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피아’, 국방을 고철덩어리로 만들다
  • 엄민우·이규대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4.11.1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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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조 원대의 무기 시장을 움직이지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방위산업 참여자 모두로부터 필요성을 인정받지만 공식적으로 존재를 인정받지는 못한다. 무기중개업체들의 이야기다. 통영함으로 방산 비리 논란이 촉발되면서 무기중개업체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일반인들에겐 생소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들이 없는 무기 시장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고 말한다. 시장의 주요 참여자이면서도 관리의 사각지대에서 은밀한 거래를 하는 무기중개업체들의 실상을 추적했다.

세월호에 물이 차오르던 그날, 최첨단 수상 구조함인 ‘통영함’은 사고 현장으로 가지 못했다. 해난구조대가 수심 90m에서도 구조할 수 있도록 체계가 갖춰진 배였다. 당시 해군본부가 참모총장 명의로 두 차례나 구조작전에 총력을 기울이라는 지시를 보냈지만 배는 정박해 있었다. “음파탐지기 등 구조 장비들이 제 성능을 낼지 불투명하다”는 게 국방부가 내놓은 이유였다.

ⓒ 일러스트 오상민
그로부터 200여 일이 지난 11월5일, ‘제 성능을 낼지 불투명하다’던 그 음파탐지기의 납품 계약을 성사시킨 예비역 대령 김 아무개씨가 검찰에 체포됐다. 방위사업청(방사청) 함정사업본부 상륙함사업팀 최 아무개 예비역 중령 등을 연결해준 대가로 미국 업체 H사(음파탐지기 납품 회사)로부터 수억 원을 받은 혐의다. 김씨의 명함엔 ‘무기중개업체 O사 부사장’이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그를 ‘로비스트’라고 부른다.

통영함으로 촉발된 방산 비리 논란 뒤엔 무기중개상(에이전트)들이 있다. 무기중개상들은 수조 원대의 무기 시장 거래에 직접 관여하지만 지금껏 좀체 수면 위로 드러난 적이 없다. 그런데 통영함 비리가 터지고 김씨가 체포되면서 이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업계 및 군사 전문가들은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다. 흔히들 ‘방산 로비스트’ 하면 검정 선글라스의 ‘린다 김’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들도 달라졌다. 시사저널 취재진은 우후죽순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사실상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무기중개상들의 실태를 들여다봤다.

“한마디를 해도 보물 같은 말만 하셨다.” 지난해 3월 김병관 국방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출석한 무기중개상 U사의 대표는 김 후보자를 고용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발언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현 정부의 첫 국방부장관으로 내정됐던 김 후보자는 청문회 과정에서 결국 낙마했다. 결정적 요인은 무기중개업체에서 고문으로 일했던 경력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김 후보자는 K2 전차에 U사가 에이전트를 맡았던 독일 MTU사의 파워팩(엔진+변속기)을 장착하기로 결정하는 데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당시 김 후보자는 “로비스트로 활동한 적이 없다”며 관련 의혹들을 전면 부인했지만 끝내 장관에 임명되지 못하고 낙마했다.

방산 비리 논란을 촉발시킨 3500톤급 수상구조함인 통영함. ⓒ 연합뉴스
무기중개상 대표 연구소에 방사청 출신 포진

U사는 민간인들 사이에선 생소한 곳이지만 방산업계에서는 꽤 유명하다. 이곳의 창업주는 ㅈ씨인데 그는 한 민간 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그 연구소엔 군 장성 출신이 즐비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실제로 본지가 확인한 결과, 상당수 장성 출신이 이사 등을 맡고 있었다. 참모총장 출신만 3명이나 있었다. 방산업체에서 근무했던 이는 물론, 심지어 방사청의 고위직으로 있었던 인사도 있었다. 이 연구소의 ㅈ이사장이 무기중개업체를 직접 운영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군 출신인 전직 방사청 고위직 인사가 해당 연구소에서 직책을 맡고 있다는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로비 자체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국내 상황에서 로비스트 활동 여부를 밝히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명함에 쓰는 명칭도 대부분 사장·부사장·고문 등 일반적인 직함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방식 자체가 매우 자연스럽게 이뤄지기 때문에 딱히 문제를 삼기도 모호하다. 다음은 무기중개상들과 접촉한 경험이 있는 예비역 영관급 인사 ㄴ씨의 말이다. “방위사업의 로비스트라고 하면 뭔가 영화에서 접한 모습을 상상하겠지만, 사실 매우 자연스럽게 이뤄진다고 보면 된다. 어차피 비슷한 시기 군 생활을 했던 이들이라 누가 누군지 다 안다. 자연스럽게 술자리 모임을 갖고 골프 치고 하면서 반말로 이야기 주고받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영업이고 부탁인데 이런 것 자체를 문제 삼기도 좀 그렇지 않겠나.”

외국 방산업체들의 경우 이들 없이는 사업이 불가능할 정도다. 직접 지사를 세워 운영하는 것보다 이들을 통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방사청이 생기면서 과거와 같이 군 통수권자의 말 한마디로 사업이 왔다 갔다 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 그렇다 보니 이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게 됐다. 무기중개상의 실태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이들조차 이들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는다. 특히 외국 업체와의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관료들과 미팅을 잡거나 행정 문서를 작성하는 일을 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업체는 업체대로, 방사청은 방사청대로 이들의 존재가 필수다.

문제는 이들의 존재가 아니라 이들의 존재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아 오히려 ‘군피아 관리의 사각지대’가 돼버렸다는 점이다. 방사청에서도 방산업체로 진출하는 군 예비역 인사들은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하지만, 영세한 무기중개상으로 흘러들어가는 이들까지 다 파악하기란 어렵다. 말 그대로 ‘복면 쓴 군피아’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정식 출퇴근을 하지 않으면서 은밀히 활동하기 때문에 누가 그곳의 로비스트인지 알 길이 없다. 업체별로 활동하는 로비스트 규모가 적게는 3~4명에서 많게는 20명에 이른다. 하지만 명함만 만들어 활동하는 이도 많기 때문에 실제로 몇 명인지 파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들은 방사청 내 사업부 관계자들과 인맥으로 얽혀 사업을 성사시키는 일을 한다.

2013년 김병관 국방부장관 내정자는 무기중개업체 고문을 맡았던 사실이 드러나 낙마했다. ⓒ 연합뉴스
수주 성사되면 총 금액의 0.3~3% 챙겨

방사청의 한 관계자는 “에이전트 숫자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내부적으로 400~500곳 정도에 대해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는 정도다. 그러나 이는 극히 일부일 뿐,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군사 전문가들도 이 무기중개상들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수천 곳이라고도 하지만 워낙 소규모로 운영되는 데다 만들어지고 없어지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거래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업체 이름만 바꿔 다시 입찰에 참가하기도 한다. 방위사업법 적용을 받는 방산업체와 달리 일반 무역업 혹은 중개업으로 등록하고 운영한다. 꼭 무기만 중개하는 것도 아니다. 실제 입찰에 참가할 때는 방위사업 규정에 의거해 기무사의 보안검증을 받는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큰 곳들은 방사청에서 따로 파악하고 별도 관리를 한다고 하지만 그야말로 대략적으로만 조사하는 수준이다. 사실상 감시의 사각지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9월 말 방사청은 청렴한 방위사업을 위한 간담회를 열었는데 여기에 우수 방산업체 열 곳과 더불어 주요 무기중개상 두 곳을 별도로 초대했다. 이 두 곳 중 한 곳인 O사는 최근 통영함 비리와 관련해 검찰에 체포된 예비역 대령 김씨가 부사장으로 몸담은 곳이다.

외국 업체의 물품은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이다. 외국산 장비의 적정가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중간에 끼는 무기중개상이 제시하는 가격을 그대로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간에서 그들이 챙겨가는 수수료는 액수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총 수주 성사 금액 가운데 최하 0.3%에서 3%까지 챙기는 것으로 전해진다. 규모가 큰 건은 수천억 원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액수다. 해당 가격 산정에도 로비스트가 직간접적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방사청 내부 문건 ‘업체 제시 가격대로 적용’

문제는 방사청도 이 가격이 적정한지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이번 통영함 사태는 이런 실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시사저널은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통영함 음파탐지기의 가격 산정 과정이 담긴 방사청 내부 문건을 입수했다. 해당 문건 중 ‘기준가 결정’ 부문에 관한 내용을 확인해보니 ‘실적 및 가격 자료 활용 불가로 업체 제시 가격 적용’이라고 적혀 있었다. 쉽게 말해 업체가 부르는 가격을 그대로 정했다는 것이다. 해당 가격은 41억원이었다. 2억원짜리 장비를 20배에 달하는 가격으로 구입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바로 그 가격이다. 2억원은 원자재 가격 수준의 장비 가격이지만, 그렇다 해도 20배나 가격이 높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이 과정에 대령 출신 무기중개상 김씨가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미국 납품업체 H사의 강 아무개 대표와 방사청 함정사업본부 내 최 아무개 예비역 중령을 연결해줬다. 김씨가 속한 무기중개상 O사의 한 임원과 강 대표는 인척 관계로 알려졌다.

가격뿐 아니라 정비도 문제다. 무기를 한번 구입하면 지속적으로 정비를 하며 써야 하는데 중간에 낀 업체가 비리를 저지르고 사라지면 수리하기가 힘들다. 한 해군 출신 예비역 영관급 인사는 “국내 제조업체의 경우 직접 수리가 가능하지만 페이퍼 컴퍼니 같은 중개상과 사업을 진행했다가 잘못되면 나중에 정비받기가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번 통영함 사태를 계기로 수조 원의 무기 시장을 주무르는 무기중개상들을 양성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일반 방산업체와 같이 관련법에 따라 관리한다면, 중간 과정에서 일어나는 비리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무기중개상 운영 실태에 밝은 국회 국방위 소속 백군기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업체로선) 미사일 하나 팔자고 지사를 세울 수 없는 노릇이고, 지사를 세워도 현지인을 끌어들여야 한다. 이들을 완전히 배제하고 사업을 운영하면 사업 진입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배제하기보다는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같은 당인 국회 국방위 소속 진성준 의원은 “이번 사태로 무기중개상들이 비리 핵심으로 지목받게 된 만큼 방사청 문민화를 추진함과 동시에 이 무기중개상들을 제대로 관리감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방산업체 군피아가 하는 일은 ‘영업’ 



방산 비리가 연일 국회를 뜨겁게 달구면서 군 전역 후 방산업체로 진출하는 군피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들은 주로 어떤 직위로 이동해 어떤 종류의 업무를 맡았을까. 시사저널은 300명에 달하는 전역 군인의 방산업체 취업 현황이 담긴 관련 문건을 입수해 내용을 분석해봤다.

이들의 담당 업무는 다양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것은 바로 ‘영업’이었다. 사실상 업체들이 이들의 리더십을 활용하려 했기보다는, 결국 군 인맥을 살려 영업에 활용하려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군피아 논란에 휘말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특정 사업 TF(태스크포스)를 도맡아 담당하는 경우도 있다. 그 외에는 보안 및 연구 등 여러 담당 업무가 있었다. 직급은 최하 차장부터 부회장, 고문까지 다양했는데, 가장 많은 직급은 부장이었다. 계급은 대부분 ‘별’을 달지 못한 영관급 장교들이었다.

최근엔 일반 방산업체뿐만 아니라 건설 등 다른 업계에서도 군 출신 인사들이 주가를 올리고 있다고 한다. 건설 경기가 얼어붙어 있을 때도 군 관련 건설 프로젝트는 꾸준히 나오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리더십이나 조직관리 능력을 살려 활용한다면, 군 출신 영입이 꼭 나쁜 것만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통영함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해 온 국방위 소속 김광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군이 퇴직 후 업계에 진출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전문성을 살리기보단 자꾸 군을 나와 재취업하면 첫 사업을 따내야 한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분위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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