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vs 김정은, 대 이은 애증의 게임 펼쳐진다
  • 이영종│중앙일보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4.10.13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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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취한 권력과 주어진 권력 대결…두 정상 뜻밖의 만남 이뤄질 수도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을 비롯한 실세 3인방의 남한 방문을 계기로 남북 관계의 돌파구가 열릴 것이란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북한이 지난 8월 우리 정부가 제안한 고위급 당국 대화 재개에 늦게나마 호응해온 데다, 정부도 모처럼의 기회를 박근혜정부의 대북 정책 구상을 실행하기 위한 분위기 조성에 활용하겠다는 자세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다. 깜짝 인천 방문 직후 곧바로 이어진 북한군 함정의 서해 북방한계선 침범 및 교전 사태와 우리 민간단체의 김정은 비판 대북 전단 살포를 비롯한 일부 불안 요소가 돌출했지만, 남북 관계 복원 쪽으로 물꼬가 트인 건 분명하다는 게 정부 당국과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진단이다.

이번 당국 대화 재개가 주목받는 건 남북한 최고 지도자 사이에 교감이 이뤄졌다는 점 때문이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최측근 황병서를 맞이하는 영접단의 책임자로 박근혜 대통령은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을 낙점했다. 김 실장과 황 총정치국장을 수석대표로 한 비공개 오찬 회담과 류길재 통일부장관과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의 만남 등을 통해 남북 현안에 대한 서로의 입장을 개진하고 의중을 탐색했을 것이란 얘기다. 단순히 10월 말~11월 초로 예상되는 차관급 회담 재개를 위해 이런 비중 있는 인사들이 총출동했을 것이라고 보는 건 상식에 맞지 않다.

이 때문에 양측이 좀 더 큰 남북 관계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바로 박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만남이다. 남북 정상 간의 회담은 실타래처럼 얽힌 남북 관계의 난제를 일괄 타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거의 유일한 수단이다. 서울과 평양 측이 똑같이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든 당국 관계의 단절과 교류·협력을 비롯한 소통의 부재에 피로감을 느껴왔기 때문이다.

ⓒ 연합뉴스
두 정상 만남 자체가 세계 이목 끌 이벤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란 청사진을 펼쳐 보이며 출범한 박근혜정부는 대북 접근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올 초 ‘통일 대박’ 구상이나 지난 3월 대북 인도 지원을 핵심으로 내놓은 드레스덴 선언도 추동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대로 출범 3년 차인 내년을 맞았다가는 제대로 된 남북 관계의 성적표를 만들어내기란 사실상 무망하다.

김정은 정권은 더 다급한 상황이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데다, 후견국이던 중국마저 김정은의 핵 도발 등에 따라 등을 돌리는 분위기다. 우회로로 여겼던 일본과의 관계 개선도 난관에 봉착했다. 유엔 등 국제사회는 인권 문제 등에 초점을 맞춰 김정은을 직접 겨냥하고 있는 형국이다. 황병서 일행의 파견과 당국 대화 재개 수용도 결국 남한과의 관계 개선 없이는 대외 문제나 경제난 등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대한민국의 첫 여성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청년 지도자의 만남이 된다. 1960~70년대 냉전 시기 당시 치열한 남북 간 체제 경쟁의 주역이었던 박정희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의 직계 후손 간 만남이란 의미도 있다. 박근혜-김정은 정상회담 자체가 세계적 이목을 끄는 이벤트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최고 권력자였던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를 뒀다는 점 외에도 두 사람의 공통점은 적지 않다. 박 대통령은 프랑스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고, 김정은의 경우 10대 시절 스위스 베른의 공립학교에 다닌 조기 유학파다. 두 사람 모두 젊은 시절 어머니를 잃었다. 박 대통령은 22세 때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를 문세광의 총탄에 잃었고, 김정은은 20세에 생모 고영희를 유선암으로 떠나보내야 했다. 육 여사를 시해한 문세광이 북한의 사주를 받은 조총련계란 점은 박근혜-김정은 정상회담을 바라보는 핵심 관전 포인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 연합뉴스
책사와 메신저 역할 누가 맡을지도 관심

물론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높다. 무엇보다 두 정상의 만남을 위해 최소한의 신뢰 구축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은 박 대통령에 대해 적나라한 비방 중상을 퍼부었다. 2007년 대선 때 월 평균 52회였던 대선 개입 보도가, 2012년엔 140차례가 넘을 정도였다. 이는 박 대통령 자신뿐 아니라 우리 국민들의 대북 신뢰를 깨뜨리는 결정적 요인이 됐다. 여기에다 분위기 파악을 제대로 못하는 듯한 북한의 잇단 군사 도발 움직임과 위협도 돌발 변수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의 천안함 폭침 도발과 북한 경비병에 의한 금강산 관광객의 피격·사망 사건에 대한 사과 문제, 5·24 대북 제재 조치의 해제 등 난제도 걸려 있다.

누가 정상회담이란 결실을 거둘 수 있는 책사 노릇을 하고, 핵심 메신저 역할을 맡을지도 큰 관심거리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의 2000년 6월 첫 정상회담 때 기획 역을 맡은 임동원 당시 국정원장과 베이징 등지의 비밀 접촉을 담당한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장관과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박 대통령이 남북 간 물밑 접촉이나 밀사 파견 같은 형태를 꺼린다는 점도 당국자들은 고민거리로 꼽는다. 남북 관계의 투명성을 높이고 국민 지지 속에 추진한다는 취지는 바람직하지만, 과연 남북 정상회담 같은 사안을 공개리에 추진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

남북 정상회담에 관여했던 인사들은 이런 문제점들이 고려 요소일 순 있지만 추진에 결정적 장애가 되지는 못한다고 본다. 한 관계자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듯한 환경과 난제를 단박에 뛰어넘어 회담 테이블에 마주 앉는 게 바로 남북 정상회담”이라며 “그런 짜릿함이 남북 간 최고 지도자를 정상회담이란 마력에 빠져들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최고 지도자의 결단이란 얘기다.

인천 방문과 김관진 안보실장과의 회담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받아본 김정은은 지금 새로운 대남 전략을 짜기 위한 장고(長考)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대남 유화 국면을 통한 북한의 대내외적인 난국 돌파 방안이 핵심이 될 수 있다. 김양건 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비서는 남북 정상회담 카드도 김정은에게 조언했을 가능성이 크다. 박 대통령이 미래연합 총재이던 2002년 5월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과 만났을 당시의 대화록을 다시 들춰보며 ‘박근혜 탐구’에 몰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후계 수업 과정에서 김정일은 왕좌를 물려줄 막내아들에게 박근혜란 정치인을 대하는 노하우와 대남 생존 전략을 핵심 중 하나로 가르쳤을 게 분명하다.

사생결단의 체제 대결을 벌였던 냉전시기 남북 지도자 중 한 사람의 딸은 아버지가 서거한 지 33년 만에 국민투표라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다른 한 사람의 손자는 3대에 걸친 봉건적 왕위 세습 방식으로 28세에 한반도의 절반을 상속받았다. 쟁취한 권력과 주어진 권력은 1년의 시간차를 두고 출범했다. 개천절 연휴를 틈탄 북한 권력 실세의 깜짝 방문은 박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의 역사적인 만남을 위한 첫걸음일 수 있다. 두 최고 지도자의 대(代)를 이은 애증의 게임은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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