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국도 에볼라 구멍 뚫렸다
  • 김원식 미국 통신원 ()
  • 승인 2014.10.20 17:4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 전역으로 공포 확산…믿었던 ‘지맵’마저 허사

브루스 에일워드 세계보건기구(WHO) 사무부총장은 “최근 3~4주 동안 에볼라 환자가 매주 1000명씩 발생했으며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면 앞으로 2개월 안에 매주 1만명씩 신규 감염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에볼라 바이러스 퇴치의 실무책임자인 그는 “현재까지 에볼라 감염자는 8914명이며, 사망자는 4447명으로 늘어났다. 이번 주말에 감염자가 9000명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바이러스 확산이 꺾이지 않았다는 증언이었다.

그동안 TV 속에서 지구 반대쪽 서아프리카의 일로만 여겼던 공포의 바이러스가 본격적으로 미 대륙에 닿으면서 에볼라 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미국 언론은 연일 ‘충격’ ‘공포’라는 단어를 써댄다. 공포의 핵심은 빠른 전염 가능성이다. 10월8일 미국에서 첫 에볼라 확진 판정을 받은 라이베리아 출신 토머스 에릭 덩컨(42)이 텍사스 주 댈러스에 있는 텍사스보건장로병원(Texas Health Presbyterian Hospital)에서 사망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덩컨을 돌봤던 여성 간호사 니나 팸(26)과 앰버 빈슨 등 2명의 간호사가 에볼라에 감염됐다. 문제가 더욱 커진 건 여행 때문이었다. 10월15일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 판정을 받은 빈슨이 바로 직전 주말에 국내선 비행기를 이용해 다른 주로 여행을 다녀왔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10월8일 텍사스건강장로병원에서 에볼라로 격리 치료 중 숨진 라이베리아 출신 토머스 에릭 덩컨의 집을 청소하는 폐기업체 직원 © REUTERS

지맵 투약받은 에볼라 환자 사망

첫 사망자인 덩컨이 에볼라 감염 초기에 이 병원을 방문했을 때 병원 측은 일반 질병으로 오진해 집으로 돌려보냈다. CDC(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enters for Disease Control)는 이 과정에서 덩컨과 접촉한 간호사들이 감염됐을 것이라고 본다. 문제는 방역 장비를 착용한 의료진이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점, 그렇게 감염된 사람이 비행기를 이용해 다른 주로 여행을 했다는 사실에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미국 내 모든 관심은 추가 감염자가 있느냐로 모아지고 있다. CDC는 덩컨이 접촉했던 의료 관계자 77명과 덩컨이 병원에서 확진 판정을 받기 전 접촉했던 친지 등 주변 인물 44명에 대해 집중 관리 중이다. 에볼라 바이러스의 최장 잠복 기간은 21일이다. 따라서 아직 안심할 수 있는 시간에 도달하지 못했다. 다행히 현재까지 이들 중 고열 등의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은 없다는 게 CDC의 발표다. 문제는 추가 감염자로 알려진 빈슨이다. CDC는 여행을 가면서 함께 탑승했던 132명에 대한 역학조사를 실시하는 등 감염 확산 차단에 골몰하고 있다.

에볼라 공포의 원천은 치료 수단이 없다는 데 있다. 백신 부재 탓이 크다. 1976년 아프리카 수단과 콩고 지역에서 발생한 이 바이러스는 주로 해당 지역에서 발병했다가 사라지긴 했지만 이번처럼 광범위하게 확산된 적이 없다. 그래서 그동안에는 백신 개발의 필요성 역시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다 아프리카만의 문제에서 벗어나자 백신 개발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아프리카에서 의료 봉사를 하던 켄트 브랜들리 박사는 감염된 이후 미국으로 옮겨져 ‘지맵’이라는 실험 약물을 투여받고 완치 판정을 받았다. 또 다른 감염자인 여성 선교사 낸시 라이트볼도 지맵을 이용해 완치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희망이었던 지맵은 100% 완치를 보장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비슷한 시기에 라이베리아에서는 지맵을 투여받은 스페인 출신 가톨릭 신부와 라이베리아인 의사가 숨졌다. 그나마 남아 있던 지맵은 현재 모두 동나 추가 시약 개발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이라고 CDC는 밝혔다. 덩컨의 경우 미국 병원에 있었지만 지맵이 아닌, 새로운 실험 약물인 ‘브린시도포비르’를 투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했고 확진 판정을 받은 지 9일 만에 결국 사망했다.

현재 또 하나 유력한 치료법은 에볼라를 앓고도 생존한 사람의 혈액이나 혈청을 이용하는 것이다. 브랜들리 박사도 감염 초기 아프리카에서 에볼라 바이러스로부터 생존한 소년의 혈액을 공급받았다. 자신이 완치된 이후에는 비슷한 처지가 된 릭 새크라 박사에게 자신의 혈액을 제공했고 새크라 박사 역시 완치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이 역시 과학적으로 증명된 치료 수단은 아니다. 감염됐다가 살아난 환자의 혈액이 면역력 강화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일말의 가능성에 불과하다. 덩컨의 경우 이러한 혈청도 제공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에볼라 판정을 받은 두 간호사의 경우 브랜들리 박사의 혈액을 긴급히 제공하는 등 치료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뒤늦게 미국 정부는 10월13일 캐나다에서 만든 에볼라 백신에 대해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실시하는 등 백신 개발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 하지만 이번 1차 임상시험 결과는 빨라야 12월께 나올 예정이다.최종 백신의 양산 자체가 미지수인 점은 공포감 확산으로 연결되고 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 직원들이 벽에 붙은 에볼라 감염 예방법을 읽고 있다 © EPA연합

오바마 “나도 에볼라 환자와 악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0월15일 모든 정치 일정을 전면 중단했다. 대신 관계 부처 담당자들을 모아 백악관에서 장시간 대책회의를 가졌다. 회의가 끝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오마바 대통령은 “CDC에 긴급대응팀(SWAT) 구성을 지시하는 등 훨씬 더 공격적으로 대응하겠다”며 에볼라 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공언했다. “나도 에볼라 환자를 치료한 간호사들과 악수하고 포옹도 했다”며 공포감 완화에 초점을 맞췄다.

비슷한 시기, 미국 전역에서는 에볼라 유사 증상을 호소하는 사례가 잇따랐다. 뉴욕에서는 뉴욕 라가디아 공항에서 일하는 청소 노동자 200여 명이 에볼라 바이러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할 장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파업을 벌였다. 에볼라 감염을 우려해 병문안을 기피하는 현상이 생긴 것도 신풍속도다. 다른 질병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를 간호사가 방역 복장으로 치료하자 에볼라 바이러스가 출현했다고 착각한 환자들이 방송국에 제보를 해서 카메라들이 들이닥치는 등 소동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에볼라 바이러스를 완벽하게 격리해 치료할 시설을 갖춘 병원은 미국에 4개에 불과하다. 최대 수용 인원도 13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도하면서 정부의 대응을 문제 삼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공포와 싸우는 일은 세계 최강국마저도 힘들게 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