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 “장남 경영권 승계로 교통정리 끝났다”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4.10.29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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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그룹 조현준 사장, 동생과의 갈등은 풀어야 할 숙제

“그룹의 후계 구도는 이미 장남으로 굳어져 있다. 장남과 삼남이 지분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언론 보도는 명백한 오보다.” 기자가 최근 만난 효성그룹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효성그룹의 후계 구도를 점치기가 쉽지 않았다. 지주회사 격인 (주)효성의 지분을 조현준·현문·현상 형제가 7%씩 골고루 나눠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각자가 맡은 역할도 명확했다. 조석래 회장은 조현준 사장(장남)에게 섬유와 정보통신을, 조현문 당시 부사장(차남)에게 중공업을, 조현상 부사장(삼남)에게 산업자재 부문을 맡겨 경영 수업을 받게 했다.

지난해 2월 차남이 “변호사로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며 회사를 떠나면서 후계 구도에 변화가 생겼다. 조 전 부사장은 당시 자신과 아들이 가지고 있던 효성 지분(7.21%)을 모두 제3자에게 매각했다. 그러자 장남과 삼남 사이에 지분 매입 경쟁이 벌어졌다. 두 형제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효성 주식을 사들였다. 언론에서는 차남을 제외한 두 형제가 차기 대권 자리를 놓고 지분 경쟁을 벌이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효성가 장남인 조현준 사장은 둘째 동생과의 갈등에도 그룹 경영권을 승계할 가능성이 크다. ⓒ 뉴스뱅크이미지
장남이 삼남보다 입지 탄탄

장남과 삼남이 보유한 (주)효성의 지분은 각각 10.40%와 10.05%로 엇비슷하다. 조 사장은 나머지 주력 계열사인 효성ITX(37.3%)와 갤럭시아커뮤니케이션즈(31.57%)의 최대주주다. 효성토요타(20%)·노틸러스효성(14.13%)·더클래스효성(3.48%)·아이비월드와이드(1.45%)·신화인터텍(0.03%) 등의 지분만 보유한 조현상 부사장과는 차이가 난다. 조 사장은 현재 섬유 PG장과 정보통신 PG장을 겸하고 있다. 산업자재 PG장과 전략본부 임원 등을 겸하고 있는 조 부사장보다 입지가 탄탄하다는 것이 재계의 전반적인 시각이다.

조현상 부사장은 지난해 2월 (주)효성의 등기이사에 선임되면서 급격히 외연을 넓혀가고 있다. 효성은 9월 타이어 보강재 사업 부문에 기술 영업 조직인 테크니컬 마케팅팀을 신설한다고 밝혔다. 갑작스러운 조직 개편에는 조 부사장의 의중이 상당 부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 부사장은 10월 기욤 장 조세프 마리 룩셈부르크 왕세자를 서울 서초구 세빛섬으로 초대해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는 룩셈부르크 경제사절단과 효성 고위 관계자 10여 명이 참석했지만, 오너 일가는 조 부사장이 유일했다. 조 부사장의 언론 노출도 빈번해지고 있다. 조 부사장은 9월부터 효성 사옥이 위치한 서울 마포구의 취약 계층을 지원하는 행사를 잇따라 개최했다. 장애아동 후원금으로 1억원을 쾌척하기도 했다. 재계 안팎에서는 조석래 회장이 삼남에게 그룹 경영권을 물려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기자가 만난 효성 내부 관계자는 “삼남 승계 논리는 효성그룹 내부의 상황을 전혀 모르고 하는 얘기”라고 못 박았다. 그는 “효성가는 어떤 그룹보다 유교 가풍이 강하다”며 “내부적으로 장자에게 그룹을 물려주는 것으로 교통정리가 끝난 상태”라고 말했다. 조 부사장이 (주)효성의 등기이사에 오른 것에 대해서도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는 “조석래 회장과 이상운 부회장이 7월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대표이사 해임 권고를 받았다”며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오너 일가인 조 부사장을 등기이사에 선임한 것이다. 조 부사장은 장남의 협력자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효성과 결별한 조현문 전 부사장도 최근 이런 취지의 말을 했다. 그는 8월 한겨레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어릴 때부터 형을 잘 보필해야 한다는 말을 마르고 닳도록 들었다”며 “형제간 경영권 다툼은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변수가 없는 한 장자 승계는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하지만 구체적인 승계 시기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국세청은 지난해 9월 4000억원에 이르는 탈루 세액을 추징하고, 조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조 회장과 장남을 기소했다. 올해 안에 1심 결과가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으로 조 회장의 건강 또한 예년 같지 않으면서 조기 승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효성그룹 측은 “3세 경영인들은 현재 각자 맡은 사업 부문에서 성과를 내며 경영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며 “회사 내에서는 경영 승계 문제가 전혀 논의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효성 내부 관계자들의 시각은 달랐다. 창업자인 고 조홍제 회장은 1982년 조석래 회장에게 대권을 물려줬다. 당시 조 회장의 나이는 40대 초반에 불과했다. 효성의 한 관계자는 “조 사장 역시 68년생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같은 나이다. 실패를 하더라도 과감히 투자할 수 있도록 3세들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2010년 4월14일 조현문 효성중공업 PG장(왼쪽)과 압둘라 빈 하마드 알 아티야 카타르 부총리 겸 전력청장이 1300억원 규모의 전력망 사업 수주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왼쪽사진) 2011년 8월18일 조현상 산업자재 PG장이 세계 1위 에어백 직물업체인 글로벌 세이프티 텍스타일스의 지분 100%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경영권 승계 내부적으로 논의된 적 없다”

조 사장이 풀어야 할 숙제도 적지 않다. 특히 조 사장은 지난해 그룹을 떠난 동생 조현문 전 부사장과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다. 조 전 부사장은 10월22일 조현준 사장과 류필구 대표이사 등 효성 계열사 임원 8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계열사 수익과는 무관한 거래에 투자하고, 허위 용역 기재나 계열사 부당 지원 등으로 최소 수백억 원에 이르는 손해를 끼친 혐의(업무상 배임·횡령)였다. 조 전 부사장은 검찰에서 “특정 개인이 기업을 사금고로 이용하는 불법 행위는 단호히 근절돼야 한다”며 “효성처럼 횡령이나 배임, 비자금 조성, 해외 재산 도피, 분식회계, 탈세 등 불법 비리를 통해 주주 가치를 훼손하고 임직원들과 채권단을 기만해 시장 질서를 교란하는 행위는 없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조 전 부사장은 지난 6월에도 효성 계열사 두 곳의 대표를 검찰에 고소했다. 트리니티에셋매니지먼트와 (주)신동진이 부실 계열사에 자금을 대고 지분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100억원 상당의 손실을 입었다는 취지에서였다. 그런데 조 전 부사장이 친형을 직접 겨냥해 고발장을 제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승계 1순위’로 꼽히는 조 사장의 입지 또한 좁아들 수 있어 주목된다.

이와 관련해 효성그룹 측은 “정상적인 경영 활동의 일환이었다. 고발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자신이 몸담았던 회사는 물론이고, 임직원과 형제까지 고소·고발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조 전 부사장도 한때 경영진의 일원이었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 왜곡된 주장이라는 게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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