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하게 대출받아 집 사지 말라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4.11.06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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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셋값 치솟자 매입에 관심…“자금력과 주거 정착 필요 따라 결정해야”

“재계약을 앞두고 집주인이 갑자기 전셋값을 1억원이나 더 올리겠다고 했다. 주변에 전세 매물은 가뭄에 콩 나듯 하니 올려주지 않으면 당장 거리에 나앉을 상황이었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있는데 눈앞이 깜깜했다.”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에 살고 있는 최 아무개씨(35)는 지난 10월 집주인으로부터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았다. 전셋값 1억원을 올릴 예정이니 응하지 않으면 재계약은 어렵다는 것이었다. 최씨가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 전셋값은 원래 2억원이었는데 2년 만에 3억원으로 올라버린 것이다.

매물로 나온 같은 동의 아파트 매매가는 3억4000만원 선. 최씨는 “산본 지역에서 원래 살던 38평 전세를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였다”며 “매매가와 전세가가 비슷해 억울한 생각이 들어 집 장만을 고민하게 됐는데 집 구입을 망설이는 동안 일주일 만에 원래 살던 곳의 아파트 매매가마저 3억4000만원에서 3억6000만원으로 뛰어버렸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최씨는 같은 동에서 매물로 나온 아파트를 서둘러 매입했다. 최씨는 “언제 집값이 떨어질지 몰라 어떻게든 버텨보려 했는데 전세 가뭄 탓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밝혔다. 

ⓒ 시사저널 포토
전세가 급상승에 “차라리 사버릴까” 고민

전세로 계속 살까, 아니면 내 집 마련을 해야 할까. 도무지 꺾일 줄 모르는 전셋값 오름세 때문에 집값 하락을 우려해 전세살이를 고집하던 이들까지 ‘내 집 장만’을 고민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치인 연 2%로 낮췄고, 정부가 정책자금까지 늘리고 있어 그동안 주택 구입을 미뤄왔던 전세 수요자 상당수가 매매 수요자로 돌아설 가능성 또한 커졌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이미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금 비율)이 70%를 넘어섰으니 전세 주거비용이 매매보다 더 들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겼다”고 분석했다. 심 교수는 “당분간 전세난이 계속되겠지만 전세에서 매매로 돌아서는 움직임이 있기 때문에 그 속도는 지금처럼 빠르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과연 지금이 집을 사기에 적기일까. 일단 2~3년 전과 비교하면 집 사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진 것은 분명하다. 9·1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주택 시장이 조금씩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대출 금리가 낮아진 덕분에 자금 조달도 쉬워졌다. 하지만 경기 흐름과 매수 타이밍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주택 매매가격이 뚜렷한 회복세를 보인 것도 아니다. ‘지금이 매수 적기냐’는 물음에 부동산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리지만 대체로 “지금 무리해서 살 필요는 없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함영진 부동산114리서치센터장은 “시장이 실수요층으로 재편되면서 집 구입 적기가 정부 정책에 따른 민감도에 좌우되고 있다”며 “가령 정부 정책 가운데 디딤돌론과 같은 저리 대출을 통해 집을 사는 것이라면 나쁘지 않지만 굳이 대출 비중을 크게 해서 무리하게 구입할 시기는 아니다”고 밝혔다.

김규정 우리투자증권 부동산팀장도 “내 집 마련 이후에 크게 수익을 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사실상 주택 가격을 감당하기 어려운 수요층이라면 대출을 받아 집을 사야 할 필요까진 없다”고 강조했다. 김 팀장은 이어 “전세나 월세 가격 상승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며 “여유 자금이라든가 주거 정착 필요성에 따라 매매를 결정하는 게 합리적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사실 전세대란 속에서 내 집 마련을 고민하는 정도라면 사정이 나은 축에 속한다. 전셋값과 함께 고공비행하는 월세가 서민들의 숨통을 죄고 있기 때문이다. 전·월세대란의 탈출구는 없는 것일까. 전문가들의 전망은 암울하다. 심 교수는 “전세 공급을 늘리는 것처럼 확실한 방법은 없지만 정부 노력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부 공급분이 한 해 1만~2만호 정도에 불과한데 어떻게 넘쳐나는 수요를 감당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한국은 주택 임대 시장의 80~90%를 민간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민간이 움직이도록 유도하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전·월세대란, 저금리·집값 정체 등 구조적 문제

함영진 센터장 역시 “장기적으로 임대주택 공급을 지금보다 늘리는 수밖에 없다”며 “전세대란에 깡통 전세도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보증금을 반환할 때 생기는 불협화음을 줄일 수 있도록 반환보증상품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월세 시대에 대비해 공급을 늘리도록 매입임대사업자를 위해 규제를 푸는 것도 한 방안”이라고 덧붙였다.

전세난은 자연적인 도태(?)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서 무리하게 유지하려 할 때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김규정 팀장은 “전세 주택이 계속 줄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텐데 이를 해결하려면 공급을 늘릴 수밖에 없다”면서도 “지금의 전·월세대란은 저금리나 집값 정체 현상에 따른 구조적 문제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김 팀장은 “자연적으로 도태되는 전세 시장을 정책적으로 유지되도록 하는 게 맞느냐에 대해 전문가 사이에도 이견이 있다”며 “전세에서 월세로 가는 대세가 이어진다면 장기적으로는 월세 시장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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