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MB 인수위에 ‘7000억 사기’ 숨겼다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4.11.12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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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인수위 면담 보고 때 누락

“신아조선의 분식회계 사실은 2007년 3월 SLS조선(신아조선의 후신)에서 통보를 해와 알게 됐다.”

분식회계를 통한 ‘엉터리 실적 자료’를 제출한 조선업체에 수천억 원에 이르는 선수금 지급보증(RG)을 해준 산업은행이 “외부 회계법인의 감사를 받는 회사가 분식회계 사실을 숨겼다면 금융기관에서 모를 수 있다”며 내놓은 해명이다. 산업은행은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신아조선에 막대한 금액의 금융 지원을 했다. 이 기간 RG 발급액이 6억 달러(약 7000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 회사의 분식회계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게 산업은행의 입장인 셈이다.

그렇다면 정말 문제가 없는 걸까. 시사저널은 10월28일자(제1306호)에서 이와 관련한 여러 건의 문서를 확보해 신아조선이 산업은행에 ‘분식회계에 의한 재무제표를 제출하고 RG 인수 한도 증액 및 RG 발급을 받은 사실’을 보도했다. 신아조선을 인수했던 이국철 전 SLS 회장이 2011년부터 30여 차례에 걸쳐 신아조선 대표를 맡았던 유 아무개 회장 등을 고소·고발하면서 드러난 사실이다.

경남 통영에 위치한 신아에스비(옛 신아조선) 현장. © 시사저널 구윤성
특히 검찰이 유 회장 등을 불기소 처분하면서 ‘피해자가 피의자들에 대한 처벌을 원하는 의사를 표시하지 아니 한 점’을 참작했다는 데 주목했다. 피해자인 산업은행이 피의자인 유 회장 등을 고소하기는커녕 처벌 자체를 요구하지도 않았다는 얘기다. 국민의 세금 및 예금으로 운영되는 국책은행으로서 부적절한 처사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수출입은행은 알았는데 산업은행은 몰랐다?

시사저널은 보도 후 또 다른 문서들을 통해 산업은행이 ‘거짓 해명’을 하고 있다는 정황을 포착했다. 한국무역보험공사(당시 한국수출보험공사)가 검찰에 제출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방문 결과 보고’에 따르면, MB(이명박) 정부 출범 직전인 2008년 1월25일 오전 SLS 사장과 함께 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 간부들이 인수위 사무실을 찾았다. 인수위 담당 과장은 “기업의 애로 사항을 듣고 제도 개선을 하기 위한 자리”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수출입은행 측은 신아조선(당시 SLS조선) 금융 지원과 관련해 “2004년부터 지원했으나 2006년 6월부터 중단했다”고 밝혔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은행의 내규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며 ‘자본잠식’을 거론했다. 수출입은행은 “2007년 자본잠식이 해소됐다니 결산 후 한번 다시 보겠다”고 밝혔다. 수출입은행 측의 이 같은 발언은 2006년 6월 이전에 이미 신아조선의 분식회계 사실을 파악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산업은행이 2007년 3월에 알게 됐다고 밝힌 것과 시기적으로 차이가 크다.

수출입은행이 분식회계 사실을 2006년 6월 이전에 알고 있었다면 이로부터 1년 가까이 지난 이후에 그것도 해당 업체로부터 통보를 받고서야 분식회계 사실을 알게 됐다는 산업은행의 설명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은 같은 국책은행으로서 기업 금융 지원에서 업무가 중복되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신아조선의 주거래은행은 수출입은행이 아닌 산업은행이었다. 수출입은행은 이미 알고 있는데 산업은행은 몰랐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산업은행이 출자 전환을 위해 신아조선의 유 회장과 2006년 2월1일 체결한 주식 인수 계약과 이에 앞서 SLS중공업과 유 회장이 2005년 12월30일 체결한 주식 매매 계약을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유 회장은 2005년 10월25일 산업은행에 차입신청서를 제출했다. 계획 사업 개요란에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출자 전환’이라고 기재돼 있다. SLS중공업과 주식 매매 계약을 체결하기 전부터 산업은행에 출자 전환을 요청한 것이다.

주식 매매 계약 부속합의서에 ‘분식회계’ 나와

산업은행의 주식 인수 계약서 제8조 ‘사전 협의 사항’에는 ‘주식 내용 및 소유권의 변동에 관한 사항’과 ‘사업의 중단 또는 포기, 기타 경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 등에 대해 ‘서면으로 은행과 사전에 협의해야 하며 그 처리 결과에 대해서도 은행에 서면으로 통지하기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런데 SLS중공업의 주식 매매 계약은 2006년 7월7일이 돼서야 비로소 잔금 지급이 완료돼 법률관계가 종료됐다. 산업은행이 앞서 체결된 SLS중공업의 주식 매매 계약 내용을 몰랐을 수 없는 셈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게 SLS중공업의 주식 매매 계약 부속합의서 2번 항목의 제목이 바로 ‘매출 분식 내용의 처리’라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주식 매매 계약 체결 이전에 회사가 매출 및 이익을 과대 계상하기 위해 행한 분식회계가 존재하는 경우, 그것이 매도인 기타 특정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고 회사를 위해 불가피하게 발생했던 것임을 상호 이해하며…’로 돼 있다. 자본 분식이 아닌 매출 분식이기는 하지만 ‘분식회계’라는 표현이 그대로 나와 있는데, 이를 당연히 검토했을 산업은행이 1년 넘게 지나도록 분식회계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하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부속합의서 5번 항목 ‘산업은행 출자 전환 문제의 처리’에서 ‘회사의 산업은행에 대한 운용 자금 채무와 관련해 산업은행의 회사에 대한 출자 전환은 그 시행을 보류시키며 이를 위해 매도인과 매수인은 상호 협력한다’고 돼 있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에 따르면 유 회장은 산업은행의 출자 전환 시행을 보류시켜야 했다. 산업은행도 이 내용을 당연히 알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불과 한 달여 뒤에 출자 전환을 강행했다.

SLS중공업의 주식 매매 계약이 체결되기 전부터 출자 전환 요청을 받았던 산업은행 입장에서는 출자 전환이라는 경영상의 중대한 판단을 하기 위해 신아조선으로부터 경영 상태나 자본 상태에 대한 정확한 자료를 제출받아 신중한 판단을 내렸어야 했다. 특히 출자 전환 대상 회사가 출자 전환 보류 약정을 한 사실과 분식회계 내용과 관련된 사실은 산업은행이 출자 전환을 결정하거나 실행하기 전에 반드시 고려했어야 할 사항이라고 볼 수 있다. 계약서에 명시돼 있는데도 그때는 몰랐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설득력이 떨어지는 셈이다.

부채 비율 1900% 넘는데 1억 달러 증액

산업은행 측은 MB 인수위 면담 당시 신아조선에 대한 금융 지원과 관련해 “조선이 호황이 될 것을 알았기 때문에 과거 15% 투자를 했었고 지원을 많이 했다. 2007년 상반기까지 계속 거래를 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15% 투자’는 출자 전환을 말한다. 그러면서 “SLS는 재무 상태가 열악해 자체 구조조정을 먼저 요구했고 SLS의 구조조정안에 대해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해 거래를 추가로 못하고 있다”며 “이에 대한 결론은 2007년 상반기에 났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2006년 4월19일 심사 요청이 들어와 닷새 뒤인 24일 승인이 이뤄진 신아조선의 여신 승인 신청서 내용도 주목된다. 산업은행이 검찰에 제출한 해당 문서에 따르면 SLS중공업이 지분 29.3%를 가지고 있지만 회사 대표는 지분 16%를 지닌 유 회장이 여전히 맡고 있었다. SLS중공업이 실질적인 경영권을 확보하지 못한 셈이다. 사전 한도 신청 사유를 보면 ‘조선업 호황 지속으로 인한 신규 선박의 수주 증가 및 선가 상승 등으로 선수금 환급보증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이행성 보증 한도를 증액코자 함’이라고 돼 있다. 실제 산업은행은 이행성 보증 한도를 5억 달러에서 6억 달러로 1억 달러 증액시켜줬다.

그런데 기업 분석 가운데 재무 건전성 항목을 보면 2005년 말 부채 비율이 1900%가 넘어 ‘부채 비율이 높은 상태’라고 지적돼 있다. 구체적으로 2002~03년에 수주한 저가 선박 인도로 매출 증가 미흡, 환율 하락에 따라 2004년도 대비 원화 환산 과정에서 매출 과소 계상, 철판 및 주요 원자재 가격 지속 상승으로 재료비 증가, 회계 기준 변경에 따라 2006년도 손실 예상액 및 지급 수수료 일부 등 조기 인식 등을 이유로 들었다.

한 해 뒤인 2007년 3월22일 심사 요청이 들어와 하루 만인 23일 승인된 SLS조선의 여신 승인 신청서 내용은 이전과 많이 달랐다. 이때는 지분 71.9%를 확보한 SLS중공업이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행성 보증 한도는 8억5300만 달러에서 7억2600만 달러로 1억2700만 달러가 삭감됐고, 장기선물환의 경우 4억5000만 달러에서 한도 취소가 됐다. 그 밖에 운영성 자금도 247억원에서 220억원으로 줄고, 시설 자금도 66억6000여 만원에서 9억9000여 만원으로 대폭 삭감됐다.

기업 분석 가운데 수익성 항목에서 ‘2005년까지 저가 수주 선박 인도와 환율 하락, 주요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외부 환경의 악화로 지속적으로 적자가 발생했고, 2006년까지도 매출 및 수익성 부진의 지속으로 적자 폭이 계속 확대됐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왜 2006년 출자 전환을 하고 이행성 보증 한도를 1억 달러나 증액했는지에 의문이 제기된다. 특별 약정을 둔 것도 이전과 다른 부분이다. 이국철 전 회장이 소유한 SLS중공업·SLS캐피탈 주식(액면가 161억원)을 담보로 제공하고 이 전 회장의 경영권 포기 각서를 징구하도록 했다.

산업은행은 시사저널 취재 과정에서 신아조선의 분식회계로 인해 입은 피해와 관련해 “2009년 워크아웃에 들어간 이후의 손실”이라며 역시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책임 회피’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워크아웃 이후의 손실이라고 하더라도 분식회계 당시 발급한 RG를 통해 계약한 선박들이 건조를 포기한 후 선수금 환금 요구(RG Call)를 하거나 선박을 낮은 가격으로 재판매(Resale)했다면 결과적으로 산업은행의 피해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은행이 이 전 회장 측에 분식회계 사실을 공개하지 말라고 강요했다는 주장에 대해 “지점장이 퇴사해 확인이 안 된다”고 해명한 것도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한편 산업은행 측은 “수출입은행이 자본잠식을 거론했다고 해서 분식회계 사실을 알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신아조선이 공시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도 재무제표까지 자본금이 바닥나는 자본잠식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수출입은행이 2006년 6월 금융 지원을 중단했다면 재무제표상으로 드러난 것 이외에 다른 사항을 알았기 때문이라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산업은행 측은 또 SLS중공업과 유 회장이 체결한 주식매매계약 부속합의서 내용에 대해 “부속합의서 존재 자체를 몰랐을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 시사저널 최준필
이국철 전 SLS 회장은 10월29일 자신의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계정이 해킹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 전 회장은 사건이 있기 10여 일 전 개인 명의로 페이스북 계정을 개설해 산업은행과 관련한 시사저널 기사 등을 게재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날 저녁 8시쯤 페이스북에 접속하려고 하자 계정 자체가 없는 것으로 나왔다. 1700여 명이던 ‘페북 친구’에게서도 이 전 회장의 계정은 사라졌다고 한다.

이에 이 전 회장은 미국 페이스북 본사와 한국 지사에 무슨 이유 때문인지 질의를 한 상태다. 그런데 이 전 회장이 11월6일 저녁 자신의 명의로 다른 계정을 개설했는데 이 계정도 몇 시간 뒤에 사라졌다고 한다. 이 전 회장은 “SLS 사태에 대해 모든 사실을 밝히겠다고 하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던 권력층이 해킹의 배후에 있는 것으로 의심된다”며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나면 검찰에 고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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