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방위비 분담금, 주한미군 은행에서 줄줄 샌다
  • 조해수·김지영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4.10.21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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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직원이 4년간 6억여 원 ‘슬쩍’…아무도 몰랐던 ‘눈먼 돈’ 횡령 사건

9200억원. 올해 우리 정부가 부담해야 할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규모다. 1조원에 가까운 혈세를 투입해 국내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부대가 써야 할 인건비, 군사시설비, 군수 지원비, 연합방위력 증강 예산 등 ‘주둔 경비’를 지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방위비 분담금이 주한미군에 제공된 이후 어떻게 사용되는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이를 빗대어 주한미군 내에서조차 ‘Fire&Forget(발사 후 망각)’이라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사일을 발사하고 나면 표적을 맞히리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 정부 역시 미군 측이 분담금을 ‘알아서 잘’ 써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방위비 분담금을 둘러싼 모든 문제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정부는 주한미군 총 주둔비용 및 방위비 분담률은 물론 분담금 미집행 금액의 사용 및 집행 내역을 사실상 모르고 있다. 이 때문에 분담금에 대한 관리·감독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방위비 분담금이 예치된 주한미군 은행에서 수억 원의 돈이 장기간에 걸쳐 횡령된 사실이 시사저널 취재 결과 확인됐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의 무관심 속에 방위비 분담금이 ‘눈먼 돈’으로 전락한 것 아니냐는 비판과 함께, 철저한 사후 감독을 위해 분담금을 우리나라 은행에 예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 연합뉴스
“커뮤니티뱅크는 미 정부 대행 ‘군사 은행’”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재판장 이동근 부장판사)는 지난 10월7일 용산 주한미군 부대 내의 커뮤니티뱅크(Community Bank)에 근무하는 여직원 이 아무개씨에게 공금 6억5799만원 상당을 횡령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커뮤니티뱅크의 성격이다. 커뮤니티뱅크는 미국계 은행인 ‘뱅크 오브 아메리카(Bank Of America)’의 군사금융 부서(Military Banking Division)로 미국 국방부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는 미군 영내 은행이다. 우리나라로 좁혀 생각해보자면, 커뮤니티뱅크의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상 법적 지위는 ‘초청 계약자’다. SOFA 노무조항 해설에 따르면 “초청 계약자는 미국 법률에 따라 조직된 법인을 포함하여 미국 정부와 주한미군을 위한 조달 계약을 체결하고 동 계약의 이행만을 위해 대한민국에 체류하는 자로서…(중략)…공개경쟁 입찰이 불가능한 경우에 미 본토에서 계약을 체결하고 한국 정부와 협의해 SOFA상 초청 계약자로서 지정하게 된다…(중략)…이들은 주로 ‘군사 은행’, 비행장 시설물 관리, 학교, 음식물 조달 등의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회 국방위 소속 진성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커뮤니티뱅크는 통상적인 영업 활동을 하는 ‘상업은행’이 아니라, 미국 정부의 공적 업무를 대행하는 ‘군사 은행’이라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커뮤니티뱅크가 취급하는 자금에는 미국 국방비는 물론 우리나라가 미국 측에 지급하는 방위비 분담금도 들어 있다. 우리 정부는 국회 답변 자료를 통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의) 미(未)집행 금액의 원화 금액 부분은 커뮤니티뱅크의 무이자 계좌에 입금돼 관리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즉, 우리 정부가 방위비 분담금을 미국에 지급하면 달러로 환전된 부분은 미국 재무부 계좌에 입금되고, 원화의 경우 커뮤니티뱅크가 관리한다는 얘기다. 특히 분담금을 다 사용하지 못해 쌓인 미집행 금액 역시 커뮤니티뱅크에 분산 예치돼 있다. 2014년 6월까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현금 미집행 잔액은 올해 분담금 예산의 절반을 훌쩍 넘는 5140억원에 이르고 있다.

문제는 이처럼 민감한 자금을 다루고 있는 커뮤니티뱅크에서 장기간에 걸쳐 손쉽게 횡령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피고인 이씨는 2001년 용산 미군부대 내에 위치한 커뮤니티뱅크에 입사해 2004년부터 BCSS(Banking Center Service Specialist)로 근무했다. 2007년부터 올해 3월까지는 현금인출기 2대에 현금을 보충하고 관리하는 업무에 종사했다. 이 업무는 은행 내에서 최하급직이 맡는 일이다.

그러던 중 이씨는 2010년께 평소 관리하던 현금인출기 또는 텔러 금고 안에서 현금 110만원을 인출해 업무상 보관하던 중, 생활비 등 개인적인 용도에 썼다. 최초 범행 후 별문제가 없자 이씨는 올해 3월까지 무려 4년여 동안 같은 수법으로 290차례, 6억여 원을 횡령했다. 일주일 내지 20일 간격을 두고, 20만원에서 많게는 500만원 상당의 돈을 정기적으로 빼냈다. 심지어 하루에 4~5차례 돈을 인출했지만 커뮤니티뱅크는 이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국내 시중은행에 종사하는 한 관계자는 “은행마다 다르겠지만, 보통 시중은행들은 매달 정기적으로 현금인출기에 대한 감사를 진행한다. 조금이라도 돈이 비면 모를 수가 없을 텐데…”라며 의아해했다. 이와 관련해 국회 외통위 소속의 한 의원은 방위비 분담금 미집행 금액의 이자 부분을 주목했다. 그는 “커뮤니티뱅크는 (방위비 분담금) 미집행 잔액을 통해 ‘이자놀이’를 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속적으로 돈이 빠져나가고 있는데도 이를 몰랐다는 것은, 미집행 잔액의 이자가 대거 입금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미집행 잔액의 이자는 미국 정부 당국도 커뮤니티뱅크 측도 쉬쉬하고 있는 문제다. 누가 가져가든 ‘공돈’처럼 돼버린 이 돈을 누가 공개적으로 문제 삼겠는가. 연간 수십억 원에 이르는 이자에서 몇 백만 원이 빠져나간다고 해서 티가 날 리 만무하다”고 말했다.

여직원 이씨 범행 외 추가 도난 사건도

이씨의 범행 외에도 커뮤니티뱅크 내에서 추가적인 횡령·도난 사건이 더 있었다는 정황도 포착됐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검찰 공소장을 보면, 이씨의 횡령 금액은 판결문(6억5799만원)과 달리 9억2639만원으로 기록돼 있다. 2억원 이상의 차이가 나는 셈인데, 이씨는 이에 대해 자신의 범행이 아니라고 주장했고 검찰도 이를 인정했다. 이 사건을 담당한 경찰 관계자는 “2010년 무렵 (현금인출기, 텔러 금고 등에서) 2억원의 돈이 비는 사건이 발생했다. 전전긍긍하던 이씨는 처음에는 자신의 돈으로 부족분을 채워 넣으려고 했다. 그런데 은행 측에서 돈이 빈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그때부터 자신이 돈을 횡령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씨 이전에 다른 범죄자가 있었다는 말이다. 법원도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은행에서 도난 사건을 겪은 이후 자포자기의 심정에서 범행 규모를 점차 확대해온 것으로 보이는 점을 참작했다”고 밝히고 있다. 즉, 커뮤니티뱅크 내에서 최소한 2건, 규모로는 10억원 상당의 횡령·도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주한미군의 특성상 이씨처럼 한국인이 피의자가 아닌 경우 우리나라 사정기관이 수사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커뮤니티뱅크 횡령·도난 사건의 존재조차 확인이 어려운 실정이다.

커뮤니티뱅크를 둘러싼 논란은 이것만이 아니다. 커뮤니티뱅크는 분담금의 미집행 금액을 양도성예금증서(CD)에 투자해 이자 및 운용 수익을 챙긴 의혹을 받고 있다. 야당 측은 100% 사용을 전제로 분담금을 미국에 지급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현금 관리의 주체가 돼 이자 수익을 국고에 편입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사저널 취재 내용에 대해 야당 측은 이를 국정감사에서 정식으로 문제 삼겠다는 입장이다. 진성준 의원은 “지금까지 분담금 미집행 금액 이자 수익은 수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현재 미국 측이 우회적으로 배당수익을 받고 있다면 이 수익은 한국 국방부 회계수익이 돼야만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커뮤니티뱅크의 허술한 자금 관리가 확인됐다. 이 부분에 대해 국방위 국정감사를 통해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겠다. 분담금을 둘러싼 논란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은행에 분담금 현금 부분을 예치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연 1조원 달해 


방위비 분담(Defense Burden Sharing)이란 ‘군사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동맹국이 공동의 안보 이익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데 소요되는 군사적·물질적·경제적 제비용의 공정한 배분을 하는 것’이라고 2004년 미국 국방부의 공동방위에 대한 방위비 분담 보고서는 설명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과 1966년 주한미군지위협정 체결 이후, 제5조 규정을 통해 미국이 주한미군 경비를 부담했다. 그러나 1980년대 무역 적자 누적을 이유로 미국 정부가 국방비를 삭감하면서, 동맹국 재정 지원 확대를 내용으로 하는 방위비 분담정책이 추진됐다. 이로 인해 1988년 6월 제20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를 통해 최초로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전액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1991년에는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른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을 통해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Special Measure Agreement)을 체결함으로써 방위비 분담을 시작했다. 방위비 분담금 규모는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데, 2014년의 경우 9200억원의 방위비 분담금이 책정됨에 따라 우리나라가 미군이 주둔한 전 세계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의 비용 부담을 지게 됐다.

방위비 분담금은 현금 지원으로 이뤄졌는데, 주한미군이 사용하지 않은 군사건설 부문 미집행액이 매년 누적되면서 불법 전용과 축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지난 2009년 8차 협정에서 현금 지원과 더불어 현물 지원 조항이 포함됐다. 당시 체결된 ‘현물 지원 교환각서’에서 ‘설계 및 시공 감리는 총 사업비의 평균 12%를 차지하며 대한민국이 현금으로 지급한다. 2009년에는 대한민국이 지원하는 건설 사업의 30%를 현물로 제공하며, 2010년에는 대한민국이 지원하는 건설 사업의 60%를 현물로 제공하고, 2011년부터 2013년까지는 대한민국이 지원하는 건설 사업의 88%를 현물로 제공한다’고 적시했다.

지난 2월 체결된 9차 협정에서는 ‘군사 건설 사업의 설계 및 시공 감리는 총 사업비의 평균 12%를 차지하며 한국이 현금으로 지급한다’며 ‘이를 제외한 건설 사업은 원칙적으로 현물로 지급한다’고 규정했다. 국방부는 이 규정에 대해 “군사 건설 사업의 현물 지원 원칙을 명시적으로 재확인함으로써 현물 88%, 현금 12% 구조가 일반 원칙임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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