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에 눈먼 ‘가짜 사나이’들의 부당 거래
  • 이규대·엄민우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4.11.12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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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피아 ‘비리 복마전’의 핵심, 방위사업청 내 IPT 실체

방위산업 비리의 충격적인 실태가 드러나면서 최근 가장 많이 회자되는 단어가 ‘군피아’(군대와 마피아의 합성어)다. 방위사업청(방사청)에서 근무하는 현역 장교들, 전역 후 방위사업체로 진출하거나 무기중개상으로 변신한 예비역 인사들이 유착해 비리를 저질러왔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피아라는 용어에 함축된, 군인들의 개인적 탐욕 차원에서만 문제를 바라보는 것은 대책 마련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는 것이 국방 전문가들의 주된 견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군납 비리의 중심에 군피아가 있었다. 이들의 탐욕을 뿌리 뽑기 위한 제도적 대책이 지속적으로 논의돼 온 이유다. 특히 2006년 전면 개편된 현행 무기 도입 체계는 군피아의 농간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었다. 과거 육·해·공군 각 군이 전담하던 무기 획득 업무를 떼어내 민간이 참여하는 외부 기관인 방사청으로 일원화한 것이다. 그럼에도 군피아가 중심이 된 방산 비리가 사라지지 못한, 도리어 방사청이 방산 비리의 본산으로 전락하고 만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데서 방산 비리의 본질에 접근하는 실마리가 나온다.

방사청 내 IPT, 새로운 ‘군피아’ 본거지

지난 10월17일 통영함·소해함 부품 납품 비리와 관련해 전직 방사청 관계자 2명이 구속 기소됐다. 해군 예비역 대령 오 아무개씨(57·해사 33기), 예비역 중령 최 아무개씨(46·해사 45기)다. 이들은 입찰제안서 내 부품 납품업체 H사의 부품 성능을 허위로 작성하거나 변조해 뒤를 봐준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의 당시 직함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오 전 대령은 방사청 함정사업부 상륙함사업팀장이었다. 최 중령은 상륙함사업팀에 소속된 팀원이었다. 감사원 감사 결과, 같은 팀에 소속됐던 예비역 중령 송 아무개씨(해사 39기)도 유착의 고리에 가담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결국 방사청 내 동일한 사업팀에 소속된 해군사관학교 출신의 영관급 장교들이 무더기로 비리에 연루된 것이다.

상륙함사업팀과 같은 조직을 ‘통합사업관리팀’(IPT)이라고 부른다. 전투함·잠수함·전투기·전차 등 각 사업 부문별로 팀을 구성하고, 각 IPT의 관리 책임자가 기능별 전문 인력을 통합·구성해 모든 과정을 관리한다. 방사청 내 사업관리본부 산하에 모두 60개 IPT가 있다. 이들이야말로 무기 획득의 실무를 담당하는 핵심 조직이다. 문제는 통영함·소해함 비리가 보여주듯 IPT가 ‘통합·구성’하는 대상이 육·해·공군별 특정 군 인맥이라는 점이다.

방사청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IPT는 사업팀에 따라 특정 군 인맥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번에 문제가 된 상륙함사업팀 등 함정사업부의 IPT는 주로 해군 장교 출신들이며, 기동화력사업부 IPT는 육군 장교 출신들, 그리고 항공사업부 IPT는 공군 출신들로 구성되는 식이다. 이들 대다수는 사관학교 출신들로, 상하 계급에 학교 선후배로 묶여 있어 함께 비리를 저지르거나 또는 비리 사실을 알더라도 신고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처음 방사청이 설립됐을 때만 해도 각 IPT 내부엔 다양한 출신의 인력이 근무했다고 한다. 균형과 견제의 원리를 바탕으로 투명한 방위사업 업무를 추진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육군 장비는 육군 인사가, 해군 및 공군 장비는 해군 및 공군 인사가 취급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주장이 군을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됐다. 그 결과 IPT는 각 군의 무기 획득 업무를 담당하는 영관급 장교들이 긴밀한 인맥을 바탕으로 방사청 내외부와 유착할 수 있는 환경으로 재편됐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지난 8월 발표한 방사청 감사보고서에서 “군인은 폐쇄적·상명하복식 의사 결정이 일반화돼 있으며 내외부 견제가 미흡해 투명성 보장이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군수품 조달업무 특성상 “군인보다는 공무원이 담당하는 것이 타당”하며, 이미 지난 2012년 “국방 획득 업무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고 국방 개혁에 차질이 없도록 문민화를 촉구한 사실이 있다”고 적시하기도 했다.

현재 방사청 내 일반직 공무원과 군인의 편제상 비율은 51 대 49다. 이 비율은 2006년 방사청 설립 당시 종전 군인이 중심이 된 국방 획득 업무의 연속성 확보와 조직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설정된 과도기적 기준이었다. 점차적으로 군인을 공무원으로 대체하는 ‘문민화’를 추진한다는 것이 당시의 복안이었다. 이후 약 8년여가 흐르는 동안 문민화는 전혀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재취업 부담감’ 시달리는 방사청 장교들

60개 IPT를 산하에 둔 사업관리본부의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방사청 자료에 따르면, 사업관리본부 전체 643명의 직원 중 공무원은 231명(35.9%), 군인은 421명(64.1%)이다. 방사청 전체 평균보다 군인의 비율이 훨씬 높다. 감사원은 방사청이 2012년 당시 군인의 비율을 30% 이하로 낮추기로 하는 ‘(방사)청 획득 인력 구조 선진화 방안 기본계획’을 수립했음에도 이를 이행하기 위한 ‘세부 계획’조차 수립하고 있지 않다며 ‘주의 요구’를 내렸다.

IPT에 소속된 장교들이 비리에 취약한 요인은 또 있다. 이들은 군의 중간 실무자인 영관급인 만큼 진급에 매우 민감하다.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이 두려워 내부 공익신고를 하기 어려운 구조다. 또 비전투병과이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방사청 군인들의 진급 가능성이 일반 전투병과에 비해 떨어진다. 전체 786명의 군인 중 적기 진급 경과자 수는 215명(2013년 기준)에 달한다. 이 때문에 중령의 77%, 대령의 98%가 계급 정년에 의해 조기 전역하는 실정이다. 이로 인한 재취업 부담감으로 방산업체 유혹에 더 쉽게 노출된다는 것이 감사원의 지적이다. 그렇게 방사청은 비리의 온상으로 전락했다. 탐욕에 눈먼 ‘가짜 사나이’들에게 군인정신이란 없었다. 그들의 부당 거래로 통영함은 3500톤짜리 고철덩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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