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화 의장, “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4.10.22 11:2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사저널 창간 25주년 특별 인터뷰 / 정의화 국회의장

10월13일 기자는 이만섭 전 국회의장과 오찬을 함께했다. 김영삼 정부의 14대 국회와 김대중 정부의 16대 국회에서 그는 두 차례 국회의장을 역임했다. 국회의장으로서 그의 자긍심은 대단하다. “국회의장은 오로지 국민의 눈치만 볼 뿐, 대통령의 눈치를 봐선 안 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그다음 날인 14일, 기자는 국회의장실에서 정의화 국회의장과 창간 기념 특별 인터뷰를 가졌다. 전날 중남미 순방을 마치고 막 귀국한 직후였다. 정 의장은 새누리당 의원을 대상으로 한 의장 선거에서 ‘친박(親朴)’ 후보로 알려진 황우여 전 대표(현 교육부총리)를 큰 표 차로 이기는 이변을 연출했다. 그래서일까. 그의 목소리에서는 자신감이 가득 묻어났다.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제 양심과 헌법정신에 따라 의장 직을 소신껏 수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개헌에 대해서도 찬성 입장을 분명히 했다. 입법부 수장으로서 할 일을 꿋꿋하게 하겠다는 결기가 느껴졌다.

 

ⓒ 시사저널 이종현
앞으로 ‘의회 외교’를 적극 펼치겠다고 했는데, 이번 중남미 순방을 통해 느낀 점은 무엇인가.

현지에서도 대한민국의 국회의장이 취임 이후 첫 방문지로 중남미를 선택했다는 데 큰 의미를 부여했다. 대한민국이 중남미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메시지가 전달된 것이다. 우리 무역 흑자 가운데 무려 40%가 중남미에서 발생한다. 그럼에도 실제 미국이나 유럽 등에 비해 관심이 덜 갔던 지역이다. 향후 굉장히 중요한 지역이고, 그런 면에서 멕시코·우루과이의 대통령·국회의장 등 지도자들과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

마침 정기국회가 열리는 시점이어서, 순방 시기를 두고 일각에서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는데.

국회 수장의 외교는 의원 외교의 화룡점정이다. 국내에서는 국회의 권위가 떨어져 있어서 그렇지, 외국에서는 그 나라 국회의장의 방문을 대통령 수준으로 본다. 저 또한 대한민국 (의전 서열) 2위로서의 상당한 예우를 받았다. 대통령이 못 와도 국회의장이 와줬다는 사실에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앞으로도 할 수 있다면 대통령이 직접 가기 힘든 곳, 그러면서도 우리의 미래를 위해 챙겨야 할 곳은 국회의장으로서 직접 찾아다니며 의회 외교를 펼칠 생각이다. 국정감사 기간 동안은 의장이 특별한 의정활동을 하지 않는다. 각 상임위별로 감사가 이뤄진다. 때문에 이 기간을 이용해 의장은 외국 순방도 하고 국내의 곳곳을 다니며 국민들의 목소리도 듣는다. 그런 점을 모르고 일각에서 부적절했다고 하는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다.

순방 기간 중 ‘남북 국회회담’을 제안했다. 혹시 정부가 잘 못하니 국회라도 나서야 한다는 뜻인가.

이명박 정부 이후 지금까지 남북 관계가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현 정부도 마찬가지다. 이럴 때 국회가 나섬으로써 하나의 통로를 열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교류하는 채널은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정상회담이 이뤄져야 한다. 정상회담만이 남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국회회담이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만 국회회담은 정상회담으로 가기 전 통로를 열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정부와의 사전 협의 등이 필요한 것 아닌가.

그렇다. 그건 굉장히 중요하다. 안 그래도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뭔가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던데….(이 원내대표는 정 의장의 남북 국회회담 제안 뉴스를 접하고 “정부나 국회 교섭단체(정당)장과의 협의도 없이 일방적 추진은 결례”라고 비판했다.) 제가 6월 의장에 선출되고 제일 먼저 청와대에 가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났다. 거기서 남북 국회회담에 대해 얘기했다. 대통령도 동의했다. 다만 정부와 보조를 맞춰서 해달라는 게 대통령의 메시지였다. 이미 4개월 전의 얘기지, 엊그제 순방에서 처음 한 얘기가 아니다. 그걸 모르고 이 원내대표가 오해한 것이다.

마치 국회의장과 여당 원내대표가 충돌하는 듯한 모습으로 비쳤다.

LA 방문 당시 기자들과의 대화에서 12월은 추워지니까 가급적 11월 중에 남북 국회회담을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정부에 전했다고 했다. 그걸 일부 기자가 11월에 남북 국회회담을 제의하겠다는 식으로 잘못 쓴 것이다. 거기서 오해가 컸는데, 그렇다고 해도 의장에 대해서 폄하하는 듯한 격한 표현을 쓴 것은 유감이다. 그 전에 의장인 내게 먼저 확인을 했어야 했다. 그걸 안 한 부분은 이 원내대표가 실수를 한 것이다.

지난 9월 국회 개회 문제로 두 사람 간에 빚어진 갈등의 연장선이란 얘기도 있다.

언론도 그렇게 보던데, 국회의장은 의장으로서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이고, 여당 원내대표는 원내대표로서 해야 할 일이 따로 있는 것이다. 9월30일 저녁 7시 반 여야 모든 의원이 본회의장에 들어왔을 때, 이 원내대표도 정책위의장과 같이 들어와서 내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그것으로서 정리됐다고 봐야 하는 것이지….

그때 국회 개회를 늦추는 것을 보면서, 의장이 국회 운영에서 어떤 원칙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단독 국회는 가급적 없도록 하겠다는 것인가.

가급적이 아니라, 단독 국회라는 것은 해서는 안 된다. 대의민주주의 국가는 조금 힘들고 귀찮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화하고 타협해서, 그렇게 해서 가야 한다. 그게 궁극적으로는 더 빠른 것이다. 대화와 타협이 안 돼 폭력이나 단독 국회, 강행 처리 등으로 갈 때 그로 인해 오는 지체 사유가 훨씬 많다.

하지만 여당에서는 못마땅한 것 같다. 국회의장이 너무 인기 영합적인 스탠스를 취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도 있던데.

그것을 인기로 본다고 하면, 그렇게 보는 사람이 인기를 먹으면서 사는 사람이라 그럴 것이다. 여당은 결코 청와대의 지시를 받는 거수기 역할을 해선 안 된다. 정당이 대통령 후보를 뽑고 그 대통령이 잘하게끔 도와야 하지만, 만약 잘못 가면 지적해줄 수 있을 때 정당정치가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대통령이 직접 지시하면, 아니면 대통령이 직접 지시하는 것도 아닌데 그 주변에서, 또는 보이지 않는 어떤 손에 의해 여당이 움직인다면, 그런 정당이나 국회는 소위 ‘거수기 국회’ ‘통법부’ 아니겠나.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여야의 극한 대치가 이어지고 있다. 갈수록 여야 관계가 너무 삭막해지고 있다는 우려가 많다. 향후 여야 대화가 원만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아 의장으로서도 고민스러울 듯하다.

이제는 야당과 여당이 상호 호혜해야 한다. 여당이 다 하려고 들면 안 된다. 여당이 한 60% 정도 하고, 야당에도 한 40% 정도 주고, 그렇게 해서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의장이 중요하다고 본다. 저는 의장으로서 여당에 49%, 야당에 51%, 야당에 약간 비중을 더 두려고 한다. 그렇게 균형을 맞춰주려고 한다. 박근혜정부가 성공하려면 여야가 그렇게 가야 한다.

늘 지적되는 게 입법부의 진정한 독립이다. 국회의장은 대한민국 의전 서열 2위지만, 사실상 역대 전례를 보면 대통령의 의중을 통해 임명되곤 했다. 그래서 의장이 대통령의 영향력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을 보면, 1장이 총강이고, 2장은 국민의 권리와 의무, 그 다음 제3장이 입법부다. 4장이 행정부다. 대통령 얘기는 4장 1절에 나온다. 국회가 먼저 나오는 이유는 우리가 대의민주주의 국가여서 그렇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고 대외적으로 나라를 대표하지만, 헌법정신은 국회가 앞서는 것이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는 헌법 질서가 무시됐기 때문에 대통령이 서슴없이 의장을 지명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제1당에서 의장을 선출한다. 그래서 국회 본회의에서 추인을 받는 형식을 취한다. 따라서 의장이 되려면 1당, 즉 집권 여당의 수장인 대통령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저는 아시다시피 새누리당 의원 전체 153명 중 147명이 참석해서, 101표라는 압도적인 표를 받았다. 대통령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당시 대통령은 가만히 있었겠지만, 청와대는 사실 ‘친박(親朴)’에서 (친박 후보를 지원하는) 영향을 좀 미쳤다. 그럼에도 제가 압도적으로 당선했다. 그게 뭘 의미하겠나. 의원들은 제가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양심과 헌법정신에 따라 의장 직을 소신껏 수행할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6월2일 청와대를 방문해 박근혜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개헌 문제가 다시 정국을 강타하고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개헌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나서 자칫 청와대와 국회 간에 기 싸움이 전개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대통령이 반대한다 해서 (개헌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은 대통령을 따르는 (친박) 계보가 있으니까, 그들이 소신껏 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저는 개헌에 찬성하는 입장이고, 개헌 추진 의원모임 회원이기도 하다. 권력 구조가 결국 관건인데, 새로운 제도를 차기가 아닌 차차기부터 적용하는 것으로 하면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 지금 당장 바꾸자고 너무 무리하게 밀어붙여선 또 다른 분열이 일어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제도가 바람직하다고 보는가.

분권형 대통령제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다만 대통령에게 조금 더 권한을 주는 건 논의해볼 수 있다. 국회해산권 등이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4년 중임제로, 국회는 양원제로 하고, 부통령제를 도입하는 게 좋을 것으로 본다.

국민은 지금 국회에 대한 불신이 상당하다. 그런 국회에 권력을 양분하는 것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분권형이 필요한데, 대통령제만 갖고는 이제 어렵다. 5년을 해도, 8년 연임을 해도 결국 임기 후반기면 어김없이 레임덕 현상으로 나라 전체가 2~3년은 출렁거린다. 물론  전적으로 내각책임제로 가기엔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다고 본다. 국회가 국민으로부터 충분한 신뢰를 회복하고, 의원의 자질도 높아지고 그런 수준이 되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과도기에서 분권형 대통령제가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다소 이른 질문일 수 있지만, 혹시 국회의장 임기 이후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있나.

대통령제하에서는 의장 이후 할 수 있는 게 대통령 하나밖에 없다(웃음). 16대 국회 때 박관용 의장부터 의장 이후 국회의원에 출마하지 않는 전통을 수립했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거기에 반대한다. 이제는 우리 정치에도 좀 무게가 있어야 한다. 무게는 지혜와 경륜에서 생기는 것이지, 지식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많은 선배 의원이 필요하다. 의장 2년을 경험하면 나라를 보는 안목이 달라지고, 경륜 자체로 인해 콘텐츠가 달라진다고 본다. 의장 경험을 통해 국회에서 나라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 단 저는 (의원을) 안 할 것이다. 하지만 저 이후의 후임 의장은 계속 의원을 했으면 한다. 저도 인생에 설계가 있는 사람이다. 의장 끝나면 만으로 예순여덟인데, 향후 10년 정도 더 일할 시간이 있다고 본다. 그 10년을 어떻게 살아가는 게 내 가정, 내 조국을 위해, 인류를 위해 도움이 될지에 대한 나름의 플랜이 있다. 

끝으로 창간 25주년을 맞은 시사저널을 비롯한 언론에 당부할 말씀 부탁한다.

제가 시사저널을 처음 접한 게 23년 전쯤인 것 같다. 그때 정말 굉장히 신선했다. 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낙후된 게 정치라고 본다. 의원의 수준이 정치 수준을 가름한다. 그 사람들을 뽑는 게 유권자지만, 이는 유권자 잘못이 아니다. 공천을 엉터리로 하기 때문에 그렇다. 공천을 사천으로 하고, 비례대표는 밀실 공천을 하고. 유권자가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뽑을 수 있도록 공천이 가줘야 한다. 우리 정치가 경제 수준으로 올라올 수 있다면 대한민국 미래가 열린다고 본다. 거기에 시사저널이 해야 할 역할이 많다. 지금도 그런 방향으로 잘 왔지만, 대한민국 정치를 발전시키기 위해 시사저널이 길잡이가 되어줬으면 고맙겠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