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 ‘원세훈 악몽’ 다시 떠오르나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4.11.12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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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검 특수부, 최근 두산 계열사 잇따라 압수수색

두산그룹 핵심 계열사인 두산중공업은 2013년 중순 검찰 수사로 홍역을 치렀다. 당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황보건설 특혜 수주 의혹 때문이었다. 황보건설은 2010년 삼척그린파워발전소 제2공구 토목공사에 하청업체로 참여했다. 이 과정에 부당한 압력이 개입된 정황을 잡고 수사에 착수한 것이다.

공사 발주처인 한국남부발전에서 시공사인 두산중공업으로 청탁 압력이 있었다는 두산중공업 전직 임원의 진술도 나왔다. 이 임원은 검찰에서 “이상호 남부발전 대표(당시 기술본부장)가 황보건설을 하청업체에 포함시키도록 압력을 넣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특혜 수주의 ‘몸통’으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을 지목하고 수사를 벌였으며, 2013년 7월 원 전 원장을 구속 기소했다. 원 전 원장은 올해 9월 1년 2개월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만기 출소하면서 이 사건은 마무리됐다.

당시 한기호 두산중공업 대표이사 사장(COO)도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자격도 안 되는 황보건설을 하청업체로 선정한 배경 등에 대해 자세히 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사장이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은 지 1년 3개월 정도 흘렀다. 검찰이 다시 두산중공업에 대해 수사에 나서 그 배경이 주목되고 있다.

배기가스를 재활용하는 두산중공업의 HRSG 사업부는 세계 2위의 경쟁력을 지녔다. 최근 잇따른 내부 비리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 두산중공업 제공
두산중공업, 1년 3개월 만에 또 검찰 조사

대구지검 특수부는 최근 두산중공업 보일러사업부 일부 사무실에 대해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두산중공업 간부들이 협력업체로부터 거액을 받고 조직적으로 뒤를 봐준다는 제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검찰은 9월 말 ㅇ하청업체로부터 1억원을 받은 혐의로 두산중공업 간부 방 아무개씨를 구속 기소했다. 방씨에게 거액을 건넨 협력업체 간부 3명도 같이 구속됐다. 이들은 납품 물량을 늘리기 위해 설계 단계부터 부당한 개입을 시도한 것으로 검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당시 두산중공업은 개인 비리라는 점을 강조했다.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지난 10월 초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현재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은 직원 개인의 문제로 회사와 무관하다. 검찰 수사를 지켜봐달라”고 밝혔다.

그런데 대구지검 특수부는 10월 말 두산중공업의 자회사인 두산건설 간부 김 아무개씨를 추가로 구속 기소했다. 김씨는 화력발전소의 자재 납품 편의를 제공한 대가로 ㄱ협력업체에서 1억5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10월30일 김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김씨는 구속된 상태에서 추가 조사를 받고 있다. 두산건설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지난해 두산중공업의 배열회수보일러(HRSG) 사업부를 양도받았다”며 “현재 김씨가 두산건설 소속인 것은 맞지만 사업을 양도받기 이전에 발생한 문제인 만큼 검찰 조사와 회사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4월 자회사인 두산건설의 재무 개선 차원에서 3055억원 규모의 주주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아울러 HRSG 사업부를 두산건설에 양도했다. HRSG는 복합화력발전의 핵심 기자재다. 가스터빈 연소 후 배출되는 고온·고압의 배기가스 에너지를 재활용해 스팀터빈을 돌리는 설비다. 두산의 HRSG 사업부는 세계 2위의 경쟁력을 지닌 알짜 사업으로 자산 가치가 9000억원에 이른다. 두산건설 관계자는 “사업부를 인수하고 조직 정비도 안 된 상황에서 이런 일이 터져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 주변에서는 “두산그룹이 이번에 단단히 걸린 것 같다”는 말이 나온다. 이미 검찰은 두산중공업이나 두산건설의 상납 고리에 대한 추적에 나선 상태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간부 한 명이 받았다고 보기에는 액수가 많고, 업무 특성상 단독 소행으로 보기도 어렵다”며 “검찰은 현재 회사 내부의 상납 연결 고리를 찾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수사가 회사의 상층부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두산중공업은 2013년 황보건설 특혜 수주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로 홍역을 치렀다. 사진은 2013년 7월 검찰에 소환되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 시사저널 자료사진
두산중공업·건설 “개인 비리로 회사와 무관”

이번에 문제가 된 협력업체 중 한 곳은 현재 신월성 1, 2호기와 신고리원자력 3, 4호기 건설에도 참여하고 있다. 두산중공업 외에도 현대중공업·포스코건설·SK건설 등에 자재를 납품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들 회사도 금품을 주고받았는지 들여다보고 있다. 검찰 특수부가 인지 수사를 전담하는 곳이고, 수사 대상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그룹으로 불똥이 튈 가능성도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사정기관의 기업 비리 수사가 다시 본격화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박근혜 정권 출범을 전후로 재벌 총수들이 잇따라 구속됐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2012년 8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배임 혐의로 법정 구속됐다. 이후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잇따라 구속됐다. 최 회장은 지난 5월 대법원에서 실형이 확정됐고, 이 회장은 현재 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박 대통령은 2013년 들어 ‘재계 달래기’에 나섰다. 재계 총수들을 청와대로 초청했고, 재계를 옹호하는 발언도 했다. “어렵게 형성된 경제민주화 기조가 퇴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을 정도다. 박 대통령은 올 4월 세월호 사태가 발생한 이후에는 ‘관피아 척결’을 선언했다. ‘철피아(철도+마피아)’와 ‘군피아(군대+마피아)’, ‘전피아(한전+마피아)’ 등의 신조어가 생겨났다. 검찰의 안테나 역시 모두 관피아에 쏠렸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의 칼끝이 다시 재계로 향하고 있어 결과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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