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 연봉 받는 ‘신이 숨겨둔 로펌’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4.10.13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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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소송 대리하는 정부법무공단, 성공보수까지 챙겨

지난 9월25일자로 대한민국의 2만 번째 변호사가 등록을 마쳤다. 변호사 숫자가 8년 만에 2배로 늘어 그야말로 변호사가 넘쳐나는 시대다. 이런 가운데 사건 수임 건수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기준 개업변호사 1인당 사건 수임 건수는 한 달에 2.7건에 불과하다. 그렇다 보니 큼직한 건만 맡던 대형 로펌들도 작은 형사 사건까지 챙기고 있고, 규모가 작은 곳들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사’자 직업인데 괜히 우는소리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상황이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폐업신고를 하는 변호사가 매년 늘어나고 있고 개업변호사 중 연수익 2400만원 이하인 변호사도 17%나 된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각한 것이다.

법조계의 ‘불황’과 상관없이 ‘호황’을 누리는 곳이 있다. 변호사들 사이에서 ‘신들의 로펌’으로 불리는 정부법무공단이다. 정부법무공단 소속 변호사가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1인당 평균 연봉 1억원을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정부법무공단의 운영 방식을 놓고 ‘과연 정부법무공단이 필요한가’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사실상 사설 로펌처럼 운영되고 있는 공단을 굳이 국민 세금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다.

서울 서초동에 있는 정부법무공단 건물. ⓒ 시사저널 박은숙
“공단이 착수금·자문료 받는 건 난센스”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이 법의 보호를 받도록 돕는 법률구조공단과 달리 정부법무공단은 일반인들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곳이다. 정부법무공단은 2005년 설립 준비를 시작해 2008년 2월 출범했다. 정부·지자체·공공기관들이 소송 예산 부족 탓에 로펌 및 변호사 선임이 쉽지 않다는 명분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이곳의 고객은 정부 및 지자체, 공기업이다.

정부법무공단의 존재 목적은 말 그대로 ‘공공성’에 있다. 국가와 관련한 송무를 국가기관이 스스로 처리해 비용 등을 줄이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정부법무공단은 공익적 목적으로 설립된 다른 기관들과 차이를 보인다. 예컨대 정부법무공단은 사설 로펌과 다름없이 착수금과 성공보수를 받는다. 이와 함께 정부법무공단은 2010년부터 성공보수금의 5% 이내 범위에서 지급하는 인센티브 형식의 승소특별보상금제도를 운영해오고 있다. 법률 자문료로도 건당 24만원 정도씩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반해 서울시 한 구청의 자문변호사인 ㄱ씨는 “우리의 건당 자문료는 10만원이고 때로는 무료로 법률 자문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액수 등을 떠나 혈세를 절감하기 위해 설립한 공익 목적 공공기관에서 일반 로펌과 다름없이 성공보수 및 착수금을 지급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는 비판도 나온다. 서울 서초동에서 10년 가까이 사건 수임 업무를 한 유아무개 사무장은 “원래 공단의 존립 취지를 생각하면 착수금이나 성공보수, 자문료를 받는 것 자체가 웃기는 것이다. 운영하려면 다른 산업인력공단이나 법률구조공단처럼 해야 한다. 지금처럼 하려면 아예 없는 게 낫다. 정부법무공단 홈페이지에 가보면 변호사 약력이 한 명 한 명 소개돼 있는데 이것 자체가 영업을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공단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더니 변호사들의 약력이 마치 일반 로펌과 같이 사진과 함께 소개돼 있었다. 하지만 법률구조공단의 경우 홈페이지에 개별 변호사 소개가 없다. 법률구조공단 변호사들은 성공보수를 받지 않는 대신 분기별로 소송 수행에 대한 성과급을 받는다.

지난 3월 로스쿨 학생협의회는 “합격률이 낮으면 로스쿨 도입 취지도 못 살린다”며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 연합뉴스
공단 측 “모든 변호사 1억 넘는 것 아니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이곳 소속 변호사들의 연봉이다. 2008년 1인당 6200여 만원이던 평균 연봉은 증가세를 보이다 마침내 지난해 1억1000만원을 돌파했다. 일반 공기업 및 공공기관 평균 연봉을 훨씬 웃도는 것으로 매년 높은 연봉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는 한국거래소의 평균 연봉과 같은 액수다. 그렇다면 일반 개업변호사가 이러한 수입을 올리려면 얼마나 벌어야 할까. 보통 서초동에 변호사 사무실을 내려면 월세만 200만~300만원이 나간다. 여기에 사무장 및 비서 1명이라도 고용하면 매달 1000만원 가까이 고정적으로 지출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중소 변호사 사무실의 경우 연봉 5000만원만 남겨도 선방이라는 게 업계 이야기다.

이에 대해 정부법무공단 측은 “변호사마다 연봉이 다르기 때문에 평균 연봉이 1억원을 넘는다고 해서 모든 변호사가 1억원 넘게 받는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또 “성공보수 등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액수가 많은 건 아니다”고 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정부법무공단의 업무 성격상 다른 공공기관이나 법률구조공단과 단순 비교하기는 곤란하다고 주장한다. 공공기관의 경우 비용 등의 문제로 소송을 진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법무공단을 없애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래서 국가 차원의 고려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갖는다. 실제 미국은 1000명 이상의 변호사가 국가 송무만 전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설립 당시의 명분을 살리기 위해서는 소송비용으로 어려움을 겪는 공공기관들에서 착수금 등을 받아서 그 돈으로 억대 연봉을 지급하는 현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로스쿨 변호사들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을 고려하면 민영화하는 것이 차라리 공공기관에도 이득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공공기관 민영화는 시장 상황과 해당 기관의 공적 지위를 고려해 논의된다. 정부법무공단이 설립될 당시는 변호사 숫자가 7000여 명에 불과했다. 행정 사건은 소송비용이 일반 소송에 비해 적어 일반 변호사들이 사건 수임을 꺼린다. 변호사 수가 늘어난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임내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인천공항공사나 철도공사처럼 공적 지위를 가지고 국민 전체에 저렴하게 편익을 제공하는 공기업을 민영화할 것이 아니라, 시장 내에서 동일한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독점적 지위를 인정받아 특혜를 받는 정부법무공단을 민영화해야 한다. 국비 지원 없이 일반 로펌이나 변호사와 경쟁해 의뢰인의 소송비용을 절감하고 서비스 질을 높이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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