달해야 하는데, 권력 내부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다는 인상을 준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 사령관의 후임으로 임명된 조현천 국군사이버사령관이 군내 사조직인 ‘알자회’(하나회의 뒤를 잇는 육사 출신 사조직) 출신이라는 점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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