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7000억 사기당하고 고소조차 안 했다"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4.10.26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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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철 전 SLS 회장 "실질적 피해 없단 건 거짓말"

산업은행이 특정 기업으로부터 7000억원대에 이르는 ‘대출 사기’를 당했는데도 처벌 자체를 요구하지 않아 ‘기소유예’ 처분이 내려졌다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예상된다. 국민의 세금 및 예금으로 운영되는 국책은행으로서 무책임하고 부적절한 처사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산업은행은 2001년부터 2006년 상반기까지 선박 제조사인 신아조선(현 신아SB)에 매년 수천억 원씩을 지원했다. 특히 2005년에는 자본금 163억원에 매출 3000억원인 이 회사에 1조원이나 되는 거액을 지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신아조선 측에서 수천억 원에 이르는 RG(선수금 지급보증)를 받기 위해 산업은행에 제출한 자료가 분식회계를 통한 엉터리 실적 자료였다는 데 있다. 분식회계는 회계장부상의 재무 정보를 조작하는 행위를 말한다. 당시 이 회사의 대표를 맡았던 유 아무개 회장과 회계·재정 담당자였던 양 아무개씨는 2001년부터 5년간 당기순손실이 1700억원에 이를 정도로 큰 금액을 분식 결산했다.

경남 통영시 도남동 신아SB(옛 신아조선·SLS조선) 전경

분식회계 자진 신고 누가 했나

이 같은 사실은 신아조선을 인수했던 이국철 전 SLS 회장이 2011년부터 30여 차례에 걸쳐 유 회장 등을 검찰에 고소·고발하면서 드러났다. 시사저널이 이와 관련된 여러 건의 문서를 입수해 확인한 결과, 검찰도 유 회장 등이 ‘산업은행에 신아조선의 RG 인수 한도 증액 등을 신청하면서 분식회계에 의한 재무제표를 제출하고 RG 인수 한도 증액 및 RG 발급을 받은 사실은 인정된다’고 봤다.

그런데도 기소를 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창원지검 통영지청은 2013년 3월 유 회장 등에게 불기소 처분을 결정하면서 ‘자진 신고 기간 내에 신고한 점, 피해자 산업은행에 현실적인 손해가 발생하지 아니한 점, 피해자가 피의자들에 대한 처벌을 원하는 의사를 표시하지 아니한 점, 피의자들은 자신들이 과거 분식회계를 했던 점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통영지청은 올해 6월에도 분식회계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유 회장 등에 혐의 없음(증거 불충분)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2007년 3월 신아조선이 산업은행에 분식회계에 의한 재무제표를 제출한 사실을 자진 신고했다는 점을 기소유예를 내린 이유 중 하나로 거론했다. 그런데 자진 신고는 유 회장 등이 한 게 아니었다. 산업은행이 2007년 3월 작성한 여신승인신청서에는 특기 사항으로 ‘회계분식 사실 통보 및 자기자본 개선 계획 제출’이 기록돼 있는데, 분식회계 파악 경위에 대해 ‘대주주 변경(유○○→SLS중공업) 후 자체 발견해 당행 앞 통보’라고 적혀 있다. 이 전 회장의 SLS중공업이 신아조선을 인수한 후 분식회계를 발견해 산업은행에 통보했다는 것이다.

이 전 회장은 신아조선의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 2006년 8월 회계법인과 증권회사 등에 의뢰해 신아조선의 재무 상태를 정밀 실사했다고 한다. 그 결과 신아조선은 자본금(163억원)이 마이너스 856억원에 이르러 완전 자본잠식 상태였고 2001년부터 5년간 당기순손실액이 1700억원에 이를 정도로 큰 분식 결산이 있었다. 같은 해 11월에 회계 정정을 위한 실사에 착수했고 사실관계가 확인되면 자진 공개할 것이라는 의사를 산업은행에 전달했다.

이어 신아조선의 재무제표가 재작성된 2007년 3월 산업은행에 분식회계 사실을 공식적으로 통지했고, 금융감독원 및 부산지방국세청에 자진 신고해 특별세무조사를 요청했다고 한다. 이후 부산지방국세청이 3개월 이상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벌였고 그 결과 신아조선의 분식회계 사실이 공식 발표됐다는 설명이다.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과 신아조선의 분식회계 관련 문서

산업은행 정말 손해 본 게 없나

한국무역보험공사(당시 한국수출보험공사)의 2008년 1월22일 ‘경영위원회 회의록’에도 이 전 회장이 분식회계를 발견했다는 증언이 나온다. SLS조선으로 이름이 바뀐 신아조선의 자본금 현황과 관련해 한 팀장이 ‘이국철 회장이 인수할 당시 자본금은 161억원으로 파악했으나 이후 분식회계를 발견, 이를 반영한 결과 2006년 말 1359억원 자본잠식 상태’라고 보고한 것이다. 이틀 뒤에 있은 ‘SLS조선 이국철 면담 주요 내용’에서는 ‘분식을 알고 신아를 매입했는지’에 대해 이 전 회장이 ‘당초 200억원일 거라고 짐작하고 매입, 인수 후 1차 신아 재무진이 있을 때 실사 400억원 발견, 2차 신아 재무진 교체 후 실사 1359억원 발견’이라고 답변한 것으로 나와 있다.

그렇다면 산업은행은 신아조선의 분식회계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일까. 당시 신아조선의 규모로 봤을 때 수년간 거액이 분식회계 처리됐는데 주거래은행이 이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데 대해 의문이 제기된다. 특히 산업은행은 2006년 2월 신아조선과 출자전환을 약정했다. 신아조선 주식 15%에 해당하는 약 74억8000만원을 투자한 것이다. 산업은행이 몰랐다면 국책은행이 출자전환 상대 회사의 분식회계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얘기가 된다.

산업은행에 현실적인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검찰의 판단에도 반론이 제기된다. 무역보험공사가 검찰에 제출한 신아조선의 ‘수주 현황’에 따르면, 계약일 기준으로 2004년 2월부터 2006년 3월까지 산업은행은 4억 달러(약 4600억원)가 넘게 RG 보증을 서줬다. 또 산업은행이 검찰에 제출한 ‘금융기관별 신용공여 현황’ 자료에는 2009년 11월30일 기준으로 산업은행의 신용공여 금액은 약 3616억원인데 이 중에서 약 2617억원이 RG 보증으로 나와 있다. 산업은행은 검찰 제출 자료에서 ‘기업이 분식회계를 했다는 것은 금융기관에 중요한 신용 위험 사유에 해당하며, 이는 대주주가 누구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금융기관과 거래하는 법인이라는 회사의 신용도 하락에 중대한 사유가 됨’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전 회장은 “산업은행은 약 7000억원(6억 달러)에 해당하는 RG를 발급·증액해줬다”며 “이를 통해 계약한 선박들의 경우 결과적으로 건조 포기된 뒤 RG Call(선수금 환급 요구)이 발생했거나 낮은 가격으로 Resale(재판매)돼 RG를 발급해준 금융기관이 실질적으로 손해를 입게 됐다”고 밝혔다.

산업은행은 왜 고소를 안 했나

피해자인 산업은행이 유 회장 등을 고소하지 않은 이유도 의문스럽다. 국책은행으로서 국민의 세금 및 예금 운용에 위험이 발생했다면 금융감독원에 보고하고 검찰에 고소하는 게 상식적인 대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고소는커녕 처벌 자체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검찰은 이 점을 들어 범법 행위를 인정하면서도 유 회장 등을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검찰은 ‘분식회계를 한 사실이 인정될 뿐만 아니라 산업은행으로부터 수입신용장을 발급받는 과정에서 분식회계에 의한 재무제표를 제공한 사실이 인정되나, 금융기관에서 신아조선의 재무제표 자료만을 보고 대출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는 점’도 거론했다. 하지만 산업은행의 담당 직원은 검찰에서 ‘만약 분식회계에 의한 재무제표 자료를 제공한 사실을 알았다면 승인을 해주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진술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산업은행이 분식회계 사실을 숨기려 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또 다른 논란이 예상된다. 이 전 회장에 따르면, 2006년 11월 분식회계 사실을 자진해 공개할 것이라는 의사를 전달하자 산업은행은 ‘분식회계 사실을 공개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출자전환 방식으로 신아조선 주식을 매입한 지 불과 몇 개월 만에 분식회계 사실이 알려져 감사원 감사를 받게 되면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지위가 심하게 흔들리고 관계자들이 문책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 발짝 더 나가 산업은행은 ‘만일 분식회계 사실을 공개할 경우 산업은행으로부터 많은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다’는 협박까지 했다.

이 전 회장은 “일반 국민은 7000만원 상당의 사기 범죄만 저질러도 징역 2년 이상을 구형하는데 유 회장 일행은 7000억원 이상의 사기 범죄 행위를 저지르고도 단순히 반성한다는 이유만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며 “법원에 제출된 명백한 증거 자료를 바탕으로 고소·고발을 했는데 검찰과 산업은행은 도대체 유 회장과 어떤 유착 관계가 있기에 이처럼 말도 안 되게 부당한 판단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산업은행은 10월24일 “외부 회계법인의 감사를 받는 회사가 분식회계 사실을 숨겼다면 금융기관에서 모를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신아조선의 분식회계 사실은 2007년 3월 SLS조선에서 통보를 해와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산업은행에 손실이 발생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분식회계가 있었던 2001년부터 2005년까지는 글로벌 경기가 좋아 연체도 없고 거래도 정상적으로 이뤄졌다. 2009년 워크아웃에 들어간 이후의 손실은 그 회사의 문제다”라고 해명했다. 산업은행 측에서 분식회계 사실을 공개하지 말라고 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당시 팀장까지는 전혀 모르는 내용이라고 한다. 지점장의 경우 2008년 퇴사해 확인이 안 된다”고 답변했다.

이국철, 김진태 검찰총장에게 진정서 보내

이국철 전 SLS 회장은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지난해 12월 김진태 검찰총장에게 내용증명으로 진정서를 보냈다. 이 전 회장은 진정서에 ‘신아조선의 분식회계 및 7000억원 상당의 사기 범죄와 관련한 검찰의 부당한 처분’을 담았다. 구체적으로 ‘유 아무개 회장 등이 자신들이 저지른 분식을 인정했고 그로 인해 산업은행이 손해를 봤음이 명백한데도 검찰이 지나치게 관대한 처분을 해 부당하다’며 관련 자료를 제시했다.

일주일 뒤 서울중앙지검에서 ‘진정 사건 처분 결과 통지’를 서울구치소로 보내왔다. 이 전 회장이 지난해 9월과 10월 유 회장 등을 각각 ‘조세’와 ‘사기’로 고소·고발한 사건이 현재 수사 중이므로 진정서를 이 사건 기록에 편철해 수사에 반영토록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전 회장은 “통지서를 받은 후 검찰에서 제대로 수사해줄 것을 기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 결과는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 전 회장은 “분식회계 및 그로 인한 사기 범죄에 대해 ‘어느 기업이나 다 분식회계를 하던 시대였다’는 유 회장 등의 말만 듣고 아무런 혐의가 없다고 판단한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편향적인 판단이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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