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뒤, “내 땅 돌려주든지, 아니면 돈을 내라”
  • 강성운│독일 통신원 ()
  • 승인 2014.10.29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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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일 이후 재산권 반환 소송 봇물

한반도에서 갑자기 통일이 이뤄진다면? 우리 사회에서 통일 담론이 급물살을 타면서 독일의 통일 과정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의 한 독일법 전문가는 “올해 초 ‘통일 대박론’이 제기된 이후 독일 통일과 관련된 정부 부처의 연구 발주가 크게 들어났다. 독일 통일과 관련한 학술 대회도 많이 개최되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의 통일 연구자들에게 독일의 사례는 시사점이 크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25년간 숱한 시행착오를 거쳤기 때문에 우리 입장에서는 학습서 같은 존재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도 반복될 가능성이 큰 소유권 분쟁은 오늘날까지도 독일 사회에서 계속되고 있어 그 경위를 살펴보는 일이 시급하다. 통일이 현실이 됐을 경우 많은 사람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1989년 12월22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날, 서베를린 시민들이 동베를린 시민들을 끌어올려주면서 통일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미해결 재산, 민사 아닌 공법으로 해결

그런 면에서 주목해야 할 법안이 하나 있다. 1990년 9월29일 동·서독 통일 계약과 동시에 발효된 재산법(VermG)이다. 이 법은 소유 체계와 개념이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이행되는 과정을 다룬다. 이 법의 핵심은 동독 체제에서 보상 없이 국가에 수용된 재산, 이른바 ‘미해결 재산’의 해결이다. 동독에서는 소련이 군정 통치 중이던 1945년 토지 개혁이 일어났고, 이후 동독 통일사회당(SED) 독재 아래서도 재산 몰수와 전용이 반복됐다. 게다가 나치가 저지른 유대인 재산 몰수 문제 해결을 동독 정부가 기피하면서 통일 직후 독일에서는 원소유자에 대한 재산 반환과 보상 문제가 불거졌다.

독일은 미해결 재산 문제를 민사 소송이 아닌 공법상의 행정 절차로 해결했다. 객관적이고 투명한 해결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연방 미해결재산문제해결청(BaroV, 현 BADV: 미해결재산문제 및 서비스청)이 설치됐고, 동독의 국유 재산에 해당하는 인민 재산의 사유화를 전담하는 신탁청(THA)이 생겼다. 미해결 재산에 대한 반환 신청 기간은 재산법 발효 2년 3개월 후인 1992년 12월31일까지로 극히 짧았다. 이에 대한 불만이 먼저 터져 나왔다. 미해결재산문제해결청의 엘렌 핸들러 기획실장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그 점은 법적 평화를 조속히 확립하고 동독 지역에 대한 개발 지연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짧은 기간 동안 접수된 재산 반환 신청은 총 81만5159건이었다. 그러나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핸들러는 “재산 1건의 상세 내역을 조사하는 과정에서도 토지·건물·가구 등 재산상의 가치가 있는 것들이 속속 드러나 현재까지 반환 청구 대상이 된 재산은 모두 237만 건이 넘는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2010년까지 모든 미해결 재산 문제를 처리하기로 한 당초의 목표는 2018년까지로 늦춰졌다. 미해결 재산 문제는 통일 직후 옛 동·서독 주민들 간 감정의 골을 깊게 만들었다. 특히 부동산 소유권 해결이 지연되면서 서독의 원소유자들은 “내 재산을 내 마음대로 못한다”는 불만을 품었고, 동독의 현재 소유자는 “내가 살며 가꿔온 삶의 터전이 하루아침에 날아가게 생겼다”는 불안에 떨었다.

특히 동독 주민들은 ‘원소유주’라는 불청객의 방문을 두려워했다. 동독에서 기자 생활을 하던 피터 키르세이는 자신이 아끼던 주말별장을 순식간에 빼앗겼다. 1956년 구입한 이 건물의 원소유주는 서독에서 통보를 해왔다. “반환을 하든지 아니면 50만 마르크를 내라.” 어마어마한 요구에 그는 별장을 돌려줄 수밖에 없었다. 재산법이 동독에 적용되자 옛 주인은 일확천금의 기회라고 여기고 동쪽으로 넘어왔다. 반면 국가로부터 얻은 집이나 주말농장을 소유하고 있던 동독인들은 수십 년간 익숙해진 공간을 갑자기 빼앗기는 재앙을 수없이 맞았다. 서독 주민들은 자신이 원주인이거나 원주인일지도 모를 땅을 되찾기 위해 변호사와 사설탐정, 부동산업자들을 고용했고, 이들은 동쪽으로 넘어가 토지대장과 거래대장을 뒤지며 신종 사업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동독 지역민들의 불만, 극우주의로 표출

신탁청에 의해 “동독의 재산이 서독으로 넘어간다”는 불만도 있었다. 독일 작센 주의 폭트란트 지역에 위치한 베르네스그뤼너 맥주 양조장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 양조장에는 서독으로 망명한 상속자들이 있었지만 동독 내 상속자가 사망하자 1974년부터 국영기업으로 탈바꿈했다. 통일 이후 크리스티안 볼프 등 10명의 서독 상속자들은 이 기업에 재산 반환 청구를 했지만, 미해결재산청은 지분의 51%에 대한 권리만을 인정했다. 나머지 49%는 통일 이후 이 기업에 1200만 마르크를 투자한 신탁청에 돌아갔다. 볼프는 맥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이 지역 주민들에게 “가족형 중소 맥주 기업의 전통을 이어가겠다”고 선언해 큰 지지를 얻었고, 당시 언론에서는 서독의 대형 양조기업의 인수 시도에 저항한 그를 두고 ‘영웅’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베르네스그뤼너 사는 소유권 소송 끝에 지난 2002년 신탁청의 지분을 인수한 비트부르거 사에 넘어갔다. 비트부르거 사는 독일에서 세 번째로 큰 양조기업이다. 이 일은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작센 지역 극우주의자들의 선동 소재로 쓰였다. 경쟁 관계에 있는 도시의 맥주는 팔지도 않는 독일인들의 유난스러운 ‘맥주 애향심’을 악용한 것이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동·서독의 통일을 시끄럽게 했던 미해결 재산 문제는 대중의 뇌리에서 서서히 잊혀졌다. 그동안 동독 재산의 소유권은 소리 없이 거대 투기 자본에 흡수되어갔다. 특히 국제 금융 위기와 유로존 위기로 베를린 지역의 부동산 투기 열풍이 인근 지역으로 확대되면서 지역의 농업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치솟는 농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는 동독 지역 농민들은 과거 서독에서 몰려오던 불청객을 떠올리며 ‘제2의 몰수’를 이야기하고 있다. 통일 직후에도 임대차보호법, 노동 재산의 사유화를 통해 삶의 터전에 머무를 수 있었던 사람들이 통일 후 20여 년 만에 또 밀려나고 있다. 통일 직후부터 차곡차곡 쌓이며 옛 동독 지역에 퍼진 박탈감과 분노는 결국 엉뚱한 방향으로 분출되고 있다. 2010년 옛 동독에 속하는 작센-안할트 주에서 발생한 극우주의 범죄는 119건에 불과했다. 2002년 이후 최저 기록이다. 그러나 이후 불과 3년 만인 2013년에는 두 배를 훨씬 넘는 279건의 사건이 발생했다. 통일을 이야기할 때 ‘대박’의 이면을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 독일 미해결재산문제청 제공
통일이 될 경우 한국은 토지대장 소실과 지번 체계 차이 등으로 문제가 예상된다. 토지대장이 없는 경우엔 어떻게 하나.

한국의 상황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우리는 가능한 한 서류를 모두 모으되, 소유관계를 증명할 서류가 없을 경우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즉, 현재 소유 상태를 그대로 인정한다.

한국이 만약 통일될 경우 미해결 재산 문제를 풀기 위해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

미해결 재산 문제를 결정하는 객관적인 공공 행정이 갖춰져야 하고, 다자간 갈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반환 청구 권한, 근거, 불허 사유, 보상 액수를 법으로 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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