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급 실무자나 예비역 장교는 깃털이다
  • 김종대│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
  • 승인 2014.11.12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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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산 비리 몸통은 군사정책 좌지우지하는 ‘국제 군산복합 세력’

한국군의 무기 거래 전반에서 ‘비리의 전시장’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다양한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방산 비리를 이적행위로 규정해 엄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방산 비리의 유형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공무원이나 군인이 업체와 유착해 기밀을 유출하거나 문서를 위조하고 뇌물을 수수하는 개인 비리다. 최근 해군이 통영함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공문서를 변조하고 기밀을 유출해 2억원에 불과한 저성능 음파탐지기를 41억원에 구매토록 한 5명의 전·현직 관리가 조사받은 사건이 이에 해당된다.

2011년 10월 미국 하와이에서 시험 발사 중인 사드(THAAD) 미사일. 최근 한국 배치를 둘러싸고 논란이 거세다. ⓒ AP연합
두 번째는 방산업체가 시험성적서를 위·변조해 불량 무기 또는 부품을 납품하거나, 원가를 조작해 부당이익을 취하는 업체 비리다. 2006년 방위사업청(방사청) 개청 이래 원가 부정으로 총 50개 업체가 적발된 바 있고, 올해는 시험성적서 위조로 241개 업체가 적발됐다. 이 정도면 방산업체 전반에 비리가 관행처럼 자리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 번째는 무기를 개발해 야전에서 장비를 운용하던 중에 성능 결함이 발견되는 등 사업 관리가 부실한 것이다. K-21 장갑차의 파도막이가 파손되고, 장보고 잠수함의 연료전지가 고장 나거나 한국형 구축함(KDX-1)에 486컴퓨터를 사용해 시스템이 다운되는 현상이 이런 사례다.

이와 같은 방산 비리는 방위사업이 갖는 폐쇄성과 군사기밀에서 기인하는 정보의 독점성, 군 퇴직자의 불법 로비와 부당 거래 유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고차원적인 무기 거래 로비 실체 간과

그런데 ‘방산 비리’라고 하면 대개 하급 실무자나 일부 예비역 장교, 또는 업체에 의해 저질러지는 것을 의미하지만, 실제 이는 진실의 일부에 불과하다. 방산 비리라는 표현에는 한국군의 무기 거래를 왜곡시키는 훨씬 고차원적인 무기 거래 로비의 실체가 간과되고 있다. 북한의 특정한 위협을 부풀려 특정 무기체계 도입의 우선순위를 상향 조정하는 데 정치권력과 예비역 군 간부들이 가담하는 행태가 방산 비리라는 표현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셈이다. 즉, 특정 장비나 구성품의 가격을 조작하는 ‘최종 비리’는 사실 깃털에 불과하고, 특정 무기를 도입하도록 군 정책 자체를 바꿔버리는 ‘최초 비리’가 범죄의 몸통에 훨씬 더 가까운데도, 방산 비리는 이 몸통을 말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정책 자체가 이미 잘못돼 있는데 관리 부실만 때려잡겠다며 이에 대해 ‘이적행위’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다소 의도적인 과장이라고 본다. 실제 이적행위는 따로 있다는 이야기다.

군이 해외 무기를 소나기 식으로 구매하는 배경에는 한반도 북단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초강대국이 출현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북한은 지구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핵과 미사일 체계를 완비한,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대국처럼 이미지가 형성된다. 특수부대 20만명 보유는 세계 1위다. 잠수함 발사 미사일은 아직 중국도 운용하지 못하는 초일류 강대국의 무기인데 이걸 북한이 갖고 있다고 한다. 미사일을 발사하는 첨단 전차와 첨단 장갑차의 실전 배치는 한국의 방위산업 수준으로는 엄두도 못 내는 계획인데 북한은 벌써 이를 끝냈다고 한다. 우리가 8년간 개발해 성공하지 못한 중어뢰를 북한은 벌써 개발을 끝내고 천안함 폭침에 활용했다고 한다. 여기에 무인공격기와 무인정찰기, 대규모 공기부양정이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 시대에 실전 배치되었다고 한다. 이미 세계 최고 성능의 장사정포에다 평택과 계룡대까지 타격할 수 있는 신형 장사정포까지 갖추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사이버 해커부대는 미국 수준이라고 한다. 만약 이런 정보가 전부 사실이라면 북한은 마치 일반적인 물리학의 법칙도 통하지 않는 신비의 나라이며 이제껏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초강대국이 아닐 수 없다.

해외 방산업체, 국내 무기 시장 손금 보듯

북한에 대한 이런 묘사는 무기 거래업체에 일종의 축복이다. 이런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특정 무기를 도입하는 데 국내 유력 언론과 예비역 장성들이 가담한다. 일단 북한의 위협이 강조되고 나면 반드시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수천억~수조 원에 달하는 해외 무기가 소개되는데, 그 무기를 공급하는 외국 회사의 국내 지사나 무역대리점(에이전트)에는 어김없이 군 고위간부 출신들이 포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값싸고 튼튼한 재래식 무기는 도입 대상에서 제외된다. 무조건 값이 비싸고 첨단이라야 해외 도입의 명분이 된다. 그런데 군 무기 도입은 군사기밀이기 때문에 예비역 장교와 현직 장교 간의 유착 관계, 군사기밀을 해외 방산업체에 제공하는 예비역의 자발적인 협조를 필요로 한다. 역대 정권이 아무리 무기 거래 비리 척결을 외쳐도 이런 공생 구조는 단 한 번도 뿌리 뽑힌 적이 없다. 특정 무기를 도입하도록 한 군사정책의 배후에는 어김없이 이들이 버티고 있고, 이들은 정치권력의 비호를 받기 때문이다. 정치권력이 아예 이런 비리의 일원으로 적극 참여하기까지 한다.

이런 한국 무기 도입의 독특한 토양은 무기 도입을 관장하는 방사청이 항상 외국 업체의 고단수 마케팅에 놀아나는 결과를 빚는다. 방사청은 구매나 계약을 담당하는 기관에 불과하고 군사정책은 이미 국방부와 합참, 각 군에서 결정해버렸기 때문이다. 국내 무기 소요를 간파한 해외 방산업체는 국내 무기 시장을 손금 보듯 하면서 체계적이고 치밀하게 마케팅 활동을 전개한다. 이들의 무기는 바로 ‘북한에 대한 공포’의 확산이다. 그런데 비리는 마치 이중·삼중의 규제와 감시를 받는 국내 제조업체의 문제인 것처럼 사태가 호도된다. 이것이 ‘방산 비리’라는 용어의 마술이다.

수조 원의 낭비는 묵인되고 수십억~수백억 원의 낭비만 부각되는 메커니즘이다. 여기에 군피아(군 출신+마피아)가 가세하는 국제 군산복합 세력의 막강한 영향력은 입찰 서류 조작, 공문서 위·변조쯤은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자행되게끔 한다. 따라서 이적행위는 ‘방산 비리’가 아닌 ‘무기 거래 비리’, 고단수 정책 로비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 용어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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