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주석궁의 기습
  • 윤길주 | 편집국장 ()
  • 승인 2014.10.13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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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등 북한 실세 3인방이 김정은 제1비서 전용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착륙해 11시간 동안 머무르다 떠났습니다. 벼락같은 방한을 두고 루머가 난무했습니다. 압권은 ‘조명록 쿠데타설’입니다. 조명록 전 총정치국장이 쿠데타를 일으켜 김정은 제1비서를 구금하고 있으며, 이를 감추기 위해 황병서 등을 남한에 보냈다는 것입니다. 조명록은 2010년 사망했습니다. 그럼에도 황당한 소문이 언론 보도와 SNS를 통해 삽시간에 번졌습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 고위직을 지낸 인사에게 들은 얘기입니다. 그는 “김정일이 아침에 무엇을 먹었는지도 알았다”고 했습니다. 당시는 휴민트(HUMINT·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한 정보 수집)가 살아 있을 때라 어느 정도는 신빙성이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대북 강경 노선으로 치달으며 휴민트는 대부분 끊겼습니다. 이후 정보 당국이나 언론 모두 깜깜이가 됐습니다. 그래서 언론들은 김정은 사진, 김정일 참배 명단 순서, 로동신문 보도 등을 통해 퍼즐 맞추듯 북한 사정을 추론하고 있습니다. 기자 사회에 전해지는 말이 있습니다. ‘북한 관련 뉴스는 모두가 특종 아니면 오보다.’ 예컨대 ‘조명록 쿠데타설’ 같은 경우 먼저 쓰면 특종이고 아니면 말고 식입니다. 어둠의 장막에 가려진 북한의 실상을 보여주는 씁쓸한 얘기입니다.  

북한은 3인방이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한다고 전날 저녁에야 우리에게 통보했습니다. 일반 가정집에서도 며칠 전에 방문 여부를 묻는 게 예의입니다. 하물며 국가 간에 고위 인사들이 사전 약속 없이 불쑥 오겠다는 건 무례하기 짝이 없습니다. 방문을 통보받은 날(10월3일) 저녁 청와대를 비롯해 정부 당국은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발칵 뒤집혔을 겁니다. 더구나 우리가 박 대통령 면담을 제안했지만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비켜나갔습니다. 우리만 우습게 됐습니다. 3인방이 유유히 떠난 뒤 북한 해군 경비정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NLL(서해 북방한계선)을 침범했습니다. 며칠 사이에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보면 북한이 우리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까불지 마’라며 거들먹거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남과 북은 180만명에 달하는 군이 대치하고 있습니다. 외국 사람들에게 한반도는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입니다. 외국인들은 한국에 장기 투자하기를 꺼립니다. 주식이나 부동산을 사면서도 운동화 끈을 조여매고 달아날 준비를 합니다. 그만큼 우리의 안보 리스크가 크다는 얘기입니다.

황병서 일행의 갑작스러운 방문에서 보듯 서른 살 젊은 수령이 통치하는 예측 불가능한 북한을 어떻게 안정적으로 관리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우선은 김정은을 중심으로 한 북한 권력의 움직임, 그들의 생각 등을 꿰뚫고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붕괴된 휴민트를 되살리고, 대화를 통해 그들의 의도를 간파해야 합니다. 더불어 시간이 걸리거나 어렵더라도 5·24 대북 제재 해제, 핵 문제 등 난제를 풀어갈 지혜를 북한과 함께 짜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신뢰가 쌓이면 안보 리스크는 훨씬 줄어들 겁니다. 북한은 진정성을 보이고, 우리는 대담하게 북측을 무대로 끌어낼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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