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대학언론상] 일주일 내내 일하는데 월급은 깎였다
  • 박준성(중앙대 정치외교학과 4년) ()
  • 승인 2014.10.23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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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간 노동 부추기는 고용노동부의 이상한 임금 체계 개편안

올해 1월 초, 한 학기 등록금을 마련하겠다는 생각으로 겨울방학 동안 일할 생산직 일자리 구하기에 나섰다. 구인구직 사이트에 나온 대다수 생산직 일자리는 최저 시급인 5210원을 적용하고 있었다. 그중 눈에 번쩍 뜨이는 구인 광고가 있었다. ‘통상임금 적용, 시급 6100원’. 최저임금에 비해 시간당 890원이나 높다는 유혹은 달콤했다.

면접을 본 곳은 경기도에 위치한 A사 공장이었다. 대기업에 전자부품을 납품하는 곳이었다. 공장에 도착하자 일자리를 주선해준 도급업체 직원은 “이곳은 100명 이상이 근무하는 중견기업이며 시급도 다른 곳에 비해 높으니 절대 놓치지 말라”는 충고를 곁들였다.

기본급 올랐는데 전체 월급은 줄어

다음 날부터 출근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먼지를 막기 위한 ‘방진복’을 받자 공장에서 일한다는 것이 실감났다. 최종 공정에서 제품을 포장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형, 처음엔 다 어려워요. 하다 보면 익숙해지니까 겁먹지 마세요.” 두 살 어린 ‘사수’는 금방 배울 수 있다며 친절하게 일을 가르쳐주었다. 그의 말대로 일이 익숙해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공장으로 출근하는 생산직 노동자들. 고용노동부가 제시한 새로운 임금 체계는 노동 시간을 늘리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 ⓒ 연합뉴스

업무를 익히는 일보다 더 힘든 것은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제자리에 서서 종일 고개를 숙인 채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내려오는 제품을 포장하는 일은 어지간한 체력으로는 버티기 힘든 작업이었다. 그래서 첫날만 일하고 퇴사해버리는 이가 많았다.

포장 업무는 최종 공정이라 조금만 늦어져도 제품이 떨어져 깨져버리기 일쑤였다. 기지개를 펴거나 잠시 앉아 쉬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휴식 시간에 친절하게 대해주던 동료들도 컨베이어 벨트가 돌기 시작하면 예민해졌다. 잠깐의 실수로 제품이 손상되거나 컨베이어 벨트가 멈추면 조장이나 선임의 욕설이 날아들었다.

매일 반강제적으로 2시간 30분간 잔업도 해야 했다. 하루에 10시간 30분을 꼬박 서 있는 일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고되었다. 신입뿐 아니라 연차가 10년이 넘은 선배들도 “삭신이 쑤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쉬는 시간이면 단체로 허리와 목을 부여잡고 온몸을 비틀어대는, 웃지 못할 풍경이 펼쳐졌다. 아침 7시 출근, 밤 10시 귀가, 그리고 파김치가 되어 옷을 입은 채 누워 잠드는 생활이 반복됐다.

그렇게 일을 시작한 지 2주가 조금 넘었을 무렵, 동료들의 월급날이 찾아왔다. 그러나 월급 명세서를 받아 든 동료들의 얼굴이 생각만큼 밝지 않았다. 조용히 수군대는 소리만 들렸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살갑게 챙겨주던 사수가 “내일부터 그만둘래요. 너무 힘들어서 못하겠어요”라고 말했다. 그 사수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팀에서도 이탈자가 여럿 나왔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어리둥절했다.

1월부터 바뀐 A사의 임금 체계가 문제였다. 지난해 12월까지 A사의 임금 체계는 다른 대다수 제조업체와 마찬가지로 ‘최저 시급+고정 상여금’ 형태로 이뤄졌다. 그런데 해가 바뀌면서 A사는 새로운 임금 체계를 도입했다. 기본 시급을 인상하는 대신 400%로 월할 지급(기본급의 400%를 12개월로 나누어 매달 지급)되던 고정 상여금, 그리고 근속 연수에 따라 차등 지급되던 근속수당을 폐지했다.

그러자 기존의 ‘최저 시급(5210원)+고정 상여금 400%’일 때 145만2000원이던 기본급은 변경된 임금 체계에서는 127만4000원이 됐다. 13% 가까이 삭감된 셈이다. 기존 임금보다 기본 시급이 크게 인상됐기 때문에 월급도 오를 것이라고 생각했던 노동자들의 기대는 한순간에 빗나갔다. 월급명세서를 손에 쥔 뒤에야 이것이 실질적인 임금 삭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전 수준의 임금 총액을 보전하려면 주말 특근을 무려 여덟 번이나 해야 했다. 한 달 내내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해야만 이전과 같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한국, 6년째 실질임금 정체”

숙련된 노동자들이 떠난 빈자리는 갈 곳이 없어 남는 사람,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들로 채워졌다. 임금 체계가 바뀐 후 입사한 사람들은 이런 속사정을 알 리 없었다. 남아 있는 사람들 중에는 임금을 보전하기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한 달 내내 공장으로 출근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첫 월급날의 한바탕 소동 이후 주말 특근 참여율은 눈에 띄게 높아졌다. 교묘한 임금 시스템이 ‘자발적인’ 장시간 노동을 유도한 것이다. 

A사의 임금 체계 변화 뒤에는 고용노동부가 추진하고 있는 임금 체계 개편 전략이 있다. 올해 3월19일 고용노동부는 ‘새로운 미래를 여는 합리적 임금 체계 개편 매뉴얼’을 발표했다. 개편안에 따르면 임금 체계 개편의 핵심은 △기본급 중심의 임금 구성 항목 단순화 △연공성 축소 △성과 중심 수당 체계로의 재편 등이다. 기본급을 높이고 수당을 축소하고 성과 중심의 수당 확대를 실시해 합리적으로 바꾸겠다는 의도였다.

고용노동부는 “이번 임금 체계 개편으로 장시간 노동을 줄이면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평균 57.3%에 불과한 기본급 비율을 높여 노동자들의 연장 근로 등을 억제하고 성과급제 등을 도입해 임금 부담을 줄이면서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A사의 사례는 고용노동부의 주장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제시한 개편안을 거의 그대로 도입했는데 임금 총액은 줄어들었고 결국 장시간 노동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추가 근로 수당에 대한 의존도가 더 높아진 것은 근로 시간 단축 효과라는 고용노동부의 얘기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런 임금 체계 변경은 A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노동조합이 있는 기업에서는 기본급 인상 범위를 노사가 합의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하지만 A사처럼 노조가 없는 업체의 직원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는 사용자 측이 일방적으로 기본급 인상 범위를 설정해버리면 실질적으로 임금이 삭감될 수밖에 없다. 한국의 노조 조직률이 10% 안팎이란 점을 고려하면 임금 체계 개편안을 이용한 ‘꼼수’가 비정규직 노동자·노조 미조직 노동자 등으로 확산될 소지가 적지 않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기존 임금 체계는 1990년대 이후 임금 인상 억제정책 때문에 낮은 기본급과 과다한 수당 체계 등으로 왜곡되어 있던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 방향이 문제다. 이 교수는 “임금 체계 혁신의 방향이 인건비 절감 등 경영계의 이해만을 반영해 노동 소득이 줄어든다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뿐 아니라 노동계의 저항에 부닥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장시간 노동 문제를 저임금 구조에서 찾는다. 박준도 사회진보연대 사무처장은 “한국은 6년째 실질임금이 정체되고 있다. 이렇게 전반적으로 저임금 구조가 고착화되는 상황은 노동자 개인이나 한 사업장 내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밝혔다. 낮은 임금을 조금이라도 보충하기 위해 장시간 노동을 하고, 결국 생산성까지 하락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자는 지난 4월, 세 달간의 공장 생활을 끝내고 퇴사했다. 그리고 얼마 뒤 공장에서 함께 일하며 친하게 지내던 동갑내기 친구로부터 안부 전화를 받았다. 반가운 마음에 주말에 만나 회포라도 풀자고 제안했지만 그 친구는 난색을 표했다. “미안해, 이번 주에도 특근을 해야 해서 시간을 내기가 힘들 것 같아.” 주말도 없는 이들에게 ‘국민 행복 시대’는 너무나 먼 이야기인 듯했다.

 

 
사실 딱히 기자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 필자에게 예비 언론인이라는 말은 낯간지럽기만 하다. 그럼에도 내가 만난 세계를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다는 생각에 펜을 들었다.

 

나에게 공장 경험은 완전히 다른 세계를 만난 것과 같았다. 장시간 노동이 얼마나 위험한지,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현장에서 경험하고서야 알았다. 이것을 기록으로 남겨둬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현장 이야기가 운 좋게 시사저널에 실린다니 감회가 남다르다. 

처음 겪은 노동자의 삶은 생각보다 고되고 무미건조했다. 먹고 자고 일하는 일상이 반복됐다. 처음에는 화가 났다. 임금이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며 좋아하던 사람들의 실망스러운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분노 다음에 찾아온 것은 의문이었다. 과연 고용노동부는 이렇게 될 것을 모르고 임금 체계를 개편하겠다고 나선 것일까. 내가 내린 결론은 ‘아니다’였다. 재계가 통상임금 문제로 앓는 소리를 내자마자 나온 임금 체계 개편안엔 다분히 의도가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처음 기사를 기획할 때부터 그 의도를 현장에서 발가벗기는 데 초점을 맞췄다. 기울어진 시소의 한가운데 서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많은 언론에서 임금 체계 개편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었고, 실제로 임금 체계 개편이 일방적으로 기업에 유리한 쪽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 발짝 떨어져야 보이는 것도 있지만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도 있다. 앞으로 내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알 수 없지만 한 발짝 더 가까운 곳에서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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