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집 좋은 ‘무대’, 때리다 지치는 청와대
  • 이승욱·엄민우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4.10.30 11:4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무성의 ‘개헌 봇물’ 발언에 말려든 청와대…박 대통령 ‘블랙홀’에 빠져드나

#1. 10월16일 현지 시각 오전 7시30분. 중국 상하이 훙차오 호텔 2층 식당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일행이 모습을 드러냈다. 3박 4일간의 방중 일정을 정리하면서 동행 기자단에게 중국 방문의 성과를 설명하는 자리였다. 으레 그렇듯이 기자단은 ‘큰 꺼리’가 없는 의례적인 간담회 자리 정도로 받아들였다. 방중 일정 막바지에 긴장이 풀린 듯 일부 기자가 지각을 하자, 김 대표는 “어제 늦게까지 술 마신 사람이 제일 늦게 등장하네”라고 농을 던지는 등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간담회장 분위기는 30~40분 후 오찬을 겸한 비공식 자리가 시작되면서 180도 바뀌었다. 김 대표의 발언을 느긋하게 노트북에 타이핑하던 기자들의 손놀림이 갑자기 빨라지기 시작했다. 기자들도 서로 번갈아 마주 보며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문제성 발언이 터져 나온 것이다. 정치권의 개헌 논의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김 대표의 입에서 뜻밖의 발언이 흘러나왔다. “(정기국회가 끝난 뒤 개헌 논의의) 봇물을 막을 길이 없을 것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10월2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연석회의에 참석하던 도중 거울에 비친 모습. ⓒ 연합뉴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기자들의 뇌리에 박근혜 대통령의 열흘 전 발언이 스쳤다. 10월6일 박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개헌 논의는 경제를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는 개헌 논의에 대해 현재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이 쐐기를 박은 것이다. 이를 아랑곳 않는 듯 김 대표의 말은 거침없었다. 그는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를 대안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소상한 개헌 구상까지 쏟아냈다. 김 대표는 자신의 개헌 발언이 논란을 빚자 발언 하루 만에 자신의 불찰이라며 박 대통령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다.

#2. 10월21일 청와대. 정치권은 김 대표의 상하이발 개헌 발언으로 벌집 쑤신 듯했다. 윤두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기자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당 대표 되시는 분이 실수로 (개헌 관련) 언급을 했다고, 우리는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는다”며 “기자가 노트북 펼쳐놓고 받아 치는데, 그런 상황에서 (개헌 관련 문제를) 마구 언급한 것은 기사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말씀하신 게 아니냐. 그렇게 생각하는 게 정상이 아닌가”라고 김 대표의 실수 사과에 대한 진정성을 문제 삼았다. 그는 또 “(일부 언론과 야당은 청와대가) 김 대표에게 항의하거나 압력을 가해서 김 대표가 물러난 것처럼 해석하고 주장하는데 저희는 황당하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홍보수석 내세워 여당 대표 공격한 청와대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개헌 봇물 발언’이 대한민국 정치권을 뒤흔들어 놓았다. 김 대표가 개헌 발언을 사과하면서 일단락되는 듯 보인 사태는 청와대의 맞대응으로 다시 불붙었다. 자신의 발언이 ‘불찰’이라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선 여당 대표를 향해 청와대가 ‘거짓말’ 공세를 펼치고 ‘확인 사살’까지 한 셈이 됐다. 처음에는 청와대 고위 관계자로 보도가 됐으나, 이내 그 발언의 출처가 ‘대통령의 입’인 윤두현 홍보수석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논란은 더욱 확산됐다.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 간의 권력투쟁이 노골화되고 있다는 데 관심이 모아졌다.

특히 김 대표의 발언이 있은 지 닷새 만에 나온 청와대의 반응을 두고 논란이 거셌다. 표면상으로는 어쨌든 김 대표가 사과하는 모양새를 취했음에도,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이름으로 “진정성 없는 사과”로 맞받아친 것을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노골적인 권력다툼으로 비치게 한 청와대의 의도를 잘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7·14 전당대회 후 김 대표를 예의주시하던 청와대가 본격적으로 김무성 체제를 흔드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이는 배경이기도 하다. 김 대표가 박 대통령에 대해 정면으로 치받는 현재 사태를 단순한 경고 내지 주의 환기가 아닌 심각한 도전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홍보수석에게 여당 대표를 정면으로 비난하도록 한 의도에도 관심이 쏠렸다. 집권당 대표에 대한 ‘공격’인 만큼 ‘예우’를 갖춘다면 최소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나서는 것이 격에도 맞지만 청와대가 선택한 통로는 홍보수석이었다. 기자들에게 익명을 요구했다고는 하지만, 이는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 많은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입을 다 막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청와대의 깊은 뜻이 읽힌다. ‘김무성 대표’ 정도는 홍보수석이 상대한다는 의도를 은연중 내비친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이 언론 인터뷰에서 윤두현 수석의 발언과 관련해 “그가 무슨 고위 관계자냐”고 말한 것도 이를 비꼰 것이다. 청와대가 김무성 대표를 욕보이기 위해 체급이 한참 아래인 인물을 링에 올렸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7·14 전당대회 이후 김무성 체제가 등장하면서 당·청 간의 갈등은 예고된 것이었다. 청와대의 우려대로 ‘보스’ 기질이 넘치는 김 대표는 빠른 속도로 당을 장악해갔다. ‘친박(親朴)’의 설 자리는 야금야금 줄어들었다. “친박의 존재감은 아예 없다”는 얘기가 여의도 주변에서 흘러나왔다. 청와대로서도 김 대표 체제의 당을 제어할 수단이 없었다. 과거 친박계인 황우여 대표 체제에서는 당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여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청와대가 당을 컨트롤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다. 더구나 박 대통령을 대리해 당·정·청을 압도하던 김기춘 비서실장의 사퇴설이 계속 불거지는 등 거취 문제가 불명확하다는 해석이 분분하면서 그조차도 힘이 빠진 형국이다. 이런 마당에 김무성 대표 체제의 당 지도부는 친박 핵심으로 통하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등과 각을 세우며 경제정책에 대해서도 다른 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현재 권력은 그리 만만한 게 아니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아무리 힘이 없어도 차기 대통령을 자신의 사람으로 앉힐 수는 없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이를 떨어뜨릴 수는 있다”는 말이 정설로 내려온다. 김 대표가 개헌 발언으로 박 대통령과 청와대를 들었다 놓았지만, 김 대표로서도 불안한 요소는 있다. 현재 당권을 장악하고 있다 하더라도 김 대표가 미래 권력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고려할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개헌으로 촉발된 논란은 청와대뿐 아니라 경쟁적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던 여권 내 다른 대권 잠룡들을 자극하고 있다.  더욱이 김 대표가 직간접으로 연관된 사건에 대해 현재 검찰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점도 찜찜한 기분을 떨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다(21쪽 박스 기사 참조).

박근혜 대통령이 8월25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무대의 카리스마, “친박 존재감 아예 없다”

청와대가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김 대표의 개헌 발언 이후 여당 지도부에서는 소동이 빚어지고 있다. 김태호 의원의 최고위원 사퇴는 그야말로 돌발적이었다. 회의 도중 갑자기 나온 사퇴 발언에 대해 김 대표와 그의 주변에서는 일단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김태호 의원은 예전부터 개헌을 외쳐왔던 강력한 ‘개헌론자’ 중 한 명인 데다 김 대표와도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의 사퇴 배경을 두고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게 ‘친박 교감설’이다. 그는 친박 핵심 의원 몇몇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는데, 갑작스러운 사퇴 소동에는 이들과 김 의원 사이에 뭔가 교감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김 의원 자신은 물론, 친박 쪽에서도 이에 대해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보다 더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은 김 의원이 대권 후보로서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자신의 정치를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김 대표의 카리스마와 독주에 묻혀 최고위원으로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데 한계를 느낀 게 아니냐는 것이다.

김문수 새누리당 보수혁신위원장 역시 개헌과 관련해 김 대표와 확실하게 각을 세우는 모습이다. 그는 한창 김 대표와 청와대가 엇박자를 타는 시점에 인터뷰 및 강연 등을 통해 “이원집정부제는 대통령과 총리의 권력 충돌로 국가의 긴급 중대 사안에 대한 의사 결정을 지체시켜 위기 대응 능력을 떨어뜨린다” “5년 단임제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며 박 대통령의 입장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잇따라 내놓았다.

김문수·김태호의 ‘반김무성’ 전선이 변수

두 잠룡의 ‘반(反)김무성’ 행보는 박 대통령과 김 대표 간의 계속된 갈등 전선에서 틈새를 노려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김문수 위원장의 행동은 현재 권력을 등진 미래 권력은 존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나온 것”이라면서 “김태호 의원의 최고의원 직 사퇴는 김무성 대표에겐 타격을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스스로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개헌 봇물 발언’으로 촉발된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다툼에서 일차적인 승자가 김 대표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김 대표가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결과적으로 김 대표의 개헌 발언에 말려든 쪽은 청와대다. 김 대표는 개헌 발언 직후 “개헌은 더 이상 언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그래도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자 “청와대와 싸울 생각이 전혀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발언과는 거꾸로 개헌론은 정국의 핵심 의제로 떠올랐고, 야당인 새정치연합마저 김무성 대표를 두둔하는 모양새다. 예기치 않게 김 대표가 던진 덫에 청와대가 걸린 양상이 빚어지면서, 박 대통령이 그토록 우려했던 ‘개헌 블랙홀’이 삽시간에 정국을 삼켜버렸다. 청와대가 조금 시간을 늦출 수는 있을지 몰라도 개헌 정국을 돌이키긴 어려워 보인다. 시간은 김무성 대표 편이란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무대’와 청와대 사이에 낀 검찰의 선택은 


“청와대가 좀 지나친 측면이 있어. 대표가 연금 개혁 안 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한 측근 의원은 최근 공개 석상에서 이 같은 불만을 토로했다. 김 대표와 박근혜 대통령의 불편한 관계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지만, 7·14 전당대회 이후 김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이런 기류는 더욱 심해졌다. 긴장 관계 속에서 현재 진행 중인 검찰 수사는 김 대표에게는 아킬레스건일 수밖에 없다. 현 정권에서 중도하차한 인사들 다수의 경우를 살펴보면 검찰 수사가 큰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현재 김 대표와 직간접으로 연관된 검찰 수사는 2건으로 모두 참여연대의 고발로 시작됐다. 그중 김 대표를 직접 겨냥한 건은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에서 진행 중인 ‘수뢰 후 부정처사죄’에 대한 수사다. 딸의 수원대 교수 채용 대가로 청탁을 받아 2013년 국정감사에서 이인수 수원대 총장의 증인 채택을 무산시켰다는 내용이다. 최근 김 대표는 이번 수사에 대해 서면조사를 받았으며, 이에 대해 사실상 무혐의 결론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청사 주변에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아직 수사가 결론 난 것이 아니라는 말도 흘러나온다. 검찰은 해당 건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는 눈치다. 현재까지 김 대표에 대해서만 서면조사로 진행했을 뿐, 이 총장과 김 대표에 대한 소환조사를 진행하지 않고 고발인만 두 차례 불러 조사했다고 한다. 특수부와 달리 형사부 사건은 고발 후 3개월 안에 대략적인 수사 사항을 발표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아직까지 발표도 없다. 참여연대 측은 “김 대표를 서면조사 식으로 조사를 진행한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 문제제기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선 수사가 거물급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특수부가 아닌 형사부에 배당된 것을 놓고 ‘검찰이 봐주기 수사를 하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검찰 특수통 관계자는 “이번 건의 경우 사건을 특수부에 배당했으면 오히려 정치 공세 논란에 휘말리는 부담이 있었을 것이다. 고발 사건은 형사부가 맡는 것이 관례이며 수사 결과 및 상황에 따라 특수부가 사건을 맡게 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년 전 촉망받던 고위 공무원 ㄱ씨의 딸을 대학 측이 ‘과잉충성’으로 후한 점수를 줘 부정 입학시킨 사례가 있었다. 이처럼 사회 고위층 자제에 대해 대학이 ‘셀프 특혜’를 베푸는 경우도 많다. 만약 김 대표 딸의 교수 임용 과정에 부정이 있었다 해도 위 경우와 비슷한 사안이라면, 김 대표에게 직접 책임을 묻기가 애매하다. 김 대표의 한 측근은 “이미 해당 건에 대해 충분히 스크린을 끝냈고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전했다. 검찰이 어떤 결론을 내릴지 주목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