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를 디자인하라] "데이터는 민주주의의 휘발유다"
  • 영국 런던=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4.10.30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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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정부’ 전문가 벤 워디 런던 대학 교수 인터뷰

벤 워디(Ben Worthy) 영국 런던 대학 정치학과 교수는 정치학자로서 정부 투명성, ‘오픈데이터’ 분야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전문가다. 정부 자문기관(Open Government Partnership)에서 활동하며 영국과 기타 국가들의 정책 운용 흐름을 면밀히 관찰해왔다. 시사저널 취재진은 10월14일 런던 대학에 있는 그의 연구실을 찾아 인터뷰를 진행했다. 벤 교수는 “성공적인 ‘열린 정부’ 운용을 위해선 시민의 실생활에 혜택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학자인 당신이 생각하는 ‘오픈데이터’의 정의는 무엇인가.

정부 기관 등이 자신이 가진 정보를 대중에게 개방하는 것, 그래서 일반 사람들이 그것을 재사용할 수 있는 길을 여는 것까지를 말한다. 공개된 정보를 수요자인 시민이 어떻게 활용해 무엇을 할 것인지까지 포괄하는 것이 진정한 오픈데이터의 개념이라 할 수 있다. 

ⓒ 시사저널 이규대
오픈데이터라고 하면, 정보를 대중에 공개하는 정책 정도로 이해하는 게 일반적이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는 뜻인가.

그렇다. 물론 정부 내 정보들이 광범위하게 공개되는 것이 시민들의 정치적 참여를 확대할 수 있는 첫걸음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데이터 공개 자체가 오픈데이터 정책의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는 없다. 가장 기본적인 바탕에 불과하다. 정책을 집행하는 정부 당국이나 정치인들은 이것이 오픈데이터의 모든 것이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오픈데이터의 ‘재사용’ 측면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시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 대중은 정부가 대량으로 데이터를 공개한다는 것 자체로는 만족하지 않는다. 공개된 데이터가 자신들이 직접 이용할 수 있는 형태로 가공돼 제공되기를 바란다. 자료는 자료일 뿐이기 때문이다. 날것의 자료에 일반 대중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는 툴이나 플랫폼이 마련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 다수의 정부는 소유한 데이터를 공개하는 것 자체에 집중해 그것의 실질적인 활용 부분은 도외시하고 있다. 이런 경우 시민의 수요보다는 정부의 실적과 관심사 위주로 데이터 공개 정책을 추진해나가게 된다.

데이터를 공개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를 시민이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충실히 고민하는 것까지가 정부의 책무라는 뜻인가.

그렇다. 오픈데이터의 실질적 재사용이 가능한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정부가 데이터를 공개하면 시민이 이를 활용하고 이것이 다시 정부의 데이터 공개에 영향을 미치는 식으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나가는 것,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오픈데이터 정책의 운용 방향이다.

영국 정부의 경우는 어떤가.

공공 데이터 포털(data.gov.uk) 활성화 등 정부의 데이터를 공개한다는 측면에서는 지금까지 성공적이다. 매우 흥미로운 혁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 시민들의 실질적 재사용 부분에서는 성과와 미흡한 부분이 뒤섞여 있다. 아직까지는 시민의 데이터 재사용 부분이 정책의 핵심으로 충분히 자리 잡지는 않은 상황이다.

바람직한 오픈데이터 재사용 환경이란 무엇일까.

무엇보다 시민이 접근하기 수월하고 이용하기 쉬워야 한다. 또 평소 시민이 즐겨 찾는 것에 대해, 시민 자신의 피부에 와 닿는 혜택을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한다. 시민의 일상생활에 좀 더 밀착된 데이터가 공개되고 가공돼 시민에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도록 공개된 데이터를 가공하는 툴이나 플랫폼이 활발히 개발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 또한 중요할 것 같다.

우선 영국 정부에서 많은 관심을 갖고 민간을 지원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다. 왜냐하면 정부가 그런 개발을 해낼 기술이 없다는 점을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이다(웃음). 영국 시민에게 유용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각종 툴 및 플랫폼은 주로 시민사회에서 만들어내고 있다. 비영리기구 마이소사이어티(mysociety)가 개발한 ‘they work for you’ ‘fix my street’ 등은 시민의 오픈데이터 활용을 돕는 훌륭한 사례다. ODI(Open Data Institute)에서도 시민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관련 서비스를 생산해내며 흐름을 선도하고 있다.

민간의 창의력을 극대화하려면 사기업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구조도 필요할 것 같다.

일부 수익 모델이 나타나고 있다. 한 예로 ‘spendnetwork.com’은 영국의 중앙 및 지방 정부가 어떤 입찰사업에 비용을 얼마나 지출하는지 검색해볼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 사이트 운영사는 컨설팅 사업도 함께 한다. 정부의 오픈데이터를 좀 더 정교하게, 특정 목적에 맞게 진행하기를 원하는 이들의 의뢰를 바탕으로 리서치를 해서 수익을 올리는 식이다. 다양한 가능성들이 나타나고 있다.

오픈데이터의 잠재력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오픈데이터의 현주소는 과거 인터넷의 태동기와 비교할 수 있다. 20여 년 전부터 전 세계에 본격화된 인터넷이 오늘날 엄청난 변화와 혁신을 가져오지 않았나. 오픈데이터는 지금 막 시작하는 단계로 과거의 인터넷처럼 그 잠재력이 매우 크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다음의 두 전제가 뒷받침될 때 가능한 일이다. 하나는 시민의 활발한 재사용이 있어야 하고, 또 하나는 정치가와 정부의 계속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 밑에서 시민이 활발히 사용하도록 위에서 적절한 뒷받침이 있을 때 그런 잠재력이 충분히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세계 각국의 열린 정부 정책은 시민의 정치 참여를 확대해 민주적 가치 증진에 기여할 수 있는 도구로 주목받고 있다. 그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시민의 정치 참여에도 다양한 층위가 있다. 사람들이 얕은 수준에서 참여하게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지만, 좀 더 실질적이며 구체적인 수준으로 시민 참여의 질적 수준을 끌어올리는 일은 쉽지 않다. 데이터는 민주주의의 휘발유와도 같다. 공개된 정보가 부가가치를 발생시키며 폭발적인 파급 효과를 일으킬 수 있지만, 그러려면 시민이 직접 불씨를 댕겨야 한다. 정부가 필요한 정보를 공개하고 이를 가공해 접근하게 해주는 플랫폼까지 잘 마련됐다 해도 시민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오픈데이터는 어디까지나 도구이며, 이를 활용하는 것은 결국 시민이 얼마나 참여를 원하고 정부 및 정치권이 얼마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열린 정부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해나가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당부하거나 조언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직 태동기인 만큼 정책 추진 과정에서 시행착오는 불가피하다.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을 바탕으로 실패를 극복하고 성과를 만들어내겠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또 지금 오픈데이터 정책 추진이 겪는 어려움 은 정치·경제 등 너무 많은 분야에서 너무 많은 것을 요구받는 데서 기인한다. 정책의 중심을 잃지 않으면서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 것이 어려운 이유다. 어쨌든 정부가 정책의 성공을 위해 가장 중요시해야 할 부분은, 시민의 실생활과 오픈데이터 정책을 최대한 잘 연결하는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이미 한국은 온라인 민주주의의 선진국이다. 특히 절대 다수의 인구가 온라인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은 엄청난 장점이다. 좋은 정책이 도입됐을 때 세계 그 어떤 나라보다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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