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너희가..." 중화주의 번지는 대륙
  • 모종혁│중국 통신원 ()
  • 승인 2014.10.21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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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조업 어선 선장 사망 둘러싸고 편향적 보도 일삼는 중국 언론

10월10일 이른 아침, 전라북도 부안군 왕등도에서 서쪽으로 144㎞ 떨어진 우리 영해에서 해경은 불법 조업 중이던 중국 선적 80톤급 타망어선 루룽위(魯榮漁) 선단을 발견했다. 해경은 정선 명령을 내렸지만 루룽위 선단은 불응하고 중국 쪽으로 달아났다. 경비정 2척이 추격전을 벌인 끝에 선단 중 50987호를 붙잡았다. 특수기동대원 등 12명의 요원이 배에 올라 조타실과 갑판을 제압하고 선수를 우리 영해로 돌리려 했다.

그러나 곧 나포된 50987호 주위로 다른 중국 배 4척이 몰려들었고 중국 선원 수십 명이 50987호 선상에 올라탔다. 중국 선원들이 흉기를 휘두르며 달려들자, 우리 요원들은 공포탄을 쏘며 맞섰다. 일부 대원은 헬멧이 벗겨졌고 목을 졸렸다. 결국 요원들은 실탄 8발을 발사해 현장을 수습했다. 그 과정에서 한 배의 선장 쑹허우무(宋厚模·45)가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

중국의 시위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오성홍기는 중화주의의 단면을 보여준다. ⓒ AP연합
“한국 같은 작은 나라가 우리를 업신여겨”

이것이 최근 발생한 중국인 선장 사망 사건의 실체다. 그런데 이 사실을 전하는 중국 언론의 보도 내용과 논조는 비상식적이다. 중국 언론은 일제히 “배타적 경제수역(EEZ)에서 어업 중이던 자국 어민을 한국 해경이 무단 체포하는 과정에서 쑹 선장이 총살됐다”고 보도했다. 이에 중국인들이 들고일어났다. 중국 포털 사이트와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서는 ‘무고한 어민을 죽인 살인자를 처단하자’ ‘한국에 보복을 가해서 선장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자’는 등의 격렬한 애국심이 분출됐다.

10월13일 50987호의 선주 저우다파(周大法)는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배는 한 번도 한국 영해를 침범한 적이 없다. 그동안 중·한 어업협정으로 설정한 잠정조치수역에서만 어업 활동을 했다. 그 구역에선 한국 해경이 중국 어선을 나포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절정을 이뤘다. 한 네티즌은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에 “중국이 정치·외교뿐만 아니라 경제도 성장해 국력이 예전 같지 않지만, 한국 같은 작은 나라가 여전히 우리를 업신여기고 있다. 앞으로 한국 상품을 안 쓰고, 한국 드라마를 안 보고, 한국 노래 안 듣고, 한국 여행을 안 가서 ‘중국 소비자’의 힘으로 응징하자”는 격문을 돌리기도 했다.

물론 일부 이성을 가진 네티즌들은 “우리 어민이 자꾸 다른 나라의 영해에 가서 조업을 하는 한 비극은 되풀이된다” “우리 근해에 과도한 남획과 해양 오염으로 물고기가 없어져 어민들이 다른 나라 바다에 가서 도둑질을 한다”며 현실을 지적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곧 ‘매국노’ ‘뇌가 없는 한류충(蟲)’이라는 비난에 파묻혀야 했다.

얼핏 중국 언론의 보도나 저우다파의 주장이 그럴싸해 보인다. 저우다파는 “50987호 기관장에게 쑹 선장이 죽었다는 연락을 받고 배의 위치를 GPS(위성항법장치)로 확인해보니 북위 35도 40분, 동경124도 20분이었다”며 “이 지점은 잠정조치수역의 동쪽 끝인 124도 30분 이내”라고 말했다. 잠정조치수역은 EEZ가 겹치는 서해에서 우리나라와 중국이 공동으로 조업 질서를 관리하겠다고 합의해 설정한 구역이다.

그러나 중국 측의 주장에는 여러 모순점이 있다. 첫째, 해경은 우리 영해 깊숙이 들어와 몰래 조업하던 루룽위 선단을 발견했다. 설령 도망가다 붙잡힌 지점이 저우다파가 주장하는 잠정조치수역 내라 하더라도 불법 조업을 자행했던 곳은 엄연히 우리 영해 내였다. 둘째, 중국 언론과 저우다파는 잠정조치수역 내에서만 어업 활동을 했다고 주장하지만, 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해경은 우리 영해에서 루룽위 선단을 찾아내 추격하는 과정을 동영상으로 기록했다. 셋째, 사건 당일 중국 언론은 “50987호 단속에 투입된 대원들의 헬멧에 부착된 카메라가 배터리 방전으로 사고 순간을 찍지 못했다”고 크게 보도했다. 이를 통해 중국 선원들이 저지른 폭력행위는 “한국 해경의 주장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다음 날 해경은 중국 선원들이 폭력을 휘두르는 1분6초 분량의 영상을 찾아내 공개했다. 여기에는 숨진 쑹 선장이 우리 대원을 바다로 밀치는 장면도 들어 있었다. 하지만 중국 언론은 이에 대해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넷째, 몇몇 중국 언론은 루룽위 선단이 한국 영해에서 불법 조업을 했더라도 50987호가 붙잡힌 곳은 잠정조치수역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도둑질한 도둑을 도둑당한 내 집 안에서만 잡아야 한다는 논리와 다를 바 없다.

10월11일 불법 조업을 하다 해경 단속요원에게 집단 저항한 혐의로 중국인 선원 17명이 붙잡혔다. ⓒ 연합뉴스
당 선전부 보도지침 철저히 지키는 언론

이런 중국 언론의 궤변과 그에 장단을 맞추는 중국인의 애국심은 비단 우리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비슷한 시기 홍콩에서 행정수반 완전 직선제를 요구하며 거리 점거에 나선 민주화 시위대에도 향해졌다. 9월28일부터 벌어진 점거 시위를 중국 언론은 2~3일 뒤부터 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보도의 초점이 이상했다. 수만 명의 홍콩 시위대 중 극소수의 목소리에만 주의를 기울였던 것이다.

중국 언론은 몇몇 시민과 학생이 내건 ‘완전한 자치와 민주주의를 보장하지 않는 중국의 홍콩 통치는 과거 영국이 통치하던 시대보다 못하다’라는 글이 적힌 플래카드와 대자보에 주목했다. 심지어 수년 전부터 일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홍콩 독립 움직임을 자세히 전하며, 이번 점거 시위의 배후에 그들이 있음을 암시했다. 그러면서 홍콩 시위대를 “영국 식민 시절을 잊지 못하는 사대주의자”로 매도했다.

중국 네티즌들 또한 ‘미국과 영국 제국주의자들의 사주에 놀아나는 주구(走狗)’라며 비난했다. SNS를 통해 ‘중국은 홍콩인들에게 온갖 특혜와 은총을 베풀었는데, 홍콩인들은 조국에 불만과 비난만 쏟아붓는다’는 글을 퍼 날랐다. 10월9일 홍콩 출신의 스타 청룽(成龍)이 웨이보에 ‘이번 사태로 빚어진 경제 손실이 3500억 홍콩달러에 달한다’며 ‘우리 모두가 노력해 이성을 회복하자’는 글을 남기자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단 4시간 만에 4만5000명이 ‘긍정’을 표시했고 7000여 명이 댓글을 달았다.

현재 중국에서는 수천 개의 TV·라디오 채널, 수만 개의 신문·잡지, 수십만 명의 기자가 활동하고 있다. 언론은 사회의 공기(公器)지만 중국의 현실은 다르다. 14억 중국 인민을 위해 종사하는 게 아니라 오직 중국공산당의 지침에 따라 움직인다. 그렇기에 중국 전체 언론 매체를 통틀어 ‘중국 언론’이라 묶어 불러도 무방하다. 문제는 이런 중국 언론을 중국인 대다수가 맹목적으로 따르고 신뢰하는 현실이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전 세계를 주유할 수 있는 21세기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여전히 듣고 싶은 뉴스만 듣고, 보고 싶은 정보만 본다. 그 기준은 체제의 틀 안에서 국가에 충성하는 맹목적 애국이다. 중국인에게 애국심은 인류 보편적 가치인 민주주의, 자유와 평등, 진실과 상식보다 우선시된다. 중국인 선장 사망 사건과 홍콩 민주화 시위로 이런 중국인의 민낯이 또다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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